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5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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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와 마음읽기: 언어 예술가의 표현처럼(비폭력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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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10-09 ㅣ No.988

[레지오와 마음읽기] 언어 예술가의 표현처럼(비폭력대화)

 

 

다음 속담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이것’은 무엇일까? ‘사람의 이것은 뼈가 없어도, 사람의 뼈를 부순다.’ ‘이것 밑에 도끼 들었다.’ ‘곰은 쓸개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것 때문에 죽는다.’ 답은 바로 ‘혀’이다. 혀가 하는 말의 강력한 힘을 나타내는 것이리라. 성경에도 ‘사람의 혀는 아무도 길들일 수 없습니다. 혀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악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독이 가득합니다’(야고 3,8)라고 되어 있다. 

 

하지만 잠언에는 ‘지혜로운 이들의 혀는 지식을 베’푼다(15,2)고 하고, 시편 저자는 ‘제 혀는 능숙한 서기의 붓입니다’(시편 45,2)라니, 혀를 어떻게 쓰느냐의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성경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우리는 이 혀로 주님이신 아버지를 찬미하기도 하고, 또 이 혀로 하느님과 비슷하게 창조된 사람들을 저주하기도 합니다.’(야고 3,9) 

 

‘비폭력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라는 것이 있다. 이는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솔직하게 표현하며, 동시에 상대방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려는 대화법’이다. 이 의사소통 방식을 고안해 낸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는 유대인이었다. 그는 반유대 정서가 강한 미국 디트로이트 지역에 살면서 잦은 충돌과 폭력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해결책과 대안을 고민하였다. 그 결과가 바로 비폭력대화이다. 이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대화법으로, 관찰-느낌-욕구-부탁이라는 네 단계로 이루어져 있다.

 

 

‘비폭력대화’는 말하는 자와 듣는 자, 모두의 욕구를 충족하는 대화법

 

관찰이라는 첫 단계는 어떤 상황을 잘 보고 표현하되, 그 상황에 대한 ‘평가나 판단 없이’ 사실 그대로를 비디오로 찍듯이 이야기하는 것을 말한다. 즉 “그가 화를 냈다”보다는 “그가 책을 던졌다”로, “너는 항상 늦어”라기보다는 “너는 오늘 약속 시간보다 10분 정도 늦었어”가 관찰적 표현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관찰한 내용에 대한 느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때 생각이 아니라 느낌을 표현해야 하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네가 늦는 것은 나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뜻이야”(생각)보다는 “나는 네가 약속 시간에 늦어 속상해”(느낌)라고 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그 느낌이 나의 어떤 욕구와 연결되어 있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욕구는 보편적으로 단순히 원하는 것으로 인식되기 쉽지만, 그 이상으로 삶의 질을 높이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이다. 욕구는 안전이나 소속감, 존중이나 자율성, 성장이나 즐거움 등 다양하게 있는데, 이 욕구들이 바로 느낌의 원인이 된다. “나는 우리가 시간을 잘 지켜 함께하는 활동에 집중하고 싶었어” 혹은 “나는 너에게 존중받고 싶어” 등의 표현이다. 비폭력대화의 마지막 단계는 부탁이다. 이는 상대가 해주길 바라는 긍정적인 행동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의문형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앞으로 약속 시간에 맞추어 올 수 있겠어?” 혹은 “혹시 약속 시간에 늦으면 미리 연락할 수 있겠니?”가 그 예가 될 것이다. 

 

대화란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두 주체로 이루어진다. 그러므로 비폭력대화의 네 단계는 상대방의 감정과 욕구를 이해하며 상대가 나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도 유용하다. 이를 ‘공감으로 듣기’라고 하는데, 이때는 ‘당신’이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한다. 예를 들면, “당신은 **를 보았을 때(관찰) **라고 느껴(느낌)? 왜냐하면 당신은 **가 중요하기 때문이고(욕구) 그래서 당신은 내가 **하기를 원해?(부탁)”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나를 표현하기 위해 ‘나는’이 반복되는 것과 대조되어 상대의 입장을 헤아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비폭력대화의 목적은 우리 내면에 있는 본성적인 연민을 일깨워 서로 공감하고 배려하는 관계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니 비폭력대화에서 비록 네 단계가 강조되긴 하나, 기술보다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의 모양새가 더 중요함은 두말할 것도 없다. 

 

Y자매는 공무원이었지만 동료들과의 관계가 너무 어려워 40대 중반에 퇴직하고, 이런저런 사업들을 하였지만 하는 일마다 잘되지 않았다. 50대가 되자 몸도 좋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우연히 만난 예전 은사님의 권유로 세례받고 대모를 따라 레지오에 입단했다. 다소 젊은 편인 그녀는 금세 단장이 되었는데, 이후 쁘레시디움에 결석자가 많아지는 등 분위기가 달라졌다. 이에 대모의 조언을 구하던 중, 그녀의 말투가 문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모님의 조언에 놀라 저를 돌아보니, 똑똑한 오빠에 비해 다소 어눌했던 저에게 엄마는 자주 빈정대며 비꼬는 말투를 쓰셨더라고요. 그 말투를 제가 닮았고 부정적 생각도, 서툰 대인관계도, 모두 말투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후로 말투를 고치려고 다방면으로 노력하여 지금은 많이 좋아졌습니다만, 아직도 가끔씩 부정적인 말을 내뱉곤 후회하는 저를 보기도 하지요.”

 

 

레지오 단원들은 자신의 영혼이 성모님과 일치하고 있는지 살펴야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관계를 맺고 그 관계들 속에서 살아간다. 이 관계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 ‘말’이다. 말은 감정이나 생각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신념, 경험 등 보이지 않는 내면세계를 겉으로 소리 내어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대체로 내면이 성숙한 사람들이 말에 실수가 없고, 그런 내면이야말로 좋은 관계의 필수적 요소가 된다. 실제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는 ‘관계의 명수’라고 불리는데, 이는 단순히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존재와 깊은 사랑과 평화의 관계를 맺었다는 뜻으로, 이를 교본에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은)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모습은 변질되지 않는다고 그는 생각했다”(455쪽)라며 프란치스코의 인간에 대한 긍정적 기대가 좋은 관계의 기초임을 이야기한다. 

 

나는 말을 신중하게 잘하는 편인가? 아니면 노력은 하지만 잘 안되어 자주 후회하는 편인가? 교본에는 ‘성모님의 말씀 한마디 한마디는 언어 예술가의 표현처럼 아름다웠다’(176쪽)라고 하니, 내가 레지오에 머물며 ‘제대로’ 단원 생활을 하고 있다면, 성모님을 닮아 말을 잘 다루는 능력을 갖추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레지오의 목적은 성모님을 거울처럼 비추는 것’(교본 420쪽)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교본에는 구체적인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늘 마음속에 성모님을 떠올리도록 하’고(418쪽) ‘미사, 영성체, 성체 조배, 묵주기도, 십자가의 길 또는 그 외의 다른 모든 신심 행위를 통해서, 레지오 단원들은 늘 그러했듯이 자신의 영혼이 성모님과 일치하고 있는지를 살펴야’(48쪽) 한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레지오 단원이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방법만 있을 뿐이다. 그것은 따뜻한 마음씨와 다정한 태도이다.’ (교본 422쪽)  

 

[성모님의 군단, 2025년 9월호, 신경숙 데레사(독서치료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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