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전례ㅣ미사

[위령] 위령기도 해설2: 생생히 살아 있는 시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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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9-04 ㅣ No.2682

[돋보기] 위령기도 해설 (2) 생생히 살아 있는 시편

 

 

1. 운문(韻文) 기도의 결정체(結晶體)

 

하느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자기의 전 존재를 그분께 맡기는 이들은 그분의 은총에 감사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곤경(困境)을 당하면 주님께 구원을 호소하고 그분의 응답을 기다리며, 미처 대처할 수 없을 만큼 급한 위기에 처하면 화살기도를 합니다. 이런 기도를 운문으로 기록한 문서가 구약의 율법(탈출 15,1-21)과 역사(1사무 2,1-10), 신약의 복음(루카 1,46-55)과 서간(1코린 13,1-13) 등에 있습니다. 이와는 별도로 오랜 기간 전해진 운문 기도 150편(篇)을 수집‧정리해 성경에 실어놓은 것을 중국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우리나라는 성영(聖詠), 오늘날 우리나라와 일본은 시편이라고 부릅니다.

 

 

2. 시편 저자의 다양성과 연속성

 

다윗은 이스라엘의 음악을 모으고 정리했으며, 민족종교를 국가 종교로 공고화(鞏固化)했으므로 시편 저자 가운데 그의 이름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인들은 신앙심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는 데 익숙했고, 민족이 생긴 초기부터 문자가 있어 많은 이가 기도를 시의 형태로 기록했습니다. 어려움에 빠지면 성전으로 가서 탄원 시편을 지어 노래하고, 고난에서 벗어나면 감사 시편으로 하느님을 찬미하던 민중, 사제와 전례 담당자와 성전 음악가, 임금과 주변 사람 등 각계각층이 시로 표현한 기도를 많이 남겼습니다. 주변 종교의 영향을 받기도 했지만, 궁극적으로 자기 신앙을 독창적으로 드러냈습니다. 어떤 사람이 시의 형태로 기도를 남기면 다른 이들이 이런 문구(文句)를 보고 자기 처지와 필요에 맞게 바꾸면서 계속 생생한 기도로 발전시키고 전했습니다.

 

 

3. 시편 편수(篇數)의 차이

 

시편의 편은 시를 세는 단위이지만, 구약성경에 한 권(卷)으로 묶은 150수(首) 전체를 지칭하기도 합니다. 한 권으로 편찬하기 전에 여러 모음집이 있었고, 체계적으로 편집한 것이 아니어서 겹치기도 했습니다. 기원전부터 알렉산드리아에 살던 이스라엘인들이 히브리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후손을 위해 그리스어로 번역한 Septuaginta(칠십인역성경)를 펴냈습니다.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구조, 편찬 방식 등의 차이로 히브리어 성경 9편과 10편, 114편과 115편을 칠십인역성경에서 각각 한 편으로 묶었고, 히브리어 성경 147편을 칠십인역성경에서 두 편으로 나누었으므로 편수에 차이가 생겼습니다. ‘매일 미사’에 실린 시편의 앞 숫자는 히브리어 성경, 괄호 안의 숫자는 칠십인역성경의 편수이고, ‘상장 예식’은 반대로 앞 숫자가 칠십인역성경, 괄호 안의 숫자가 히브리어 성경의 편수입니다.

 

 

4. 시편의 유형

 

시편은 구조‧어법‧어조 등이 비슷한 운문이지만, 여러 배경에서 서로 다른 이유와 목적으로 만들어진 개별적인 작품들을 묶어 놓은 것입니다. 개개의 시편을 놓고 보면 복잡다단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의 삶이 뒤섞여 있고, 기도하는 순간이 지난 뒤에 내용을 체계적으로 다듬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작은 시집들을 여러 번 모으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중복되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기 동안 만들어진 작품들을 모은 것이라 오늘날의 기준에 맞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편들은 서로 밀접하게 관련되는데, 사람은 언제 어디서나 믿고 의지하는 하느님 안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선택된 민족으로서 하느님을 향한 가장 중요한 마음가짐은 믿음이었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하느님과 관계도 올바르게 성립할 수 없으므로 믿음은 탄원 시편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역경을 겪을 때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간구하는 탄원 시편을 바치고, 어려움이 해결되면 감사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감사 시편이 탄원 시편보다 적은 이유는, 도움이 필요할 때는 간절히 기도하지만, 어려운 일이 해결되면 감사해하지 않거나 잊어버리는 인간의 속성 때문입니다. 하느님께 고난을 해결해 주시기를 간청하는 탄원 시편이 많기는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 대한 고마움을 고백하고 찬미하는 감사‧찬양 시편으로 확장했습니다. 또한 자기를 구원해 주시는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믿음을 노래하는 신뢰 시편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스라엘 임금은 나라와 백성을 편안하고 안정적으로 살도록 해주는 존재이면서 종교의식도 그들에 의해, 그들을 위해 거행했으므로 군왕 시편이 생겼습니다. 그들은 통치자로 그치지 않고 하느님께서 다윗에게 내리신 약속을 완전히 실현할 메시아에 대한 희망의 발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군주제도가 무너진 뒤에도 장차 오실 구세주를 찬미하는 노래로 발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인들은 성전을 순례하면서 순례 시편, 성전에서 의식을 거행하면서 전례‧제의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지혜 문학의 영향을 받은 교훈‧지혜 시편, 율법 조항이 아닌 하느님께서 베푸신 가르침의 총체(總體)로서 율법 시편을 남겼습니다. 모든 시편은 하느님께 대한 찬미로 귀결되므로 각 시편의 작은 묶음들은 “하느님‧주님께서는 찬미를 받으실지어다.”로 시작해 시편 150편으로 주님께 대한 모든 찬미를 마무리했습니다.

 

 

5. ‘상장 예식’의 중심인 시편

 

시편에는 하느님을 배반하고 죄를 저지르기만 하는데도 그런 우리를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그분의 사랑이 생생히 드러납니다. 세상 순례를 마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자세까지 알려줍니다. 이런 연유에서 시편은 미사의 주요 기도이자 위령기도의 중심이 된 것입니다. ‘상장 예식’에 여러 유형이 실렸는데, 탄원‧참회‧감사‧찬양 시편이 주를 이룹니다. 41(42)‧50(51)‧62(63)‧129(130)편은 탄원‧참회 시편이고, 그 가운데 50(51)편‧129(130)편은 위령기도의 중심으로 7편의 참회 시편을 대표합니다. 탄원‧감사 시편인 39편은 임종할 때, 62(63)편은 운명한 뒤에 바칩니다. 감사 시편인 117(118)편은 운구와 면례(緬禮), 찬양 시편인 83(84)‧92(93)‧113(114)편은 운구할 때 노래합니다.

 

교회의 장례와 위령기도에 신뢰‧참회 시편이 많은 것은 이 세상 순례를 마치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자세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는 동안 수많은 죄를 저지르고 하느님을 외면합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죄 많은 자녀를 한없는 사랑으로 용서하고 받아주시는 인자한 아버지이십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 죄를 아프게 뉘우치고 용서를 빌면 그분 품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장례를 거행하거나 위령기도를 바칠 때 중심이 되는 이 시편들은 이 세상 순례를 마친 이뿐 아니라, 아직 순례 중인 우리를 위한 참회‧탄원과 더불어 하느님께 흠숭‧감사‧찬미를 드리는 기도입니다. 따라서 죽은 이뿐 아니라 산 이를 위한 기도에서도 시편은 중심이 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8월호, 박명진 시몬(서울대교구 연령회연합회 상장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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