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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24: 스위스 아인지델른 베네딕도회 수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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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 전문가의 간 김에 순례] (24) 스위스 ‘아인지델른 베네딕도회 수도원’ 스위스 대자연 속 검은 성모자상 모신 아인지델른 수도원
- 아인지델른 수도원. 해발 900m에 자리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현재 40여 명의 수도자가 산다. 60m 높이 두 탑을 갖춘 수도원 성당과 3층 수도원 단지는 1704년에 지었다. 14세기 마을 화재가 수도원으로 확산하는 것을 막고자 내린 건축 금지령 덕분에 지금의 넓은 광장이 탄생했다. 청동 도금한 성모 분수를 둘러싼 반원형 아케이드는 1745~1747년에 지었는데, 현재 안내센터와 성물방으로 쓰고 있다.
여행지에는 즐거움을 주는 곳이 있고, 사람을 변화시키는 장소가 있습니다. 오늘 순례지인 스위스 중부의 아인지델른 베네딕도회 수도원은 후자에 속합니다. 이곳에서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간직한 하느님의 도시를 체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대자연의 침묵 속에 자기 자신과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4월 초 아인지델른의 주변 산봉우리는 여전히 설경이 펼쳐져 있습니다. 열차에서 내려 주택가를 걸으면 곧 돌로 포장된 넓은 수도원 광장에 도착합니다. 쌍둥이 종탑이 우뚝 선 수도원 성당의 정면은 거대하면서도 조화롭습니다. 성당에 들어서면 높은 천장의 프레스코화 아래 검은 대리석으로 된 건축물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상자 속의 상자처럼 자리한 은총 소성당입니다. 순례자의 발걸음은 그 앞에 멈추고, 내면의 침묵으로 서서히 침잠합니다.
- 검은 대리석의 은총 소성당. 옛 천사의 축복 소성당이 있던 자리로 성당 입구 쪽에 세워져 있다. 1682년 이곳의 카스파르 무스부르거 신부가 건축했다. 1798년 프랑스군이 쳐들어왔을 때 파괴됐다가 1815~1817년에 재건됐다.
은수자의 순교지 아인지델른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934년에 세워졌지만, 그 뿌리는 기차역 광장에서 본 동상인 성 마인라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아인지델른은 중세 독일어로 ‘은수자’ ‘혼자 사는 이’라는 뜻입니다. 이곳에서 처음 은수생활하던 성인으로부터 수도 공동체가 시작된 상황에서 유래한 지명이지요.
독일 귀족 출신인 성 마인라트는 828년경 은수생활을 위해 이곳 오지로 숨어들었습니다. 그는 라이헤나우 수도원 학교에서 공부하다가 수도자가 됐는데, 인근 분원에서 생활하다가 은수자로서 소명을 느끼고 이곳으로 온 것입니다. 마인라트는 취리히호가 한눈에 보이는 에첼 고개에 작은 암자를 짓고 20년 넘게 청빈과 기도의 삶을 살았습니다. 조언이나 축복을 청하러 오는 이들이 많아지자, 좀더 깊은 숲 속이었던 지금의 수도원 자리로 옮겼다고 합니다.
861년 마인라트는 순례자들의 선물을 탐낸 두 명의 강도에게 살해당합니다. 두 마리의 까마귀가 이들을 쫓아가 사람들에게 잔혹한 범죄를 알렸다고 합니다. 수도원 문장에 까마귀가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훗날 그의 은수처 자리에 그를 순교자로 공경하고 따르는 수도 공동체가 생겨났는데, 그 공동체가 아인지델른 수도원의 시작이었지요.
- 아인지델른 수도원 성당. 주제대가 로마의 성당들처럼 기둥과 천개로 장식되어 있다.
천사가 봉헌한 수도원 성당
아인지델른 순례의 역사는 ‘천사들의 봉헌’에서 비롯됐습니다. 948년 콘스탄츠의 콘라트 주교가 새로운 수도원 성당을 축복하러 왔는데, 축복식 전날 성당에서 예수님이 천사들과 함께 내려와 성모님을 위해 성당을 봉헌하는 환시를 봤다고 합니다. 다음날인 9월 14일 주교는 환시 때문에 축복식을 망설였지만, 수도자들을 위해 예식을 치르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이 소성당은 이미 주님께 봉헌되었다는 천사들의 음성이 들려왔다고 합니다.
