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31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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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광야의 유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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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7-14 ㅣ No.1169

[신약으로 배우는 분석심리학] 광야의 유혹

 

 

요한에게 세례를 받은 후 성령으로 가득 차 요르단강에서 돌아와 영에 의해 광야로 인도되어 사십 일 동안 유혹을 받으시는 대목(마태 4,1-11; 마르 1,12-13; 루카 4,1-13)은 공관 복음에서 모두 중요하게 다루고, 대중들에게도 생각해 볼 상징들이 매우 많습니다.

 

우선 사십 일 동안 아무것도 잡수시지 않아 허기가 지신 상태에서 악마에게 유혹을 받는 상황부터 들여다봅니다. 우리 인간은 아무리 마음을 갈고 닦아도, 몸의 상태에 휘둘리기 마련입니다. 물도 마실 수 없고 먹지도 못하면 생존할 수 있는 이른바 골든 타임이 며칠되지 않지요. 먹는 것은 물론 잠을 계속 재우지 않는다든가, 빛도 소리도 들리지 않는 곳에 가둬 놓기만 해도 곧 광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전 먼저 단식을 하고, 광야에 홀로 계시게 되는 상황은 그래서 사는 내내 심리적 고통은 물론 신체적 조건에서 자유롭지 않은 우리들에게 큰 도움과 지혜를 주게 됩니다.

 

우선 허기가 진 상태에서 받은 악마의 유혹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마태 4,3)라는 구절입니다. 특별한 능력과 미션을 갖고 계시기 때문에, 보통 사람이라면 빵으로 만드는 순간 하느님의 아들임도 입증하고, 허기까지 해결이 되는 셈이니 일석이조의 해결책으로 쉽게 오해하게 될 제안입니다. 심리학적 용어를 쓰자면 나르시시즘적 욕구도 충족시키고 자아의식도 팽창하게 되는 것이니 일시적인 고양감과 행복을 느낄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이런 세속적인 마술쇼는 하느님의 뜻과는 거리가 멉니다. 아무리 결과가 이로울 수 있다 해도 악마가 제안했던 의도는 배고픈 사람을 자비로운 마음으로 도와주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까지도 조종할 수 있다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고, 하느님을 시험해서 이겨보자는 속내를 예수님께서 미리 알아차린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악마의 유혹에 화를 내거나 야단을 치며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의외의 답변을 해 주십니다. 사람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는 말씀이십니다. 그 어조까지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아마도 조용하지만 단호하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발아래의 모든 왕국을 보여 준 후 자신에게 절을 하면 이 모든 권세와 왕국들의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다는 거래입니다. 돌로 빵을 만들어 보라고 하는 제안이 다소 청소년에게나 어울릴 것 같은 느낌이라면, 모든 왕국의 권세를 주겠다는 제안은 청장년들이 혹할 것 같은 제안입니다. 아마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돈과 권력의 추구가 인생의 목표일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목표를 달성시켜 줄 것 같은 조직이나 사람 혹은 이념들에게 맹목적인 충성이나 헌신을 하고는 마치 뜻있는 인생을 산 것처럼 착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그런 기대는 여지없이 무산되고 말지요. 설령 죽기 직전까지 요행히 돈이나 권력을 붙잡고 있다면, 그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사람과 사랑의 관계를 지속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회한에 잠기고 때로는 피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인생의 엄정한 진실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섬길 대상은 속세의 그 어느 것도 아니라 세속을 뛰어넘는 절대자라는 점을 알려 주십니다.

 

세 번째는 성전 꼭대기, 혹은 성전 마당을 둘러싼 성벽 모퉁이 날개 부분 등까지 세운 후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니 여기서 아래로 몸을 던지라. 그러면 천사들이 당신을 보호케 하리라는 제안입니다. 언뜻 보면 마치 신앙의 진실을 테스트해 보라는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네가 신심이 깊은데, 그저 위험이나 죽음 따위 상관없이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실 것만 생각하고 행동해 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제안을 현대인의 구체적인 상황으로 번역해 보자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시고 있으니 위험한 일 네 몸에 해로운 일 해도 돼. 너는 사랑받는 자식이니 별일 없을 거야 라는 근거없는 긍정심리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자아 중심적인 궤변이지요. 이번에도 예수님은 단칼에 하느님이신 주님을 떠보지 말라는 말씀을 들려줍니다. 우리 몸이 성전이라는 말은 무슨 짓을 해도 하느님께서 지켜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귀하고 거룩한 장소이므로 잘 가꾸고 보존하여 하느님의 뜻이 머물 수 있도록 준비를 하라는 뜻일 것입니다. 내 몸은 내 것이라는 생각으로, 당장 달콤한 쪽으로 기울고 결국에는 해롭게 되는 선택을 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따지고 보면 내가 내 몸을 만든 것도 아니고 키운 것도 아니니, 어떻게 내 몸의 주인이 ‘나’이겠습니까. 크게 보면 창조주가 만드신 것이고, 부모님, 선생님, 또 나를 도와준 많은 이들의 결과물이 내 몸이 아닐까요. 그런데 함부로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따위의 일을 하면 안되겠지요.

 

마태오 복음과 루카 복음이 자세하게 사탄의 유혹을 기록하는 반면 마르코 복음은 간단하게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고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시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2000년 전의 고대어로 기록된 사실이므로 현대인들이 문자 그대로 이해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만화같은 장면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이 장면을 다시 심리학적으로 제 나름대로 이해해 보았습니다.

 

사탄의 영리한 유혹을 받았으나 그 허상을 금방 알아차리신 후 인간의 자연적 본능과 영적인 세계를 통합시키어 보다 완전한 전체 정신을 구현하셨다는 뜻으로요. 우리 모두 살면서 끊임 없이 내적인, 혹은 외적인 유혹과 난관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 뭐라 말씀하실 것인지에 대해 고민스럽고 혼란에 빠지게도 됩니다. 바로 그 순간 이 부분을 자세히 읽고 묵상하다 보면 명쾌한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월간 빛, 2024년 7월호, 이나미 리드비나(서울대학교병원 공공진료센터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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