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교리
저 여인은 누구실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
---|
[“저 여인은 누구실까?”]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까떼나를 바치며 “저 여인은 누구실까?” 하고 물으면, 대부분 마음속으로 “성모님이십니다.” 하고 답합니다. ‘성모님’은 동정 마리아를 가리키는 가장 친숙한 호칭입니다. 사실 너무 익숙하다 보니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더 큰 사랑을 담아 ‘성모님’을 부르려면 이 호칭을 좀 더 깊이 알아보아야 합니다.
조금 놀라실지 모르지만, ‘성모님’ 호칭은 성경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교회의 전통이 전해 준 호칭입니다. 성모송을 바치며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을 부르고, 새해 첫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내며 ‘성모님’을 기억하는 것은 교회의 살아있는 전통입니다. 우리는 그 전통에 따라 ‘성모님’을 부릅니다. 여기서도 특이한 점을 발견합니다. ‘성모님’이라는 한국어 표현은, 교회 전통을 비추어 볼 때, 변형된 용어라는 겁니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는 라틴어 “Sancta Maria, Mater Dei”(상타 마리아, 마테르 데이, 성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를 옮긴 말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마리아께서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신비를 말해줍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온전히 속한 거룩하신 분, 마리아는 인간이 되신 하느님의 아드님을 세상에 낳으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참사람이신 분이라는 신앙 진리를 고백하는 호칭입니다.
한국어 번역에서는“Sancta Maria, Mater Dei”를 ‘성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로 옮기는 대신, 거룩할 성(聖)을 ‘어머니’ 앞에 두어 ‘성모’(聖母)가 되었고, ‘하느님’을 ‘천주’라고 표기하면서 ‘천주의 성모 마리아’ 용어가 탄생했습니다. 한국 문화에서 어머니 이름을 직접 부르는 게 예의에 맞지 않으니 ‘성 마리아’ 대신 ‘성모님’이라 부르고, 이름을 드러내야 할 때는 ‘성모 마리아’하고 조금이나마 더 격식을 차리는 겁니다. 여기서 뉘앙스가 약간 달라집니다. ‘천주의 성모’,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하고 격식을 차리면 하느님과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 계신 마리아를 먼저 생각합니다만, ‘성모님’하고 친근하게 부르면 우리들 신앙의 어머니로서 마리아를 더 많이 생각합니다. 한국과 한자 문화권에서 생겨난 특별한 일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성경의 ‘주님의 어머니’ 호칭에 근거
‘성모님’ 호칭은 ‘성 마리아, 하느님의 어머니’에서 나왔습니다. ‘성모님’하고 부를 때 그분이 누구신지 알려면, ‘하느님의 어머니’께서 누구신지 알아야 합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호칭은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 안에서 ‘성모님’이 누구신지 알려줍니다. 우리들과 맺는 관계 안에서만 ‘성모님’을 찾으면 그분을 하느님에게서 떼어놓고 신격화할 수도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가장 싫어하실 일입니다.
‘하느님의 어머니’는 성경에 등장하는 ‘주님의 어머니’ 호칭에 근거합니다. 성모님께서 엘리사벳을 방문하셨을 때,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루카 1,43) 하고 경탄했습니다. 구약의 예언자들이 주님의 영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전했듯, 엘리사벳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주님의 어머니’는 하느님께서 원하신 호칭이었던 겁니다.
루카 복음이 집필될 당시 로마 제국에서 ‘주님’(호 퀴리오스)이라고 공식적으로 부를 수 있는 대상은 황제뿐이었습니다. 황제의 신격화가 시작되어, 황제의 동상이나 석상 앞에 제물을 바치고 향을 피우며 황제를 “주님”으로 숭배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의 주님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며 황제 숭배를 거부했고, 바로 이 때문에 초대 교회는 혹독한 박해를 받았습니다. 과연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했습니다. ‘주님’이라는 말 자체가 신앙 고백이었고, 마음을 다하고 정신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예수 그리스도께 사랑을 드리는 신앙 행위였습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를 “주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며, 마리아의 태중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흠숭을 드렸고, 믿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인 어머니 마리아를 진심으로 공경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 호칭은 초대 교회 때부터 이미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는 신심이 널리 퍼져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루카 복음은 구약성경의 한 장면을 상기시키며 주님께서 마리아 안에 현존하시는 신비를 선포합니다. 다윗 임금은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 도성으로 모시려고 했습니다(2사무 6,1-23). 계약의 궤는 하느님의 현존을 가리키는 상징이었습니다. 주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새겨 모세에게 건네주셨고, 모세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궤를 만들어 십계명 판을 보관했습니다. 다윗 임금은 계약의 궤를 모시며, “이래서야 어떻게 주님의 궤를 내가 있는 곳으로 옮겨 갈 수 있겠는가?”(2사무 6,9) 하고 주님의 현존을 두려워했습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고,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하고 외쳤을 때, 이 말은 다윗 임금이 계약의 궤를 바라보며 고백한 말과 같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장면을 통해 마리아를 참된 계약의 궤라고 일러주는 겁니다. 마리아는 믿음과 사랑으로 주님을 온전히 받아들여 주님께서 그 안에 온전히 현존하시는 분입니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하느님의 현존을 세상에 드러내고 전하는 살아있는 계약의 궤입니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드님의 길을 충실히 따라
마태오 복음에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가 등장합니다. 동방 박사들은“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탄생하신 메시아를 찾아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마태 2,11). 아기 예수님을 메시아 임금으로 알아보고 경배했으니, “어머니 마리아”를 ‘임금의 어머니’(게비라 gebirah), ‘모후’로 공경한 것도 분명합니다. 고대 이스라엘과 중동에서 임금의 어머니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임금의 어머니는 새 임금에게 면류관을 씌워주고(아가 3,11), 임금의 사후 유산을 관리했습니다. 솔로몬은 어머니에게 자리를 만들어 자기 오른편에 앉게 했습니다(1열왕 2,19).
모후는 임금의 다스림에 참여했고, 마찬가지로 임금의 고난도 함께 겪었습니다. 마리아는 ‘임금의 어머니’로서 메시아 임금의 운명에 동참했습니다. 헤로데가 박해를 일으키자, 천사는 요셉에게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라.”(마태 2,13) 하고 말했습니다. “아기와 그 어머니”는 험난한 피난길을 떠나 피난살이를 함께 했습니다. 헤로데가 죽어 박해가 끝나자, “아기와 그 어머니”는 이스라엘 땅으로 함께 돌아왔습니다. 마리아는 일생 동안 당신 아드님의 운명에 오롯이 함께 참여했습니다. “주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주님께 경배를 드리고 아드님의 길을 충실히 따르며 그분의 고난에 동참한 메시아 왕국의 모후이십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3월호, 노우재 미카엘 신부(부산교구 서동성당 주임)] 0 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