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8일 (일)
(녹) 연중 제23주일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이들은 듣게 하시고 말못하는 이들은 말하게 하신다.

성미술ㅣ교회건축

이콘산책27-29: 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 이콘으로 보는 천사의 알림(성모영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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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7-16 ㅣ No.1086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7) 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이콘으로 보는 천사의 알림(성모영보)


천사가 말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작품1) 천사의 알림: 94.5 x 80.3cm, 템페라, 14세기, 스코플테 박물관, 성 클레멘스, 오흐리드

 

 

1. 이콘 : 영원을 향한 창문

 

사람은 모든 피조물 중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면서 사람을 창조하심으로써 우리는 그분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에덴에서 내쳐진 후 우리는 차츰 하느님의 빛을 잃어버리고, 육신은 썩을 수밖에 없는 원죄라는 씨앗을 스스로 지님으로써 “이제는 먼지로 돌아가야 합니다”(창세 3,19 참조). 그러나 우리는 지상에서 우리의 영(靈)에 성스러움을 부어 넣어, 그분의 성스러움과 고요함에 도달한다면 그분과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육신도 이 세상에서 다시금 하느님과 함께하는 새로운 에덴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콘은 ‘그림’, ‘닮다’, ‘원형을 본떠 만든 모상’이라는 본래의 뜻처럼 원형이신 하느님의 모습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조심스러운 시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사람의 모습으로 한없이 낮추어 오신 하느님, ‘단 하나의 얼굴’이 있기에 그분을 통해 영원한 하느님과 만나려 합니다. 이때 이콘은 하나의 창(窓) 역할을 합니다. 그분과의 만남의 본질은 이콘이라는 눈으로 보는 물질 자체가 아니라, 물질 안에 숨어 있는 그분의 느낌이자 숨결이며 대화입니다.

 

그분을 만나기 위해 많은 것을 보려고만 해서는 안 됩니다. 우선 그림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성화에 그려진 그분과 눈을 마주쳐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잠잠히 기다려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눈이 건강하다면, 우리의 몸 전체는 밝아질 것이며(마태 6,22-23 참조) 언젠가는 그분의 숨결이 느껴지고 마음으로 소통하는 대화도 가능해질 것입니다.

 

 

2. 기원(起源)

 

예수님이 오시기 전 이스라엘의 상황은 극적이었습니다. 모든 권한은 로마가 가지고 흔들던 시대였고, 왕권은 유다인이 아닌 모압인 헤로데가 쥐고 있어 자존심이라고는 내세울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구세주를 절실하게 기다리던 시기였는데, 어느 한 곳에서는 조용히 하느님의 섭리가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이콘 속 급히 다가오는 가브리엘 천사 모습에서 우리는 천사가 가져오는 소식이 얼마나 중요하고 기쁜 것인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이 소식은 예언대로 간절히 기다리던 메시아가 드디어 오신다는 소식과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사람으로 낮추어 오신다는 두 가지 면(이사 7,14 참조)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마리아는 동정이시며, 구세주로 오실 분을 잉태하셨다는 것을 믿을 교리로 선포합니다. 이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에서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라는 구절을 신앙고백에 추가하며 천사의 인사를 반복하여 기도함으로써 그 기쁨을 노래합니다.

 

3월은 만물이 소생하는 첫 달의 의미가 있기에 밤과 낮이 같은 날로부터 시작해 사람을 창조하신 엿새의 날짜를 계산해서 3월 25일을 ‘천사의 알림’ 축일로 정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성탄 축제 때 함께 지내다가 ‘천사의 알림’ 또는 ‘성모님께 영광스러운 기쁜 소식(성모영보)’으로 교황 세르기우스 1세(687~701) 때 공식적으로 축일로 반포하게 되었습니다. 성모 설지전(St. Maria Maggiore) 성당에서는 그 이전부터 시가(市街)를 행진함으로써 이 축제를 지냈다고 전합니다.

 

 

3. 구성과 상황

하느님의 작은 빈터

 

초등학교 4학년 때 반짝이는 보석 몇 개가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그 귀한 것을 작은 철제 약 상자에 넣은 뒤 어디에다 묻을까, 여기저기 찾아보았습니다. 이곳저곳 살핀 끝에 그 보물상자를 뒤뜰 땅속에 감췄습니다. 물론 그 보석은 브로치에서 떨어져 나온 유리 제품이었지만 나에게는 귀중한 보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보물 외에 나의 눈에 귀해 보이는 예쁜 것들과 구슬치기하던 알록달록한 유리구슬들도 함께 묻었습니다. 그리고 보물지도를 그려놓고, 잠자기 전 이리저리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기억이 새삼스럽습니다. 나만이 알 고 있는 보물이 묻힌 작은 땅, 내게 그곳은 작지만 귀하디귀한 빈터였습니다. 하느님께서도 가장 귀하고 최고로 아름다운 보석을 감추어 둘 작지만 귀한 빈터를 마련해놓지 않으셨을까요?

