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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헌 읽기: 간청하는 믿음, 교황청 신앙교리부 선언(20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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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문헌 읽기] 「간청하는 믿음」, 교황청 신앙교리부 선언, 2023.
이번에 소개할 문헌은 “축복의 사목적 의미에 관한 선언”이라는 부제로 이해와 수용에 관한 추가 자료가 나올 만큼 논란이 된 문헌이기도 합니다. 이 문헌 3장에는 “비정상적 상황에 있는 커플과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의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예민한 이 문제에 대하여 조심스럽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단순한 축복으로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모든 상황에 교회가 가까이 다가가는 것을 막거나 금지해서도 안 된다(38항)는 말로 이들에게 축복이 가능하고 필요함을 주장하면서, 또한 모든 형태의 혼란이나 추문을 피하고자, … 이러한 축복은 절대 사회적 결합 예식과 동시에 또는 그것과 관련하여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39항)라고 설명합니다. 특히 여기에서 축복이 결코 혼인 성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 축복이 교회가 그들의 혼인을 인정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교회는 축복과 관련하여 이러한 신념에 반대될 수 있거나 어떤 혼란을 일으킬 수 있는 모든 형태의 예식을 지양할 권리와 의무를 지니고 있다(5항)라고 문헌의 1장 “혼인성사 안에서의 축복”에서 가장 먼저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교리의 원칙을 지키면서도 이 문헌은 축복이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이 축복을 간청할 때 축복을 베풀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철저한 윤리적 분석을 두어서는 안 된다(25항). 모든 이는 비록 창조주의 계획에 맞지 않는 상황 안에서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주님을 찬미할 만한 긍정적인 요소를 소유하고 있다(28항).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사실 이전부터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보여오셨습니다. 따라서 이들의 이야기는 교황님의 다른 문헌들에도 종종 등장합니다. 교회는 모든 사람을 예외 없이 사랑하시는 주 예수님께 맞갖은 자세를 취합니다. … 그래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모든 이가 자신의 성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존엄을 존중받고 사려 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거듭 강조하고자 합니다(「사랑의 기쁨」 250항). 이는 당신이 주교 시절 사목 현장에서 수많은 이혼 가정, 동성 커플 등을 만나셨고, 그들이 여전히 하느님을 향한 갈망을 가지고 있음을 보신 까닭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가엽게 생각하셨습니다. 이러한 시각을 저는 예전에 로마에서 받았던 수업 내용을 기반으로 소개합니다.
이 문제를 ‘허용’과 ‘포용’이라는 두 개념으로 이들을 ‘허용’할 수는 없지만, ‘포용’하여야 한다는 것이 결론입니다. 마치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을 대하시는 모습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허용하신 것이 아니지만, 그들을 포용하셨습니다. 그들이 같은 아브라함의 자손임을 선포하시고,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그들의 집으로 가 주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의 그러한 모습에서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때의 예수님처럼, 이 시대에 이러한 모습은 많은 반대를 받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이 ‘포용’이 ‘허용’인 것처럼 얘기합니다. 마치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서 세리와 창녀들과 어울리는 것을 비난하였던 것처럼 말입니다. 그들은 비정상적 상황에 있는 커플들을 단죄하고 심판하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이 문헌의 이해에서 겪는 첫 번째 어려움입니다. 그러나 또 반대의 입장에 있는 이들은 자신들을 향한 ‘포용’은 쓸모가 없고 ‘허용’을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허용’이 없는 ‘포용’은 거짓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포용’은 아무런 실효가 없는 빈 소리라고 주장합니다. 교회는 이 둘의 가운데에 서 있습니다. 이들을 ‘허용’할 수는 없을지라도 ‘포용’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양쪽에서 거부를 당하곤 합니다. 이것이 이 문제가 참으로 쉽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더불어 이 어려움은 우리의 내부에서 시작되기도 합니다. 우리는 ‘허용’할 수 없는 이들을 정녕 ‘포용’할 수 있을까? 이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도전하고 실천하여야 함을 압니다. 성경에서 이러한 상황을 잘 정리하여 분명하게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3-48 참조)는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와 생각이 다른 이들을 이해하고 포용하고 축복하려 합니다. 이렇게 교회는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의 성사이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하느님과의 관계가 어두워졌을 때도 그분께 손을 뻗어 축복을 청할 수 있다(43항). 이 세상은 축복이 필요하고, 우리는 축복을 주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45항). 이러한 교회의 열린 마음 안에서 우리는 「사랑의 기쁨」에서 얘기하는 확대 가정의 삶을 원합니다.
더불어 우리의 축복이 그들을 다시 하느님께로 이끌기를 희망합니다. 축복은 삶의 모든 사건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깨닫도록 이끌고, 인간이 창조된 물건을 사용할 때도 하느님을 찾고 사랑하며 충실히 섬기도록 초대받았음을 상기시켜 준다(8항). 가정의 해에 우리가 좋은 가정의 모범만 찾는 것이 아니라, 어려움에 있는 가정들과도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하느님과 교회 안으로 초대하는 마음으로 이 축복에 관한 문헌을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 이 문헌은 출간되지 않았기에, 원하시는 분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 교황청 문헌마당에서 읽으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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