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문헌ㅣ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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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제42회 자선주일 주교회의 담화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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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회 자선 주일 담화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은 대림 제3주일이며 제42회 자선 주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호세아 예언자의 말씀을 상기시키시며 ‘자비’를 거듭 강조하십니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자선 주일은 우리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자비를 묵상할 수 있는 좋은 날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의 선행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의 업적이 아무리 크더라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는 어마어마한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철저하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자비로우신 것처럼 우리가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바라시며 당부하십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네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하지 않느냐?”(마태 18,33) 그리고 자비로운 사람들의 행복을 축원하십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천상병 시인의 시집 『새』에 “편지”라는 시가 있습니다.
점심을 얻어먹고 배부른 내가 배고팠던 나에게 편지를 쓴다.
옛날에도 더러 있었던 일, 그다지 섭섭하진 않겠지?
때론 호사로운 적도 없지 않았다. 그걸 잊지 말아 주기 바란다.
내일을 믿다가 이십 년!
배부른 내가 그걸 잊을까 걱정이 되어서
나는 자네한테 편지를 쓴다네.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우리에게도 있었던 배고팠던 시절이 떠오르십니까? 툭하면 굶었던 날들이 생각나지 않습니까? 고마운 사람들이 하나둘 떠올려지지 않습니까?
그 옛날처럼 지금도 우리 주변에 배고픈 사람들은 여전히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다]”(마태 25,42). 어려운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은 그들이 살아갈 힘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밥을 나누는 것은 우리 인류가 형제자매가 되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서로 아픔과 슬픔을 나누는 것은 우리가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것은 행복한 인류 가족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은 우리 인간이 약육강식의 짐승 세계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징표입니다.
몇 년 전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드라마가 인기를 끌었습니다. 주인공이 돌고래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왜 돌고래를 좋아하였는지는 그만이 알겠지요. 짐작하건대, 돌고래와 인간의 공통점이 약자들을 돌보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약육강식의 짐승 세계에서는 약자가 도태되기 마련인데, 돌고래는 그러지 않아서 장애인이었던 주인공이 돌고래를 좋아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럴 것입니다.
돌아가신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남기신 말씀입니다. “한때 크리스마스 카드에 ‘밥이 됩시다.’ ‘제가 밥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라는 문구를 써서 부쳤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영혼과 육신이 허기진 이들을 위해 ‘밥’이 될 만큼 자기 자신을 내놓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바람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어수룩한 사람을 얕잡아 보고 ‘저 사람은 내 밥이야!’라는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을 한없이 낮추고 비워 우리 모두에게 ‘밥’이 되셨습니다. 그분은 십자가 죽음으로 당신의 모든 것을 내놓으셨습니다. 현대인들은 오늘도 ‘나는 결코 너의 밥이 될 수 없다.’며 치열한 경쟁을 벌입니다. 그뿐 아니라 타인을 ‘내 밥’으로 삼기 위해 혈안이 돼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 인간다운 사회가 되려면 타인에게 밥이 되어 주는 사람이 많아야 합니다. 이는 단순히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웃의 고통과 슬픔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려는 마음도 밥이 되어 주는 것입니다. 나눌 것이 없다면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에게 밥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이기주의와 약육강식 논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하늘나라에서 온 편지』 중에서).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으로 우리는 인간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함께 울고, 함께 기뻐하고, 내 밥을 함께 나누는 것이 우리를 천사의 세계로 이끕니다. 우리가 이웃을 생각하고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한 가지 이유를 프랑스의 가톨릭 시인 샤를 페기(Charles Péguy)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공동으로 구원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함께 사랑하는 하느님께 도달해야 합니다. 하느님 앞으로 함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저 사람 없이 이 사람하고만 하느님께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우리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사람이면 누구나 조금씩은 이웃을 생각해야 하고 이웃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 없이 우리만 하느님께 나아간다면, 다른 사람 없이 우리 홀로 집을 찾아 들어온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겠습니까?”(Le Mystère de la charité de Jeanne d'Arc 중에서)
인간은 천사와 짐승의 중간 존재라고 하였던가요? 인간이 짐승의 세계에서 벗어나 천사의 단계로 넘어가는 존재라는 뜻으로 알아듣습니다. 아직 짐승으로 머물러 있는 사람들도 많고, 우리 자신도 때때로 짐승과 다를 바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만, 우리는 가끔 우리 주변에서 천사들을 만납니다. 그리고 자비는 이따금 우리에게 천사의 날개를 달아 주기도 합니다. 천사들을 많이 만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025년 12월 14일 자선 주일에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조규만 주교 파일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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