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윤리] 가정과 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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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2 ㅣ No.227

가정과 혼인

 

 

1. 회칙 "CASTI CONNUBII"

 

1) 그리스도인 혼인의 본질과 존엄

 

혼인의 제정과 복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불변 불가침의 근본 교리로서 다시 강조합니다. 이 규범은, 인간이 아니라 세상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세상을 구원하신 우리 주님 그리스도께서 혼인을 강화하고 확인하고 증진시키시기 위하여 만드신 것이므로, 다른 인간의 법에 종속될 수 없으며 배우자 끼리의 약속이라 하더라도 이에 반대되는 약속들에 종속될 수 없습니다. 이는 성서의 교리이며, 보편 교회의 불변의 전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혼인의 거룩한 협력 관계는 하느님의 뜻과 또한 인간의 뜻으로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혼인을 제정하시고 제정의 목적, 혼인을 다스리는 규범, 혼인의 축복들을 세우시며, 인간은 하느님의 도우심과 협력으로 일생 동안 상대방에게 자신을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개별 혼인의 주인이 되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혼인의 의무와 축복들을 지니게 됩니다. 

 

2) 혼인의 축복과 유익들

 

하느님께서 참된 혼인에 어떤 축복들을 주시며, 또 이들이 얼마나 큰 축복들인지를 설명하려 하면, 최근 그의 서거 1,500주년을 맞아 제가 회칙 Ad Salutem에서 칭송하였던 교회의 뛰어난 박사인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이 떠오릅니다. "자녀, 부부의 신의, 성사, 이 모든 것이 혼인의 축복들이므로 혼인 자체가 하나의 축복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세 가지 축복 아래 그리스도인 혼인의 모든 교리가 얼마나 훌륭하게 요약되어 있는지 분명하게 선언합니다. "부부의 신의라는 축복으로써 혼외 정사는 있을 수 없음이 규정되며, 자녀와 관련해서는 사랑으로 자녀를 출산하고 자상하게 보살피며 종교적 환경에서 교육시켜야 하며, 혼인의 성사적 측면 때문에 혼인의 유대는 깰 수 없으며 헤어진 남편이나 아내는 자녀를 위해서라도 다른 사람과 다시 결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를 혼인의 규범으로 여기며 이로써 자연의 충만함은 더욱 돋보이고 무절제의 악은 억제됩니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지상에 인류를 퍼뜨리고 보존할 의무만 지고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부모들은 참된 하느님의 숭배자들을 교육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교회의 구성원이 될 자녀들을 교육하고 성인들의 동료이며 하느님 가정의 구성원을 양육하여, 하느님과 우리 구세주의 숭배자가 날마다 늘어날 수 있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 배우자들은 자신이 성화된다고 하여도 자손에게 성덕을 전달해 줄 수 없으며, 생명을 낳는 자연스러운 행위 자체가, 원죄가 후대에 전달되는 죽음의 길이 되기는 하였지만, 동산에서의 첫 혼인이 지녔던 축복들을 어느 정도는 나누어 가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자녀의 가장 충만한 어머니인 교회 덕분에 세례의 씻김을 통하여 영적인 정의로 다시 태어나고, 마침내 그리스도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한 생명의 참여자가 되고 우리 모두 마음속 깊이 바라는 영원한 영광의 상속자가 될 수 있도록 자녀들을 교회에 바치는 것은 그리스도인 부모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자녀 교육과 부모의 의무

 

그러나 자손의 축복은 단순히 자녀를 낳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적절한 자녀 교육이 뒤따라야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자녀를 낳을 능력과 권리를 주신 사람들에게 자녀들을 가르칠 능력과 권리 또한 주셔서, 태어난 자녀들과 모든 인류를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해 두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어린이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는 물론 영적인 문제들과 관련하여 스스로를 완전하게 보살필 수 없으며, 오랫동안 다른 사람의 도움과 지도와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자연법인 신법에 따라, 자녀를 교육할 권리와 의무는 우선 자녀를 출산함으로써 이러한 자연의 활동을 시작한 사람들에게 있으므로, 그들은 이 임무를 중간에 내팽개쳐서 망쳐서는 안 됩니다. 혼인에서는 부모들이 해소할 수 없는 유대로 함께 하면서 언제나 보살피고 서로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이처럼 중요한 자녀 교육이 가장 적절하게 이루어집니다.

