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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평신도들은 누룩의 역할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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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평신도들은 ‘누룩’의 역할을…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식별하고 가르치고, 그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예언자의 역할이었고 또 교회의 역할이지요. 세상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소리를 높이고 증언해야 한다고 봅니다.
인터뷰 기사에는 글쓴이의 판단과 느낌이 가미된다. 그런데 최고위 성직자인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정순택(베드로) 대주교 같은 분을 뵈면 아주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문답을 기계적으로 전달하면 의미가 반감될 수 있고 열쇳말조차 뽑기 어렵다.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자제하는 수밖에 없다.
3월 10일 오후 서울대교구청 교구장 집무실에서 진행한 정 대주교 인터뷰에서 가장 인상 깊은 말씀은 ‘세상이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가 아니라 하느님 앞의 인본주의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으니 국내 노(老) 종교학자의 고백이 떠올랐다. 그는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모든 것이 허용된다.”는 말이 평생의 화두였다고 했다. 도스토예프스키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인공 이반의 입을 통해서 한 말이다.
시노드 교회에 대해서도 배웠다.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모두가 주인공으로서 하느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라는 말씀은 교회의 변화를 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간곡한 요청이자 교회를 살리려는 어쩌면 마지막일지도 모를 처방으로 들렸다.
청소년 · 청년 사목에서 강조하신 동반자 사목도 귀 기울여 들었다. 신자나 국민의 삶과 동떨어진 종교는 존재의 근거를 잃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내 생각이다. 방탄소년단이 전 세계 청소년들에게 큰 사랑을 받는 이유는 노랫말로 청소년들의 삶과 아픔을 대변하기 때문이라는 어느 사제의 교회에 대한 성찰을 새기게 했다.
Q. 서울대교구장이 되신 지 4개월이 조금 더 지났는데, 일상이 많이 바뀌셨지요.
“요한복음 21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젊었을 때는 원하는 곳으로 다녔지만 늙어서는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구절이 떠오릅니다. 저는 일반 대학을 다니던 중에 사제 성소를 느꼈고, 대학을 졸업한 뒤 신학교에 편입하고, 교구 신학생에서 수도원(가르멜)에 들어가 수도자가 되고, 생각도 안 해보고 꿈도 안 꿔본 서울대교구 보좌주교가 되고, 교구장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제 삶에 변곡점이 여럿 있는 것으로 보시기도 하는데 사실 제가 느낀 삶의 변곡점은 단 한 번, 일반 대학에 다니다가 사제 성소를 느끼고 ‘하느님께 나를 봉헌하겠다’는 마음으로 신학교에 편입한 때뿐입니다. 그 후로는 변곡점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맡기고 순명하는 삶이 이어진 거라고 느낍니다.”
그 말씀을 듣는 순간 아! 이 분은 하느님의 사람이구나, 하느님이 보내주신 분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마침 세례명도 베드로다. 신학대학 입학 후 삶의 변곡점처럼 보이는 순간도 실은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삶의 연속이었다는 것은 은총이 아닐까. 교구장이 된 후의 삶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Q. 평신도들이 대주교님이 교구장 되신 것을 좋아하는데, 교회가 변화되고 개혁돼야 한다는 바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 김수환 추기경님처럼 우리 사회의 큰 어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발휘하셨으면 하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김 추기경님께서는 당시 정치 사회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빛과 소금 같은 우뚝한 역할을 하셨고, 모범 그 자체이셨죠. 그런데 후임이신 고 정진석, 염수정 추기경님께서도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으로서 역할을 아주 훌륭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정 대주교님은 긴 시간을 할애하여 고 정진석 추기경님의 공적과 바로 전임 염수정 추기경님의 여러 많은 업적을 상세히 열거하시며 일일이 기리셨다. 이를테면 정 추기경님에 대해서는 국내에 교회법의 탄탄한 기초를 놓은 점, 염 추기경님에 대해서는 2014년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의 시복미사가 광화문 광장으로 확정되기까지의 결정적 역할과 그 역사적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선임 교구장들을 공경하는 마음은 내게도 고스란히 전달됐다. 그 상세한 내용은 지면의 한계로 아쉽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저로서는 전임 교구장님들을 잘 이어받으면서 새 시대와 2030년대에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하지요. 앞으로 교회가 사회적인 좋은 영향력에 더 신경을 쓰면서 커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의 그런 사회적 영향력이 선교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지요.”
