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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심리: 멈추어 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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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심리 칼럼] 멈추어 서다
얼마 전 서울 근교 성지를 순례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성지 미사에 함께하는데, 성지 담당 신부님께서 한국 교회 초창기 교리서였던 《요리 강령》의 내용을 중심으로 십계명의 제3계명을 주제로 강론해 주셨습니다. “주일을 거룩히 지내라.”는 계명이지요. 지금은 ‘주일’이라는 이름만 남았지만, 예전에는 주일을 다양하게 불렀다는 것, 주일미사 참례는 말할 것도 없거니와 아침·저녁기도를 빼먹으면 밥도 먹지 못했던 당시 신앙인의 모습을 구성지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도 구교 집안에서 태어나 유아세례를 받고 자랐지만, 예전 어르신들이 받았던 만큼 엄격한 신앙 교육은 아니었습니다. 성지 신부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 한국 교회 신자들께서 정말 신앙을 삶으로 살아가셨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날이 갈수록 신앙이 옅어지는 듯한 지금의 모습을 보면서, 박해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오륙십여 년 전의 옛 어르신들께서 어떻게 그렇게 사셨을까 궁금했습니다.
삶이 풍족하지 않아서였을까요? 결핍, 아쉽고 부족한 것이 많아서, 나 혼자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어서 더 하느님을 찾았던 것일까요? 그 이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럼, 뭐가 또 있을까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삶의 단순함에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당시를 사셨던 분들도 바빴다고 하실지 모르지만, 그때와 다르게 오늘날 우리 삶은 신경 써야 할 것이 너무나 많은, 복잡다단한 삶입니다. 단순히 바빠서 하느님 찾을 시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보다, 우리의 생각과 관심, 의식을 사로잡는 대상이 너무 많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모습 역시 ‘인간’이어서 겪게 되는 약함이자 한계입니다. 원죄 이후의 우리는 모두 근본적인 자기중심성을 띠고 있어서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것, 나에게 중요한 것에 더 집중하는 것이 지금의 본성에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쉼 없이 생각하고 재고 준비하는 우리 의식에는 하느님께서 활동하실 틈이 없습니다.
답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에 있다 싶습니다. 전문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의식의 세계까지는 못 되더라도, 우리의 생각과 가쁜 호흡을 멈추고 마음속 깊은 곳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톱니바퀴처럼 빈틈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생각(의식)의 흐름이 아니라 저 밑바닥에서 묵묵히 버티고 있는 마음(무의식)으로 내려가 잠시 멈출 때, 비로소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럴 때 신앙이, 단순한 신념이나 가치관이 아닌 삶 자체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오늘날 삶의 형태가 복잡다단한 것은 어쩔 수 없지요. 그걸 바꿀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안에서 잠시 멈추어 설 수 있지 않을까요? 내가, 참으로 원한다면요. “불이 지나간 뒤에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가 들려왔다.”(1열왕 19,12)
[2024년 10월 27일(나해) 연중 제30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0 37 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