 

천사의 알림을 간략하게 줄이면 이러합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으로 들어가 말하였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에 마리아는 몹시 놀랐다. 그리고 이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곰곰이 생각하였다. 천사가 다시 마리아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 (중략) 마리아가 천사에게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자, 천사가 마리아에게 대답하였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중략)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 마리아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천사는 마리아에게서 떠나갔다.(루카 1,26-38).

 

천사와 성모의 대화가 성경 내용처럼 1~2분 정도였을까요? 아마도 생각하는 시간, 천사의 대답하는 시간 등 좀더 긴 시간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를 택하신 것은 그분만의 고요함과 주님께서 머무르실 만한 귀한 작은 빈터였기 때문입니다. 이콘에서는 그 상황을 좀 더 상세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합니다. 이콘에서 마리아는 손을 들고 약간은 뒤로 기울어진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약간은 머뭇거리는 듯한, 어느 정도 두려워하는 자세이고 얼굴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표정입니다.(루카 1,29 참조)

 

여기서 두 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왜 이 소식이 이미 약혼한 신부에게 전해졌을까? 그리고 동정녀는 어째서 그 인사에 불안해하였을까?

 

마태오(1,18-25 참조) 복음대로라면 마리아는 부정한 여인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려 했으나 결국은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요셉의 꿈속에서 천사의 계시도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마리아는 마침 약혼 상태이며, 결혼했기에 아무 일 없이 동정녀로 해산이 가능했을 것입니다. 이는 탄생과 동시에 이집트로 피신시킨 것과 더불어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하느님 섭리와 박자가 잘 들어맞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7월 14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8) 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 천사의 알림(주님 탄생 예고)


동정녀 마리아의 겉옷에는 3개의 별이 빛난다

 

 

 

- (작품 2) 동정 마리아, 템페라, 16세기.

 

 

두 번째로, 마리아의 불안은 갑자기 나타난 알 수 없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라 다른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당연하므로 복음서 저자는 그 짧은 내용 안에 기록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에 대한 해석은 아주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무슨 의미일까 곰곰이 생각하는 동정녀의 신중성(루카 1,29 참조)이라든지, 천사의 말을 듣고 나서 겸손히 주님의 종으로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이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설명에서는 두려움의 이유로 천사의 인사가 있기 전까지 동정을 원했던 것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마리아가 동정을 원치 않았다면 천사의 말에 “이 몸은 처녀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라는 대답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기를 갖는 두려움에 대해 이미 모든 것을 아시고 계획을 준비해 두셨기에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라고 미리 환기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는 천사와의 대화에서 에제키엘이 환시 중에 보았던 야훼께서 성전을 떠나갔다가 되돌아오시는 그 영광이(에제 43,1-4) 본인에게 주어져 있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제 동정녀는 겸손히 ‘당신 말씀대로 이루어지소서’라고 함으로써 떠나갔던 하느님께서 다시 돌아와 계실 참으로 ‘살아 있는 성전’(1코린 3,16-17 참조)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천사의 입을 통해 하느님을 드러내시듯(창세 22,12; 15-18 참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155?~220?)는 ‘말씀’인 성자께서(요한 1,14 참조) 천사의 입을 거쳐 마리아의 귀를 통해 들어오셨다고 시적으로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동정녀는 천사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귀로 들음으로써 ‘하느님의 작은 빈터’가 될 수 있었습니다. 하와가 사탄의 말을 듣고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졌던 상황에서 드디어 벗어나는 계기가 된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의 말을 듣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다가 하느님 말씀을 듣고 소생하는 과정을 표현합니다. 시리아의 에프렘(306?~373)은 하와의 귀를 통해 죽음이 들어왔지만, 마리아의 귀를 통해 새로운 삶이 들어왔다고 찬미하고 있습니다.