소문이 퍼지면서 이곳은 순례자들이 찾는 특별한 성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성모님을 위해 직접 봉헌한 성당이라니 얼마나 특별했겠습니까. 이를 계기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자상도 모시고, 1037년 라이헤나우 수도원에 묻혔던 성 마인라트의 유해도 모셔옵니다. 중세 성모 신심이 깊어지면서 더 많은 이가 알프스를 넘어 도보로 이곳을 순례했습니다. 1466년에는 순례자가 13만 명이었으며, 성당 봉헌 기념일에만 8만 명이 찾아와 400명의 사제가 고해성사를 줬다고 합니다.
중세 아인지델른 수도원은 순례의 장소만 아니라, 사회를 밝히는 지식의 등불이기도 했습니다. 수도원 학교에서 신학·문법·논리학은 물론 과학까지 가르쳤고, 도서관에는 보이티우스의 기하학·음악론 등 수도자들이 정성껏 필사한 고문서들로 가득했습니다. 특히 악기에 대한 그림은 진귀한 자료입니다. 아인지델른은 전례 음악으로도 명성이 자자했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연구하고 계승했으며, 많은 음악가·예술가·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피난처이자 창작 공간이 됐습니다. 그 전통을 이어받아 지금은 17세기 바르카의 성찬신비극인 ‘세상이라는 거대한 연극’을 매년 성당 광장에서 공연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 아인지델른 검은 성모자상(좌)과 순례 배지(우). 검은 성모자상은 15세기 중반의 후기 고딕 양식의 조각상으로 1464년 화재 때 소실된 로마네스크 양식의 성모상을 대체한 것이다. 교회 전례력에 따라 성모자상 의복도 바뀐다. 중세 순례 기념물인 배지는 7cmx5.3cm 크기로 두 천사 사이에 주교복을 입은 그리스도가 소성당을 축복하는 모습과 검은 성모자상을 형상화했다.
- 바로크 양식의 성당을 짓기 전 수도원 모습. 고딕 양식의 종탑이 지금보다 뒤쪽에 서 있다. 수도원 뒤로 성 마인라트가 처음 은수생활한 에첼 고개와 취리히 호수가 보인다.
스위스 성모 신심의 상징 아인지델른 검은 성모자상
지금의 수도원 성당은 1719~1735년에 새로 지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표현한 작은 부조, 기둥과 천장 사이 천사상의 섬세한 미소, 신학적 의미가 담긴 식물 문양과 아치 상징 등 성당 곳곳에서 바로크의 보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제대 옆 금박 장식에 새겨진 라틴어 문구들은 오래된 신심을 말하는 듯하지요.
물론 맨 처음 지어진 수도원 성당은 10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물이었습니다. 세월의 풍파와 화마로 증·개축을 반복하며 수백 년 동안 고딕 양식의 건물이 들어섰지요. 그러다 18세기에 순례자가 늘면서 지금처럼 십자형 구조의 바로크 성당을 크게 새로 지었습니다. 은총 소성당은 그 구조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소성당을 지나야 하느님이 계신 주제대로 가는 구조입니다. 아인지델른 순례의 중심은 성모 순례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것이지요. 성모자상은 실제로는 1.2m도 안 되는 작은 크기지만, 그 존재감은 엄청납니다. 금빛 석고 장식, 촛불, 순례자들의 눈길이 성모자상을 감싸고 있습니다.
<순례 팁>
※ 취리히 중앙역에서 스위스 연방철도(SBB)로 50분, 루체른에서 1시간 10분, 역에서 수도원까지 도보 10분. 수도원 근처 주차장이 있다. 성모 승천 대축일과 9월 14일에는 많은 인파가 몰린다.
※ 수도원 성당 및 은총 소성당 미사 : 주일과 대축일 08:00·09:30(그레고리오 성가), 11:00(순례자 미사)·17:30, 평일 미사 06:15·09:30·11:15(그레고리오 성가)·17:30. 주일과 대축일에 고해성사 소성당에서 상설 고해성사가 있다. www.kloster-einsiedeln.ch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4월 20일, 차윤석 베네딕토(전문 번역가)] 0 11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