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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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안락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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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32

안락사에 대하여

 

 

며칠 전 어느 일간 신문에서 미연방항소법원이 미국 헌법이 '죽을 권리'를 보호하고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보도를 접하였다. 곧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임박한 환자가 원치 않는 치료를 거부할 수 있도록 허락한 1990년의 미연방법원의 판례에 근거해서 정신 상태가 양호간 육체적 말기 환자는 의사가 처방해준 약을 사용해서 자신의 죽음을 앞당길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보도에 실상 많은 사람들이 말기 환자의 고통을 단축시켜 인간 존엄성에 부합되는 것처럼 보이는 '편안한 죽음 (안락사)'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지 않을까 심히 염려스럽다.

 

인간이 지니는 가치와 권리 중에서 가장 으뜸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에 입각한 생명의 권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온갖 종류의 살인,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을 거역하는 행위들을 단죄했다 (사목헌장 27항). 그렇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인간 생명의 근본 가치마저도 의문시되고, 고통과 죽음을 보는 눈도 달라지면서 사람들은 죽음의 의미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하지 않는다. 죽는다는 것은 육체적 생존의 끝이며, 따라서 인간으로서의 모든 가능성을 잃어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세상과 하직하고 가족 친지들과 영원히 이별하고, 온갖 것을 다 잃어버리는 상실의 공포가 엄습하면서 지금까지의 삶이 마치 허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죽음이기도 하다. 고통 중에 있는 말기 환자의 경우 이러한 죽음을 생각하는 정신적 고통은 육체의 고통보다도 더 클 것이며 결국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만이 유일하게 그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며, 그 방법만이 가장 인간다운 죽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문제는 인간적 죽음이 무엇이냐?하는 문제이다. 죽음이란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전혀 피할 수 없는 사건이다. 인간은 반드시 죽어야만 하고 따라서 이러한 피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죽음으로 운명지워진 모든 인간은 같은 조건에 처해 있다.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사실 앞에서 인간은 인격적 존재로서 불리움을 받았으며, 또한 양심을 가지고, 자유롭게, 책임감을 가지고 인간됨을 실현하면서, 자기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기 위한 존재로 불리움을 받은 존재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적 죽음이란 인간 존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도 거절할 수 없는 요소이며, 또한 생명 전체를 요약하는 것이고, 나아가 완전하게 되는 순간으로서 평화로움과 용기를 가지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은 책임감있는 자유와 의식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야 하며, 나아가 각자의 고유한 삶을 통해서 받아들여져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죽음이란 인간적이고 그리스도적 존엄성을 지니는 죽음이어야 한다.

 

사실, 그리스도 신자들은 자신들의 삶을 통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신비에 참여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기 환자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그들이 참된 인간적 죽음을 맞을 수 있도록 보살펴주는 일이며, 그 한 방법으로 환자의 극심한 고통을 완화시켜주기 위해 의사의 처방에 따라 진통제를 투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기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생명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생명을 포기한다는 것은 우리가 아닌 하느님께서 설정하신 목적을 지향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류는 자신의 생명을 유용하게 만들도록 불리움을 받았기 때문에 마음대로 생명을 파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가지 유의할 것은 환자의 조건으로보아 이미 필요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특정한 의료 행위들을 그만두기로 하는 결정은 위에서 말한 생명의 포기라든가 안락사와는 구분해야 하며, 이것은 환자로 하여금 죽도록 내버려두는 결정이 아니라 의료집착적 행위를 거부하는 것으로 정당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로의 다음 말씀은 우리에게 매우 큰 감동을 안겨준다: "사실 우리 중에 아무도 자신만을 위해서 사는 이도 없고 또 자신만을 위해서 죽는 이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며, 죽어도 주님을 위해서 죽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거나 죽거나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7-8)

 

[이동익 신부 / 이동익 신부님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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