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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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 생명의 새로운 문화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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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49

인간 생명의 새로운 문화를 위하여

 

 

1995년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회칙 [생명의 복음]이 나온 이래 “죽음의 문화”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다. 이 용어는 우리가 주목하고 음미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많은 경우 죽음의 문화와 같은 문화가 서서히 출현하기 때문이고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들이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진리의 광채]에서 “오늘날 만연하고 있는 주관주의적, 실리주의적, 상대주의적 경향은 단지 실용주의적 태도 내지 행동 양식으로 나타날 뿐 아니라, 이론적 바탕을 가진 접근 방식이나 완전한 문화적 사회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진단하였다. 이른바 세속주의가 “죽음의 문화”라는 촉수를 가지고 집단적으로 합법적으로 공격하고 있다는 뜻이다. 세속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문화적 풍조의 전형인 “하느님 의식과 인간 의식의 실종”은 죽음의 문화로 나타나고, 그 문화는 인간 존엄성과 생명 의식을 망각하게 한다. 

 

제삼 천년기에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문명을 서서히 붕괴시키는 죽음의 문화의 정체를 밝히고, 죽음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 사이의 투쟁을 말하고 나서, “생명의 문화”와 사랑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교황 바오로 6세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제안한 해결책을 제시할 것이다. 

 

 

1. “죽음의 문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음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 사이에는 극적인 투쟁”([생명의 복음], 95항)이 있다고 말하였다. 무엇이 죽음의 문화를 표현하며 죽음의 문화를 퍼트리는 요소는 어떤 것들인가? 로마 대학의 교수인 Gonzalo Miranda 신부는, 죽음의 문화는 “인류의 죽음을 좋아하는 것처럼 간주하는 사회적 일반적 시각”이라고 말하면서 그런 시각은 죽음을 선호하고 부추기는 태도, 행동, 제도, 법률 등을 포함한다고 정의했다. 죽음을 문제의 해결책으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의 오리건 주나 네덜란드의 경우 안락사를 국가가 법률적으로 합법화하고 있다. 이러한 죽음의 선택을 법이 개인을 위하여 인정해 주는 권리로 여겨지도록 조장하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자기 모순은 인권에 대한 윤리적 감수성이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성장하고 있는 이 시대에, 기본권 중에 가장 기본적인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나 임종 단계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가 양립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태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가장 약하고 가장 보호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생명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다면 사랑의 문명은 그 기본부터 무너지게 된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의 의식 속에 불치병과 죽어 가는 사람의 안락사에 대한 유혹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대구 지역 대학생 986명을 대상으로 하여 안락사에 대한 의식 조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안락사를 경우에 따라 허용해야 한다는 생각이 52%였다. 낙태에 대한 의견도 불가피한 경우에는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 71%였다. 죽음의 문화에서는 죽음을 어떤 문제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출산의 경우를 살펴보면 현대인은 출산을 피해야 할 적 또는 짐으로 여겼고 육체도 단순한 물질로, 기관과 기능과 에너지의 복합체로 격하되었다. 그 예로 우리 나라 합계 출산율(여자 1명이 가임 기간에 갖게 될 평균 출생아 수)은 통계청에 따르면 1960년만 해도 6명, 1980년 2.7명, 1990년 1.6명, 1997년 1.56명, 1999년 1.48명으로 무려 75%가 줄었다. 북한은 1965년 7.9명에서 1997년 1.9명으로 줄었다. 인구 보충 수준(총인구 유지에 필요한 출산율)이 여성 한 명당 2.1명의 아이로 정해졌는데 지금 마카오와 몽고를 제외한 모든 동아시아 국가들의 인구가 줄고 있다. 출생률의 감소는 피임, 불임 수술, 낙태에서 온 결과이다. 또한 이것은 정부가 산아 제한 기구들과 협력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대한 가족 복지 협회는 죽음의 문화의 하수인인데도 사람들은 좋은 단체라고 착각하고 있다. 선진국이 고령화 사회(약 7%)에서 고령 사회(14%)로 이행하는 데 100년 가까이 걸린 데 비해 우리 나라는 불과 22년 만에 급속한 노령화 사회를 맞게 되었다는 사실1)은 정부 주도의 출생률 감소 정책이 그 한 원인이 되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 정부가 지난 30년 동안 온 국민을 죽음의 문화로 몰아넣은 결과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죽음의 문화의 뿌리를 분석한다. 첫째는 사람들이 초보적인 자율성이라도 지니고 있는 사람들만을, 그리고 남에 대한 전적인 의존 상태에서 벗어난 사람들만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는 사고 방식이다. 또 하나는 인간의 존엄성을 언어적이고 명시적인, 또는 적어도 인지할 수 있는 의사 소통 능력과 동일시하는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전례에 따른다면 태어나지 않은 사람이나 또는 죽어 가는 사람들의 경우처럼, 장애자처럼, 사회 구조상 구성원인 모든 사람들이 설자리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생명의 복음], 19항 참조). 또한 교황은 죽음의 문화를 가리켜 “약한 자에 대한 강자의 싸움”이라고 한다. 곧 더 큰 수용과 사랑과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생명을 쓸모 없는 생명이라고 보거나 또는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런 생명을 거부한다. 병이나 장애 때문에 더 간단하게는 단지 존재 그 자체 때문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복지나 생활 양식을 위협하는 사람을 거부하거나 없애 버려야 할 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생명의 복음], 12항 참조). 지난번 김홍신 국회 의원이 폭로한 것처럼 국가의 합법적인 묵인 아래 장애인들을 강제로 불임시키는 사건도 마찬가지이다. 이렇게 죽음의 문화는 일종의 "생명에 대한 음모"를 펼치고 있으며, 피임, 불임 시술, 낙태 심지어 안락사까지도 진보의 표시와 자유의 승리로 제시하고, 반면에 무조건적으로 생명을 옹호하는 입장들은 자유와 진보의 적으로 묘사하고 있다([생명의 복음], 17항 참조). 

