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첸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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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단체: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 이사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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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회의 단체 · 14]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 이사회
탄생배경과 창립 : 교회사적 맥락에서의 의미
2025년 10월 4일(로마 현지 시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기념일에 교황 레오 14세는 교황청 사도궁 도서관에서 자신의 첫 권고(Apostolic Exhortation)인 「Dilexi Te」에 서명했고 10월 9일 공식 발표하였다. 교황청이 공개한 권고 첫머리 목차에는 1) 성 프란치스코, 2) 가난한 이들의 외침, 3) 이념적 편견, 4) 하느님은 가난한 이를 선택하신다, 5) 가난한 메시아 예수, 6) 가난한 이를 위한 교회, 7) 교회의 참된 부요함 등의 장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1) 교황 레오 14세가 자신의 첫 권고로 가난한 이들과 관련된 내용을 발표한 것처럼 교회는 늘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을 가장 중요한 사명으로 여겨왔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를 위한 하느님 사랑을 삶으로 보여주시기 위해 도움과 사랑이 더 절박하게 필요한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사랑하셨기 때문이다.
이렇게 성장한 빈첸시오회가 한국에 설립된 계기는 해방과 한국 전쟁 이후 이루어진 미국 교회의 구호 사업과 관련이 있다. 미국 천주교회 주교회의 산하 공식 해외 원조기구인 ‘가톨릭 구제회(Catholic Relief Service: C.R.S)’는 1943년 결성되었고 1946년부터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하였다. 1953년 휴전 이후에는 서울대목구를 통해 구호 활동을 하였는데 구호 물품이 좀 더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분배될 필요성도 생기기 시작하였다. 1955년 5월 충주 야현(현 교현동) 본당 주임 Joseph Wilbur(한국명 옥보을 玉保乙, 파리외방선교회)3) 신부는 파리 총 이사회와 서신 연락을 통해 본당 내에 빈첸시오회의 ‘지원 협의회’를 조직하여 이를 실행하였다. 이후 1960년 빈첸시오 세계 총이사회는 1960년 3월 결의를 통해 선진 회원국과 가난한 회원국을 대상으로 자매결연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이에 따라 뉴질랜드이사회가 한국을 돕기로 결정되었다. 1961년 1월 5일 뉴질랜드 국가이사회 게이노(Gaynor) 회장은 청주교구장 파디(J.V. Padi) 주교에게 빈첸시오회 설립을 공식으로 요청했고, 노기남 대주교와 게이노 회장의 주관으로 1월 6일 장익 신부(1994년 주교품을 받는다)가 빈첸시오회 회칙을 번역하여 한국 빈첸시오회 회칙의 근간을 마련하였다. 이를 통해 1961년 1월 29일 충주 야현 본당, 같은 해 2월 8일 춘천 운교동과 서울 명동성당에 빈첸시오회가 나란히 설립되었다. 이후 1963년 용산협의회, 1964년 구로3동협의회 등 서울대교구에서 여러 성당에 협의회가 설립됨에 따라 1964년 7월 19일 서울지구이사회가 설립되었다. 서울지구이사회 설립 이후 서울의 협의회는 더욱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1967년 7월 서울지구 이사회가 서울중앙이사회로 승격되었다.4)
현재 활동 : 현재 세상과 교회의 상황에 대한 응답
그러나 빈첸시오회는 한국이사회와 서울이사회 차원에서 각각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한국이사회 차원에서는 천사의 집 기금 및 간병인회 운영 주체 문제 등으로 불협화음이 생기게 되었다.8) 서울이사회의 경우는 교구로부터 명동성당 입구 옥외 주차장(로얄주차장)의 운영권 및 성물방 운영권 등 빈첸시오회의 재정확보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사업권을 받았음에도 이에 대한 강력한 관리 부재 등의 문제점이 불거진다. 결국 한국천주교주교회의는 1999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한국이사회의 활동 정지를 결정한다. 이후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한국이사회 차원의 자정 노력과 서울이사회의 쇄신 노력이 있었다. 서울이사회의 경우는 교구와 지구 차원에서 인적 교체를 통한 재정비의 시간을 가졌다. 그 결과 2002년 주교회의 춘계 정기총회는 한국이사회의 활동이 정상화되었다고 결정하였다. 이를 계기로 서울이사회도 침체된 분위기를 벗어나 새로운 도약을 모색한다.9) 당시 가톨릭평화신문 기사에 따르면 2001년 9월 정기총회를 통해 새로운 결의를 다지는데, 그중 하나는 가난한 이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돕기 위해서 150여 개의 본당협의회를 적어도 250여 개로 늘리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5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일반회원 교육과 11월 피정을 실시하는 것이다.10) 그 영향인지 2000년대에는 서울이사회가 주관하는 교육은 회원교육뿐 아니라 피정교육, 임원교육 등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갔고, 더 나아가 신입회원 교육, 사회교리, 지구별 영성교육까지 확장되었다.11)
