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4일 (월)
(녹)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가톨릭 교리

생활교리: 하느님 아버지는 누구이신가?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7-13 ㅣ No.5911

[생활교리] 하느님 아버지는 누구이신가?

 

 

우리는 보통 다양한 하느님 호칭 가운데, 하느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는가? 우리말 번역과 달리, 사도신경의 라틴어 원문은 하느님에 대한 첫 고백을 “아버지”로 시작한다(Credo in Deum Patrem...). 예수님께서도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Our Father...)로 부르도록 가르치셨고, 실제로도 그렇게 기도하셨다. 특히나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서에 따르면, 십자가 위에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마르 15,34; 마태 27,46)이라 하신 경우를 제외하고, 예수님은 늘 하느님을 (아빠)아버지로 부르며 기도하셨다.

 

예수님은 왜 하느님을 우선적으로 아버지라 고백하고 부르셨는가? 여기서 ‘아버지’란 칭호는 생물학적 성(性)의 의미가 아니라, 예수님과 하느님 사이의 깊은 인격적인 관계를 나타낸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40 참조). 실제로 예수님은 세례 때 하느님으로부터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르 1,11)로 드러나셨고, 당신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다”(요한 10,30),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요한 14,9)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과의 전적인 신뢰와 친밀한 관계를 보여주셨다.

 

나아가 예수님은 하느님을 “내 아버지”, 제자들에게는 “너희의 아버지”(요한 20,17)로 다르게 부르셨다. 이는 성부와 성자가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하고 특별한 사랑의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말해준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외아들”(요한 3,16)이시지만, 그 아버지와 아들의 ‘영원한’ 관계는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한 우리에게도 이어진다(로마 8,15; 갈라 4,6).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하느님 아버지는 어떤 분이신가? 첫째, “하늘에 계신” 초월적 존재이시지만 동시에 우리 가운데 가까이 계시며 활동하시는 “우리 아버지”이시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실만큼 모든 것을 아시고, 우리의 바람과 간청을 들어주신다(마태 6,31-32; 10,30; 루카 11,11-13). 둘째,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마태 5,45) 햇빛을 비추어주시며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는 모든 이의 아버지이시다(로마 2,11; 갈라 2,6). 때문에 하느님을 아버지로 고백하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는 역할의 ‘차이’는 있어도, 신분상의 ‘차별’은 있을 수 없다. 셋째, 영원한 사랑과 돌봄으로 참고 기다려주시는 아버지이시다. “되찾은 아들”(루카 15장), 아니 ‘자비로운 아버지’ 비유에서 아들의 ‘돌아옴’은 단지 빈털터리와 배고픔 때문일까? 오히려 “아직도 멀리 떨어져”(20) 있는 아들을 단숨에 알아볼 만큼 간절히 그리워하며 기다려온 아버지의 사랑과 인내가 아니었을까? 하느님은 연민과 자비 안에서 우리 마음의 문을 계속 두드리시며(묵시 3,20), 그에 응답할 때까지 참고 기다려주시는 아버지이시다.

 

그러면 이제 우리에게 남은 몫은 무엇인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답게”(에페 5,1), 아버지의 이름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날 수 있도록”(필리 2,15) 이 소중한 삶을 충실하고 멋지게,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내는 일이 아닐까!

 

[2025년 7월 13일(다해) 연중 제15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8면, 윤태종 토마스 신부(전주가톨릭신학원)] 



4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