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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철학ㅣ사상

인간학 칼럼: 공동체적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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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8-06 ㅣ No.511

[인간학 칼럼] 공동체적 존재

 

 

흔히들 실존적이며 생리적인 관점 때문에 인간을 독립된 개체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을 넘어 보다 깊이 생각해 보면 사람은 개체적 측면 이상으로 공동체적 존재임을 절감하게 됩니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다른 사람과 관계 안에서만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면 말을 배울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이 없으면 인격적 존재가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은 우리가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존재입니다. 인간다움을 인격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우리가 다른 인격체와 관계 안에서 우리의 인격을 형성하고 또 그렇게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인격이란 사람과 사람이 맺는 인간다움에 대한 표현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을 인격적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인간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위격적 관계를 따르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이 다른 인격과 맺는 관계 안에서야 비로소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 것은 그의 본질이 공동체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인간의 관계적 본성을 흔히 사회적이거나 공동체적 존재라고 표현합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은 가정과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교회나 학교, 마을은 물론 넓게는 국가와 같은 다양한 공동체의 모습은 이런 본성이 표현된 결과입니다. 또한 우리가 만드는 모든 문화, 과학과 예술, 학문 역시 이러한 본성 때문에 가능해집니다. 그럼에도 공동체는 이렇게 형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인간이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 그 자체입니다. 공동체적 본성은 인격적 관계에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모든 공동체는 그 집단의 외형적 모습이나 그 체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맺는 인격적 관계의 총합입니다.

 

인간이 본성적으로 공동체적 존재라는 말은 우리의 인간다움은 다른 사람과 맺는 관계 안에서 결정된다는 뜻입니다. 관계맺음 안에서 인간이 되고, 이렇게 이루어가는 공동체적 특성이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뜻이지요. 그래서 이런 본성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격적 크기가 결정됩니다. 내가 만든 공동체의 크기가 바로 나 자신의 크기입니다. 그 공동체의 인격적 관계가 바로 나의 인격입니다. 또한 개인의 이익을 넘어서는 공동체적 덕목인 공동선이 중요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 두 관계는 결코 대립적이거나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보증하는 상호성 안에 자리합니다.

 

이런 공동체적 본성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실존적이며 개체적입니다. 여기에 인간의 공동체적 특성에 담긴 양면성이 자리합니다. 이 두 가지 특성은 따로 존재하는 각기의 요소가 아니라 어우러져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 본성을 만들어가는 요소입니다. 그런 까닭에 인간이 만드는 공동체에는 흩어짐이라는 특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인간 본성의 근본적 모순은 이런 양면성 때문에 생깁니다. 공동체적 존재이기에 한 데 모일 수밖에 없지만 각자의 실존적 본성을 유지해야 하는 존재이기에 우리 본성에는 ‘따로, 그러나 함께’라는 특성이 작용합니다.

 

이런 특성을 철학적으로 ‘흩어지는 공동체’라는, 얼핏 보기에는, 모순적인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내 인격의 고유함과 독특함을 유지하고 달성함으로써 공동체를 만들어간다는 뜻이지요. 공동체적 존재이기에 우리가 전체에 흡수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큰 잘못입니다. 오히려 그 특성은 각기 인격의 고유함과 특성을 달성하기 위한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를 의미합니다. 이 두 가지 본성을 잘 어우르고 통합하면서, 그 갈등과 모순을 조절하는 데서 우리 인격의 크기가 결정됩니다.

 

[2024년 8월 4일(나해) 연중 제18주일 서울주보 7면, 신승환 스테파노(가톨릭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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