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9일 (토)
(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전례ㅣ교회음악

음악여행42: 판공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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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25 ㅣ No.3458

[류재준 그레고리오의 음악여행] (42) 판공성사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와는 다르게 교계제도의 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교황청을 중심으로 나라별로 교황이 임명한 추기경이 교구를 관리한다. 하지만 한국 가톨릭교회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것도 있다. 주님 성탄 대축일 전 대림 시기와 파스카 성삼일 전 사순 시기에 일괄적으로 진행하는 고해성사인 ‘판공성사’다. 구역장들이 신자 가정을 방문해 나눠주는 판공성사표를 받는 것도 이때다.

 

판공성사는 가톨릭교회의 최대 대축일을 준비하는 시기에 자신의 죄를 모아 한꺼번에 고백하고 참회하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다. 판공이라는 말은 원래 사제가 정기적으로 공소를 방문하는 것을 뜻한다. 천주교 박해가 극심했던 조선 시대에 사제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교우들을 항상 관리할 수 없기에 1년에 한두 번 신자들이 사는 교우촌을 방문해 신앙생활 상태를 면담을 통해 알아보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준 것에서 유래됐다.

 

교회법 989조는 ‘모든 신자는 사리를 분별할 나이에 이른 후에는 매년 적어도 한 번 자기의 중죄를 성실히 고백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판공성사는 우리가 교회에 대해 최소한의 관심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일종의 약속이다. 일부에서는 고해성사를 의무적으로 요구하는 것에 대해 반대 입장도 있지만, 판공성사는 권장일 뿐 어떤 의미가 부여된 성사가 아니다. 특히 한국 교회에만 존재하는 관례라는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특권이기도 하다.

 

많은 음악인이 연주와 고해성사를 동일시하는 발언을 했다. 그중 특히 유명한 이는 캐나다의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Glenn Herbert Gould, 1932~1982)다. 굴드에게는 음악이 신과의 소통이었다. 순교자처럼 굴드의 삶은 음악을 위해 바쳐졌다. 그는 충분한 부와 유혹이 있었음에도 화려한 생활을 피해 은둔자처럼 살았고, 음악을 위해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제물을 봉헌하듯 자신의 건강 일부분을 늘 음악에 헌정했다.

 

어렸을 때 다이빙을 하다가 등을 다쳤을 때 그의 아버지는 손수 의자를 만들어줬고, 굴드는 평생 그 의자에서 연주한다. 굴드는 이 의자 위에서 만들어낸 완벽한 음색을 버릴 수 없었기에 매일같이 어깨와 등의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허리를 구부리고 팔꿈치를 매우 내린 상태로 피아노를 쳤다.

 

1955년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했고, 이는 굴드를 단숨에 유명 인사로 만들었다. 이 연주에서 드러난 그의 천재성이 사람들을 매료시킨 것이다. 명료한 음색과 기계같이 정확한 템포, 그리고 성부들을 크리스털처럼 보여주는 신기에 가까운 연주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하지만 굴드는 그의 사망 1년 전인 1981년 다시 이 곡을 녹음했으며, 이를 회개와 반성이라고 고백했다.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부정하고, 불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는 것을 솔직히 말한 것이다. 고해는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해주는 주님이 주신 은총이다. 놀랍고도 신비한 주님의 역사다.

 

1955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

https://youtu.be/Ah392lnFHxM?si=UzK8EITvALu7Xnwt

 

1981년 바흐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

https://youtu.be/wuY20YN6F4k?si=GRosEfiTdYGNPKnw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3월 23일, 류재준 그레고리오(작곡가, 서울국제음악제 예술감독, 앙상블오푸스 음악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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