 

 

2. 폭로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

 

세상은 두 가지 문화, 곧 생명의 문화와 죽음의 문화가 충돌하고 있다. 죽음의 문화는 사람을 죽이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만족스런 해결책을 제시한다. 이런 생각은 인구 제한 기관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인구 제한 기관들은 개발 도상 국가의 아기를 죽이고 불임시키고 지금은 젊은이들까지 불임시키는 데 수십 억 달러의 돈을 쓰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이고 체계적으로 계획된 생명에 반대하는 위협들이며 반생명 음모이다. 이러한 음모들은 얄팍한 가면을 쓴 인구 전쟁과 문화적 재조작의 한 유형이다. 이런 국제 조직 기구는 USAID, IPPF, UNFPA, WHO, UNESCO, World Bank 등이다. 우리는 가난한 나라들이 개발에 접근하는 것을 배제시키거나 또는 그러한 접근을 개발과 인간 사이에 대립 관계를 성립시키는 독단적인 출산 억제 정책과 결부시킴을 폭로해야 한다([생명의 복음], 18항 참조). 

미국 클린턴 정부의 성교육 프로그램과 우리 나라 대한 가족 협회의 정체를 폭로해야 한다. 올해 2월 8일부터 12일까지 네덜란드에서 개최된 헤이그 포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인물로 조명 받은 사람은 미국 대통령 부인 힐러리 여사였다. 미국 정부의 대표로 연설한 힐러리 여사는 NGO 및 청소년을 위한 특별 회의와 본 회의에서 과거 미국 정부의 입장과는 다른 차원에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곧 피임을 여성의 권리로 해석하여 국가 또는 어떠한 외부의 압력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중국의 비인도적인 ‘한 자녀 정책’을 인권 보호 측면에서 강하게 비판하였다. 과거 레이건 정부 시절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내세웠던 낙태에 대한 반대 입장도 완전히 부인하였다. 낙태도 인권 차원에서 여성 스스로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으로 이는 과거 미국의 입장과는 확실히 다른 것이었다. 

 

그리고 미국 정부는 국제 인구 사업을 위하여 적극적인 재정 지원을 할 것이며 유엔 활동 기금(UNFPA)에도 추가로 자금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하였다. 힐러리가 피임을 여성의 권리로 말하는 것은 얼마나 위선이며 모순인가? 이 포럼에 참가한 우리 정부가 국제적 자금을 받아 피임 보급 사업을 함으로써 청소년에 대한 생식 보건 서비스를 하겠다는 발상은 낙태와 성병을 늘리고 전체 출산율을 줄이며 청소년의 성문제만 더 일으키게 될 것이다. 

