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병자 치유와 교회의 구원 선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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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40

병자 치유와 교회의 구원 선포

 

 

1. 의사 - 기술자의 현대적 모습

 

의학 분야에서의 기술적 및 학문적 발전은 대단히 놀랍다. 의학은 여러가지 질병과 전염병의 대부분의 영역에서 그 직접적인 원인을 발견해 냈으며, 끊임없이 박테리아와 바이러스 등의 세균들과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의약품을 개발해 내고 있다. 외과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심장과 신장, 그리고 그밖의 장기 이식 등의 의료 기술들은 놀랄만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렇지만 이러한 놀라운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거의 항상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종합 병원들은 환자들에게 희망을 안겨 준다거나 환자들이 느끼고 있는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지 못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수 많은 환자들이 심장박동 장치에 의존하면서 간신히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도 한 현실이다.

 

어쨌든 이러한 발전은 항상 보다 명확한 한계를 거부하면서 여러 가지 논쟁을 야기시키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결과적으로는 재정적인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오늘날 종합병원들이 기술 설비를 위해 쓰고 있는 경비는 군사 목적으로 쓰이는 경비와 맞먹을 정도로 엄청나다는 것이다. 그 밖에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병원의 기술 설비 경비는 세계 인구 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다양한 의료 혜택을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좀 더 넓은 차원에서는 다른 수많은 환자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고, 또한 예방을 위한 의약품을 개발한다거나 위생 교육을 위해 씌여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의 값 비싼 의약품은 그 다양한 가치에 따라서, 선진국 국민의 약 10-20% 이상에게 이미 보급되어 있으며, 더 나아가서 그러한 의약품들은 이미 죽음이 선고된 사람들에게 죽음의 과정을 기술적으로 연장시키기 위하여 개인적으로, 불평등한 방법으로, 순전히 가능성 만이 고집되면서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또한 유전적인 영향이나 환경의 영향으로 인한 병을 가지고 있는 아기들에게 단순히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한 방법과도 같은 공평치 못한 방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 뒷 편에는 또한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은폐되어 있다. 대다수의 국민들에게 있어서 엄청난 기술이 요구되고 또한 경제적 부담을 안겨다 주는 의학적 치료는 한낱 그림의 떡이 되고 말았고, 성서적 개념에서 말하자면, 쫓겨가는 마귀와도 같다. 사람들은 "건강 공급"(health-delivery)에 대해서 말을 하고, 우리들은 사실 일종의 새로운 "사제직"과 마찬가지로 봉사를 위해 그 의미를 갖게 되는 의료기술과 의사들을 기대한다. 동시에 사람들은 건강에 대한 한 각자의 고유한 책임을 강조하고, 또한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인간 사회의 구조와 관계에서의 고유한 협동심을 요구한다. 또한 사람들은 생태학적 불균형이 수많은 사람들의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환경 문제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기도 한다.

 

위험한 질병들이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공공 의료 제도의 측면에서 개선을 바라고 요구하는 인류이면서도 사실상 외롭게 혼자서 자신을 돌보아야만 하는 병자들을 위해서는 일정한 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에,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너무나 너그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럭저럭 서구 사회는 인간 생활의 영역에서 지금까지 너그러운 태도로 보아왔던 산업화의 공해, 술과 담배, 그리고 음식의 무절제 등에 대해서, 그러한 것들이 실제로 인간의 건강한 삶을 해친다는 생각과 함께 많은 의식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군중은 자신들로 하여금 더욱 많이 소비하고, 심지어는 건강까지도 해치게 하는 일들을 기꺼이 하도록 유인하는 광고에 끊임없이 현혹되고 있다".

