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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공학 연구의 현실과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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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76

생명 공학 연구의 현실과 가능성

 

 

1. 서언 - 생명 공학의 개념과 역사

 

생명 공학 연구의 현실과 가능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먼저 생명 공학의 개념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이 분야는 현재 급속한 변화 중에 있고, 시시각각으로 새로운 영역이 드러나고 있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생명 공학이 과연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 공학'(Bioengineering)이라는 단어는 그 자체로 어떤 확립된 학문 분야가 아닌, 산업과 연관된 응용을 의미하는 도구적인 개념을 담고 있다. 심지어 어떤 논자는 생명에 '공학'이라는 말을 붙이는 것 자체가 불경스럽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논의의 전개를 위해서는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합의가 있어야 할 것이다.

 

광의의 생명 공학은 생명 현상을 이용하여 산업 및 보건 분야에 응용, 경제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모든 기술적 고안과 그 응용을 의미한다. 여기서 생명 현상이라 함은 인간을 포함한 포유류뿐 아니라 각종 동식물, 미생물들을 대상으로 한다. 농업과 축산, 원예, 식품 산업, 의약품 제조 등 생명 현상을 통해 유용한 산물을 생산해 내려는 산업 분야에서는 끊임없는 새로운 연구(research)와 고안(innovation)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점점 '공업적인' 성격을 띠어 가고 있다. 전통적인 육종 및 교배, 천적을 이용한 해충 방제, 새로운 유산균 균주의 개발, 미생물에서 새로운 항생 물질의 발견, 천연 약재에서의 항암제 개발 등이 모두 이 광의의 생명 공학 영역에 해당한다.

 

하지만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협의의 생명 공학이다. 이는 생명 현상 중에서도 특히 유전자 염기 서열 분석과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 특정한 용도에 맞도록 생명체를 변형, 증식시키려는 방법론을 의미한다. 1953년 왓슨과 크릭은 DNA가 유전 정보를 담고 있는 유기 분자임을 밝혔고 그 유전 암호를 해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를 거쳐서는 각종 DNA 절단 효소와 중합 효소를 이용하여 이 분자를 원하는 대로 변형, 복사할 수 있게 되었으며 2000년에는 급기야 인간의 모든 유전 암호 서열이 밝혀졌다. 이 기술이 활용 가능하기 전에 인류는 끊임없이 육종과 선택적 교배를 거쳐 자신에게 유용한 작물이나 동물을 생산하고 개량해 왔지만 이는 자연의 변덕과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는 힘든 과정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제는 원하는 유전자를 삽입하고, 원치 않는 부위를 제거하거나 대치하여 이 속도를 훨씬 빠르게 하거나 심지어는 자연 상태에서는 전혀 나타날 수 없는 신종 생물을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술은 전통적인 생명 공학 관련 산업뿐 아니라 전 산업에 걸쳐 엄청난 파급 효과를 발휘할 수 있으며 생명에 대한 사고 자체를 뒤흔들어 놓을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다.

 

이 협의의 생명 공학 기술은 지금 농수 산업과 의약 산업에서 광범위하게 활용되고 있다. 1980년대 전반에는 인간의 유전자를 가지고 인간 인슐린을 생산하는 효모균이 등장하였고, 이 인슐린은 당뇨병 환자에게 널리 쓰이고 있다. 병충해에 잘 견디도록, 또는 농약에 잘 견디고 생산성이 높도록 유전자가 조작된 콩과 옥수수는 우리의 식탁에 날마다 새롭게 오르고 있다. 그러나 1997년 복제 양 '돌리'의 탄생은 이 분야에 새로운 차원을 추가하였다. 곧 동물, 특히 포유류는 인간의 용도에 맞게 유전자를 조작하더라도 그 유전 형질이 정상적인 생식 방법으로는 후세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질 수 없기 때문에 유용성에 한계가 있었다. 그런데 체세포핵을 이용한 복제 기술의 성공은 이런 제한을 철폐하였으며 바뀐 유전 형질을 그대로 지닌 동물을 원하는 만큼 생산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실제로 우수 한우에서 복제된 '영롱이'와 똑같은 복제 소가 지금 수백 마리의 암소 자궁에서 자라고 있는 중이다.