 

우리 나라의 대한 가족 협회는 UNFPA와 IPPF(국제 가족 연맹) 두 단체에서 해마다 1백만 달러 이상 지원을 받고 있다. 이를 우리 나라 가정 복지를 향상시키기 위하여 해마다 거금을 지원하는 경우라고만 볼 수 없다. 지난 1975년 새마을 운동이 한창 절정일 때 우리 나라 각 마을에는 ‘피임 가정 보급 사업’이 이루어졌다. 이 사업은 국제 가족 계획 연맹이 예산 총액의 80%를 지원하고 나중에는 이 피임 기구를 유료화 사업으로 전환하였다. 뿐만 아니라 미국 불임 협회가 지원하는 여성 불임술 ‘미니랩’ 등도 전국적으로 보급하여 많은 여성에게 부작용을 낳기도 하였다. 

 

어떻게 죽음의 문화를 폭로하고 반대할까? 폭로는 우리의 가장 큰 무기이다. 우리는 낙태, Tied AID, 성교육, 포르노, 산아 제한, 문란한 성생활, 피임, 대한 가족 복지 협회, 불임 등의 공포를 사람들에게 경고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 악의 요소들을 거절하고 비난할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낙태, AIDS, 피임약, 인공 유산 등의 나쁜 점을 모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이런 사실을 알려야 한다.

 

우리는 죽음의 문화 대리자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를 알림으로써 죽음의 문화 대리자들에 반대한다. 대부분의 서방 선진 7개국(G7) 시민들은 그들의 세금이 개발 도상국의 산아 제한에 쓰이고 있음을 모른다. 그들은 산아 제한의 이면에 이념이 숨어 있는지 모른다. 그들은 미국에서 지지를 받고 있는 급진적 여권주의자, 동성애 옹호자, 인구 감소 주장자들의 의제를 모른다. 죽음의 문화 대리자를 위한 공공 자금은 회수되어야 한다. 사악한 논의는 진실과 선한 논의로써 답해져야 한다. 이런 활동의 대부분은 교육, 특히 인격 형성에 관계한다. 생명과 자유, 자유와 진실 사이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것은 죽음의 고통에 대한 진실을 노인들에게 가르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자유와 진실의 관계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것과 관계한다. “오직 생명을 존중함으로써만 민주주의와 평화 같은 가치 있고 필수적인 사회의 선익에 대한 토대와 보장이 가능하다”([생명의 복음], 101항).

 

지금까지 우리 교회는 해마다 150-200만의 낙태의 죗값을 여성에게만 덮어 씌웠다. 그리고 고해성사를 주었다. 그런데도 낙태는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이런 방법으로 해서는 안 된다. 신앙은 사적인 영역만이 아니다. 신앙은 역시 문화적, 사회적 그리고 정치적이다. 낙태 역시 사적인 문제만이 아니다. 낙태는 문화적 정치적 영역 속에 있다. 그러므로 낙태를 부추기고 조장하고, 낙태제인 응급 피임약을 판매하도록 장려하는 대한 가족 복지 협회와 결탁된 UNICEF, IPPF, UNFPA 같은 죽음의 문화 하수인의 음모를 폭로하고 싸워야 생명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 여아를 잡아먹는 호주 상속제 폐지에 교회가 먼저 앞장서야 할 것이다.

 

 

3. 교황 바오로 6세의 예언은 적중되었다.

 

우리는 세속주의가 무엇인지 바로 보기 위해서 죽음의 문화의 정체를 알아야 하고, 세속주의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깨닫기 위해서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을 다시 이해하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 

 