 

건강을 "건강 공급"에 의해 제공되는 일종의 상품처럼 생각하는 사람은 자주 자신의 건강조차 아주 무책임하게 소홀히 여긴다.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들의 약 절반 정도는 전혀 회복될 수 없는 질병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되었다. 정부의 통계도 마찬가지로 비슷한 비율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보고서의 의미는 일반 환자의 치료를 거절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그보다는 오히려 일반 환자들을 위하여 그러한 질병을 피할 수 있도록 어떻게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지, 또 어느 시간에 돕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지를 알아내어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과연 이러한 도움을 위해 공공 의료기관과 교회 중 어느 쪽이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미국 내에서 볼 수 있는 상황이 이미 다른 여러 산업 국가들 안에서도 급속히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무서운 상황이 바로 오늘날의 현실이다. 즉 미국 내의 경우 사망자의 약 60% 정도는 뇌일혈이나 암에 의한 심장마비가 그 원인이 되고 있다. 환자의 죽음에 있어서 주로 그 원인이 되고 있는 여러가지 면들을 놓고 볼 때, 그 원인들의 밑바닥에는 주로 정신적인 요인들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죽음의 원인들 중에서 가장 첫번째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심장병이며, 두 번째는 암이며, 세 번째는 뇌세포와 관련된 병이며, 일곱 번째는 간경화증이며, 열번 째는 자살이라고 한다. 인류가 이룩해 놓은 어마어마한 기술은 인간 삶의 분야에 끊임없이 파고 들어가면서 발전해 왔지만 그 결과로써 공기나 물, 음식물을 오염시켰을뿐 만 아니라, 인간 자신은 그 기술의 주인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자신이 이룩해 놓은 기술의 노예로 전락되어 버리고 말았다. 인간 삶의 분야에 끼친 피해는 사실상 엄청나며, 이 피해는 현재 뿐만 아니라 미래에까지도 깊숙히 연결되어 있다. "우리 인간이 자유롭게 선택했고 또 이룩해 놓은 삶의 형태가 바로 이러한 모습이며, 결국 이는 인간들이 겪고 있는 질병들 대부분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의학 기술의 유형은 일반적으로 환자의 전반적 상태 안에서 환자 자신을 소홀히 취급하는 것에서부터 육체의 병을 조금씩 조금씩 밝혀내는 것에 이르기까지 획일적인 방법을 적용한다.

 

정신분석학과 심층심리학은 심리적 요인(要因)을 매우 중요시하며, 정신 신체 의학(Psychosomatic Medicine)은 이에 대해 하나의 확실한 통합적 개념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결국 임상 심리학에서는 가치에 대한 자유로운 조언을 치료에 있어서 폭넓게 수용한다. 버긴(A. E. Bergin)은 심리 치료를 위한 기초적 저서를 30권이나 저술했으며, 그 저서들이 최소한 "하느님"과 "영적인 힘"을 부정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결론은 가치들을 지향하는 일종의 자유로운 치료 방법을 따르게 된다. 실제로 종교적 요인들을 무시하는 사람들은 온전히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지는 않고, 유신론적인 가치들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경험론적인 연구에 의하면 어떤 종교적 태도에 영향을 받고 있는 생활 형태는 건강에 대해서 놀랄만큼 커다란 관심을 보이고 있음이 증명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유타주에 거주하고 있는 몰몬교도들의 암 발생률은 유타주 주민의 암 발생률의 30%에 지나지 않고, 또한 워싱턴 D.C.와 메릴랜드 주에서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고 있는 사람들은 교회에 자주 나가지 않는 사람들보다 심장병에 걸리는 비율이 40%가 채 안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연구 결과에 동조하는 의사들은 현대의 발달된 기술적 의료 형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를 높인다. 곧 그러한 기술적 의료 형태의 뒤에는 인간의 인간으로서의 모습이 은폐되고 만다는 것이다. 인간은 영혼과 육신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합리주의적 이원론의 주장을 계속해서 여기에 적용해야만 하는가? 기술적 의료 형태를 따르면서 인간을 취급하는 것이 마치 기술자가 공장에서 어느 물건을 만드는 것과 같은 형태가 아닌가? 만일 그렇다면 과연 어느 누가에게 이러한 형태의 의료 방법을 적용하겠는가?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어떠한 조치를 취해야 하고 또 그러한 방법의 한계는 무엇인가? 또 환자에게 무엇이 소홀히 되고 있고, 그러한 방법에 있어서 환자에게 나쁜 점은 어떤 것인가?라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2. 치유 봉사를 위한 교회의 권한

