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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26: 덕 없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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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6-01-12 ㅣ No.980

[성 토마스 아퀴나스에게 행복의 길을 묻다] (26) 덕 없이도 인간은 행복할 수 있을까?


‘니체의 비웃음’을 넘어, 우리 일상을 구원하는 ‘평범한 덕의 힘’

 

 

니체는 “덕은 더 이상 사람들이 생각할 수 없을 단어이자, 사람들이 그에 대해 웃음을 자아내도록 하는 구식 단어”라고 말했다. 사실 근대 이후에는 전통 철학에서 윤리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자리 잡았던 덕에 대한 논의는 사라지고, 그 자리를 의무론·공리주의·감정주의가 채웠다. 계몽주의와 근대 자연과학은 자연과 인간 안의 목적 개념을 배제했고, 이와 연관된 덕은 부수적이거나 개인적 성향 정도로만 취급됐기 때문이다. 그 결과 현대 생활에서는 도덕과 관련된 언어가 남아 있으면서도 윤리적 판단에 대한 공통된 기반이 붕괴돼 버렸다.

 

그나마 20세기 중반 이후에 상황이 변화되어, 앤스콤(E. Anscombe)과 매킨타이어(A. MacIntyre) 등의 학자들은 도덕 생활을 위해 덕에 관한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덕 윤리를 대표하는 아리스토텔레스와 성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론이 다시 주목받게 됐다. 그렇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고전적 덕 전통이 실제 삶을 포괄하는 도덕의 기준으로 작동하던 시대와는 달리 현대 사회에는 덕 윤리 자체가 하나의 ‘경쟁 이론’으로 취급될 뿐이다.

 

현대인들은 니체의 말처럼 덕을 강요된 사육이나 운동선수의 지나친 훈련처럼 여기며, 수도원에서나 적합한 것으로 취급한다. 철학 상담의 창시자 아헨바흐(G. Achenbach)에 따르면, 오늘날 덕이 사라진 곳에는 악덕들이 잡초처럼 무성하게 자라게 된다. 그러나 덕은 특별한 것이나 신비로운 것이 아니며 오히려 평범한 것으로서, 덕 없이 우리는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신학대전」에서 누구보다도 덕에 대해 상세하게 논의하고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는 덕에 대해서 어떤 내용을 설명할까? 본격적인 성찰에 앞서 우선 철학사 안에서 덕에 대한 이론이 어떻게 발전해 왔고, 토마스가 이를 어떻게 수용했는지에 대한 커다란 윤곽을 그리는 것으로 시작해 보고자 한다.

 

-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 “작용적 습성인 인간적 덕은 하나의 선한 습성으로서 선을 산출한다”며 사추덕의 전통을 받아들인다. 「신학대전」을 들고 의자에 앉아 있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양쪽 위에 절제, 현명, 정의, 용기(왼쪽부터)의 사추덕이 천사로 표현된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대성당 ‘스페인인 경당’의 서쪽 벽화. 출처 위키미디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발전한 덕 개념

 

이미 소크라테스는 덕 있는 습성이 올바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계속적인 행위의 수행을 돕는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그는 덕이 무엇이며 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에 대한 정확한 규정에 도달하지는 못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은 영혼의 세 부분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에 따라 인간의 윤리적인 특성도 드러난다고 주장하며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그에 따르면, 욕망혼에 따르는 이익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절제’라는 상태에 빠지기 쉽기 때문에 ‘절제’의 덕이 필요하다. 또한 기개혼에 따르며 이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욕망에 종속되면 오히려 ‘비굴함’을 드러내게 되므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용기’의 덕이 필요하다. 나아가 이성혼을 따르는 사람이 국가 공동체 전체를 위해서도 유익한 지식을 가지려면 ‘지혜’의 덕이 필요하다. 인간의 영혼이 가장 올바르게 되는 상태는 영혼의 세 부분이 각각 ‘제 일을 하는’ 경우이며, 이때 영혼의 조화가 이루어지며, 이를 위해서는 ‘정의’라는 덕이 필요하다. 후대 학자들은 이 네 가지 덕이 가장 중요하다는 의미에서 ‘4추덕(四樞德)’이라고 불렀다.

 

플라톤의 제자였던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더욱 구체화시켰다. 그에 따르면 덕이란 기회가 왔을 때 언제나 주요한 기능을 잘 발휘할 수 있는 영혼의 상태다. 따라서 덕은 자신 속에 ‘잘함’ 혹은 탁월성의 계기를 함축하고 있으며, 그 계기를 통해서 올바른 행동들을 지속적으로 해 나갈 수 있다. 더욱이 영혼의 덕에 따라 살아갈 때 인간은 자신의 최종 목적인 행복에 도달할 수 있다.

 

플라톤과는 대조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이 지니고 있는 품성이 지나치거나 모자람이 없이 그 중간을 실행하는 것, 즉 ‘중용(中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덕이라고 가르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진정한 용기라는 덕은 만용과 비겁의 중용이라고 말한다. 절제도 인색과 마구 돈을 쓰는 낭비의 중용이라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중용은 자신의 상태와 그 상황에 맞게 찾아가야 하는, 개개인이 평생에 걸쳐 시도해야 하는 윤리적 과제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한 고전적 덕 이론의 체계화

 

플라톤의 4추덕은 단절되지 않고 이어온 플라톤주의의 전통에 따라 이미 초기 스콜라 학자들에게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에 대한 강조는 13세기 중반 그의 「니코마코스 윤리학」이 번역 소개되면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두 가지 전통을 자신의 「신학대전」에서 절묘하게 종합해 낸다. 

 

토마스는 “작용적 습성인 인간적 덕은 하나의 선한 습성으로서 선을 산출한다”(I-II,55,3)고 말한다. 이렇게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토마스에 따르면, 덕은 획득된 능력이자 작용적 습성이며 훈련과 교육을 통해 획득된다. 또한 그는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덕에 관한 규정뿐만 아니라 지성적 덕과 도덕적 덕에 관한 구분도 그대로 수용한다.

 

이 구분에 따르면 플라톤이 강조한 지혜는 이해, 지식과 함께 지성적 덕에 속한다.(I-II,57,2) 따라서 그는 도덕적 덕의 핵심을 이루는 4추덕에서 지혜라는 용어를 ‘현명’(prudentia)이라는 용어로 대체한다. 또한 그 순서도 조금 변형시켰지만, 4추덕의 전통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이성의 규범에 ‘현명’, 의지의 규범에 ‘정의’, 탐욕적 욕구의 규범으로 ‘절제’, 분노적 욕구의 규범인 ‘용기’(I-II,61,2), 이 네 가지면 도덕적 덕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지나침이나 부족 때문에 이성으로부터 멀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토마스는 ‘올바른 이성과의 일치됨’인 “덕은 중용을 지키는 데 있다”(I-II,64,1)라고 주장함으로써 아리스토텔레스의 중용 이론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한번 고대 그리스철학의 다양한 유산이 「신학대전」 안에서 종합되고 놀라울 정도로 체계화되는 것을 발견한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덕에 관해서 단지 고대철학을 계승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는 철학자들이 언급했던 인간적 덕들과,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통하여 가지게 되는 신앙, 희망, 참사랑이라는 초인간적 덕들을 모두 포괄하는 체계를 마련하고자 노력했다. 토마스가 이 어려운 과제를 어떻게 수행하며 이를 통해 악덕이 잡초처럼 자라는 현대 사회에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지 다음 호부터 단계적으로 상세하게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11일, 박승찬 엘리야 교수(가톨릭대학교 철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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