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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철학상담16: 고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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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4-22 ㅣ No.578

[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6) 고독


인간은 짝을 찾아나서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

 

 

구약 성경의 창조 설화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고독한 존재임을 암시하는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다. 창세기 2장의 인간 창조 이야기를 보면 주 하느님께서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에게 알맞은 협력자를 만들어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사람에게서 갈빗대 하나를 빼내어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셨다. 그러자 사람은 “이야말로 내 뼈에서 나온 뼈요 내 살에서 나온 살이로구나!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 불리리라”라고 기쁨에 넘쳐 외친다.

 

이 이야기에는 인간의 자기 이해와 관련해 실존론적으로 매우 깊은 철학적 통찰이 담겨 있다. 처음에는 하나였지만 나중에 둘로 갈라졌다는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필연적으로 자기에게서 나온 짝을 찾아 나설 수밖에 없는 ‘관계 속의 고독한 존재’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근원에 있어 자기 일부가 떨어져 나간 불완전한 존재로서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자 자기 밖에서 자기를 찾아 나서는 고독한 존재다. 인간의 고독은 사회관계망 혹은 인격적 관계의 단절을 의미하는 고립이나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른 것으로서 모든 인간이 기본적으로 처해 있는 근원적인 실존적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이 고독하여 찾아 나서는 타자는 근원적으로 자기 자신에게서 떨어져 나간 존재이기에 분명 ‘자기’여야 하지만, 그러나 사실은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는 존재, 즉 나와 대립하는 낯선 자기 소외(疏外)의 존재다.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처럼 자기로부터 소외된 그 타자는 더는 자기로 있을 수 없다. 나와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고독의 대상으로서의 타자는 바로 ‘자기인 타자’가 분명하지만, 그러나 그 타자는 결코 나와 하나가 될 수 없는 ‘타자인 자기’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는 인간 안에 본질적으로 놓여있는 이런 관계적 타자성을 근원어로서의 짝말(Wortpaare) ‘나-너’(Ich-Du)로 표현한다. 부버에 따르면 인간은 나와 너의 관계 없이는 결코 자기를 이해할 수도, 본래의 자기가 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본성적으로 타자에게로 기울어져 있음은 자기 소외로서의 고독에 근거하며, 이 근원적 소외로서의 실존적 고독은 인간이 본래 고립되고 외로운 ‘나 홀로’ 존재가 아니라 오히려 관계 속에 있는 ‘공존재’(Mitsein)임을 의미한다. 야스퍼스(Karl Jaspers) 또한 고독은 타자와의 소통 속에서만 실현되는 나의 ‘가능 실존’을 준비하는 ‘의식’이라고 했다. 고독은 소통 안에 존재하기에 소통 없이, 그리고 고독하지 않고서는 나 자신이 될 수 없다.

 

나의 고유한 근원으로부터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코 고독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인간은 타자와 하나가 될 수 없음에도 자기 밖의 타자로부터 동일한 자기를 발견하고, 그와 일치하고자 하는 실존적 고독에 처해 있다. 타자는 나에게 고독과 그리움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소외되고 낯선 대상이다. 우리는 이 간격을 메꾸고자 부단히 노력하며, 이 과정에서 상처받곤 하다.

 

실존적 고독은 타자와 일치하려는 열망을 낳지만, 그 일치하려는 행위가 자기중심적일 때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타자를 강제로 자기와 일치시키려는 행위는 소유·집착·가스라이팅·증오·폭력 등으로 나타나곤 하기 때문이다. 반면 실존적 고독이 타자 중심적인 헌신·희생·봉헌의 열망으로 승화될 때 바로 사랑의 계기가 된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0일, 박병준 신부(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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