 

인간의 건강에 끼친 교회의 기여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는 것은 아니지만 무의식적인 영역 안에서 상당히 큰 비중을 차지한다. 하느님과의 화해, 이웃과 자기 자신과의 화해에서부터 간접적으로 드러나는 하나의 결과로서, 그리고 책임감과 협동심에 대한 교회의 종합적인 교육의 결과로서 인간의 건강에 커다란 기여를 해 오고 있다는 사실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오늘날의 교회들은 그 고유한 소명으로서의 구원 사명에 부합하여, 그리고 오늘날의 시대적 요구에 따라 병자들을 위한 치유 사명을 실천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러한 요구들을 경청하고 또 근본적인 방법에서부터 실천하는 데에 항상 깨어있어야 한다.

 

그러나 특별히 몇 가지 유의할 점이 있다: 1) 젊은 세대들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지식은 병자들을 치유가 교회의 사명이라는 데에 거의 혹은 전혀 미치지 못하고 있다; 2) 가톨릭의 윤리 교과서들의 범위 내에서 혹은 그 밖의 특수 문제 안에서만 의학 윤리에 관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고 있고, 그러한 문제들은 실재하는 의료-기술적 형태의 내부에서 발생되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과 관련되고 있으며, 결국 인간의 모습은 그러한 형태를 통해서, 무의식적이기는 하지만 직접적으로 표현되어 버리고 만다. 선교학은 의료 선교사 제도를 통해서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고 따라서 특별히 의료 봉사를 강조하였다. 병자들에 대한 봉사, 좀 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병자들 중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봉사를 특별한 소명으로 삼고 있는 여러 선교회들로부터 이룩된 업적은 가히 놀랄만하다. 그렇지만 그러한 업적들이 구원의 선포 내면에서 요구하고 있는 인간의 건강에 대한 봉사이고, 또 구원과 병자들의 치유, 이 두 가지를 종합하는 일이라고 규정짓기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오늘날 이 시대의 징표를 감지 할 때, 또한 선교의 임무 안에서 구원의 선포를 위한 보다 나은 사명을 완수하고 또 이해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인류에게 비추신 빛 안에서 인간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한 봉사의 명확한 개념을 정립(定立)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교의 선교가 그들이 파견되어 있는 선교 지역의 주민들 중에서 일차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만나고, 뿐만 아니라 그들을 위한 보건 교육에 온 힘을 기울여 왔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는 없지만 많은 경우 선교사들의 희생적이고도 열정적인 활동은 병원과 의료활동에만 집중되어 왔던 것은 부인할 수 없다. 1910년 선교지역에서는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선교사들에 의해 운영되어온 약 4,000개의 진료소와 2,100개 이상의 병원이 있었으며, 같은 시기에 가톨릭 교회의 활동은 사실상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활동을 훨씬 능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선교회의 이러한 활동들은 현대의 의료-기술적인 형태를 따라가고 있었으며, 비록 그러한 형태를 피한다고 노력은 하였었지만 너무나 광범위한 분야에서 일방적으로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속수무책이었던 것이다. 의료를 위한 경비가 증가함으로써 병자들은 결국 치료 경비를 지불해야만 되었으며, 모든 설비가 잘 갖추어진 선교사들의 병원들의 대부분은 결국 대부분 가난한 사람들이나 빈민 지역 보다는 특권층의 사람들을 위한 봉사에 전념하게 되었다. 제임스 맥길브레이(James McGilvray)는 교회의 의료활동 중 95% 정도가 병원이나 진료소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쓰고 있다. 아마 이러한 실상이 가톨릭 교회의 선교의 현실과 전적으로 부합된다고는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더 중요시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예방의학과 위생교육이다. 이러한 반성은 다양한 분야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특별히 과거의 개인주의를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치유하는 공동체로서의 교회, 특히 지역교회 안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교회의 봉사로써 질병의 더 깊은 의미를 깨닫게된 것은 물론이고, 어떠한 것이 가장 확실한 의미에서의 인간적 건강인지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으며, 나아가서 치유될 수 있는 것은 치유하고, 또 치유될 수 없는 것은 수용한다는 깊은 의미 - 치유될 수 없는 것을 그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도 충만된 인간적 건강의 한 부분이기 때문에 - 를 깨달을 수 있게 되었다.

