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2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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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금쪽같은 내 신앙95: 평안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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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22 ㅣ No.2161

[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 신앙] (95) 평안하냐?


희망이 있기에 살아가는 삶

 

 

부활에 관한 복음서의 장면들을 살펴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제자들의 반응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아마도 스승의 부활이 제자들에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사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의 사고 안에, 기다림의 지평 안에, 그분이 되살아나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평화’를 빌어주신다. “평안하냐?”(마태 28,9) “평화가 너희와 함께!”(루카 24,36; 요한 20,19) 이 말씀은 좌절과 절망, 슬픔과 시름 속에 빠진 제자들의 마음 상태를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의 마음이 담긴 표현이었다. 당신 죽음으로 인해 겪었을 마음고생을 헤아리며 진정으로 평화가 제자들 마음에 찾아오기를 바라는 말씀이셨다.

 

엠마오로 가는 제자 이야기에서도 예수님의 그러한 마음을 발견한다.(루카 24,13-35 참조) 두 제자는 스승을 잃고 실의에 빠진 채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난다.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살아온 삶에 관해 물으시며, 성경을 바탕으로 당신에게 일어난 일의 의미를 자상하게 설명해주신다. 그들의 초대에 응해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 빵을 나눠주실 때 비로소 그분을 알아볼 수 있었다. 그분은 곧 사라지셨지만, 그분과 함께한 길에서 경험했던 마음 뜨거움은 강렬히 남아있었다.

 

이 모든 것은 ‘희망’이라는 말로 귀결되는 듯하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평화는 바로 그 희망이 가져다주는 은총의 선물일 것이다. 그 희망은 좌절과 절망의 절벽을 넘어 새로운 하늘을 향해 열린 창문을 마주하는 것이며, 어두운 지평선 너머로 새로운 여명이 밝아옴을 발견하는 것이다.

 

희망, 그것은 우리가 사는 삶 그 안에서 찾아야 할 무엇, 주어지는 무엇이다. 그렇기에 그 희망은 역설적이다. 절망스럽고 어두운 현실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다. 또한 그 희망은 고난을 경험한 끝에 오는 것이기도 하다.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루카 24,26) 이 말씀은 우리가 삶에서 겪는 고난이 희망찬 내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 고난은 우리 자신의 죽음을 가능케 하고, 새로운 삶을 가능케 한다. 고난이 나의 죽음을 위해 필요했던 순간임을 깨달으며 모든 것을 내려놓을 때, 선물처럼 주어지는 희망을 놀라운 눈으로 발견할 수 있다.

 

부활을 맞은 우리 역시 주님과 다시 걷도록 초대되고 있다. 기쁨과 환희, 고통과 절망이 교차하는 평범한 일상 안에서 희망을 발견하기 위해서 말이다.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은 우리의 다양한 경험, 특히 위기와 시련, 고난과 괴로움, 슬픔과 절망의 순간을 달리 바라보게 해줄 것이며, 새로 태어나는 부활의 기쁨과 환희는 바로 그러한 순간들을 겪어내지 않고선 얻을 수 없는 것임을 깨닫게 해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살아온 삶이 전혀 무익한 것이 아니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살아온 삶이다. 삶의 애환, 고통과 근심, 괴로움과 외로움, 우울함과 초라함 등을 모두 알고 계시는 주님께서 말씀을 건네신다. “그래, 많이 힘들었지? 이제 괜찮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아니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아직 기회가 있다. 나를 찾고, 나를 온전히 실현할 기회가. 나를 향해 서 있는 주님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우리가 살아온 삶에 희망이 있다. 또한 앞으로 살아갈 삶에 희망이 있다. 우리가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이유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0일, 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겸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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