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8일 (토)
(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고개를 들다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6-17 ㅣ No.2176

[영성심리 칼럼] 고개를 들다

 

 

에릭슨의 ‘심리사회적 8단계 발달 모델’의 세 번째(3~6세)는 ‘주도성 대 죄의식’ 단계입니다. 이 시기의 아동은 큰아이로 행동하려고 하며 분명한 목적 아래 자신의 행동을 시작하고 마치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아이의 목표와 활동은 때로 부모나 다른 가족의 목표/활동과 부딪히기 마련이죠. 이 갈등을 적절하게 다루면 아이는 하고 싶은 대로 활동하는 ‘주도성’을 기르게 되지만, 아이의 활동을 지나치게 처벌하거나 억제하면 아이는 ‘죄책감’을 발달시킵니다. 그리고 죄책감이 거듭되면 아이의 내면에는 자신을 나쁜 사람으로 여기는 ‘자기혐오’의 태도가 형성됩니다. 행동이 ‘나쁜’ 것과 나라는 사람이 ‘나쁜’ 것을 아직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혐오로 이어지는 죄의식은 건강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억제된 자기혐오가 자신을 향하면 만성적인 우울감으로 발전하기 쉽고, 다른 사람을 향하면 공격적인 성향이나 완벽주의 또는 강박적인 성향으로 발전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발달 단계에서 형성된 죄의식은 하느님과 맺는 관계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여러분이 만나는 하느님은 어떤 분이신가요? 늘 감시하고 벌하는 엄한 분이신가요, 아니면 나를 좋아하고 믿어주고 지지해 주는 분이신가요?

 

원죄의 결과로 물려받은 근원적인 자기중심성 때문에 우리는 생명을 더하는 길보다 죽음을 향하는 길로 기울어지기 일쑤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보호하는 도구들, 곧 여러 계명이나 고해성사 같은 안전장치가 필요하죠. 그런데 작은 일에도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끼는 분이라면 이런 안전장치를 하느님께서 나를 속박하시는 도구로 느끼기 쉽습니다. 예수님께서 자비와 사랑의 하느님을 끊임없이 알려주셨지만, 여전히 하느님을 엄하신 분으로 알아듣는 모습입니다.

 

루카복음 15장에 ‘되찾은 아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많은 분이 잘 아시는 내용이죠. 그런데 두 아들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두 아들 모두 아버지의 ‘아들’입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자신을 아버지의 ‘아들’이 아니라 ‘종’으로 이해하는 듯합니다. 본인 스스로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29절) 살았다고 이야기하니까요. 그런 아들이라면 아버지의 명을 거스르지 않을까 싶어 늘 노심초사하지 않았을까요? 이에 비해 작은아들은, 비록 행실은 방탕했을지라도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사실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니 모든 것을 탕진한 상황에서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했겠지요.

 

건강한 죄의식은 하느님께 나아가도록 우리를 도와주지만, 그릇된 죄의식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한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서울주보 제2463호, 2023년 8월 27일 자 참조) 죄의식을 많이 느끼는 나라면, 하느님을 더 깊이 만나보세요. 하느님께서 나를 어떻게 바라보실지, 내가 어떠하기를 바라실지 여쭤보세요. 죄책감으로 두려워하고 움츠리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고개를 들어도 괜찮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 41,13)

 

[2025년 6월 15일(다해)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32 1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