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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마산교구에 이바지한 인물: 교구사목과 더불어 124위 시복을 위해 땀 흘린 제3대 교구장 박정일 미카엘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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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10-24 ㅣ No.1747

[마산교구에 이바지한 인물] 교구사목과 더불어 124위 시복을 위해 땀 흘린 제3대 교구장 박정일 미카엘 주교

 

 

박정일 미카엘 성장하는 마산교구(1926.12.18.~2024.8.28.)

 

박정일 주교는 1926년 12 월 18일 평안남도 평원에서 출 생했다. 1944년 평양 숭인상 업학교를 졸업하고 1948년 덕 원신학교 고등과에 편입했다. 1950년 6월에는 성신대학에 편입했다가 1952년에는 로마우르바노대학교에 입학했다. 1958년 11월 23일에 사제품을 받고, 1962년 6월 로마 성토마스대학교 대학원에서 사회학을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귀국하여 1962년 9월에 부산교구 초량성당 보좌를 시작으로 1963년 12월 27일부터 문산성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마산교구가 설정되고 1967년 1월 진주본당(현 옥봉동성당) 주임이 되었고, 1970년 9월부터 대건신학대학(광주가톨릭대학) 교수로 봉직했다. 1975년 2월 중동성당 주임으로 부임했으나, 9월에는 다시 대건신학대학 교수로 돌아갔다. 1977년 4월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되어 5월 주교로 서품되었으며 1982년 6월에는 전주교구장에 임명되어 6년여 사목하였다.

 

 

성장하는 마산교구

 

박정일 주교는 1988년 12월 1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제3대 마산교구장에 임명되어, 이듬해 2월 21일 성지여자고등학교 대강당에서 착좌식이 거행되었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주교단과 주한교황대사 이반 디아스 대주교가 참석했고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등 2천3백여 명 이 마음모아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했다. 새 교구장은 유럽에서 공부했으며, 제주교구와 전주교구를 두루 거쳤기에 우리 교구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박 정일 주교는 취임과 더불어 ‘친교와 봉사와 증거’라는 교회의 본질적 특성들이 마산교구의 모든 본당과 교구 공동체 안에 기필코 실현되기를 요망했다.

 

장병화 주교 재임 시기인 1987년에 이종창 신부를 남미의 에콰도르에 선교사로 파견하여 해외선교활동을 시작했는데, 박정일 주교는 해외선교사업을 체계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후원회 창설을 계획했다. 1991년 2월 교구설정25주년 기념위원회 선교분과에서는 해외에 파견된 선교사를 후원 하고 선교사명을 굳건히 하기 위해 선교후원회를 설립했다. 그리고 10월 1일 회칙이 인준되어 에콰도르 선교후원회가 발족되었다. 우리 한국교회와 마산교구가 선교사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던 과거를 되새기며, 이제 선교사를 파견하는 현재가 되었다. 에콰도르에 파견한 2명 신부와 2명 평 신도사도직 자매가 마산교구의 이름으로 투신하게 되었다.

 

 

 

 

교구설정 25주년 신앙대회

 

박정일 주교는 교구설정 25년을 맞아 순교자들의 신앙을 본받고 신자들의 내적쇄신을 통해 새로운 교회상을 구현하고자 했다. 1990년 9월부터 교구설정 25주년 기념위원회를 구성하여 “진리 위해 몸 바치자”(요한 17,17)라는 주제를 앞세워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10월부터 매월 한 달의 주 제를 정하여 나아가기로 했다. 10월 가정기도의 달, 11월 성서읽기의 달, 12월 입양·결연의 달, 1991년 1월 과소비·퇴폐 풍조 추방의 달, 2월 전교의 달, 3월 헌혈의 달, 4월 퇴폐풍조 근절의 달, 5월 청소년 격려의 달, 6월 생명보존의 달, 7월 질서회복의 달, 8월 장병화 주교 선종으로 주제 없음, 9 월 증거의 달, 10월 친교의 달.

 

세밀한 계획에 따라 본당과 개인이 과제를 수행하는 것은 물론 지역별 지구별 강연, 교리반 개설, 크고 작은 부대 행사들이 지속적으로 치러졌다. 교구민이 한 목소리로 25 주년 기도를 함께 바치고,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로부터 교황 강복장을 받는 기쁨 속에서 25주년 결실을 맺게 되었다.

 

1991년 10월 6일 마산종합운동장에서 교구설정 25주년 기념대회를 개최했다. 박정일 미카엘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쇄신되어 하느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가 되는 데 첫 째 목표를 두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념식에서는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축사, 주교회의 김남수 주교의 축사,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불라이티스 대주교의 축사가 있었고, 그라츠교구장 요한 베버 주교의 축전으로 풍성한 은총의 시간이 되었다.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을 위한 땀

 

각 교구별로 시행되던 시복운동을 주교회의에서 통합추 진하기로 하여, 2001년에 주교회의는 시복시성통합추진의 담당 주교에 마산교구장 박정일 미카엘 주교를 선임했다.

 

2002년 11월 박정일 주교는 마산교구장에서 퇴임한 후 에도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장으로서의 임무에 진력했다. 2003년 8월 1일 「조선시대의 하느님의 종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소송청원서」를 교황청에 접수하였다. 그 후 국내에서 5년 동안 시복조사 법정이 열렸다. 박 주교는 책자와 기도문을 만들어 보급하며 신자들의 기도를 독려했다. 한국천주교회 차원의 시복조사가 마무리되어 이 문서들은 2009년 6월 3일에 시성성에 정식 접수되었다. 교황청 단계의 까다로운 시복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박 주교는 여러 특강을 통해 시복을 염원하며 시성성 심의를 간절히 기다렸다. 그리고 2014년 2월 7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의 종 124위의 시복을 승인했다. 마침내 그해 8월 16일 프란 치스코 교황은 광화문 광장에서 124위 시복식을 장엄하게 거행했다. 하느님의 종 124위가 복자품에 오르기까지 박정 일 미카엘 주교의 헌신적인 땀이 흥건히 깃들었다.

 

 

에필로그

 

이 글을 쓰고 있던 중, 박정일 미카엘 주교는 2024년 8 월 28일 선종하여 이화공원 성직자묘지에 안장되었다. 세 교구의 교구장을 역임하며 두루 교구사목을 이뤄낸 박 주교는 “충성과 온유”를 앞세우며 많은 사람들 가슴속에 온유한 미소를 남겼다.

 

 

 

▶ 참고 : <천주교 마산교구 40년사> <그라츠-섹카우교구와 동행 50년> <양덕동성당 25년사> 등

 

[2024년 10월 20일(나해) 연중 제29주일(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전교 주일) 가톨릭마산 4-5면, 황광지 가타리나(가톨릭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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