 

부부의 충실성

 

아우구스티노 성인이 말한 혼인의 두 번째 축복은 혼인 계약을 충실히 이행함으로써 비롯하는 배우자의 상호 충실성에 바탕을 둔 부부의 정절입니다. 하느님 법으로 인정받은 이 계약에 따라 배우자가 갖게 되는 모든 의무와 권리는 부부에게서 빼앗을 수 없으며 어느 제삼자에게 허락될 수도 없습니다. 또한 하느님 법과 권리에 반대되며 혼인의 충실성에 전적으로 위배되어 절대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은 무엇이든 어느 쪽 배우자에게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출처 : 교황 비오 11세, "Casti Connubii"(1930.12.31.), The Human Body, Papal Teachings, 5.7-12면.]

 

 

2. "사목 헌장"

 

혼인과 가정의 존엄성

 

현대 세계의 혼인과 가정

 

47. 개인의 행복, 일반 사회와 그리스도교 사회의 안녕은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의 행복한 상태에 직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 공동체를 중시하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오늘 이 사랑의 공동체를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며 부부와 부모가 그 숭고한 임무를 다하도록 도와주는 여러 가지 도움을 진지하게 반길 뿐 아니라 거기에서 더 좋은 혜택을 기대하며 이를 증진하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이 제도의 존엄성이 어디에서나 똑같은 밝기로 드러나지는 못하고 있다. 중혼, 이혼의 만연, 이른바 자유 연애 또는 다른 기형으로 그늘이 졌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부부 사랑은 흔히 이기주의, 향락주의, 부당한 출산 거부로 더럽혀지고 있다. 더욱이 현대의 경제, 사회 심리, 정치 등의 생활 조건이 가정에 가볍지 않은 혼란을 미치고 있다. 끝으로, 세계의 일부 지역에서는 인구 증가로 생기는 문제들을 염려하고 있다. 이 모든 문제로 양심이 고뇌하고 있다. 그러나 혼인과 가정 제도의 가치와 힘은 현대 사회의 급격한 변화 자체가 거기에서 생기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흔히 더 자주 여러 모양으로 이 제도의 진정한 특성을 드러내 준다는 데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공의회는 교회 가르침의 몇 가지 요체를 명확하게 밝혀 혼인 생활의 천부적 존엄성과 그 탁월하고 신성한 가치를 수호하며 증진하려고 노력하는 그리스도인들과 모든 사람을 비추어 주고 격려하고자 한다. 

 

혼인과 가정의 거룩함 

 

48.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는 인격적인 합의로 맺은 결코 철회할 수 없는 계약으로 세워진다. 이렇게 부부가 자기 자신을 서로 주고받는 인간 행위로,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견고한 제도가 사회 앞에 나타난다. 부부와 자녀와 사회의 행복을 지향하는 이 신성한 유대는 인간의 임의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바로 여러 가지 선과 목적을 지닌 혼인의 제정자이시다. 그 모든 것은 인류 존속, 가족 개인의 인격 향상과 영원한 운명, 가정 자체와 온 인류 사회의 존엄성과 안정성, 평화와 번영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혼인 제도 자체와 부부 사랑은 그 본질적 특성으로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하며, 그로써 마치 절정에 이르러 월계관을 쓰는 것과 같다. 따라서 혼인 계약으로 "둘이 아니라 한 몸"(마태 19,6)이 된 남자와 여자는 인격과 행위의 내밀한 결합으로 서로 도와주고 서로 봉사하며, 또한 자신들이 이룬 일치의 의미를 체험하고 날로 더욱 충만하게 한다. 이 깊은 결합은 두 인격의 상호 증여로서, 자녀의 행복과 더불어 부부의 완전한 신의를 요구하며, 그들의 풀릴 수 없는 일치를 촉구한다.