이 밖에도 2000년대 들어서 주목할 활동으로는 자선음악회 개최가 있다. 2007년 9월을 시작으로 2019년까지 지속된 자선음악회의 수익금으로 노숙자센터, 비닐하우스촌, 다문화 가정, 쪽방촌 등을 지원하였다. 또한 2009년부터는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와 공동으로 월동 김치 및 쌀 나눔 행사를 진행하여 매해 2,400여 가구에 김장과 쌀을 지원하였다. 이 행사는 2018년부터는 지구별 행사로 전환하여 진행하고 있다.12)
한편, 빈첸시오 사랑 장학사업, 다문화지원사업, 독거노인지원사업도 서울 빈첸시오회의 중요한 사업이다.13) 이 중에서 장학사업은 지속적, 정기적, 확정적으로 장학금을 지급한다는 특징이 있다. 교구 지구 본당 관할 아래 있는 중고등학교의 학생 가운데 신자와 비신자를 불문하고 가장 어렵고 힘든 대상자를 우선 선정하여 120만 원을 지급한다.14)
또한 2023년 미얀마 파테인 교구 아이마(Aima) 본당 학생 기숙사와 교육관, 재해재난 대피소 완공에 큰 힘을 보탠 사업은 또 다른 차원에서 주목할 만하다. 2021년부터 서울이사회가 아이마 마을 주민들과 힘을 모아 공사를 시작했고, 2년여의 기간 동안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2023년 초 모든 공사를 마쳤다. 이 사업의 의미에 대해 담당 사제인 이재을(사도 요한) 신부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기숙사 건립은 그들의 공동체를 신앙적으로 채워주고, 사고와 가치를 바꿀 수 있는 일이었으며, 앞으로 이런 지향으로 빈첸시오회의 활동이 이어져야 합니다.”15)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는 본당 안에 구성된 ‘협의회’를 기본 조직으로 하는데, 여기에는 남성 · 여성 · 혼성 · 청소년 협의회가 있다. 그리고 지구 단위의 지구 이사회를 비롯하여 교구 이사회, 전국 이사회가 있으며, 이들은 파리에 있는 ‘총이사회’를 정점으로 통일성을 이룬다. 새로운 협의회와 이사회의 설립은 총이사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16)
매주 1회 회합을 갖는 ‘협의회’에서는 기도와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협의한다. 회원은 활동회원, 협조회원, 후원회원으로 구별되는데, 먼저 활동회원은 협의회 참석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방문을 정기적으로 실행하는 가톨릭 신자로서 ‘제1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칙’, ‘제2부 국제정관’, ‘제3부 한국이사회 내부규칙’을 준수하고, 양성 및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회원을 말한다. 다음으로 협조회원은 협의회에 참석하지 않으나 자선활동을 할 때 회에 도움을 제공한다. 이들은 축일 행사와 회의, 특별한 기념일 행사에 초대되고 임원이 될 수 있으나 투표권은 없다. 마지막으로 후원회원은 물질적으로나 다른 방법으로 후원을 정기적으로 행하여 빈첸시오회를 돕는 회원이다.17)
앞으로 전망 : 하느님의 뜻을 따라 나아갈 방향
2021년 9월 26일 명동대성당에서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 이사회는 설립 60주년을 맞아 총대리 손희송 주교 주례로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손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60년 동안의 노고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빈첸시오회 회원이라는 것에 자부심과 긍지를 충분히 가지라는 격려를 하였다.19) 이들은 60주년을 기념하며 자신들의 미래를 고민하며, “2017년 ‘빈센트 카리스마 400주년’을 맞아 빈첸시오 가족위원회20)가 발표한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 협력과 연대, 회원들의 영성 교육, 시대의 도전에 대한 비전 선언문의 의미를 생각하며, 이것을 실천하도록 하고 카리스마 500주년과 그 이후까지도 전통과 의미를 계승발전시켜야 한다.”라고 다짐하였다.21)
국가의 사회복지 서비스 확대로 인해 이웃 사랑을 국가가 하는 일이라는 인식이 확대되고, 본당 신자들은 빈체시오회의 일이 힘들다며 가입을 꺼리는 쉽지 않은 현실 앞에서 빈첸시오회는 자신들의 사명과 정체성을 다시금 정립하고 있다. 그 힘으로 복자 오자남이 걸어간 길,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며 사랑을 나누는 길을 계속 걸어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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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톨릭신문 2025. 10. 7(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20251005500005). 