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가톨릭 교리: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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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주님”
“예수님 = 하느님의 어린양”
예수님을 부르는 여러 명칭이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호칭 중 하나가 바로 “하느님의 어린양”입니다. 누가 예수님을 이렇게 불렀나요? 세례자 요한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보면,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이렇게 불렀습니다(요한 1,29 참조).
‘하느님의 어린양’이란 어떤 뜻일까요?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부분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 구약의 히브리 백성이 이집트 탈출 전날 밤,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따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집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발라놨고, 그 집은 하느님의 재앙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어린양의 피는 하느님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한 희생 제물을 의미합니다.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두 번째 장면은 바빌론 유배 이후입니다.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인 이스라엘에게 바빌론 유배는 매우 치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그래서 유배라는 사건을 겪은 이후 적잖은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멀어지기도 했지만, 예언자들의 외침에 따라 다시 하느님 백성으로 제대로 살기 위한 노력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기 역시 유배 이후입니다.
유배 이후 이스라엘은 하느님 백성답게 살기 위해 크게 3가지 노력을 합니다. 첫째, 성전을 재건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성전이란 계약의 궤를 보존한 곳이고, 이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상징하는 직접적인 표상이었기에 성전 재건은 중요합니다. 둘째, 성경을 정리하고 편집합니다. 유배 이전 구전으로 전해지고, 파편적으로 보유했던 구약성경이 본격적으로 집필되고, 정리됩니다.
셋째, 성전 속죄 예식이 정립됩니다. 구약의 믿음에 따르면 죄란 하느님으로부터 인간을 멀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죄를 용서받기 위한 속죄 예식이 형식을 갖추고 거행됩니다. 1년에 한 번 모든 백성은 성전 앞에 모여 죄 사함을 위한 예배를 바쳤고, 대사제는 백성을 위한 기도와 예물을 바쳤는데, 이때 속죄 제물로 송아지와 어린양을 바쳤습니다. 어린양의 피를 통해 하느님 백성은 용서를 받았습니다.
구약성경에서 어린양이 중요하게 등장하는 세 번째 대목은 이사야서 중 ‘주님의 종의 노래’입니다. 주님의 첫째 종부터 넷째 종의 노래는 사순시기 성주간 중 독서 말씀으로 봉독됩니다. 특히 이사야서 53장에 나오는 주님의 넷째 종의 노래는 성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거기서 주님의 종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양처럼”(53,7).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는 어린양, 즉 ‘대속적’ 죽음을 맞이하는 주님의 종을 어린양의 모습으로 비유해 묘사합니다. ‘대속’(代贖)이란 대가를 치르는 것, 즉 남의 죄나 고통을 대신하여(代) 자기가 당하는(贖) 것입니다. 속죄, 속량, 구속 등의 표현도 비슷한 의미입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 양이라고 할 때 그 의미는 인간의 죄를 대신해 죽음을 맞이하는 존재, 대속적 죽음을 선택한 존재를 의미합니다.
왜 예수님은 남을 위한 희생, 즉 대속적 죽음을 선택하셨을까요? 당연히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하셔서 그렇습니다. 십자가에서 창에 찔리신 예수님의 성심에서 우러나오는 물과 피가 하느님의 사랑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인간을 사랑하셔서 하느님 말씀이 몸소 인간이 되셨고, 인간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기꺼이 십자가 죽음을 받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예수님은, 인간을 얼마나 사랑하실까요? 1코린 13장은 사도 바오로가 전하시는 그 유명한 ‘사랑의 찬가’입니다. 이 찬가는 예전 공동번역 성경에서는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라고 시작되고, 새 번역 성경에서는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3,4)로 시작하는데, 그중 13,8은 이런 말씀을 전합니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습니다.” 제가 아주 좋아하는 성경 구절입니다. 진정한 사랑은 언제나, 결코 소멸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바로 그렇습니다.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사랑은 언제나 한결같습니다. 결코 중단되거나 스러지거나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지고 전달됩니다.
참된 사랑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우리가 진정 예수님을 믿는다면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해야 새 계약이 성립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사랑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사랑의 가장 핵심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사랑, 즉 자기를 희생해 다른 이들을 구원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내가 가진 귀한 것, 즉 나의 기도, 재물, 능력, 봉사 등을 통해 하느님을 위해, 이웃을 위해 희생하고 봉헌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계명을 실천해야 새 계약이 성립됩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의 절정은 성체를 내 안에 모시는 시간입니다. 성체를 모시기 전 사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예수님은 참으로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 죄가 없어지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기억하면서, 이 세상에 죄가 줄어들고, 없어지길 바라면서 이 세상을 위해 보속하고, 대속하겠다고 다짐하며 함께 기도해야겠습니다.
성모님은 어머니로서, 동정녀로서 누구보다 예수님 마음을 잘 알고, 잘 따르고자 노력하셨던 분입니다. 성모님의 군대는 성모님처럼 예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3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0 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