 

주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신적 원천에서 솟아나고 당신과 교회의 일치를 그 모범으로 세우신 이 다각적인 사랑에 풍성한 복을 내려 주셨다. 일찍이 하느님께서 사랑과 신의의 계약으로 당신 백성을 만나러 오셨듯이, 이제 인간의 구원자이신 교회의 신랑께서 혼인성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를 만나러 오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부터 그들과 함께 머무르시며, 당신 친히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그렇게 부부도 서로 자신을 내어 주며 영원한 신의로 서로 사랑하도록 도와주신다. 진정한 부부애는 하느님의 사랑 안으로 받아들여져 그리스도의 구속 능력과 교회의 구원 활동으로 다스려지고 풍요로워진다. 그리하여 부부는 효과적으로 하느님께 인도되고 부모의 숭고한 임무 수행에서 도움과 힘을 얻는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 부부는 그 신분의 의무와 존엄성을 위하여 특수한 성사로 견고하게 되고, 이를테면 축성된다. 이 성사의 힘으로 혼인과 가정의 임무를 수행하며, 온 삶을 믿음과 바람과 사랑으로 채워 주는 그리스도 정신에 젖어들어, 날로 더욱 자기 완성과 상호 성화를 위하여, 또 그럼으로써 다 같이 영광을 위하여 나아간다. 

 

그러므로 부모들 자신이 솔선수범하고 가정 기도를 바치면 자녀들은 물론 집 안에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이 인격 완성과 구원과 성화의 길을 더욱 쉽게 찾을 것이다. 또한 부성과 모성의 존엄과 임무를 지닌 부부는 자녀 교육, 특히 종교 교육의 의무를 열심히 수행할 것이다. 교육은 그 누구보다도 먼저 부모의 의무이다. 

 

자녀들은 가정의 살아 있는 지체로서 그들 나름으로 부모의 성화에 이바지한다. 자녀들은 감사하는 마음의 애정과 효성과 신뢰로써 부모의 은혜에 보답하고, 부모를 역경과 노년의 고독에서 자녀의 도리로 봉양할 것이다. 혼인 성소의 지속성 안에서 굳센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독신 생활은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을 것이다. 

 

가정은 자신의 영적 보화를 또한 다른 가정들과 더불어 아낌없이 나눌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의 계약에 대한 표상이며 참여인 혼인에서 생겨나므로, 부부 사랑과 많은 자녀 출산과 일치와 신의로 또 모든 가족의 사랑과 협력으로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생생한 현존과 교회의 진정한 본질을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 주어야 한다. 

 

부부 사랑 

 

49. 하느님의 말씀은 약혼자들과 부부들에게, 순결한 사랑으로 약혼기를, 갈림 없는 사랑으로 부부 생활을 보호하고 증진할 것을 거듭거듭 권고한다. 많은 현대인들도 민족과 시대의 훌륭한 관습에 따라 여러 가지 모양으로 표현된 부부의 참된 사랑을 높이 평가한다. 그리고 이 사랑은 가장 인간적인 사랑으로서 자발적인 감정으로 한 인간이 다른 인간을 지향하기 때문에 인간 전체의 행복을 다 포괄한다. 따라서 이 사랑은 몸과 마음의 표현을 특수한 품위로 풍요롭게 하고 또한 이 표현들을 부부 애정의 특수한 요소와 표시로 삼아 고귀하게 할 수 있다. 이 사랑을 주님께서는 특별한 은총과 사랑의 선물로 고쳐 주시고 채워 주시고 높여 주시기에 마땅하다고 여기셨다. 인간적인 사랑과 신적인 사랑을 결합시키는 이러한 사랑은 부부가 자유로이 서로 자기 자신을 내어 주고 이를 다정한 마음과 행동으로 드러내도록 이끌어 주며, 부부의 온 삶에 스며든다. 나아가서 이 사랑은 그 너그러운 실천으로 자라나고 완전해진다. 그러므로 이 사랑은 이기적으로 추구되고 가련하게 쉬이 꺼져 버리는 단순한 성애의 경향을 훨씬 초월한다. 

