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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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심리: 나를 움직이게 하는 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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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24-06-26 ㅣ No.2034

[영성심리 칼럼] 나를 움직이게 하는 욕구

 

 

학기가 시작하면 매주 토요일 오전에 신학교에 가서 대신학교 1학년생을 대상으로 ‘인성 양성 교육’을 합니다. 올해 1학년 신학원생은 서울과 의정부 두 교구를 합쳐 모두 11명입니다. 전과 비교하면 무척 줄어든 숫자이지만, 소수인 만큼 정예인 학생들의 눈망울은 똘망똘망하기만 합니다.

 

프로그램에 따라 강의와 나눔을 섞어 진행하는데, 얼마 전 ‘욕구’라는 주제를 처음 다루던 시간이었습니다. 칠판에 ‘욕구’라고 크게 적고는 학생들에게 물었죠. “‘욕구’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내 안에 욕구가 많으면 좋겠어요, 없으면 좋겠어요?”

 

물음을 던지면서 제가 기대했던 대답은 “반갑지 않아요.”, “없으면 좋겠어요.”라는 대답이었습니다. 그래야 그 다음에, ‘욕구 자체는 사실 좋고 나쁨을 따질 대상이 아니다. 욕구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더 좋다.’ 등등의 설명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1학년 친구들의 대답은 달랐습니다. “욕구가 적당히 있으면 좋겠어요!”

 

참 건강한 대답이다 싶었습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일종의 ‘금욕’을 강조하던 분위기에서 자란 저로서는, 욕구는 나쁜 것이고 그래서 없으면 좋은 것이며 없앨 수 없다면 최대한 억누르며 지내는 것이 더 좋다고 배워왔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성숙한 사람의 모습이고 ‘거룩한’ 삶의 방식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영성 신학과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욕구를 새롭게 이해하고 욕구가 전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좋지도 가능하지도 않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이 친구들은 그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욕구가 없기를 바라는 것은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바람입니다. 생물학적이고 심리적인 존재인 이상, 욕구가 없을 수는 없으니까요. 정말 아무 욕구도 없다면 그는 먹지도 자지도 않을 테고 하고 싶은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사람일 겁니다. 반면에 욕구가 적당히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구가 나를 움직이게 하는 동인(動因)이고 에너지인 것을 이미 아는 모습입니다. 물론 때로는 욕구 때문에 미성숙하게 행동하고 그래서 후회도 자책도 한다는 것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욕구가 ‘적당히’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구의 긍정적인 면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어느 곳으로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에게는 변화나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어느 쪽이 좋은 방향인지 알더라도 그곳을 향해 움직이지 않을 테니까요. 어느 곳으로든 움직이는 사람이어야 삶의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게 됩니다. 때로 나쁜 쪽으로 가더라도 아주 큰 일은 아닙니다. 좋은 쪽으로 방향을 다시 돌리면 되니까요. 욕구를 알아차리는 것, 그것이 여정의 시작입니다. 이제, 내 안에 어떤 욕구가 있는지 찾아보실까요? 내 안의 나는 무엇을 필요로 하고 있나요? “무엇을 찾느냐?”(요한 1,38)

 

[2024년 6월 23일(나해) 연중 제12주일 서울주보 7면, 민범식 안토니오 신부(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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