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29일 (토)
(자) 사순 제3주간 토요일 바리사이가 아니라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전례ㅣ교회음악

클래식 순례25: 필립 글래스 성모 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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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5-03-25 ㅣ No.3457

[이준형의 클래식 순례] (25) 필립 글래스 <성모 영보>


미니멀리즘 대표 작곡가의 피아노 5중주

 

 

사순 시기가 한창인 지금, 눈에 띄는 축일이 하루 있습니다. 바로 3월 25일,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입니다. 예전에는 성모 영보 대축일이라고 불렀던 걸로 기억하는데, 루카 복음서 말씀대로 성모님 앞에 나타난 가브리엘 천사가 아들을 잉태하여 낳으리라고 말하고, 성모님이 이를 믿음으로 받아들인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고대부터 동서방 교회 모두 중히 여기는 대축일이자, 묵주기도의 첫 신비이고, 로마의 카타콤에 그려진 프레스코화와 이콘을 필두로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가가 음악과 미술로 즐겨 묘사한 소재입니다.

 

오늘은 교회음악이 아니라 조금 독특한 기악 작품을 소개합니다. 미국 현대 작곡가 필립 글래스(Philip Glass)의 <성모 영보>(Annunciation)입니다. 글래스는 스티브 라이히, 마이클 나이만 등과 더불어 이른바 ‘미니멀리즘’(Minimalism)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꼽힙니다.

 

건축이나 미술에서 시작된 미니멀리즘이 음악에서 구현된 미니멀리즘 음악은 작곡가마다 다르고 또 어떤 이들은 자신이 그렇게 불리는 걸 거부하므로 간단하게 표현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다만 단어 그대로 단순하고 반복적인 음악, 혹은 음악으로 건축물을 쌓거나 드라마를 구축하는 형식에 반대하는 사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점점 복잡하고 전위적으로 변해가는 아방가르드 음악에 반발하면서 단순함에서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이라고나 할까요.

 

글래스의 음악은 마치 맥박이 뛰는 듯 반복되는 음악 패턴과 변화하는 레이어가 특징적인데, 언뜻 단순하지만 조금씩 변화하는 선율과 강렬한 리듬, 독특한 화성 진행을 듣다 보면 조금씩 그가 만든 음향의 세계에 빠져든다는 느낌입니다.

 

2018년에 초연된 <성모 영보>는 피아노에 현악 4중주가 붙은 피아노 5중주 편성으로, 주님 탄생 예고 대축일을 위한 비잔틴 성가 선율에 바탕을 둔 작품입니다. 단순하면서도 깊이가 있고 신비스러운 단성가는 미니멀리즘 음악과 잘 어울리기에 존 태브너, 아르보 패르트 등 여러 작곡가가 그레고리오 성가와 비잔틴 성가에서 영감을 받은 교회음악을 썼는데, 글래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단성가를 자신의 음악에 접목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곡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집니다. 1부 서두에 명상적이고 반음계적인 화성 진행이 등장한 뒤, 피아노가 성가 선율(가사는 시편 132편에 나오는 ‘정녕 주님께서는 시온을 선택하시고 당신 처소로 원하셨네’입니다)을 제시하고 다른 악기들이 가세하면서 거의 낭만적으로 들리는 아름다운 음악이 펼쳐집니다. 그리고 2부는 앞서 들은 성가 선율에 대한 작곡가의 음악적 명상이라고 할 고요한 음악이 흐른 뒤 점점 더 감정이 고양되며 끝납니다. 물결치듯 이어지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8분음표 위로 치솟는 피아노는 성모님의 마음을 묘사한 것일까요?

 

필립 글래스 <성모 영보>

https://youtu.be/1-hQprFm6Wo?si=RaN8mFcM1CAnb9nG

 

[가톨릭신문, 2025년 3월 23일, 이준형 프란치스코(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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