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6월 28일 (토)
(백)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 성심 기념일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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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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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5-06 ㅣ No.2371

[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 (1)

 

 

X자형 십자가-성 안드레아 사도 

 

안드레아 사도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가까운 벳사이다의 유다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요나였고, 시몬 베드로와는 형제간이었다. 안드레아라는 이름은 그리스어인데, 이는 당시 갈릴래아 호수 일대에 이미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그리고 사도의 가족들도 문화적으로 개방되어 있었음을 말해 준다.

 

안드레아와 베드로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어부였다. 예수님은 공생활 초기에 갈릴래아 호수에서 이 형제들을 만나셨고,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제자로 부르셨다.

 

본래 요한 세례자의 제자였던 안드레아는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을 두고 한 말을 듣고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동료 제자와 함께 예수님을 찾아가 하루를 지냈는데, 이때 예수님이야말로 메시아이심을 알아보았고, 그래서 베드로에게도 그분을 소개했다(요한 1,35-42 참조). 이런 연유로 안드레아는 동방 정교회에서 ‘프로토클레토스’(‘첫 번째로 부름 받은 사람’이라는 뜻)라고 일컬어진다,

 

성경에서 안드레아는 몇몇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예수님께서 빵이 많아지게 하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는 한 아이가 가진 빵과 물고기에 대해 말씀드렸고(요한 6,6 참조), 그리스인들이 예수님 뵙고자 찾아왔을 때는 이 요청을 받은 필립보를 도왔다(요한 12,20-23 참조).

 

안드레아는 60년경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순교했다고 전해 오는데, 이때 안드레아는 예수님과 같은 모양으로 죽을 만한 자격이 없다면서 X자 모양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자 했다. 이후 X자형 십자가는 성 안드레아 십자가라 불리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14세기에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전쟁을 벌였을 때 스코틀랜드 왕의 꿈에 안드레아가 나타나 승리를 약속했다고 한다. 이윽고 전쟁이 시작되자 하늘에 X자 모양의 십자가가 나타났고, 이를 본 스코틀랜드 군사들은 힘을 내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부터 안드레아 사도는 스코틀랜드의 수호성인이 되었다.

 

 

박피용 칼 세 자루-성 바르톨로메오 사도

 

바르톨로메오 사도에 대한 기록은 세 권의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나온다. 그리고 요한복음서에는 나타나엘이라는 이름이 나오는데, 학자들은 이 두 사람이 동일한 인물이라고 본다(요한 1,45-51; 21,2 참조).

 

바르톨로메오는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인도로 가서 선교했다고 한다. 또한 메소포타미아와 파르티아에서, 리카오니아와 에티오피아에서, 또 인도에서 선교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동료 사도인 유다 타데오와 함께 아르메니아에서도 복음을 전한 것으로 전해 온다. 그 결과, 아르메니아 왕국은 4세기 초에 역사상 최초로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인 나라가 되었다. 이에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이 두 사람을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고, 특히 바르톨로메오는 이 교회의 제2대 총대주교(Catholicos-Patriarch)로 기려진다.

 

그리스도교 전승은 바르톨로메오 사도가 “납치되었고, 정신을 잃을 정도로 매질을 당했으며, 바다에 던져져 익사했다.”라고 전한다. 한편, 다른 이야기는 바르톨로메오가 아르메니아의 한 도시에서 그곳의 왕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에 격분한 왕의 동생이 사도에게 온갖 고문을 가하고 끝내는 살아 있는 채로 살 거죽을 벗겨내는 형벌로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전한다. 그리고 이러한 죽음과 연관되어 바르톨로메오는 세 자루의 박피(剝皮)용 칼로 상징된다.

