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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이 시대의 희망人: 사랑받는 자는 용감하다 - 장영희 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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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 특집 - 이 시대의 희망人] 사랑받는 자는 용감하다 : 장영희 마리아
척! 쩌렁! 척! 쩌렁! 수평선처럼 이어진 복도 끝에서 당찬 목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장영희 마리아. 그녀는 지금 병원 전체가 울리도록 자신의 존재를 당당히 드러내고 있다. 그녀의 걸음이 이리도 웅장한 것은 소아마비로 힘을 잃은 두 다리를 대신한 목발과 다리 보조기 때문만은 아니다. 걸음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겨있듯이 그녀의 목발에는 용감함이 담겨있다. 진료실에 도착한 영희는 얼마 전, 검사한 결과를 듣기 위해 의사와 마주했다. 이미 2001년에 유방암, 2004년에 척추암을 견뎠다. 더 나빠질 일이 뭐가 있을까? 어쩌면 그런 생각이 차분히 의사를 바라볼 수 있게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런 영희를 비웃기라도 하듯, 의사는 암이 간으로 전이되었다며 간암이라는 선고를 내렸다. 기가 막혔다. 더 나빠질 일이 아직도 남아있었다니!
어린 시절, 영희는 골목 모퉁이 쪽에 살았다. 어느 날인가 집 앞에 앉아 있는데 골목을 지나가던 깨엿 장수가 영희와 영희 옆의 목발을 흘낏 보고는 깨엿 두 개를 내밀었다. 그러고는 잠깐의 미소와 함께 말했다. “괜찮아.”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깨엿의 달콤함과 단단함 만큼 영희의 마음을 달게 했고 단단하게 했다.
진료실을 나와 잠시 목발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았다. 멍하니 목발을 바라봤다. 1살도 되기 전, 소아마비 판정을 받고 5살이 되도록 누워만 지내야 했던 영희를 어머니는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업어서 등하교를 시켰다. 비가 오면 한 손으로 우산을 받쳐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영희의 무게를 감당했다. 겨울이면 학교까지의 길에 연탄재를 뿌리고 영희의 다리 혈액 순환을 위해 직접 솜을 넣어 만든 바지를 아랫목에 데워 입혔다. 귀가 떨어질 듯 아린 겨울날에도 ‘눈물 같은 땀’을 흠뻑 적시며 딸을 업었다. 어머니는 딸이 혹여 실수할까 봐 2시간에 한 번씩 학교에 와 화장실을 데리고 다녔다.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어머니의 오랜 희생이 영희를 빛나게 했고 영글게 했다.
암이 자연스럽게 죽음을 떠올리게 해서인가?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도 연거푸 떠올랐다. 아버지이자 스승이었던 장왕록 박사. 한국 영문학의 역사였던 아버지는 상급 학교에 진학할 때마다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는 학교를 찾아다니며 영희를 위해 사정했다.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영희의 재능을 믿었고 이해했다. 영희를 ‘더 큰 세상’으로 안내한 아버지가 있었기에 지금껏 영문학자, 교수, 번역가의 삶을 살 수 있었다. 깨엿 장수, 어머니, 아버지, 오빠, 언니, 동생, 수많은 제자, 친구, 이 모두를 보내주신 하느님…. 그렇다!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랑받는 자는 용감하다.” 영희는 목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척! 쩌렁! 척! 쩌렁! 온 세상이 울리도록.
덧) 장영희 박사는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암 투병 중에도 “신은 다시 일어서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넘어뜨린다고 믿는다.”라고 했다.
[2025년 11월 23일(다해)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성서 주간) 서울주보 7면, 서희정 마리아(작가)] 0 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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