 

- 청금석

 

 

동정녀

 

맑은 가을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내 영혼을 흰색 날개 위에 올려, 끝없이 피어난 청초한 코스모스 꽃길 위를 날아보고 싶다. 그 밑에는 어릴 때 보았던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시냇가 둑에는 하늘거리는 코스모스가 끝없이 퍼져 피었지. 내가 날고 싶은 소망은 아마도 하늘이 파랗기 때문일 거야!

 

하늘은 어째서 파랗게 보일까?

 

하늘이 파란 것은 하느님 앞에 펼쳐진 끝없이 드넓고 푸르른 유리 바다(묵시 4,6 참조) 때문일 거라고 상상의 나래를 펴봅니다. 고대에는 하늘에도 바다처럼 물이 채워져 있다고 믿었습니다. 구름이 하늘을 덮고 구름에 물이 쏟아지면 비가 되어 떨어진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구름은 비를 골고루 떨어지게 만드는 체1)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푸른 하늘은 하느님이 계신 곳이라고 예로부터 믿어왔기에, 이콘에서 푸른색은 하느님의 색깔로 여겨졌습니다. 청색은 생산되는 곳이 적어 무척 귀한 색이었습니다. 청색 안료는 라피스라줄리(청금석)라는 준보석을 갈아 썼기 때문에 매우 비쌌습니다.

 

이 청금석 안료는 주로 그림이나 화장품, 도자기 생산에 썼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쪽’이라는 남초 식물로 청색이 생산되는데, 이것은 염료이므로 옷감이나 종이를 물들이는 데 사용합니다. 따라서 이콘이나 일반 성화에서 성모님의 푸른색 옷(투니카)은 이 세상의 가치관, 흔히 말하는 부와 명예, 권력과 거리를 두는 것을 나타내고, 성모님의 영혼이 신의 세계와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의 경우,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시어 ‘밖으로 드러나신 하느님’이라는 의미로 푸른 겉옷을 둘렀습니다. 동정녀 몸에서 나실 임마누엘이라는 예언에 따라(이사 7,14; 11,1 참조), 동정녀 마리아의 겉옷에는 머리 부분과 양 어깨에 세 개의 별을 표시합니다. 금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별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도 동정이시고, 잉태 중에도 동정이시며, 메시아의 탄생 이후에도 동정이심을 표시합니다. (작품 2)

 

자주색과 황금색(金)은 고대 로마에서 황제와 그의 가족에게만 허용되었던 색깔입니다. 페니키아 사람들의 최고 상품은 레바논 백향목과 자주색 물감이었습니다. 페니키아어로 ‘페니크’는 붉은 자주라는 뜻이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색은 자주색과 푸른색, 붉은색입니다. 여기서 자주색과 푸른색은 소라에서 추출됩니다. 소라의 분비물이 산화되는 과정에서 햇빛을 받는 정도와 끓이는 방식에 따라 자주색과 푸른색으로 구분됩니다. 이렇게 만든 물감은 그 무게에 따라 황금으로 계산했다고 합니다.

 

붉은색은 연지벌레라는 진딧물에 의해 만들어집니다. 실제 성모님께서 실생활에서 자주색 겉옷(마포리온)과 푸른색 속옷을 입지는 못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하느님 어머니로서 자색의 마포리온으로 지극히 고귀한 위치를 나타냅니다. 성모님의 자색은 약간의 갈색을 섞어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의 아가를 연상시키며, 또 다른 의미로서 땅(흙)을 나타냅니다.

 

“그를 보고 아가씨들은 복되다 하고 왕비들과 후궁들은 칭송한다네. 새벽빛처럼 솟아오르고 달처럼 아름다우며 해처럼 빛나고 기를 든 군대처럼 두려움을 자아내는 저 여인은 누구인가?”(아가 6,9-10)

 

강한 명암의 대조를 피하고 은은한 얼굴의 빛은 자연의 빛이 아니고 하느님에게서 오는 빛이며, 따라서 그림자를 그리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태양 빛 또는 물리적인 빛은 시간의 제약을 받는 한계가 있는 빛이며 소멸할 빛인 데 비해, 하느님의 빛은 어떠한 변화도 없이 우리의 마음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천사의 알림(주님 탄생 예고)’ 이콘에서 동정녀는 붉은 실로 무엇인가 뜨는 모습으로 표현되는데(내려뜨린 왼손에 들고 있는), 이것은 구세주를 위해 옷을 짜는 상징적 표현으로, 구세주와 생명이 연결되어 있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께서 원죄 이후 아담과 하와에게 만들어 입히셨던 가죽옷을(창세 3,21) 벗기고 새 아담(예수님)을 위해, 또한 우리의 영을 위해 새로운 옷을 만드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가난한 여인답지 않게 성모님이 앉아 계신 훌륭한 의자와 아름다운 대리석으로 장식된 이 대문은 성전의 동쪽 문입니다. 거룩하고 고귀하신 분이 거처하는 집이며, 여왕으로서의 위치를 아울러 상징하고 있습니다. <계속>