1968년 교황 바오로 6세는 산아 조절에 관한 교회의 변함 없는 가르침을 재확인한 회칙 [인간 생명]을 발표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 회칙은 거부되어 왔고 의심받고 있으며 금세기에 가장 오해를 많이 받은 교서이다. 신자들뿐만 아니라 심지어 성직자와 수도자도 이 회칙을 모르거나 아예 무시하거나 언급하기를 꺼리고 있다. 그렇다면 회칙 [인간 생명]은 틀렸는가? 틀렸다면 교황 바오로 6세도 틀렸고 교회도 틀렸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 회칙을 오늘날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가톨릭 신자들의 약 90% 이상이 피임을 하고 있으며, 30-40%가 단종 시술을 받았으며, 겨우 4%만이 자연 가족 계획법을 사용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이것도 높은 예상치라고 생각한다. 사목자로서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우리는 피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명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만일 사람들에게 자동차, 컴퓨터, 세탁기, 피임 기구 중에서 어느 것을 포기하겠느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어느 하나를 선택하기 어려워할 것이다. 실제로 피임 기구는 세속화의 첫째 도구이다. 현대 의학과 현시대의 엄청난 진보들 가운데 하나로 여기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피임 도구는 인류가 만든 최악의 발명품들 가운데 하나라고 우리 교회는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엄청난 양극화 현상과 모순을 체험한다. 피임이 우리 시대의 위대한 발명들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 세상과 피임이 최악의 발명들 가운데 하나라고 이야기하는 교회 사이에서 아예 우리는 침묵하고 있다. 낙태는 절대 안 된다고 가르치면서 피임은 그 부부에게 맡겨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더 큰 악의 초래를 막기 위해서 작은 악은 허용해야 한다는 식의 합리화된 변명을 하지만 교회는 회칙 [인간 생명]과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피임과 심지어 ‘피임 사고 방식’을 한 치도 양보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요한 바오로 2세는 '몸의 신학'으로 더욱더 자연 출산 조절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몇 가지 질문을 솔직하게 던져 볼 수 있다. 

 

맬더스는 인구가 기하 급수적으로 늘고 식량은 기껏해야 산술 급수적으로 늘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진실인가? 인구 과잉에 대한 걱정 때문에 피임약이 필요하다는 말이 진실일까? 어린이들의 아사(餓死)는 부패한 정부와 식량 분배 실패일까? 과연 우리는 피임약이 발명된 1960년 이후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가? 페미니스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피임약으로 여성은 더 해방되었는가? 아니면 더 학대를 받고 있는가? 피임약이 원치 않는 임신과 낙태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도록 해 주었는가? 피임 도구가 등장한 이래로 예전보다 간음, 낙태, 이혼이 더 늘어나고 출산율이 더 떨어지는가? 임신이나 생식력이 병인가? 피임약은 화학적 낙태 약이 아닌가? 

 

그런데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미 30년 전에 회칙 [인간 생명]에서 이 사실들을 예언하였다. 우리는 30년이 지나서야 마치 파란 물감 한 방울이 한 잔의 물 속에 따로 분리되어 독립적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액체의 모든 개별적인 분자를 물들이고 변화시키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임약이 또는 피임 패키지가 성과 출산 능력과 혼인 자체의 목적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변질시켰음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미국 댈러스 대학 철학 교수 Janet E. Smith 박사의 탁월한 통찰력과 미국 콜로라도 주 덴버 교구의 Charles J. Chaput 대주교의 [회칙 ‘인간 생명’ 반포 30주년 기념 사목 서한]에 나오는 교황 바오로 6세의 4가지 예언을 요약하려 한다. 오늘날 만연된 세속주의를 거슬러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한 지혜 또는 지침을 회칙 [인간 생명]과 [생명의 복음]에서 찾아야 한다고 본다. 교황 바오로 6세는 매우 치밀하게 예언하지는 않았지만 발생할 일들의 광범위한 타격을 분명히 예언하였다. 교황 바오로 6세는 산아 조절에 관한 교회의 가르침이 무시당할 때 발생할 4가지 중대한 문제들에 주의를 주었다([인간 생명], 17항 참조). 

 

첫째로 교황은 피임의 광범위한 사용으로 “부부간의 불충실함과 도덕성의 전반적인 퇴락”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정확하게 그러한 사태가 발생하였다. 낙태, 이혼, 가정 파괴, 아내와 아동에 대한 학대, 성병 그리고 혼외 출산율 모두가 1960년대 중반 이후로 대대적으로 늘었음을 아무도 부정할 수 없다. 지금 우리 나라 TV의 드라마, 영화, 만화, 인터넷까지 얼마나 색정적인가? 

 

둘째로 교황은 남성이 여성에 대한 존경심을 잃을 것이며, 여성의 신체적이고 심리적인 평형에 개의치 않게 되어 “더 이상 여성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동반자가 아니라 단순한 이기적 쾌락의 도구”로 생각해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다. 포르노는 여성의 심리적 신체적 안녕에 대한 공격이다. 피임이 여성 해방의 도구가 아니라 결국 남성만 덕보게 한 것이 사실이다. 

