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6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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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ㅣ기도ㅣ신앙

[영성] 영성심리: 저희도 용서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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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7-30 ㅣ No.2040

[영성심리 칼럼] 저희도 용서하오니

 

 

어떻게인지도 모르게 올해의 절반이 훌쩍 지나버린 요즈음, 어찌 지내시는지요? 연초에 세웠던 계획을 어느 정도 이루셨습니까? 네?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아서 해야 할 것도 없으시다고요? 그래서 마음이 편하시다고요? 그러실 수도 있지만, 정말 어떤 계획이나 목표 없이 지내고 계신다면 그 이유가 무얼지 찾아보시면 어떨까요? 계획이나 목표가 없다는 것은 어쩌면 ‘바라는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은 ‘없어서’가 아니라 ‘몰라서’가 더 정확한 표현이죠. 살아있는 사람인 이상, 무언가를 바라게 하는 욕구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만일 나의 욕구나 바람이 무언지 잘 모른다면,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자기 욕구를 무시하고 부정하기 때문일 겁니다. 욕구가 ‘좋다, 나쁘다.’ 판단할 대상이 아니고 그래서 내 안에 있어도 괜찮은 것, 오히려 있어야 좋은 것이라는 말을 아무리 많이 듣더라도, 욕구와 관련하여 고생한 경험이 많은 우리는 자연스레 욕구를 부정하고 무시하게 됩니다.

 

어려서 무언가를 먹고 싶거나 갖고 싶다고 졸랐다가 호되게 혼났던 경험, 바라던 대로 되지 않아 실망했던 기억, 인정받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비참했던 순간 등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서 힘들었을 때가 많지요. 그런 상황을 접하며, 각자 대응 방식을 찾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 안에 공통으로 생겨나는 것은 욕구 자체를 나쁘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욕구 때문에’ 힘든 것이 아니라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서’ 힘든 것인데 이 둘을 구별하기가 어렵다 보니, 욕구 자체가 나쁜 것 그리고 나 자신도 ‘욕구 덩어리’인 나쁜 존재라고 부정하게 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도 이럴진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떨까요? 다른 이의 욕구와 그 욕구를 채우고 싶어 하는 마음과 그에 따른 행동을 너그럽고 관대하게 수용하기보다, 그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고 그래서 상대를 미워하게 됩니다. 도무지 용서가 안 되는 겁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이런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계실까요? 나를 움직이게 하는, 그래서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인 욕구를 나에게 주신 분이 하느님이신데, 욕구가 충족되지 않아 힘들어하는 나를 나쁘게 보실까요? 욕구를 건강하게 채울 방법을 찾지 못해 힘들어하는 우리를 보며 안타까워하시지 않을까요?

 

하느님께서는 늘 용서하실 준비가 되어 있으십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따름입니다. 나의 욕구를, 욕구를 가진 나를 더 용서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럼, 욕구 때문에 나에게 잘못한 그 누군가도 더 쉽게 용서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럴 때, 이미 나에게 주어져 있는 하느님의 용서를 참으로 깨닫게 되지 않을까요?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루카 11,4)

 

[2024년 7월 28일(나해) 연중 제17주일(조부모와 노인의 날)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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