 

각주 1) 가루나 액체를 거르는 도구. 종류에는 도두미, 중거리. 어레미가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7월 21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김형부 마오로의 이콘산책] (29) 성사실(聖史實) 이콘 해설 - 천사의 알림(주님 탄생 예고)


천사의 손가락 삼위일체 상징… 발아래 상자는 야곱의 우물

 

 

“그가 나를 대문으로,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데리고 나갔다. 그런데 보라, 이스라엘 하느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 소리는 큰 물이 밀려오는 소리 같았고, 땅은 그분의 영광으로 빛났다. ··· 그러자 주님의 영광이 동쪽으로 난 문을 지나 주님의 집으로 들어갔다.”(에제 43,1-4)

 

“그 사람은 나를 성전 밖 동쪽으로 난 대문으로 다시 데리고 갔는데, 그 대문은 잠겨 있었다. 그때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문은 잠가둔 채 열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이 문으로 들어와서는 안 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이 이곳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잠겨 있어야 한다.’”(에제 44,1-2)

 

예로부터 삼대가 덕을 쌓아야 남향에 동쪽 대문 집을 얻을 수 있다고 했습니다. 동문이 왜 좋을까요? 가장 먼저 빛이 들어오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어둠을 지나 떠오른 빛이 집안에 들기 시작하면, 새 아침과 함께 환하고 기운이 넘칩니다.

 

아마도 에제키엘 예언자 당시의 사람들은 이 동문의 의미를 완전히 해석하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빛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동문, 즉 구세주로 오실 하느님의 의미까지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훗날 아르고의 페트루스는(850~922)1) 성전의 동쪽 문이 동정녀 마리아를 상징한다고 해석했습니다. 동문은 성경에 언급됐듯 빛으로 세상에 오신 하느님께서 들어오시고 나가신 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외경2)에 따르면 동정녀 마리아가 성전(聖殿)에 봉헌된 후, 세월이 흘러 혼기가 다가오자 대제관은 천사가 알려준 대로 마리아의 배필을 정했다고 합니다. 즉 유다 지방의 총각과 홀아비들은 막대기를 하나씩 가져다 성전에 놓도록 명령받았습니다. 당시 홀아비였던 요셉도 막대기를 가져다 놓았는데 그곳에 두었던 막대기에서 기적이 일어나면서 요셉이 배필로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말하기를 “나는 아들들도 있고 이미 늙었다. 그리고 그녀는 젊디젊은 처녀이므로 나는 이스라엘의 아이들에게 놀림감이 되기 싫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렇지만 결정이 난 대로 그는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야만 했습니다. 요셉은 마리아와 약혼한 후 마리아를 집에 데려다 놓고, 목수 일 때문에 먼 곳으로 떠나가 있었습니다.

 

다윗 집안의 정결한 처녀로 성전에 사용할 자색과 붉은 장막을 짜도록 선택된 마리아가 우물가에서 물을 길어놓고는 의자에 앉아 천을 짜고 있을 때, 천사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동정녀는 순간적으로 빛이 들어오는 쪽을 향한 듯하고 약간 불안한 모습입니다. 동정녀는 약간 귀를 기울이는 듯한 표정으로(시편 45,11-12 참조) 무언가 생각하는 모습입니다. 왠지 두려운 듯 손을 들고 몸은 약간 뒤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 천사의 행동은 마리아의 조용한 모습과 달리 급히 다가오는 모습으로 표현돼있습니다. 이것은 이 기쁜 소식을 촌각인들 늦을까봐 빨리 전하고자 재촉하는 모습입니다.(루카 1,26-27) 그는 하느님의 충실한 종의 모습입니다. 천사는 기쁜 소식이라는 의미가 있는 흰빛 겉옷과 푸른빛 옷을 입고 있는데, 여기서 청색은 하늘의 의미와 순수함을 나타냅니다. 오른팔 어깨 부분의 조금 더 진한 청색 띠는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를 의미합니다. 그 띠는 사도들의 옷에도 표시되는데 색깔은 각기 다르며 예수님의 띠는 주로 금색으로 그려집니다.