 

 

가리비 조개-성 대 야고보 사도

 

대 야고보 사도 역시 갈릴래아 호수 인근의 유다인 어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야고보 사도의 부모는 제베대오와 살로메였는데, 살로메는 마리아의 자매, 곧 예수님의 이모였다. 그리고 형제인 요한 또한 예수님의 사도였다. 예수님은 이 형제를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라고 부르셨다(마르 3,17 참조). 사도 중에는 야고보가 2명인데, 편의상 ‘대(大) 야고보’와 ‘소(小) 야고보’라고 구별해서 부른다.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갈릴래아 호수에서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의 사도로서 종종 특별하고 중요한 일들에 함께했다. 야이로의 딸을 되살리실 때(마태 9,18-25 참조), 영광스러운 모습을 드러내 보이실 때(마태 17,1-9 참조),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6-46 참조), 예수님은 이 세 사람과 함께하셨다. 두 형제는(또는 그 어머니는) 예수님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오르시면 자기들이 그 오른쪽과 왼쪽에 앉게 해주십사고 청한 적이 있다(마르 10,35-41; 마태 20-24 참조). 야고보는 헤로데 왕의 칼에 의해 12사도 중 가장 먼저 순교했다(사도 12,2 참조).

 

이에 야고보의 제자들은 은밀히 그 유해를 배에 실어 지중해에 띄웠고, 이 배는 지중해를 가로질러 스페인의 어느 해안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런데 이 배는 아주 커다란 가리비 조개의 껍데기로 만든 것이었다고 한다(또는 스페인 해안에 도착했을 때 이 배는 온통 가리비 조개로 뒤덮여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가리비는 야고보 사도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한편, 사도의 유해는 스페인 내륙의 어느 곳에 안장되었다.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던 그 장소는 오랜 세월이 흘러 9세기 초에야 발견되었다. 한 은수자가 갈리시아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마침내 사도의 무덤을 발견한 것이다. 이때부터 야고보 사도의 묘지로 가는 길들은 인기 있는 순례길이 되었다. 그리고 순례용 물품인 지팡이, 모자, 조롱박 물통은 성인을 나타내는 표상이 되었다. 그 밖에 사도의 죽음과 관련된 칼을 바탕으로 해서 이루어진 성 야고보 십자가 또한 사도의 표상이 되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4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상징 속 성인 읽기] 사도들의 상징 (2)

 

 

뱀이 들어 있는 성작: 사도 성 요한

 

요한복음 1,35-39에 나오는 예수님의 첫 두 제자들 중 하나로 여겨지는 요한(다른 한 사람은 안드레아)은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님을 따라나섰고, 예수님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이던 이 둘을 사람 낚는 어부로 부르셨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제자라고 소개되는 인물로 여겨지는 요한은 12사도들 중 가장 젊었고, 다른 사도들보다 오래 살았으며, 다른 사도들이 모두 순교한 가운데 유일하게 순교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견이 없지는 않지만, 복음서와 3권의 서간과 묵시록을 쓴 저자라고 전해진다.

 

형인 대 야고보와 함께 보아네르게스(‘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뜻)라고 불린 요한은 호의적이지 않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에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불살라 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루카 9,54-55 참조) 예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이 그분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고 막으려고도 했다(마르 9,38-40 참조). 그리고 그럴 때마다 예수님께 꾸중이나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라는 가르침을 들었다.

 

요한은 베드로와 야고보, 더러는 안드레아와 함께 중요한 일들을 많이 했다. 그리고 예수님의 지상 생애의 마지막 순간들, 그분이 겟세마니 동산에서 잡히시어 끌려가신 대사제의 관저에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계신 자리에도, 예수님이 되살아나신 뒤 빈 무덤에도 베드로와 함께 또는 단독으로 자리했다.

 

전승에 따르면, 요한이 이교의 사제를 만났는데, 그 사제가 요한에게 잔을 내밀며 마시라고 했다. 독이 들어 있는 잔이었다. 잔을 받은 요한은 기도하고 축복했다. 그러자 잔 안의 독이 뱀으로 변해 밖으로 나왔다. 이렇게 요한은 죽음을 면했고, 나아가 그 독을 마시고 이미 죽었던 사람 둘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그리하여 뱀이 들어 있는 잔(성작)은 요한 사도를 나타내는 상징이 되었다.

