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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과학과 신앙22: 정의의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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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25 ㅣ No.565

[과학과 신앙] (22) 정의의 저울

 

 

물리학과 화학에서 무게(weight)는 중력에 의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며, 질량(mass)은 물질이 갖는 고유의 양으로 정의한다. 무게의 단위는 N(뉴턴), 질량의 단위는 g(그램)이나 ㎏(킬로그램)을 사용한다. 무게는 장소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값이라 달에서 몸무게를 측정하면 지구에서보다 1/6 작게 나오지만 질량은 우주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값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두 용어는 구분 없이 사용되어 흔히 ‘내 몸무게가 70kg이다’와 같이 표현하는데, 과학적으로 이 표현은 오류이며 ‘내 몸의 질량이 70kg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또는 ‘무게=질량×중력가속도 상숫값(지구의 경우 약 9.8)’이므로 ‘내 몸무게가 686N(뉴턴)이다’라고 해야 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상업과 교역에서는 거래 대상이 되는 물질의 실질적 양이 중시되어 무게가 아니라 불변의 값인 질량을 표준으로 사용한다. 고기 600g(한 근), 금 3.75g(한 돈)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질량은 저울로 측정하는데 성경에 “아브라함은 (⋯) 은 사백 세켈을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 달아내어 주었다”(창세 23,16)고 쓰여있듯 인류는 예부터 저울을 사용했다.

 

기원전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저울 사용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 세계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는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가 양팔저울을 이용해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에는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을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그림이 있다. 죄가 많은 자의 심장은 무거워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어져 지옥으로 쫓겨나고 반대로 저울이 깃털 쪽으로 기울면 영생의 세계로 간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원은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그림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왼손에 저울을,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공평하고 엄정한 법의 기준, 칼은 법 집행의 엄격함과 강력한 권위를 상징한다.

 

요즘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유명 인사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거기에 따른 여론 반응이 보도되고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는 성경 말씀처럼 절차적 공정성과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

 

인간이라면 삶이 다하는 날 누구나 한번은 서야 할 법정이 있다. 그 어떤 법정보다도 상위에 있는 그곳의 재판관은 하느님이다. 우리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 동안 제대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 그곳에서 간단한 셈법으로 정의의 저울을 마주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고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큰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과 칸트가 숭고한 가치로 여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가톨릭평화신문, 2025년 3월 23일, 전성호 베르나르도(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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