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자료
[성경] 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할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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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에서 만나는 성경 말씀] 할례
다만 할례는 이스라엘만의 독자적 전통이 아니라 기원전 3,000여 년부터 다수의 고대 근동인이 행하던 관습입니다. 이집트, 에돔, 암몬, 모압 등에서 할례를 하였고, 헤로도토스의 『역사』(2,104)에 따르면 페니키아인도 이집트의 영향을 받아 할례를 하였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대개 혼인할 즈음, 곧 사춘기에 실시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할례를 혼인 생활을 잘 영위하도록 준비하는 단계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에 비해, 필리스티아인(판관 14,3)과 메소포타미아인은 이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할례가 이스라엘 고유의 상징처럼 여겨지기 시작한 건 남왕국 유다가 멸망해 메소포타미아의 바빌론으로 유배를 갔다 돌아온 기원전 6세기 이후라는 추정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예레미야와 같은 예언자들은 육의 할례만이 아니라 마음에도 할례를 받아야 계약의 복을 누릴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예레 6,10). 말하자면, 육신의 포피뿐 아니라 마음의 포피도 벗겨야 하느님의 말씀이 귀에 들리고 가슴에도 새겨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레위 26,41-42; 신명 30,6). 예레미야보다 몇 세기 뒤에 활동하는 세례자 요한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이유만으로 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라고 백성에게 경고하였습니다(마태 3,9).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아브라함 계약의 정신을 망각하고 형식에만 집중할 위험이 늘 존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구약 시대에는 이방인이 이스라엘에 합류하려면 할례를 받아야만 했으나(탈출 12,48), 그리스도 안에서 선민과 이방인의 경계가 허물어진 신약 시대에는 육의 할례가 의미를 잃게 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겉모양을 갖추었다고 유다인이 아니고, 살갗에 겉모양으로 나타난다고 할례가 아닙니다. 오히려 속으로 유다인인 사람이 참유다인이고, 문자가 아니라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할례입니다.”(로마 2,28-29)라고 선포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따라 신앙 공동체는 성령으로 마음에 받는 할례를 통해 누구든 합류할 수 있게 되었고(2,29), 계약 공동체의 일원임을 육으로 표시하는 할례는 더 이상 의무가 아니게 되었습니다.
* 김명숙 소피아 -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박사, 광주가톨릭대학교 구약학 교수, 전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저서 「에제키엘서」 「예레미야서 1-25장」 「예레미야서 26-52장」 「구세사 산책: 에덴에서 약속의 땅까지」
[2025년 5월 25일(다해) 부활 제6주일(청소년 주일) 의정부주보 2면, 김명숙 소피아] 0 40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