 

이 사랑은 혼인의 고유한 행위로 독특하게 표현되고 완성된다. 따라서 부부가 친밀하고 정결하게 서로 결합하는 행위는 아름답고 품위 있는 행위이다. 참으로 인간다운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그러한 행위는 상호 증여를 뜻하고 서로 북돋우며, 기쁘고 고마운 마음으로 서로 가멸지게 한다. 상호 신의로 보장되고 특히 그리스도의 성사로 거룩하게 된 이 사랑은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몸과 마음이 갈릴 수 없도록 충실한 것이며, 따라서 온갖 간음이나 이혼을 전혀 모르는 것이다. 또한 서로 완전한 사랑 안에서 인정되는 아내와 남편의 평등한 인격적 존엄으로, 주님께서 확고히 세우신 혼인의 단일성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소명의 의무를 항구히 수행하려면 뛰어난 덕행이 요구된다. 그러므로 부부는 거룩한 생활을 북돋워 주는 은총의 힘으로 확고한 사랑과 너그러운 마음과 희생 정신을 끊임없이 닦고 또 기도로 간구할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인 부부가 그들 사랑의 신의와 화합을 증언하고 자녀 교육에 뛰어난 열성을 보이며 혼인과 가정을 위하여 필요한 문화적, 심리적, 사회적 쇄신에 참여한다면, 진정한 부부 사랑은 더 높이 평가될 것이며 그에 대한 건전한 여론도 형성될 것이다. 젊은이들이 정결을 닦고 적절한 시기에 정숙한 약혼기를 거쳐 혼인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부부 사랑의 존엄성과 그 임무와 행위에 대하여 특히 가정의 품 안에서 제때에 알맞은 교육을 받아야 한다. 

 

혼인의 풍성한 열매 

 

50. 혼인과 부부 사랑은 그 본질상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자녀들은 참으로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이며, 부모의 행복에 크게 이바지한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다."(창세 2,18) 하시고 "처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신"(마태 19,4) 하느님께서 친히 당신의 창조 활동에 인간을 특별히 참여시키고자 원하시어, 남자와 여자에게 복을 내려 주시며 말씀하셨다. "자식을 낳고 번성하여라"(창세 1,28). 그러므로 진정한 부부 사랑의 실천과 거기에서 나오는 가정 생활의 전체 구조는, 혼인의 다른 목적들을 뒤로 제쳐 두지 않고, 부부가 그들을 통하여 당신 가족을 날로 자라게 하시고 풍요롭게 하시는 창조주와 구세주의 사랑에 굳센 마음으로 협력하는 자세를 갖추도록 한다. 

 

인간 생명을 전달하고 교육하는 의무는 부부의 고유한 사명으로 여겨야 한다. 부부는 이 의무에서 자기들이 창조주 하느님의 사랑의 협력자이며 또한 그 사랑의 해석자라는 것을 안다. 따라서 인간으로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책임지고 자신의 임무를 다할 것이며, 하느님을 공경하고 따르며 함께 의논하고 노력하여 바른 판단을 내릴 것이다. 자기 자신들의 행복과 아울러 이미 태어났거나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의 행복을 위하여 힘쓰며, 시대와 생활 신분의 물질적 정신적 조건을 알아내고, 마침내 가정 공동체와 현세 사회와 교회 자체의 선익에 이바지하도록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이 판단은 부부 자신이 궁극적으로 하느님 앞에서 내려야 한다. 그리고 행동 방식에서 그리스도인 부부는 자기 멋대로 할 수 없으며, 하느님의 법을 지키는 바로 그 양심을 언제나 따라야 하고, 그 법을 복음의 빛으로 참되게 해석하여 주는 교도권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느님의 법은 부부 사랑의 완전한 의미를 밝혀 주고 보호하며 참으로 인간다운 완성으로 이끌어 준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인 부부는 하느님 섭리에 신뢰하고 희생 정신을 배양하며 인간으로서 또 그리스도인으로서 적극적인 책임감으로 출산의 임무를 이행할 때에 창조주께 영광을 드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덕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맡기신 임무를 다하는 부부들 가운데에서 지혜로운 공동 결정으로 더 많은 자녀들을 넓은 마음으로 받아들여 알맞게 교육하는 부부들을 특별히 상기하여야 한다. 

