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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44: 제언 (4) 제가(濟家) - 여성 평신도의 복음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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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44) 제언 (4) 제가(濟家) : 여성 평신도의 복음화 여성 평신도, 협조자로만 머물게 해선 안 돼
- 교회는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신원과 여성성과 조화를 이루며 교회와 세상을 위해 사명을 수행하도록 도와야 한다. 서울대교구 여성 총구역장 피정에 참가한 신자들.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서 베타니아에 있는 나병 환자 시몬의 집에 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한 여자가 값비싼 향유가 든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온 세상 어디든지 복음이 선포되는 곳마다, 이 여자가 한 일도 전해져서 이 여자를 기억하게 될 것이다.”(마르 14,9)
그런데 정작 우리는 이 여성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합니다. 교회 역사는 남성들의 행적은 세세하게 기억하는 대신 예수님께 기름을 부은 여인의 이름은 잊고 있습니다. 이 사실만 봐도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여성의 지위와 역할을 평가 절하시켜왔는지 알 수 있습니다.
남녀, 동등한 존재
여성이나 남성이나 모두 하느님의 모습을 따라 창조된 동등한 존재입니다.(창세 1,27 참조) 하지만 지금까지 인류는 남성이 기준과 표본이 되는 사회 문화를 만들어 왔습니다. 영어에서 성인 남성을 뜻하는 단어인 맨(man)이 ‘인류’ 혹은 ‘사람’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그동안의 역사가 얼마나 남성 중심이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여성이 자신의 신원 의식을 드러내며 정의와 평화를 구현하는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남성에 의해 주도되던 폭력, 비인간화, 전쟁, 무분별한 환경 파괴 등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것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특출한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여성이 거꾸로 남성을 억압하고 지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동안 가부장적 남성 문화가 저질러온 비인간적, 반문화적, 반사회적 악습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성은 남성과 동등하게 창조된 보편적 인간의 손색없는 모형입니다. 성(性)의 차이가 인간생활에서 불평등과 억압의 요소들로 작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여성 평신도들은 일반적으로 남성들보다 교회 활동에 더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습니다. 주일 미사 참례나 본당 내외 단체에서 활동하는 숫자로 보아도 남성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 교회 운영이나 정책 결정에 구조적으로 여성들이 참여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여하더라도 제한적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교회생활 안에 비합리적 여성 차별이 존재한다면 이는 사라져야 합니다. 한국 교회 초창기에 여성 평신도들의 눈부신 활동은 이 땅에 복음이 뿌리내리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소중한 밀알이었습니다. 이제 교회는 능력 있고 역량 있는 여성 평신도들의 의견 개진, 합리적이고 정당한 제안과 주장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교회 내외에서 활동할 다양한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교회 참여의 폭을 확대하고, 그들이 교회 운영과 정책 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여성 평신도, 교회 내 지위 향상돼야
교회는 어머니로서 모든 이를 환영하고, 난민에게 휴식처를 제공하고, 하느님의 사랑으로 품어주는 다정하고 겸손한 모습을 지녀야 합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여성 평신도들의 교회 내 지위 향상과 주요 결정에 대한 참여권이 그들의 활발한 활동력과 조화를 이룰 때 교회는 보다 활력 있는 복음 선포 기능을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는 여성이 자신의 고유한 신원과 여성성과 조화를 이룬 가운데, 인간으로서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발전을 이룩해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는 상황을 극복하고 교회와 세상에서 자신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이러한 일을 효과적으로 담당할 여성 평신도 관련 부서를 각 교구에 설치하는 것 또한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
창세기에 보면 뱀은 남성인 아담이 아닌 여성인 하와에게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저는 그 이유가 하와가 남성인 아담에 비해 더 독립적이었기 때문이라고 묵상합니다. 더 나아가 최초의 여성, 하와는 히브리어로 ‘생명’이라는 뜻입니다. 생명을 잉태하고 양육한 여성은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을 머리가 아닌 몸으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여성의 예민한 신앙 감수성이 교회 안에서 꽃 피어나고, 그 꽃이 미사 전례라는 나비를 통해 이 사회 구석구석으로 전파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날 우리 교회에서의 복음화를 위한 활동도 여성들이 더 적극적이고 많은 결실을 보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여성들이 없는 교회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복음화의 길에도 여성들이 협조하는 협조자가 아닌 복음화의 선각자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복음화의 모델이 성모님이신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10월 27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0 2,593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