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오ㅣ성모신심
레지오의 영성: 모든 사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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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지오 영성] 모든 사람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
- 강동환, 〈베를린 한인성당 성모상〉, 2019, 브론즈, 165cm
독일 베를린에서 포교 사목을 하던 중 신자들의 바람을 모아 한인 성당 입구에 성모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어떤 모습의 성모님을 모실까 고민하던 때입니다. 인터넷으로, 엽서로, 직접 방문으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성모상과 성화를 바탕으로 우리의 이야기를 담은 성모상을 떠올렸습니다. 〈사진1〉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광부, 간호사의 모습을 한 교포 1세대, 아이들의 모습인 교포 2세와 유학생이 성모님의 옷자락(품) 안에서 보호받는 형상입니다.
일찍이 유럽 사람들은 법적 처벌, 분쟁이나 전쟁, 각종 질병 등의 상황으로부터 자신들을 지켜주십사 성모 마리아의 자비와 보호를 청하는 신심이 있었고, 그것을 성화나 성상으로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독일에서도 ‘보호 망토의 성모(Schutzmantelmadonna)’라 일컫는 작품이 지역마다 존재할 정도로 믿는 이들 사이에서 잘 알려진 성모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어머니 성모님은 우리 인간이 처한 다양한 상황들, 그중에서도 특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 감당하기 어려워 애태우고 눈물짓고 아파하는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을 고스란히 품어 안으시는 분으로 다가오십니다. 그것도 머뭇거리거나 이것저것 따지면서 다가오시는 분이 아니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잉태한 분이 엘리사벳을 찾아 서둘러 길을 나서는(루카 1,39) 그 발걸음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기도처럼 “서둘러 오시는 성모님, 저희를 위해 빌어 주소서!” (프란치스코 교황,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 엘레나 인베르세티 엮음, 이정석 옮김, 가톨릭출판사, 52쪽)라고 청하면서 성모님의 품으로 달려들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기 때문입니다.
일찍이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는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7)라며 당신의 어머니마저도 교회의 어머니가 되도록 내어주셨습니다. 그렇기에 이제 우리가 “마리아를 우리의 어머니로 모시게 되면 놀랍고 고귀한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바라보기 이전부터 성모님이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는 것, 우리가 성모님께 기도하기 이전부터 우리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것,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부터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브랜트 피트리, 『마리아의 신비를 풀다』, 임성근 옮김, 바오로딸, 250쪽) 왜냐하면 성모님은 우리의 어머니이시고, 어머니는 그러한 존재니까요.
- Gabi Weiss, 〈Maria, Mutter aller Menschen〉, 2017, Acryl auf Leinwand, 70x50cm
우리도 성모님처럼 ‘서둘러’ 길을 나서야
더 나아가 성모님은 믿는 이들의 어머니를 초월한 모든 사람의 어머니이십니다.
〈사진2〉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성모님의 망토 아래에는 별을 따라 걷는 세 명의 왕(왼쪽 아래)과 함께 허약한 노인들, 아기를 봉헌하는 산모, 돈과 권력을 과시하려는 자들과 그들에게 몸을 파는 여인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성모님의 망토 오른쪽에는 고위 성직자임을 드러내는 모자 쓴 사람들과 스카프나 베일을 착용한 여성들, 그리고 불확실한 위치에 등을 돌리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의 여신상 머리를 연상케 하는 이와 함께 보호받고 있습니다.
동시에 이 작품은 성모님의 발치에 어머니의 품이 필요한 이들이 여전히 존재함을 드러냅니다. 쓰레기통에서 음식이나 병을 찾고 있는 사람들, 고통으로 쓰러진 사람, “배고파요! (Ich habe hunger)”, “살 집이 없어요! (Ich habe keine Wohnung)”라고 쓰고 손을 내민 사람들 등.
이는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게 된 이들에게 오히려 손을 내미시는 성모님의 초대입니다. 어머니의 그 품은 나만을 위한, 내 공동체만을 위한, 나의 교회만을 위한 것으로 좁혀질 수 없는 품이기에 마리아를 어머니로 모시는 우리가 이제 상처받은 이들, 잘못을 저지른 이들, 가난한 이들, 불쌍한 이들을 위한 품의 역할을 하라는 초대입니다. 우리도 성모님처럼 ‘서둘러’ 길을 나서야 합니다. “우리가 성모님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이전부터 성모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다.”라는 사실을 모든 사람이 체험할 수 있도록 길을 나서야 합니다.
[월간 레지오 마리애, 2023년 12월호, 최태준 필립보 신부(마산교구 사목국장, 마산 Re. 담당사제)] 1 255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