 

그러나 혼인은 출산만을 위하여 세워진 것이 아니다. 두 인격이 맺은 풀릴 수 없는 계약의 성격 자체와 자녀의 행복은 부부의 상호 사랑이 올바르게 표현되고 또 진보하고 성숙하도록 요구한다. 그러므로 가끔 간절히 바라는 자녀가 없더라도 혼인은 온 생애의 공동 생활과 친교로서 지속되며 그 가치와 불가해소성도 보존된다. 

 

부부 사랑과 인간 생명의 존중 

 

51. 부부 생활을 조화롭게 영위하고자 하면서도 부부들이 가끔 어떠한 현대적 생활 조건에 묶여, 적어도 당분간은 자녀 수를 증가시킬 수 없고 충실한 사랑의 배양도 충만한 공동 생활도 수월하게 유지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을 공의회는 알고 있다. 친밀한 부부 생활이 중단되면, 흔히 신의도 깨지기 쉽고 자녀의 행복도 허물어질 수 있다. 그러면 자녀 교육도, 자녀를 더 받아들이려는 용기도 흔들리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부당한 해결책을 감히 제시하고 더구나 살인도 마다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교회는 생명 전달에 관한 하느님의 법과 진정한 부부 사랑을 보장하는 하느님의 법 사이에 실제로 모순이 있을 수 없음을 거듭 일깨운다. 

 

사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는 생명 보존이라는 숭고한 직무를 인간에게 맡기시어 인간 품위에 알맞은 방법으로 이 직무를 수행하도록 하셨다. 그러므로 생명은 임신[受精] 순간부터 최대의 배려로 보호받아야 한다. 낙태와 유아 살해는 흉악한 죄악이다. 인간의 성적 본성과 생식 기능은 하등 생물보다 놀라우리만큼 탁월하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 존엄에 따라 이루어지는 부부 생활의 고유한 행위 자체는 커다란 경의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과 생명 전달의 책임을 조화시키는 행동 방식의 도덕성은 순수한 의향이나 동기 평가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 도덕성은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의 본질에서 이끌어 낸 객관적 기준, 곧 참 사랑이라는 맥락 안에서 상호 증여와 인간 출산의 온전한 의미를 보전하는 그러한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부부가 순수한 마음으로 정덕을 닦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이 원칙을 지켜야 할 교회의 자녀들은 산아 조절에서 하느님의 법을 해석하는 교도권이 배척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안 된다. 더 깊은 다른 연구가 필요한 어떤 문제들은 교황의 명령으로 인구, 가정, 출산 연구 위원회에 맡겼으며, 위원회가 그 임무를 완수한 다음에 교황이 판단을 내릴 것이다. 교도권의 가르침이 이러하므로, 거룩한 공의회는 구체적인 해결책을 즉각 제시할 의도는 없다. 

 

인간의 생명과 그 전달 임무는 현세에만 국한되고 또 현세에서만 측량되고 이해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인간의 영원한 운명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분명히 알아야 하겠다. 