 

셋째 예언은 피임이 널리 통용된다면 정부는 가족 계획 프로그램들을 강제적인 목표들에 사용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이 예언은 앞에 죽음의 문화에서 충분히 밝혔다. 상당 부분 미국이 후원하고 있는 UN의 제3세계에 대한 경제 원조에는 지역의 도덕적 전통에 위배되는 피임 기구, 낙태와 단종 시술의 대량적인 수출(Tied AID)이 포함되어 있어 충격적이다. 

 

교황 바오로 6세의 넷째 예언은 우리가 자신의 몸을 마치 기계처럼 다루기 시작할 것이라는 내용이다. 우리는 더 이상 인간의 인격을 몸과 영혼의 완전한 결합으로 여기지 않고 존중심을 잃게 되어 스스로 하고 싶은 대로 조종하는 기계가 되어 버리고 만다. 다이어트 산업, 대리모, 시험관 아기 제조, 클로닝(cloning), 유전자 조작, 배아 실험, 디자이너 유전자(designer genes), 인체 시장 등, 기혼이든 미혼이든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어떠한 여성이라도 돈만 갖고 있으면 아이를 살 수 있다. 드디어 우리 몸을 기계처럼 다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옳았던 것일까? 세속주의였을까? 아니면 교황 바오로 6세였나? 피임이 대단하고 위대한 발명품이라고 생각했던 세속주의의 예언은 어떻게 되었나? 이혼율은 세기에 걸쳐 서서히 증가하다가 1960년대에는 25%이던 것이 1975년대에는 50%가 되었다. 그 짧은 10년 동안에 이혼율이 2배가 된 것이다. 스탠포드 대학교의 로버트 미카엘이라는 사회학자는 무슨 이유로 지난 10년 동안 이혼율이 갑절로 뛰었는지 의아해했다. 실제로 그는 피임약이 통용되면 통용될수록 이혼이 더욱 대중적이 됨을 발견하였다. 원하는 대로 모든 여성이 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었던 1975-1976년 사이에 서구도 이혼율이 급격히 뛰었다. 우리 나라 1997년 인구 동태 통계 발표에 따르면 이혼이 하루에 223쌍으로 1990년의 2배를 넘어섰고, IMF 이후로 서울의 2월 합의 이혼은 3천1백71건으로 전년 2월(2천1백26건)보다 49%나 늘었다. 대구의 2월 이혼 건수(6백76건)도 1월(4백43건)보다 53%나 늘어났다. 부산, 광주 등 다른 대도시도 마찬가지이다. 최근에는 3쌍이 결혼하면 1쌍이 이혼한다는 통계도 나왔다. 피임약과 이혼율의 상관 관계를 밝혀 볼 필요가 있다. 

 

 

4. 사랑의 문명은 가정에 달려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가정은 생명의 성역이라고 자주 말한다. 가정은 생명의 성역을 지키는 마지막 보루이다. 이 마지막 보루가 무너지면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고 만다. 이렇게 되면 결국 태아, 여아 태아, 아이들, 청소년들, 장애인들, 아줌마들, 노인들이 죽음의 문화의 한가운데 내던져지고 만다. 더 더욱 심각한 것은, 아주 흔히, 가정 한가운데에서, 죽음의 문화가 가족들의 공모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이다. 교회가 주체가 되어 가정 사목을 강화해야 한다. 가정 상담소, 결혼 상담소, 혼인 강좌, 혼인 교리, 청소년과 젊은이들을 위한 성과 사랑에 대한 교육, 정결의 훈련, 혼인한 부부의 책임 있는 출산에 대한 훈련, Homeschooling, 가정 기도서, 가정 교리, 부모 성교육 지침서, 父子 성 윤리 프로그램, 母女 성 윤리 프로그램, 부모가 가르치는 첫영성체 교리, 가정 통합 미사, 노인 사목과 노인 복지에 대한 인식 제고, 노인을 위한 편의용품과 시설 확립, 노인 교육의 활성화, 천주교 가훈 프로그램, 가정 성화 프로그램, 가족 캠프, 원격 입양, 생명 학교, 가정 사목 전문 위원회, 가정 사목 전담 신부, 가정 사목부, 다자녀 출산, 생명 윤리 센터 설치, 가톨릭 병원의 산전 산후 프로그램, 생명의 날, 라헬 프로그램(post abortion syndrome counselling), 혼인 후 1주년 프로그램, 2주년 프로그램, 3주년 프로그램, 유아 영세, 가정 성화와 생명 수호 미사, 호스피스, 태교, 모유, 재가 복지 프로그램 등 가정 사목이 모든 사목의 우선이 되어야 한다. 

