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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34) 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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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14:09 ㅣ No.1975

[창간 100주년 특별기획 - 가톨릭신문으로 보는 한국교회 100년] (34)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양적 성장 감격하는 동시에 민복 복음화의 무거운 사명감 느껴

 

 

광주의 비극을 목격한 이듬해인 1981년 10월, 한국교회는 처음으로 대규모 집회를 통해 한국 사회 안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교회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피 끓는 여정에 온전히 함께하지는 못한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5·18 광주의 진상을 세상에 전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한국교회는 하나의 독립된 지역교회로 설정된 지 150주년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기념행사를 가졌습니다. 그날의 감격을 가톨릭신문은 다음과 같이 전했습니다.

 

“한국 가톨릭교회 역사에 새로운 장이 열렸다. 150여 년 전 이 땅에 하느님 나라의 터전을 마련하고 독립 교구를 이룩한 목자들과 선조들의 위업을 기리며 그 높은 뜻을 오늘에 되새기기 위한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가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장엄하게 펼쳐졌다.”(가톨릭신문 1981년 10월 25일자 1면)

 

- 1981년 10월 18일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거행된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전국 신앙대회 모습.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한국교회 성장의 기폭제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은 1831년 조선대목구를 설정해 한국교회를 북경교구로부터 독립된 교구로 선포했습니다. 그로부터 150년이 지난 1981년 10월 18일 거행된 기념행사는 단순한 축하를 넘어, 3년 뒤인 1984년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과 ‘103위 성인 시성식’으로 이어지는,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맞아 서울 여의도에서 장엄하게 거행된 신앙대회에는 ‘천주교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사업’ 총재 김수환(스테파노) 추기경을 비롯해, 주한 교황대사 루치아노 안젤로니 대주교, 윤공희(빅토리노) 대주교, 노기남(바오로) 대주교 등 교회 고위 성직자들과 500여 명의 사제단, 그리고 80만 신앙인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그날의 감격스러운 순간을 가톨릭신문은 이렇게 전했습니다.

 

“80만을 헤아리는 신앙의 인파가 여의도광장을 입추의 여지 없이 메운 가운데 오전 10시 막이 오른 신앙대회는, 순교자의 피로써 이 땅에 심어진 신앙의 씨앗이 하나의 거대한 나무로 성장했음을 그대로 입증하는 한편 이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 교회상을 새롭게 정립하는 획기적인 전기를 이룩했다.”(가톨릭신문 1981년 10월 25일자 1면)

 

 

한국교회 성장에 경탄과 감사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날 신앙대회에 보낸 축하 메시지를 통해 “그리스도의 교회에 대한 사랑을 더 심화하고 하느님의 나라를 확장하는 열의를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습니다. 특히 교황은 “이 기쁜 축제는 복음의 씨앗이 어떻게 한국 겨레의 마음에 뿌리를 내렸으며, 그 씨앗이 어떻게 자라서 꽃피어 신자들의 삶에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했는지 잘 말해 주고 있다”며 경탄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김수환 추기경은 특별 강론에서 한국교회의 성장에 대해 자만하지 않고 민족과 사회 안에서 교회가 참으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에 대해서 강조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교회 지도자들이 가난을 말하면서도 가난하지 않고, 가난한 자와 약한 자들, 억눌린 자들을 외면하지 않았는지, 또한 교회 역시 다른 이익단체와 같은 생리를 지녀 자기 팽창에만 몰두하고 자기만족에 빠져 사회의 구조악을 조장하지 않았는가”를 깊이 반성하자고 촉구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특히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명히 수적 증가를 모든 면에서 이룩하고 있으나 이 사회를 밝히는 빛과 이 사회를 변혁하는 누룩의 구실을 과연 하고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며 교회 지도자들이 부패를 연장시키는 방부제가 아니라 생명을 부패에서 보호하는 소금의 역할을 다하도록 반성하고 선도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 신앙대회 기사가 게재된 가톨릭신문 1981년 10월 25일자 1면. 가톨릭신문 자료사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의 의미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1831년 조선대목구 설정은 한국교회가 북경 주교의 관할에서 벗어나 교황청 직속의 독립된 교구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150주년 행사는 평신도들의 자발적 투신으로 세워진 한국교회가 보편교회와 일치하면서 독자적인 위상을 갖추게 된 역사를 기념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150주년을 맞아 한국교회가 펼친 다양한 기념사업, 특히 여의도광장에 80만 명이 모여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을 기념함으로써, 한국교회는 세상을 향해 “와서 보시오”라고 외치며 자신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였습니다. 이날 기념행사에 이어, 한국교회는 3년 후인 1984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방한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 기념행사 및 103위 시성식 등의 대규모 종교 집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냅니다. 이러한 대규모 집회는 독재정권에 대항해 우리 사회 최후의 양심의 보루로 자리매김한 모습과 함께, 1980년대 한국교회의 비약적 교세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실제로 이날 대회에 이어 1984년 ‘이 땅에 빛을’ 주제로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을 맞아 이뤄진 일련의 사업들은 한국 교회사에서 하나의 분수령을 이뤘습니다. 각종 기념행사와 정신운동, 기념사업과 사목회의 등은 선교 3세기를 여는 야무진 발걸음이었습니다. 더욱이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80년대 말까지 두 차례에 걸쳐 방한함으로써 한국교회는 명실상부한 보편교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게 됩니다.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는 그 첫 발걸음이었던 셈입니다.

 

 

겨레의 운명에 부활을

 

하지만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 기념행사는 교회의 성장을 마냥 기뻐하고 경축하는 것으로만 그칠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은 당시 불과 1년 전 폭압적 국가 권력에 의해 무죄한 시민들이 학살당하는 광주의 비극을 목격해야 했습니다. 교회는 광주라는 민족의 십자가를 함께 짊어져야 했습니다. 150주년 기념행사에 앞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은 9월 9일 담화문을 통해 이를 일깨웠습니다.

 

김 추기경은 담화문에서 “오늘 우리는 빛나는 교회사를 기리는 한편 감격과 함께 무거운 사명감을 느낀다”며 “일제의 식민지 36년에서 벗어나 해방이 되었지만 동시에 초래된 국토분단의 아픔이 이어져 다시 36년, 우리 겨레는 지금 유물과 배금주의 권력의 획일주의 아래 지치고 허탈감에 빠져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추기경은 이어 “하느님의 법 안에서 양심과 정의와 일치를 위해 매일 기도하는 오늘의 우리는 이 땅의 모든 형제가 의심하고 방황하며 괴로워할 때 희망을 주는 민족사의 누룩이 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바로 수난사로 특징지어진 우리 겨레의 역사로 하여금 인류 평화에 크게 공헌하는 소명의 길”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김 추기경의 이러한 호소는, 이후 한국교회 창설 200주년에 즈음해 펼친 새로운 선교와 사목 정책의 수립 노력, 그리고 이 땅의 민주화를 향한 거침없는 투신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한국교회 역사에서 1980년대는 그야말로 격동과 거대한 전환의 시기였습니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18일, 박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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