 

혼인과 가정의 행복을 도모하여야 할 만인의 의무 

 

52. 가정은 더욱 풍요로운 인간성을 기르는 한 학교다. 충만한 가정 생활을 이루고 그 사명을 다할 수 있으려면 다정한 마음의 친교와 부부의 화합 그리고 자녀 교육에 대한 부모의 성실한 협력이 요구된다. 아버지의 적극적인 참여가 자녀 교육에 대단히 유익하다. 그러나 특히 어린 자녀들은 집안에서 어머니가 보살펴야 한다. 여성의 정당한 사회 진출이 경시되지 않으면서도, 어머니의 보호는 보장되어야 한다. 자녀들이 성년으로 자라 완전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성소를 따르거나 생활 신분을 선택할 수 있도록 교육하여야 한다. 혼인할 때에는 도덕적, 사회적, 경제적으로 행복한 상황에서 자기 가정을 이룰 수 있게 하여야 한다. 젊은이들이 가정을 이룩할 때에 그들이 기꺼이 들을 수 있는 현명한 조언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주는 것은 부모와 보호자들의 의무이다. 그러나 혼인이나 배우자 선택에서 직접 또는 간접으로 강박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한다. 

 

이와 같이 가정은 여러 세대가 모여 서로 도와주며, 더 충만한 지혜를 얻고 개인의 권리를 사회 생활의 다른 요구와 조화시키는 곳이므로, 가정은 사회의 기초를 이룬다. 그러므로 공동체와 사회 단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든 사람은 혼인과 가정의 증진을 위하여 효과적으로 이바지하여야 한다. 국가 권력은 혼인과 가정의 진정한 특성을 인정하고 보호하고 향상시키며 공중 도덕을 수호하고 가정의 번영에 이바지하는 것을 자신의 신성한 임무로 여겨야 한다. 자녀를 낳고 가정의 품안에서 교육하는 부모의 권리는 보장되어야 한다. 불행히도 가정의 행복을 잃은 어린이들은 주도면밀한 입법과 다양한 사업으로 보호하고 적절한 도움으로 불행을 덜어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주어진 기회를 살려 변화하는 유형한 것에서 영원한 것을 분별하여, 자기 생활의 증언으로 또 선의의 모든 사람과 협력하여 혼인과 가정의 가치를 열심히 증진하여야 하며, 이렇게 어려움을 이겨 내고 새 시대에 알맞은 편의와 필요한 도움을 가정에 제공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한 목적을 이루는 데에는 신자들의 그리스도교 감각과 사람들의 올바른 도덕 의식과 거룩한 학문에 조예가 깊은 이들의 지혜와 경험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여러 학문, 특히 생물학, 의학, 사회학, 심리학 등의 전문가들이 공동 연구로써 인간의 정당한 출산 조절의 다양한 조건을 도와주고 더 완전히 밝혀 내도록 노력한다면, 혼인과 가정의 행복에 또 양심의 평화에 크게 이바지할 수 있다. 

 

가정 일에 대한 적절한 지식을 갖추고, 부부들이 부부 생활과 가정 생활에서 그 소명을 다하도록 하느님 말씀의 선포, 전례와 예배, 다른 영적인 도움 등 여러 가지 사목 수단으로 도와주고, 어려움을 겪는 부부들을 친절과 인내로 격려하며 참으로 빛나는 가정이 이루어지도록 사랑으로 그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는 것이 사제들의 임무이다. 

 

여러 단체, 특히 가정 단체들은 젊은이들과 부부들, 주로 신혼 부부들을 이론과 행동으로 격려하며 그들에게 가정 생활, 사회 생활, 사도직 생활을 가르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 

 

끝으로, 부부 자신도 살아 계시는 하느님의 모습이 되고 인간의 참된 질서 안에 세워져, 같은 마음과 같은 생각과 거룩함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기 소명의 기쁨과 희생 안에서, 자신들의 충실한 사랑을 통하여, 주님께서 당신의 죽음과 부활로 세상에 보여 주신 저 사랑의 신비의 증인이 되어야 한다.

 

[출처 : "사목 헌장"(1965.12.7.), Vatican Council II, 제2권, 949-957면.]