2) 『천주교 서울대교구 성 빈체시오 아 바오로회 설립 60년사』(이하 『60년사』), 80~81쪽. 3) 『한국평협50년사』 256쪽에서는 사제 명을 ‘Joseph Wilbur’로 표기하고 있고, 『가톨릭대사전』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항목에서는 보어(J. Borer, 玉保乙)로 표기되어 있다. 이 글에서는 ‘Joseph Wilbur’로 표기하고 괄호 안 한국명은 ‘옥보을’(玉保乙)로 하였다. 4) 『60년사』, 106~107쪽. 5) 전국 조직인 한국이사회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인준을 받은 것은 1975년이지만, 이들은 자신들의 출발점을 1961년으로 규정한다. 『한국평협50년사』, 256~257쪽. 6) 『한국평협50년사』, 259쪽. 7) 『60년사』, 38쪽 연표. 8) 『한국평협50년사』, 260쪽. 9) 『60년사』, 110~111쪽. 10) 가톨릭평화신문 2001. 9. 20(https://news.cpbc.co.kr/article/172612). 11) 『60년사』, 88~93쪽. 교육 진행 현황 참조. 12) 『60년사』, 113쪽. 13) 서울대교구 빈첸시오회 홈페이지(http://www.ssvps.or.kr/people.html) 참조. 14) 서울대교구 빈첸시오회 홈페이지(http://www.ssvps.or.kr/act.html) 참조. 15) 가톨릭평화신문 2023. 5.30(https://news.cpbc.co.kr/article/1109924). 16) 『한국가톨릭대사전』 6권,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한국교회사연구소, 1998, 3833쪽. 17) 서울대교구 빈첸시오회 홈페이지(http://www.ssvps.or.kr/people.html) 참조. 18) 서울대교구 빈첸시오회 홈페이지(http://www.ssvps.or.kr/people.html) 참조. 19) 가톨릭평화신문 2021. 9. 28(https://news.cpbc.co.kr/article/810268). 20) 가족 모임에는 ‘성 빈체시오 아 바오로회’, ‘성 빈체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참여한다. 『60년사』 86쪽. 21) 『60년사』 115쪽. 또한 이들은 빈첸시오회의 발전적인 미래를 위한 7가지 제안을 60주년을 맞이하여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서는 같은 책, 116쪽 참조.
[교회와 역사, 2025년 11월호, 현재우 에드몬드(한국교회사연구소 특임연구원)] 0 7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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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 이사회 로고.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 70여 년간 프랑스 정치체제가 큰 혼란을 겪고 산업혁명으로 농민들이 도시로 이동하는 가운데 도시 하층민들의 삶은 극심한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상황에서 복자 프레드릭 오자남(Frederic Ozanam, 1813~1853)이 동료들과 함께 1883년 ‘자선 협의회’(Conference of Charity)라는 단체를 만들어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하였다. 이 단체는 1885년 모든 자선 사업의 수호성인인 빈첸시오 아 바오로(Vincent de Paul, 1581~1660)를 주보 성인으로 삼아 지금의 이름인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이하 빈첸시오회)가 되었다. 오자남은 소르본 대학교의 교수직을 수행하면서도 자선 활동을 꾸준히 했을 뿐 아니라 빈첸시오 모임을 새로운 지역에 설립하는 데에도 최선을 다했다. 1847년 교황 비오 9세를 알현한 오자남은 당시 빈첸시오회의 현황을 보고했는데, 프랑스를 넘어서 영국,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설립되어 있었다.2)
서울중앙이사회(이하 서울이사회)로 승격된 후 1980년까지 60여 개의 협의회가 추가로 설립되었을 뿐 아니라, 각 본당 협의회별 또는 지구별로 다양한 활동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1990년대 중반까지 발전이 이어졌다. 1990년에는 음성 꽃동네에서 한국 빈첸시오회 설립 30주년5) 기념행사를 개최하였고, 30주년을 기념하며 버림받은 아동들을 보호하고 돌보기 위한 ‘천사의 집’ 건립 기공식을 거행하였다.6) 이를 계기로 음성 꽃동네, 광주대교구, 대전교구에 ‘천사의 집’이 지어졌는데 서울이사회도 기금 조성에 중요하게 이바지하였다.7)
빈첸시오회의 활동은 나라마다 다양하지만,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와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기본적인 활동이다. 이들의 활동의 핵심은 가정방문을 통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다. 이들이 돕는 대상자는 정신장애인, 신체장애인, 소년소녀 가정(가장), 빈민, 독거노인, 병자, 문맹인, 실직자, 요보호아동, 틈새 가정, 교도소 수감자 및 가정, 장학금, 노숙자, 냉담자, 상가 돌봄, 가사 돌보기, 복지시설 방문, 장례 돌봄, 의료비 등 냉정한 사회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다. 자선 활동에는 경제적 도움이 포함되지만, 그것은 한시적이라고 한다. 이들이 더 중시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물질적 도움을 넘어서는 인격적 존중과 따뜻한 우정이다.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