 

천사가 왼손에 쥔 지팡이는 권위와 품위를 드러냅니다. 오른손은 팔을 펴고 있으며, 눈은 마리아를 향하고 있어 전해야 할 말을 이미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축복의 상징을 손가락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펴져 있는 세 손가락은 삼위이고 엄지와 약지를 구부려 붙인 것은 일체의 의미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축복하는 형태입니다. 그리고 구부린 두 손가락은 그리스도의 두 가지 본성을 상징하며 인간으로서(인성), 하느님으로서(신성) 처음부터 보이지 않게 계획하신 육화(肉化)의 신비를 기억시키려 합니다.

 

 

- 우물가의 성모님: 템페라, 31x26cm, 레클링하우젠 이콘 미술관, 독일.

 

 

우물

 

오흐리드 이콘에는 네모난 상자 형태가 앞 아래쪽에 있습니다. 이것은 야곱의 우물을 상징합니다. 우물은 땅에 있으면서 들여다보면 하늘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물에 비친 하늘을 보면 하늘에 계신 분을 연상할 수 있고, 또 우물은 지상에 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비친 하늘과 땅과 지하세계의 연결을 나타냅니다. 예로부터 유다 지방에서는 우물에 치유의 성격을 부여하고 있었습니다. 우물 안의 물로써 몸을 깨끗이 씻게 하고, 옷을 빨아 희게 하며, 병을 낫게 하고, 갈증을 풀어주며, ‘생명을’(에제 47,9) 유지하게 합니다.

 

이 우물은 앞에 놓여 있어 누구나 길어 마실 수 있으며,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은 그 안에서 샘처럼 솟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요한 4,14 참조) 이 물은 생명의 물이신 구세주를 의미하고, 우물은 구세주를 몸에 담고 계신 성모님의 모습입니다.

 

 

구도와 배경

 

지성소를 가리는 휘장이 걷혀 문 위로 걸쳐 있는데, 천의 끝자락이 살짝 늘어져 있고, 그것을 중심으로 대칭 구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천사는 동적(動的)으로 힘차게 다가오는 모습인 데 비해, 성모님은 조용한 모습으로 생각하는 정적(靜的)인 구도입니다.

 

성령께서는 위로부터 성모님의 머리를 향하여 비둘기의 모습처럼 나타나고 있으며 검푸른 빛입니다. 이콘에서 하느님 빛의 색깔은 흰색이 아닌 검푸른 색으로 표현하는데, 성경에서 하느님의 기운을 짙은 구름, 안개로 자주 표현하는 데 따른 것입니다. 그 빛은 우리가 보는 자연의 빛이 아니라 그늘의 빛입니다.

 

성전 동문 위에는 늘어져 있던 붉은 휘장이 걷어 올려져 있는데, 이는 오실 구세주에 의해 성전 휘장이 걷힐 것을 미리 보여주는 상징입니다.(마태 27,51; 마르 15,38; 루카 23,45)

 

이콘에서는 중요 인물을 강조하여 그립니다. 앉아 계신 동정녀의 발판을 두 단계로 하여 한 단계의 천사보다 성모님을 더 위로 들어 올립니다. 또 서 있는 천사와 앉아 계신 성모님의 크기가 같음을 볼 수 있습니다. 성모님께서 일어나신다면 어떻게 될까? 천사보다 더 큰 성모님의 키에는 높으신 분이라는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원근법에 맞지 않게 지붕이나 발판이 뒤로 갈수록 넓어지는 이유는 역원근법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눈’이 성모 마리아의 복부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성모님의 복부를 중심으로 모든 가구와 천장, 우물, 발판이 원근법과 반대로 앞은 좁고 뒤로 갈수록 넓게 구성되어 있습니다. 즉 성모님 복부에 있는 하느님의 눈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바라보는 우리는 그 자리에 ‘보여지는’ 위치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서방 미술에서 ‘천사의 알림’은 결과적인 분위기로 그려내지만, 동방 미술에서는 당시의 상태를 강조하는 경향이 두드러집니다.

 

각주 1) 아르고의 페투르스는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 그는 폭넓은 교육을 받은 후 수도원에 들어갔으며, 저술에 힘을 쏟았다. 그는 주교직을 여러 차례 거절한 후 순종으로 받아들였고, 가난한 이웃에 사랑을 베풀었으며, 수많은 기적을 일으켰다고 한다.

 

2) 여기서는 「야고보 원복음」.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7월 28일, 김형부 마오로(전 인천가톨릭대 이콘담당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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