 

교회가 주체가 되어 가정 사목의 쇄신과 혼인 사목, 혼인 강좌와 자연 출산 조절 센터를 재확립하고 교구와 가톨릭 병원, 복지관, 신학대학 생명 윤리, 초, 중, 고, 대학교가 서로 연대하여 생명 문화를 건설하기 위하여 연대 기구와 전문 기구가 필요하다. 지금 우리의 사목 활동은 유기적이지 못하고 몇 개의 단체로 존재하고 있다. 병원 안에서 산모들에게 자연 피임법을 가르칠 것이 아니라 자연 출산 조절인 배란법을 가르치는 지도자를 양성하여 다른 병원과 차별화를 시도할 필요가 있다. 

 

돌아가신 박 토마 주교님의 행복한 가정 운동이 상당히 침체되어 있다. 주교님이 계셨던 춘천교구는 그 흔적조차 볼 수 없다. 행복한 가정 운동이 가정 사목에 통합되어 단순한 점액 관찰법이 아니라, 피임 제국주의에 맞설 수 있는 건강한 생식력의 교육인 자연 출산 조절법은 오히려 교회 밖에서 더욱 요청되고 있다. 최근에 인공 피임의 부작용을 알게 됨으로써 뒤늦게 이 방법을 찾고 있다. 타종파에서도 교재나 프로그램을 배우고자 한다. 

 

한국 천주교회가 자연 출산 조절법을 가르친 지 30년이 되어도 마땅한 교재 없이 몇몇 사람에게만 의존해 왔다. 그것도 단순한 점액 관찰 또는 자연 피임법으로 정확한 도구 없이 구두 교육에 매달려 왔다. 한국의 모든 교과서, 잡지, 성교육 책에는 자연 출산 조절법이 가장 비과학적이며 실패할 확률이 높으며 불확실하며 어렵다고 적혀 있다. 이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우리가 잘못 가르쳤고 알리지 못했고 정보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지난해와 올해 국제 생명 운동 한국 지부에서 빌링스 부부를 두 번이나 초청하여 배란법 지도자를 양성하고 새 교재를 만든 것은 다행한 일이다. 빌링스 박사는 자연 가족 계획인 배란법을 제대로 배우기만 하면 99% 이상 정확하며, 이 배란법은 점액 관찰법도 피임법도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그리고 이 법은 아이를 안 낳도록 하는 방법이 아니고 아이를 더 잘 낳도록 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가정이 생명의 성역이 되고, 사랑의 문명을 건설하기 위해서 우리가 처음으로 해야 할 일은 회칙 [인간 생명]을 다시 조명하고 지침과 원칙을 정하는 일이다. 가톨릭의 정체성이 무엇인가? 다른 종파들과 차이가 무엇인가? 그것은 회칙 [인간 생명]이다. 

 

교회는 한번도 피임을, 자연 피임을 허락한 적이 없다. 그런데도 신자들은 생명의 복음과 세속주의 사이에서 원칙과 윤리를 정하지 못하고 이중 생활을 하고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교도권의 책임이다. 묵인 또는 타협, 알고도 모르는 척했거나 모르면서도 아는 척했던 것이다. 교도권의 쇄신 없이 교회의 발전은 없다. 신자들에게 의무 사항을 요구하지 말고 교회가 주체가 되어 인간 생명이 새로운 문화를 건설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가 사목자나 수도자와 평신도들을 유럽이나 미국에 유학을 보내는 것보다는 이제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하여 또한 중국의 남진 정책을 막기 위해서라도 필리핀 교회를 배워야 한다. 필리핀은 국민 중 83%인 7600만 명이 가톨릭 신자이다. 필리핀은 아시아에서 신앙의 지표이다. 그리고 한국 교회가 베트남 교회와 연대하여 생명 운동을 한다면 동아시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본다.

 

1)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에서 고령 사회(aged society)로 도달하는 기간, 곧 노인 인구가 7%에서 14%에 도달하는 시점은 프랑스의 경우 115년, 스웨덴 85년, 미국 68년, 호주 74년, 캐나다 64년, 영국이 45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일본의 경우 고령화 속도가 25년으로 다른 선진국보다 월등히 빠른데 우리 나라는 이보다 빠른 22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사목, 1999년 10월호, 정홍규(대구대교구 사목국 사회사목담당,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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