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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심리: 다르게 바라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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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심리 칼럼] 다르게 바라보기
얼마 전에 아는 분을 만나 기도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매일 묵주기도를 5단씩 바치시는데, 첫 단은 늘 손녀딸을 위한 지향으로 바친다고 하시더군요. 그러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처음에, 손녀딸이 제게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매일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니까요. 그런데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제가 손녀딸에게 감사해야 한다고요. 손녀 덕분에 매일 기도하게 되었으니, 제가 감사할 일이지요.” 그 말씀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습니다. ‘아, 정말 맞는 말씀이다!’
같은 일을 두고도 다르게 바라보는 ‘인식의 전환’을 복음서의 예수님에게서 자주 보게 됩니다. 율법 규정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말씀하시는 안식일 논쟁(마르 2,23-28 참조)이나 간음한 여인을 대하시는 모습(요한 8,1-11 참조)에서, 그리고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문제(마르 12,13-17 참조)에서도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는 방식과 다르게 예수님께서는 사건과 상황을 바라보십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으시고(“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남이 아닌 나의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시며(“너희 가운데 죄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을 누가 주었는지 분명히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
하느님을 믿으며 열심히 살아가지만, 삶이 녹록지만은 않습니다. 주위의 여러 어려움과 고통스러운 상황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주위 환경은 그대로이더라도 이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상황이 달라집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이 아니라, 그것을 바라보는 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됩니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하느님의 뜻인 양 포장하여 현실을 왜곡하는 ‘영성화’(spiritualization)에 빠질 일은 아닙니다. 영성화는 현실을 외면하거나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는 방어 기제로 쓰일 뿐, 우리에게 참된 도움을 주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고정 관념과 선입견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방식을 배워보면 어떨까요? 예수님의 방식을 따라 삶의 본질을 좀 더 통찰하고 내가 베푸는 것보다 사실은 받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 삶에 감사가 우러납니다. 감사해야 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절로 차오르는 고마움과 감사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집니다. 삶이라는 현실에 속해 있지만, 다르게 바라봄으로써 얻게 되는 자유입니다. 바로, 우리가 얻는 ‘구원’의 한 모습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2025년 3월 30일(다해) 사순 제4주일 서울주보 5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대신학교장)] 0 6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