 

 

3.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혼인과 가정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

 

11. 하느님은 인간을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셨으며, 인간을 사랑하셨기에 존재로 부르시고 인간에게 사랑의 소명을 주셨다.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자신 안에서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일치의 신비를 살고 계신다. 인류를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시고 계속 존재하도록 하심으로써, 하느님은 남자와 여자의 인간성 안에 사랑과 일치의 소명, 능력, 책임을 부여하셨다. 그러므로 사랑은 모든 인간의 기본 소명이고 타고난 소명이다. ……그리스도적 계시는 인간이 사랑의 소명을 실현하는 두 가지 구체적 방법, 곧 결혼과 동정 또는 독신을 인정한다. 둘 중의 어느 것이나 적절한 형태를 유지하는 한, 인간의 가장 심오한 진리의 실현이고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 존재의 실현이다. 

 

그 결과, 남자와 여자가 부부에게만 국한된 정당한 행동을 통하여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성(性)은, 결코 순전히 생물학적인 것만은 아니고 인간의 가장 깊은 존재와 관련된다. 성(性)은 남자와 여자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사랑의 일부일 경우에만 진정으로 인간적이다. 만약 현세적 차원을 포함해서 전인간이 걸려 있는 완전한 자기 증여의 징표와 결실이 아니라면, 만약 인간이 완전히 바쳐지지 않는 행동을 통해서 어떤 것을 보류하거나 미래에 달리 결정할 가능성을 유보하는 경우라면, 온몸을 내어준다는 것은 한갖 거짓에 불과하다. 

 

부부애가 요구하는 이 전체성은 또한 책임 있는 출산의 요청과도 부합한다. 출산은 한 인간의 생산을 지향하기 때문에 그 본성상 순수한 생물학적 질서를 초월하며 일련의 인간 가치와 관련된다. 이런 가치가 조화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끈기 있고 일치된 기여가 필요하다.

 

모든 진실을 담아 자신을 주는 행위가 가능한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애의 계약인 결혼뿐이다. 결혼을 통해서 남자와 여자는 하느님 친히 의도하신 생명과 사랑의 친밀한 공동체를 받아들인다. 이렇게 조명해 볼 때 혼인의 참된 의미가 나타난다. 혼인 제도는 사회와 권위의 부당한 간섭이 아니고 형식을 외부에서 부과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계획대로 아주 충실하게 살기 위해서 특유하고 배타적인 것으로 공인된 부부애의 계약이 본질적으로 요구하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가 이 충실성 때문에 제한되기보다는 오히려 온갖 형태의 주관주의나 상대주의에서 보호되어 창조적 예지에 대한 참여자가 된다. ...... 

 

14. 하느님의 계획에 따르면, 혼인은 가정이라는 더욱 넓은 공동체의 기초이다. 혼인 제도와 부부애는 그 절정이라고 보여지는 자녀의 출산과 교육을 지향한다. 

 

가장 심오한 의미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하나의 선물이다. 그리고 부부애는 '한 몸'이 되게 하는 상호 '인식'으로 부부를 이끌어 가지만 부부에게서 끝나지 않는다. 부부애는 그들에게 가장 위대한 선물을 갖게 하며, 부부는 새로운 인간에게 생명을 전달하기 때문에 하느님의 협력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부부는 서로에게 자신을 주면서도 자신들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자녀도 주는 것이다. 자녀들은 부부애의 살아 있는 표상이고 부부 일치의 영원한 징표이며,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그들 존재의 생생하고 불가분한 종합이다. 

 

부부는 부모가 되면서 하느님께 새로운 책임의 은혜를 받는다. 부모의 사랑은 자녀들에게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보이는 징표가 되어야 하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가족의 이름이' 하느님에게서 나온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출산이 불가능한 경우에라도, 그 이유 때문에 부부 생활이 가치를 상실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육체적 불임은 사실 부부에게는 인간의 생명을 위한 다른 중요한 봉사의 기회, 예를 들면 양자, 각종의 교육 활동, 다른 가정, 가난한 자나 불구 아이들에 대한 봉사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출처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공동체"(1981.11.22.), Vatican Council II, 제2권, 822-826면.]