 

 

3. 전체성의 결핍

 

훌륭한 사색가들은 어느 시기부터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가장 부족한 것이 "총체적 정신"이라고 느껴왔다. 의학 분야에서뿐 만 아니라 예술의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핵심의 상실"을 애석해하고 있다. 현대의학의 위기 중에서 가장 심각한 원인이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의료-기술적 형태이며, 이러한 형태는 결국 그 본성상 인간을 그의 전체성으로부터 부분을 하나하나 따로 떼어내던가 기술적으로 분석하여 차등화하여 분류하는 우를 범하고 만다. "차등화는 현대화의 과정에서 드러나는 예리한 칼날이다. 이는 전통이 일치를 지향하는 것과는 반대로 인간을 잔인하게 갈라놓고 있다... 이는 또한 [전체성의 결핍]과 자신의 위기를 은폐하면서 전통과 권위가 있는 정체성과 연대성 안으로 억지로 끼어 든다".

 

인간 삶의 분야들 중에서 종교나 건강의 분야에서처럼 전체성에 대한 전망의 상실이 파국적인 결과를 낳게되는 분야는 없다. 건강을 뜻하는 영어의 [health]라는 단어는 '완전한', '거룩한'이라는 의미의 [whole]과 [holy]의 의미도 함께 갖고 있는 [hal]이라는 단어를 어원으로 갖는다. 어원학적으로 볼 때 독일어에서 '거룩한'의 의미를 갖고 있는 [heil], [heilig]도 같은 뿌리를 갖는다고 볼 수 있으며, 라틴어의 '건강'을 의미하는 단어인 [salus]는 이태리어로 [구원]을 의미하는 [salvezza]와 [건강]을 의미하는 [salute]로 변형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이 각각의 의미는 본질적으로 각각의 다른 측면의 의미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서로 완전하게 그 의미를 함께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의학은 단순히 의학이 가지고 있는 기능들을 확장함으로써 어떤 일을 하기 보다는 오히려 의학의 범위와 의학에서 다루고 있는 질병의 다양한 종류를 통해서 그 역할을 행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즉 외과는 우선적으로 인간의 육체적 기능에 대해서, 그 다음으로는 화학 분야에 치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될 것이고, 정신분석과 심리치료에 있어서는 무의식(無意識)이라든가 실재에 대한 인식 등과 같은 인간의 정신적 측면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사회의학과 의학의 사회학은 인간의 내면적 관계들을 사회 구조 안으로 끌어넣는 등의 인간의 사회적 범주를 강조하며, 병든 사람과 [병든 사회] 사이에서 보여지는 일종의 상호 관계를 발견해낸다. 자연적 학문들의 한 분야로서 이해되고 있는 의학은, '과학성'의 현대적 개념의 이해와 함께 분석해 볼 때, 사실상 인간의 종교적 범주를 무시하여 왔었다. 매우 경험이 풍부한 어떤 의사는 이에 대해 "종교적 범주는 무시될 수도 있지만, 그것이 꼭 의사나 환자의 편견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우리 시대에서 볼 수 있는 긍정적인 징표들 중의 하나는 의사들 세계의 내부에서도 전체성의 결핍에 대해서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현대 세계에서의 여러가지 측면들이 그들로 하여금 그러한 심각성을 느끼게 하였기 때문이다. 마티 박사(Martin E. Marty)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의학은 환자들로부터 요구되는 압력, 외부로부터 제기되는 비판, 그리고 의학과 간호 분야에서 전문가들의 활발한 연구와 반성 덕분에 더욱 더 광범위하고도 유익한 연구에 스스로를 개방시켜 놓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선교학을 포함하고 있는 신학의 분야도 이와 비슷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고, 따라서 의학과 신학의 공동 연구의 필요성이 요청되고, 구원의 학문들이 건강과 질병의 범주를 결코 제외시킬 수 없다는 점이 명백하게 드러난다. 신학자들은 항상 더욱 완전한 시각을 갖기 위해 공동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고, 그러기에 그러한 대화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어떠한 낙관주의도 금물이다. 연구를 세분화하고 연구에 있어서 각각의 몫을 할당하는 것은 환자의 완전하고도 인간적인 치료를 어렵게 한다. 알렉산더 밋쉘리히(Alexander Mitscherlich)에 의하면, 의사는 사실상 심리학적으로는 거의 아무 것도 모르고, 그렇지만 육체의 질병을 갖고 있는 환자들의 30-70%는 전적으로나 혹은 부분적으로 심리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신학적 및 사목적 접근도 이 점에 각별히 유의해야만 할 것이다.