Q. 전 세계적으로 탈종교화 현상이 심각합니다. 한국 사회에도 종교가 없다는 무종교인이 절반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일반론으로 경제가 발달하고 생활이 윤택해지면 종교에 대한 관심이 식어간다는 분석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세계의 문화가 세속적, 감각적, 표피적 가치를 향해 달려가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런 속에서 현대인 모두가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한 질문을 잊어가는 게 아닌가 합니다. 모두가 죽는 존재라는 걸 잊고, 유한한 인생이 어떤 의미가 있고, 우리 인생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 아닐까요.”
Q. 「사목헌장」 제4항은 ‘모든 시대에 걸쳐 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탐구하고 이를 복음의 빛으로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합니다.
“지금 이 시대, 이 세상에 하느님의 뜻은 어디에 있고 어디를 향해 어떻게 나가야 하는지를 식별하고 가르치고, 그 방향으로 나가도록 하는 것이 성경의 예언자의 역할이었고 또 교회의 역할이지요. 큰 틀에서 보면, 낙태나 배아줄기세포 연구 같은 생명에 반(反)하는 문화와 표피적, 감각적 쾌락과 물질적 풍요로움만 추구하는 문화 속에 교회는 하느님과의 연계성 안에서 생명의 고귀함을 새롭게 보는 생명 문화, 몸이 얼마나 중요한 선물이고 그 속에 하느님이 깃들어 있는지를 가르치는 참다운 몸 신학, 환경과 생태 신학 등을 통해 세상 안에서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는 존재라는 것에 대해 소리를 높이고 증언해야 한다고 봅니다.”
Q. 요즘 한국사회의 정의를 저해하고 분열을 조장하는 요인으로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빈부 격차, 부동산값 폭등을 꼽는 의견이 적지 않은데, 교회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에 경제성장을 이뤘으나 이념·계층·세대간 갈등, 소득과 빈부 격차, 가난의 대물림 등이 나타났습니다. 이는 잘못된 정책 탓도 있겠지만, 크게 보면 발달한 후기 자본주의에서 나타나는 당연한 현상입니다. 자본, 곧 황금이 주인인 시대이기 때문에 그렇게 달려가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한계이지요. 그래서 이제 거대 담론의 방향을 새로 정립해야 합니다. 자본이 절대자의 자리를 차지하는 자본주의가 아니라, 또 하느님을 치우고 사람이 중심인 그런 인본주의가 아니라, 신(神) 앞의 인본주의, 하느님 앞에서 선 인간이 중심이 되는 인본주의, 곧 신(神)-인본주의(Neo-Humanism이 아니라 Deo-Humanism)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참된 의미의 인간이 중심이 되는 사회, 모두가 서로 존중하고 사랑할 수 있고 존엄성을 인정받는 사회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대주교님께서는 가르멜 수도회 출신으로 영성이 깊은 분이라는 말씀을 들으시고 착좌 미사에서도 영성적 삶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성의 뜻과 영성적 삶에 대해 잘 모르는 신자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
“저는 제가 영성이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해하는 영성은 하느님을 사는 것, 그러니까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하느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을 체험하고, 그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그 감사함으로 만나는 이웃을 사랑하고, 사랑을 증거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통교하고 영성을 깊게 하는 방법에는 크게 두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성사이고, 다른 하나는 기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세례성사 등 7성사를 세워주셨지요. 사제가 집전하는 합당한 성사 때에는 그 자체로 하느님께서 은총을 주시는 것이고요. 기도는 언제나 어디서나 할 수 있는데, 내가 얼마나 준비돼 있느냐에 따라 은총이 달라질 수 있지요.”