 

 

정리

 

인간이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기초적인 공동체는 '가정'이다. 따라서 가정은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데 필요한 여러 조직 중에서 가장 기본적인 조직이자 근본 세포인 것이다. 이 근본 세포인 가정에서부터 다른 모든 세포가 출발되고 조직될 수 있다. 한마디로 가정은 모든 인간 관계의 출발점이자 수렴점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리스도교적 가정은 그 기원을 신적인 차원에 두고 있으며, 가정은 모든 인간 관계와 활동의 출발점이자 중심점이며, 사랑과 생명이 충만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또한 하나의 제도로서의 가정은 사적인 것에서부터 공적인 것에 이르기까지, 개인적인 일에서부터 사회적인 일에 이르기까지 여러 가지 많은 면들이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요한 바오로 2세의 교황 권고인 [가정 공동체]에서 정의하는 것처럼 '가정 교회', 곧 '하나의 작은 교회'인 가정은 가장 기초적인 단위 공동체로서 모든 사회 생활 영역의 구성 세포이다. 

 

가정은 혼인으로부터 출현한다. 아울러 혼인은 가정에 의해 출현하고 가정 안에서 성숙되고 성장한다. 혼인에 비해 가정은 더 포괄적이고 더 깊고 넓은 삶의 공동체이다. 이러한 가정은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전인적인 발전을 지향하면서 이루는 삶의 공동체로서 혈연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따라서 전면적인 인간 관계를 가지지만, 이해 관계에 얽히거나 공동 관심사나 서로간의 이득을 위해 발생되는 여타 집단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공동체이다. 

 

모든 혼인이 종교적 성격, 거룩함의 특성을 가지듯이 특히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자연의 의무, 곧 자연법상의 제도일 뿐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성사(聖事)'이다. 곧 그리스도인들의 자연적 혼인은 그 자체로 성사(聖事)가 된다. 따라서 혼인은 부부가 서로를 주고받는 결코 철회할 수 없는 인격적 상호 동의로써 성립되며, 부부 생활과 부부 사랑의 전체적이고 영구적인 공동체이다. 이러한 유대로써 이루어지는 혼인과 가정은 부부간의 사랑과 신뢰로써 유지되고 발전되고 완성으로 나아간다. 다시 말해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은 가정이 성립할 수 있게 하는 전제 조건이 되며 동시에 결혼과 가정을 성장, 성숙시켜주는 원초적인 힘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부부간의 신뢰와 사랑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더욱더 순수하고 성스럽고 완전하게 된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성체성사를 통해서 드러난다. 따라서 성체성사는 그리스도인들의 혼인과 가정의 원천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혼인은 바로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며, 가정 생활 또한 서로가 서로에게 나누어 주는 사랑을 통해 성체성사의 삶을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거룩한 혼인, 성화된 가정, 가정 교회는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희생하셨듯이 부부도 서로를 위해 일생을 다 바치는 성체성사의 삶, 곧 참된 부부 사랑으로 이룰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다.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 인간에게 사랑이 계시되지 않을 때, 인간이 사랑을 만나지 못할 때, 사랑을 체험하고 자기 것으로 삼지 못할 때, 사랑에 깊이 참여하지 못할 때, 인간은 자기에게도 불가해한 존재로 남게 되며, 그의 생은 무의미하다. 

 

사랑에 의해 세워지고 생명을 받는 가정은 인간들의, 곧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친척들의 공동체이다. 가정의 첫째 임무는 진정한 인간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계속적 노력을 쏟으면서 일치의 현실을 충실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 임무의 내적 원리, 영원한 원동력, 최종적 목표는 사랑이다. 사랑이 없이 가정은 인간들의 공동체일 수 없고, 또한 사랑 없이 가정이 살아 남고 성장하여 인간 공동체로 완성될 수 없다."

 

[사목, 2002년 8월호, 이창영 엮음(본지 주간, 주교회의 사무차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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