 

곧 협의의 생명 공학은 유전자 조작 기술과 체세포 복제라는 두 가지 기술을 축으로 한다. 이러한 기술이 자연에 응용될 때 생태계의 훼손, 인간 생태에 대한 치명적인 위협 가능성, 동물에 대한 학대와 남용 등 갖가지 위험이 제기되고 있지만 더욱 큰 문제는 인간 자신에게 응용될 때 이제까지 믿어 온 인간과 사회의 존재 기반 자체를 뒤흔들 수 있다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말해 인간이 숙명으로 알아 온 자신의 유전 형질을 바꿀 수 있게 되었으며, 남녀의 결합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분야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우려를 자아내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 생명 공학 연구의 현실

 

생명 공학 연구가 가장 활발한 곳은 농업 분야이다.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작물의 개발, 전혀 다른 신종 작물의 개발, 제초제에 대하여 저항성이 강한 작물의 개발, 병충해에 강한 작물의 개발, 단백질이나 다른 영양소를 함유한 기능성 작물의 개발 등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유전자 변형 벼의 시험적 재배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 분야에 대한 우려는 유전적으로 변형된 작물이 생태계의 질서를 훼손할 수 있으며, 특정 기업이나 국가의 이익에 합치되는 쪽으로만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곧 제초제 저항성 유전자가 자연 상태에서 잡초로 옮겨지게 되면 어느 농약에도 듣지 않는 슈퍼 잡초가 나올 수 있으며, 유전적으로 단일한 작물은 특정 병충해에 몹시 취약할 것이고 이런 작물만을 재배하는 과정에서 식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파괴되어 미래 세대를 위한 유전적 자원이 부족해진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생물 자원에 대해 특허를 얻으려는 시도 자체가 일부 기업의 이익을 위해 인류 전체의 공익을 저버리는 처사라는 비난도 높다.

 

축산 분야와 어업 분야에서는 생산성이 높은 새로운 가축, 또는 어종을 개발하려는 시도나 특정한 영양소나 생체 기능 물질을 분비하는 가축을 개발하려는 시도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 세포 성장 인자인 G-CSF가 함유된 젖을 분비하는 흑염소 '메디'를 유전자 조작 기술을 활용하여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이 메디를 복제한다면 부가 가치가 높은 이러한 가축들을 수백 수천 마리씩 만들 수 있다. 이러한 시도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에 대한 비판은 농업 분야의 생명 공학의 이용에 대한 비판과 흡사하나 이러한 기술이 일종의 동물 학대라는 비판이 더해진다. 축산 분야와 의학 분야가 함께 인간에게 이식 가능한 장기를 생산하는 동물을 만들려는 연구 또한 활발히 진행중이다. 특정 유전자 부위를 파괴하여 인간의 면역 세포가 공격하는 부위를 발생하지 않게끔 하거나, 인간의 유전자를 이식하여 인간의 면역계와 합치하도록 함으로써 이종 장기 이식에서 생기는 거부 반응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그 근거이다.

 

의학 분야에서 생명 공학의 응용은 그 의미가 더욱 심각하므로 다음 문단에서 자세히 논할 것이다. 다만 의학 연구 영역에서 이 기술을 활용하여 각종 질병 모델 동물(animal model)을 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각종 암, 면역 질환, 파킨슨병, 고혈압, 당뇨병을 가진 모델 동물이 개발되었거나 현재 개발 중에 있으며 의학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통해 인간 질병의 원인을 유전자 수준에서 파악할 수도 있다.

 

제약 분야에서는 생명 공학 기술을 응용하여 신약 개발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으며 약물의 작용 부위를 정확히 파악하여 새로운 약물을 개발할 수 있고 또한 인슐린이나 간염 백신의 예에서처럼 미생물, 또는 여러 다른 동물들을 사용하여 생체 약물을 저렴한 비용으로 생산해 낼 수 있다. 기타 환경 산업에서는 유전자 조작 미생물이나 조류를 이용하여 오염된 폐수나 대기를 정화할 수 있으며 화학 산업에서도 이를 활용하여 생산 비용을 크게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 기대된다. 심지어 정보 산업 분야를 비롯한 전 산업 분야에서 생명 공학 기술은 그 응용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 

 

 

3. 의학 분야 생명 공학 연구의 현황과 가능성

 

이렇듯 생명 공학 기술은 그 응용 범위가 다양하고, 특히 의학 분야에서는 현재 의료의 모습 자체를 뒤바꾸어 놓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그런 만큼 현존 문화와 사회에 미치는 충격 또한 클 것이다.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 Project, HGP)의 완성은 인간의 생명 그 자체를 하나의 정보 현상으로 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향후 5년 안에 각각의 유전자의 기능과 역할이 완전히 밝혀진다면 우리는 인간의 생명 현상을 유전자라는 언어로 다시 보게끔 될 것이다.