Q. 현재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의 교구 시노드 단계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교구별 대륙별 시노드를 거쳐 세계주교시노드 본회의로 이어지는 것은 처음인데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 그리고 그 의미를 잘 알지 못하는 신자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해 15차 주교시노드까지는 그때그때 제기된 현안들을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맞게 사회 안에서 구현하기 위해 각 나라 주교들을 대표하는 주교대의원과 관련 전문가 사제와 수도자들이 모여 회의하는 방식이었지요. 그런데 이번엔 대표자들의 회의 방식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 안에 울리고 있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자는 것이지요. 평신도, 수도자, 성직자 할 것 없이 하느님 백성 모두가 주인공이자 하나의 신앙공동체로서 하느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면서 진리와 빛을 세상에 증거하고 선포하는 교회를 살아가자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본당 차원의 하느님 체험과 경청의 얘기들을 교구, 국가, 대륙, 교황청으로 점차 확대하며 모으고 나누는 것이지요. 주제는 ‘시노드 교회를 위하여: 친교 참여 사명’인데요. 시노드는 어원적으로 함께 가는 길, 함께 걷는 여정이란 뜻입니다. 시노드 교회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교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하느님을 향해 함께 걸어가는 공동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Q. 청소년 · 청년 미사에 참례해 보면 그 수가 아주 적습니다. 교회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해 주시지요.
“출산율이 크게 떨어져 청소년 숫자가 줄어든 데다 교회가 재미와 매력을 주지 못하는 영향도 적지 않지요.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에서 10년 가까이 준비해서 작년에 「청소년사목지침서」를 냈는데요. 교회는 청소년들이 스스로 복음화의 주인공으로 성장하도록 동반하고 또 청소년 스스로 또래를 복음화하는 주체로 성장하도록 동반하는 것 곧, 사제와 교리교사들은 그들의 주체적 활동에 함께하는 동반자 사목을 해야 합니다. 아울러 청소년들이 모여 있는 곳에 사목자와 수도자, 선교사들이 찾아가서 아픔을 듣고 원하는 바를 나누는 이른바 ‘찾아가는 사목’을 펼치는 등의 다양한 접근법을 병행해야 합니다.”
Q. 평신도들이 한국 교회의 발전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평신도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싶은 말씀도 해주시지요.
“교회 초창기에 평신도들은 성직자들을 모셔오고, 살리고, 숨기기 위해 대신 박해받고 순교하기도 했습니다. 성직자들은 그런 신도들을 볼 수 없어서 스스로 자수해서 순교한 역사가 있습니다. 평신도와 성직자가 서로 깊이 존중하고 사랑하는 관계를 다시금 회복해야 합니다. 평신도들은 세속적 가치가 만연한 세상 안에서 참된 가치를 증거하고 선포하는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Q. 대통령 선거가 끝났는데, 새 정부가 어떤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말씀을 주시지요.
“새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분은 반반으로 나뉜 국민을 감싸 안고 양 진영의 깊어진 갈등의 골을 메워주는 어머니 품 같은 정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국민이 모두 성실하게 살고 자기 책임을 다하면 행복할 수 있는 사회로 가꾸어 나가주시기를 바랍니다.”
Q. 요즘 북한이 미사일을 자주 쏴서 국민 마음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저는 기도 운동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1991년에 소련이 해체된 것은 정치역학적으로는 기실 소련 국내와 여러 국제 요인이 함께 작용한 점이 있겠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더 깊은 연원에는 파티마의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에게 나타나 소련 공산당의 회개를 위해서 기도하라는 말씀을 전하신 후 전 세계적으로 기도의 힘이 모아졌기 때문에 그런 정치역학적인 변혁의 힘이 모아져 분출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느님 안에서 간절한 기도와 염원들을 모으고 정치적 외교적 국제역학적인 노력과 정성이 병행될 때 어느 순간 하느님께서 주실 평화 안착과 평화통일의 선물을 우리 모두가 구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 내용을 정리하면서 정 대주교께는 편치 않은 인터뷰였으리라고 느꼈다. 그런데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하시고 1시간 30분 동안 성심성의껏 답하신 것은 평신도들을 사랑하시고 소통과 대화를 중시하시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 내내 솔직하심과 겸손하심이 자연스럽게 우러났다. 어떤 질문에는 에둘러 말씀해 주셨지만, 갈등을 키우지 않으시려는 배려로 여겨졌다. 정 대주교는 포용과 겸손과 인내의 리더십을 발휘하실 것 같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이자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씩 옮겨가시며 모든 인간의 존엄, 특히 사회적 약자의 인간다운 삶을 지향하는 선한 영항력을 드러내실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신도, 2022년 통권 제72호, 황진선 대건안드레아(前 가언협 회장)] 0 817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