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 (목)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평협ㅣ사목회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33-34: 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 평신도 사도직의 출발점, 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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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19-07-28 ㅣ No.109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3) 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평신도 사도직의 출발점, 회개 ①


주님 계명대로 살고 있는지 자가 점검부터

 

 

많은 평신도가 지금도 나름대로 주님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려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지금 당신 삶의 주인은 하느님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주님! 주님!” 하고 말하고 있지만, 정작 나 자신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진정한 평신도는 자신의 부족함을 절실히 느끼고, 하느님을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 삽니다. 진정한 평신도는 그분의 선택이 우리의 선택보다 낫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가 만약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삶 안에서 무엇을 결정할 때 먼저 하느님께 여쭤보는 것이 습관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함께 일하고 있는 분들과 가끔 식사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들은 항상 저에게 먼저 “오늘 식사하러 어디로 갈까요?”라고 물어봅니다. 한 번도 “오늘 어디에서 식사하기로 했습니다. 그쪽으로 가죠”라고 말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저는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으고, 그 의견대로 따릅니다. 

 

우리는 한 인간에게도 그렇게 합니다. 사소한 식사 메뉴를 정하는데도 항상 남에게 먼저 물어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책임져 주시고, 삶의 방향을 설정해 주시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잘 여쭤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그 길을 걸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주님께 기도로 청하고 지혜 구해야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하는 것은 주님과 인격적인 만남을 갖는 것입니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대해야 주님으로부터 인격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습니다. 문제는 하느님은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계시는데, 우리는 그분을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에는 별로 관심도 없고, 심지어 무시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합니다. 정말 누군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면 먼저 그 사람에게 의견을 물어보고 결정할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먼저 달려가서 그분에게 기도를 요청하고 지혜를 구할 것입니다. 이런 행동은 매우 상식적인 행동입니다. 

 

많은 분이 제게 와서 상담하는데 정작 해결책을 이야기하면 따르지 않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해결책을 따르지 않을 거라면 왜 찾아와서 해결책을 달라고 하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물론 최종 선택은 본인의 몫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도를 요청하거나 상담을 할 때 그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답을 기대합니다.

 

예수님과의 만남에서도 비슷한 일이 종종 벌어집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지혜롭고, 올바른 분별을 줘도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합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주님께서 원하시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분별해야 합니다. 이 글 제일 앞에서 언급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다시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어머니께서 맛있는 밥상을 차려 놓으시고 밥을 먹으라고 부르십니다. 이때 밥을 먹는 것은 우리 각자의 몫입니다. 밥은 억지로 먹여줄 수 없습니다. 음식 맛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을 입에 넣고 꼭꼭 씹어야 합니다. 입안에만 넣고 우물거리면 밥맛을 느끼지 못합니다. 씹어서 먹어야 소화가 되고, 소화되어야 영양분이 우리 몸속으로 들어옵니다.

 

마찬가지로 하느님과 예수님은 우리 평신도들의 삶을 대신해 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착각합니다. “정말 새롭게 살고 싶습니다. 주님이 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새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깨우쳐 주시고 동기를 유발하실 뿐이지, 직접 살아가는 것은 우리 평신도 각자의 몫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밥상은 이미 예수님께서 잘 차려 주셨습니다. 그 밥상에 앉아서 먹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잘 소화하면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난해하고 힘들고 어려운 것을 주문하시지 않습니다. 어려운 길을 걷는 자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겠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내 계명을 지켜라. 내 말을 들어라. 그러면 내가 너희와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셔서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이중삼중으로 완벽한 장치를 해 놓고, 우리를 하느님 나라로 초대하십니다.

 

 

자신의 내면 들여다보기 

 

혹시 지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면 자신의 내면을 한번 들여다보십시오. 그리고 자신이 과연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알고 있는지,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싶은 의지가 내게 있는지, 얼마나 노력했는지 등을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의지와 노력이 부족하면 실천하기 어렵습니다. 이와 같은 문제점들을 파악하고 나서 분명히 자신의 문제점을 고치겠다는 결심을 하고 이것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내 모습을 그분이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바꾸는 것이 회개입니다. 뉘우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음 호에서 이 회개의 문제에 대해 복음화와 관련해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7월 28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4) 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평신도 사도직의 출발점, 회개 ②


회개의 시작은 주님 말씀에 맞게 행동하는 것

 

 

회개는 행동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슨 행동을 어떻게 바꾸어야 할까요? 그 기준은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마태 17,5) 그러니 예수님(아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사랑하는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은 하느님의 말도 듣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하느님이 강조하시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그 행동을 바꾸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행동을 바꾸는 것이 바로 ‘회개’입니다. 회개해야 하느님 안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회개를 통해 삶을 바꾸고,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함께하실 것입니다. 성령께서 함께하실 때 우리는 삶 안에서 하느님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은총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사랑받기 위해선 

 

그런데 우리는 내 행동은 그대로 둔 채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기를 원합니다. 몇몇 자매들이 “남편이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아서 힘들어요. 남편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저는 그 자매께 질문합니다. “남편에게 잘 보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합니까?” 그러면 대부분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행동은 하지 않은 채 사랑받기만 원합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사랑하기 위해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사랑받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나의 행동양식이 바뀌어야 합니다.

 

함께 기도 모임을 하고 있는 한 형제를 알고 있습니다. 그는 대기업에서 월급도 많이 받고, 경제적으로 어려움 없이 사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는 요즘 달라졌습니다. 주방 출입을 하지 않던 이가 매일 아내를 위해 설거지 등 집안일을 하다 보니 주부습진에 걸렸다고 합니다. 그는 평소 부인한테서 많은 사랑을 받는 분이셨습니다. 부인은 항상 남편을 존경했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부인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남편은 분명히 부인을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부인을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사랑은 이렇게 주고받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를 존경하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사랑하는데 우리는 그분에게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우리도 그분에게 인격적으로 대하고 존경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분을 사랑하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요?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우리를 그 나라로 초대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공생활을 시작하시면서 우리에게 첫 번째로 하신 말씀이 회개하라였습니다. 회개는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첫 번째 조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웃을 용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가진 것을 나누고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것들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그분의 제자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최근 언론에 생활고로 자살하는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얼마전 라디오 방송에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자살예방센터에서는 10명의 근무 인원이 2명씩 조를 구성해 12시간씩 일하면서 하루 최대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는다고 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매일 하루에 생활고로 자살하는 사람이 40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달이면 1200명입니다. 1년이면 1만 5000여 명입니다. 이렇게 많은 분이 자살합니다. 전쟁을 해도 이렇게 많은 사람이 죽지 않을 것입니다. 이 뉴스를 들으면서 우리가 얼마나 이웃을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했습니다. 예수님이 슬퍼하시지 않겠습니까? 나만 살려고 하니까 이웃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입니다.

 

 

이웃 사랑이 예수님 사랑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것은 이웃의 어려운 분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소외된 이웃의 모습 속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 평신도가 신앙적 이기주의에 빠져 자신만의 구원을 위해서 살아간다면, 그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는 삶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가짜 그리스도인, 거짓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형식만, 무늬만 그리스도인이면 안 됩니다.

 

하느님은 우리 평신도들을 사랑하십니다.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도 사랑하십니다. 나를 구원하시길 원하시지만, 동시에 세상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명도 세상 모든 이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나만 구원받고자 하는 신앙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복음화는 이처럼 평신도 개개인의 회개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19년 8월 11일,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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