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7일 (목)
(녹) 연중 제31주간 목요일 하늘에서는,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이다.

강론자료

2024-11-03.....연중 제31주일 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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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희 [gold] 쪽지 캡슐

2024-11-03 ㅣ No.2475

                                      연중 제31주일 (나해)

신명기 6,2-6      히브리 7,23-28           마르코 12,28ㄱㄷ-34

2024. 11. 3.

주제 : 내 삶에 첫째로 중요한 것은?

오늘은 위령성월에 맞는 첫번째 주일입니다. 물론 사람들의 관심은 세상의 삶을 마친 사람들에게 실현될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일에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슬픈 일보다는 여러 가지의 색으로 수놓는 단풍과 그 아름다움을 즐기려고 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고속도로가 막힌다는 뉴스를 봐도 그렇습니다.그래서 사람은 저마다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릅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의 순서대로 다른 사람이 살지 않는다고 흥분해도 의미가 없는 일이고, 내가 알려주는 대로 다른 사람이 산다고 말해도 세상에 바뀔 일은 별로 없습니다.

 

쉽게 할 수 있는 질문은, 교회라는 공동체가 신앙인들에게 하는 요구가 많아서 사람들이 교회를 떠나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아니면 사람들이 신앙인이라는 이름을 가지면서도 세상의 일에 더 먼저 신경을 쓰고 살면서, 무슨 좋은 일을 이루겠다고 생각할까 하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면, 그 누구도 자기가 잘못을 범한다고 인정하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의 삶에서 부족하다고 여기는 것과 그들이 고쳐야 할 것을 말하기가 쉬운 사람으로 삽니다. 저도 자신을 돌아보는 것과 같은 말은 하면서도, 드러내는 모습은 세상의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삽니다.

 

내가 세상에서 잘못 사는 일에 관한 핑계를 누구의 탓이라고 말할 것이며, 내가 잘못 사는 일에 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다고 말하겠습니까?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는 본보기를 보이며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어려운 일이 이러한 일입니다. 우리 본당의 공동체와 관련된 일에도 같은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교적에 이름을 올린 신자의 ‘4분의 1’쯤만 성당에 나오면 우리 공동체는 괜찮고 건전하고 좋은 모습의 공동체일까요?

 

이렇게 안타까운 소리를 크게 말한다고 해서 그 비율이나 사정이 갑작스레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 안타까움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자기의 삶을 드러내기를 바라는 사람이거나, 자기의 삶을 드러나게 보이고 싶은 사람은, 자기가 생각하는 올바른 원칙이나 자기의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질문으로 자랑하여 긍정의 대답을 얻고, 자기 자신은 올바른 길을 따라 산다는 인정을 들으려고 합니다.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에게서 십계명을 받았고, 그 십계명을 자기들의 삶에 613개의 내용으로 적용한 율법에서 첫째라고 생각할 계명이 무엇인지에 관해 예수님께 물었던 율법학자는, 자기가 묻는 소리의 내용이 무엇인지 몰라서 예수님께 질문하고, 대답을 들으려고 한 것이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자기는 정답을 알고 있는데, 자기가 안다고 하는 것을 예수님께 질문으로 하여, 다른 사람들의 앞에서 칭찬을 듣고, 위대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앞섰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읽은 예수님께서는 당신에게 질문한 율법학자의 지식을 꾸짖거나 비난한 것이 아니라, 율법에서 첫째로 생각할 중요한 계명과 그가 묻지도 않은 둘째인 계명에 관해서도 말씀하셨고, 당신께 질문한 사람이 생각과 삶의 자세를 더욱 넓게 가지기를 원하셨습니다.

 

시나이산에 올라서 하느님을 40일 동안 만났고, 그다음에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자기가 하느님을 만나면서 깨달은 것을 히브리 백성들에게 말했습니다. 모세의 인도를 따라 이집트를 탈출한 히브리 백성은 갈대 바다를 건넜고, 석 달의 시간이 흐른 뒤 시나이산까지 왔지만, 아직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자신들의 삶을 올바로 세우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모세는 하느님의 규정과 계명을 지킬 것을 선포했습니다. 규정(規定)은 다른 사람의 앞에서 나를 세우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고, 계명(誡命)은 내가 하느님 앞에 바르게 서기 위한 조건입니다. 규정과 계명은 남이 나에게 강요하기에 올바르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내가 올바로 대할 때 선택하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희생하시는 방법을 통하여, 사람들이 하느님께 다가서기를 바라셨고, 우리가 하느님을 향한 사람으로 올바른 은총을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도 세상의 삶에서 올바르게 행동한다면, 삶에서 좋은 결과를 만들겠지만, 그 일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깨달았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다고 서글퍼하거나 안타까워하는 일만으로는 달라질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세상의 삶은 다른 이들과 함께 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내가 먼저 올바른 길로 가야 합니다. 그래야 나에게 도움이 되는 결과를 만들고, 그렇게 해서 나의 삶이 다른 사람에게도 영향을 남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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