 

 

4. 용기있는 시도

 

지난 20 여년 동안 특별히 교회 내부는 물론이고, 세계 보건기구(World Health Organization : WHO)에서는 인간을 위한 의료 봉사가 앞으로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종합적인 지침을 마련해 주고, 또한 총체적 인간으로서의 인간 개념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다양한 각도에서 깊이 있는 연구를 해 오면서 동시에 여러가지 시도가 있어 왔다. 의사들의 여러 그룹과 연구소에서도 그러한 과제에 대한 공동 연구라든가, 여러가지 복합적인 질문들과 관련되는 반성과 시도는 물론이고, 인간의 건강과 치유의 문제 안에서 제기되는 책임감이 갖는 보편적인 개념 자체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해 왔다고 말할 수 있다.

 

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러한 연구를 위해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온 몇 몇 연구소들에 대해 언급해야만 하는 의무감을 갖는다. 무엇보다도 독일 튜빙엔 (Tubingen)에 본부를 둔 {의료 선교를 위한 독일 연구소}(Deutsches Institut fur arztlich Mission)와, 튜빙엔의 연구소와 긴밀한 협조 관계를 가지면서 많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세계 교회 협의회}(W.C.C.)의 연구 단체들, 그리고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조지타운 대학교(Georgetown University)의 {케네디 생명 윤리 연구소}(Kennedy Institute for Bioethics)의 연구와 저서들은 이 분야에서 탁월한 노력을 해 왔음을 입증해 주는 좋은 예들이다. 또한 루터교 중앙 의료 재단(Lutheran General Medical Center Foundation)에서의 조언이나 여러 출판물들도 이러한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특별히 마티(M. E. Marty) 박사와 복스(K. L. Vaux) 박사가 감수한 Health/Medicine and the Faith Tradition. An Inquiry into Religion and Medicine, Fortress Press, Philadelphia 1982는 이 분야에서 매우 훌륭한 연구서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중병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치료와 종합적인 간호 방법들 중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은 영국에서 시작되어 아주 빠른 속도로 확산된 호스피스 운동 (Hospice Movement)을 꼽을 수 있다. 이 운동은 특별히 임종을 앞두고 있는 암 환자들에게 고전적인 치료 방법을 사용하고, 특히 환자 자신이 질병과 주위 환경 그리고 죽음과 화해할 수 있도록 도와 주면서 종합적인 방법으로 환자들을 도와주고자 노력한다. 이 분야에 대해 잘 소개하고 있는 책을 하나 추천하고자 한다면 다음의 책을 소개하고 싶다: Sandol Stoddard, The Hospice Movement: A Better Way of Caring for the Dying, New York, Stein & Day 1977. 또한 두 사람의 종양 전문의와 한 사람의 정신병리학자가 공동으로 집필한, O.C.Simonton - ST.Mattews Simonton - J.Creighton, Wieder gesund voerden. Eine Anleitung zur Aktivierung der Selbstheilungskrafte fur Krebskranke und ihre Angehorigen, Reinbeck, Rhowolt 1982은 회복 불가능으로 이미 선고된 암 환자를 위한 종합적인 간호 방법과 치유에 대해서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 책은 1978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Being well again 이라는 제목으로 가장 먼저 출판 되었었으며, 이미 대부분의 중요 언어로 번역 출간되어 수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베른하르트 헤링 저, 이동익 역)

 

[가톨릭 신학과 사상, 제16호(1996년 여름,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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