 

 

몽둥이(또는 톱): 성 소 야고보 사도

 

예수님의 사도 중에는 2명의 야고보, 곧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있다(마태 10,2-4; 마르 3,16-19, 루카 6,14-16 참조). 이에 교회는 전통적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을 큰[大] 야고보라고, 알패오의 아들을 작은[小] 야고보라고 구별해서 불러왔다. 아마도 나이가 많고 적은 데 따른, 아니면 키가 크고 작은 데 따른 구별인 듯싶다.

 

성경은 소 야고보와 관련해서 ‘주님의 형제 야고보’라고(마태 13,55; 마르 6,4, 갈라 1,19 참조) 하고, 그 어머니가 마리아라고(마태 27,56; 마르 15,40; 마르 16,1; 루카 24,10 참조) 말한다. 이를 바탕으로 성 예로니모와 성 아우구스티노 같은 학자들은 소 야고보가 예수님과 인척이고 예수님의 어머니와 작은 야고보의 어머니가 자매라고 보았다. 그런가 하면 소 야고보의 몸매와 얼굴과 행동거지가 예수님과 매우 닮아서 ‘예수님의 형제’로 불렸다고, 또는 품성과 성덕이 뛰어나서 ‘의로운 야고보’라고 불렸다고 한다.

 

전승은 소 야고보가 예루살렘 교회의 첫 주교였다고 말한다.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들과의 갈등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 회의가 열렸을 때, 베드로는 이민족도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선언했고, 소 야고보는 베드로를 도와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고 부정한 음식과 불륜을 멀리하게 하자는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사도 15,19-20 참조). 이러한 소 야고보를 두고, 바오로 사도는 베드로와 요한과 아울러서 ‘교회의 세 기둥’이라고 말한 바 있다(갈라 2,9 참조).

 

다른 전승은 소 야고보가 팔레스티나의 남서 지역과 이집트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이집트 또는 시리아에서 순교했다고 전한다. 열정적인 복음 선포에 분노한 이교도 군중이 소 야고보를 신전 지붕에서 내던진 뒤 그에게 돌을 던졌고, 그래도 죽지 않자 몽둥이로 때려서 숨지게 했다고 한다(또는 돌에 맞아 쓰러진 그를 톱으로 잘랐다고 한다). 그리하여 몽둥이 또는 톱이 소 야고보 사도를 가리키는 표상이 되었다.

 

한편, 학자들 사이에는 소 야고보와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가 동일 인물이 아니라며 이의를 제기하거나 예루살렘의 첫 주교로서 신앙과 윤리에 관한 기본 가르침을 편지 형식으로 쓴 야고보 서간이 소 야고보의 작품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십자가와 빵 두 덩이(또는 빵이 가득한 바구니): 사도 성 필립보

 

공관 복음서와 사도행전에 12사도 중 다섯 번째로 짤막하게 나열되는 필립보에 대해서 요한 복음서는 좀 더 많은 것을 말해 준다. 필립보는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함께 벳사이다 출신으로,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말하던 자리에 있었고, 나타나엘을 예수님께 소개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5천 명을 먹이는 기적을 행하셨을 때는 그분에게서 빵을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는 물음을 받았다(요한 6,6 참조). 그리스 사람 몇몇이 예수님을 만나 뵈러 찾아왔을 때는 안드레아를 통해 이 사실을 예수님께 말씀드렸고(요한 12,21-22 참조), 마지막 만찬 때는 하느님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사고 청함으로써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와 당신의 일체성에 대해 가르치실 기회를 마련해 드렸다(요한 13,8-9 참조).

 

전승에 따르면, 필립보는 바르톨로메오와 함께 그리스, 프리기아, 시리아로 파견되었고, 그곳에서 설교와 기적적인 치유로 한 도시의 총독의 아내를 개종시켰다. 이에 격노한 총독은 필립보를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았다. 필립보는 십자가에 달려서도 설교를 했으며, 십자가에서 풀려날 수도 있었음에도 풀려나기를 거절했다. 한편, 필립보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참수로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그리하여 십자가와 빵 두 덩어리 또는 십자가와 빵이 가득 담긴 바구니가 필립보 사도를 나타내는 표상이 되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5월호, 이석규 베드로(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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