 

문제는 이해를 했다고 해서 바로 어떤 조작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세균이 질병의 원인임은 19세기 말에 밝혀졌지만, 인체에 무해하게 그 세균만을 통제할 수 있는 항생제의 개발은 그로부터 50년 이상을 더 기다려야 했다. 우리가 유전자 암호의 내용을 안다고 해서 그것을 원하는 대로 조절할 수 있게 되리라는 것은 지나치게 낙관적인 꿈이다. 하지만 유전 암호를 알게 된 것만으로도 현재 인류 사회의 질서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하다.

 

현재 위암 등 몇몇 질병에서 유전자 진단과 맞춤 치료가 시도되고 있으며 향후 10년 안에는 대부분의 질병으로 확대될 것이다. 고혈압 환자들은 머리카락이나 침 등에 대한 간단한 유전자 검사를 받아 봄으로써 자신이 어떤 유형의 고혈압에 해당하며, 예후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떤 합병증이 주로 나타날 것인지를 예상하고 그에 대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는 '개별화된 진단과 치료'(individualized diagnosis and treatment)라는 의료계의 이상이 실현되는 것으로 환자는 더욱 편안하게 자신에게 적합한 처방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정보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곧 보험 회사나 고용주, 국가는 사람들에게 이러한 정보를 요구할 것이며, 이는 예기치 않은 차별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유행하는 결혼 정보 회사들은 신상, 학력, 집안에 대한 정보 외에 유전적 정보를 요구할 것이며 유전적으로 이상적인 배우자라는 개념이 등장할 것이다. 유전 정보는 개인의 노력으로 바꿀 수 없다는 점에서 이는 차별을 영구화할 수 있다.

 

갈수록 늘어나는 체외 수정을 통한 임신은 자궁 착상 이전에 수정란에 대한 면밀한 검사를 요구할 것이다. 지금은 다운증후군이나 페닐케톤뇨증, 선천성 면역 결핍증과 같은 심각한 질환이 선별의 기준이 되지만, 좀더 정확한 유전 정보를 쉽게 파악할 수 있게 될 경우 언청이, 단신, 심지어 지능 등의 요인까지 선별 기준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문제가 있는 배아를 유전적으로 치료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바람직한 일로 여겨지지만, 문제 유전자 부위를 정확히 집어 내어 수정하는 기술은 당분간은 어려울 것이므로 배아의 폐기, 심지어 착상 이후라면 낙태를 조장할 가능성이 있다.

 

유전자의 결손, 결함, 중복 등으로 질병에 걸린 사람에 대한 유전자 치료는 현재 시험 단계이다. 1999년 프랑스에서는 면역 결핍증 환아들에게 시험적인 유전자 치료가 있었으며 미국 등 여러 나라에서도 그런 일이 있었다. 현재는 암, AIDS, 뇌종양 등과 같은 치명적인 질병의 환자들에게 시험적으로 적용하는데 그 이유는 이 치료의 안전성이 완전히 확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010년까지는 소수의 질환에 대해 믿을 수 있는 실용적인 유전자 치료법이 등장하리라고 예상되지만 모든 유전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질병'을 치료하는 유전자 조작 기술은 '유전자 치료'라고 불리지만, 질병이 아닌 다른 인간의 속성을 '개선'하려는 시도는 '유전자 개량'으로 불린다. 사실상 '질병'과 '질병 아닌 것' 간의 관계는 많은 경우에 모호하며 인간이 바람직한 형질, 또는 바람직하지 않은 형질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속성들, 예컨대 피부색, 신장, 코 높이, 유방 크기 같은 것들도 사회 문화적인 가치 판단이 개재되어 있기 때문에 무엇을 개량이라 부를 것인지는 사회적인 합의를 이루기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속성들 대부분이 유전자 한두 개가 관여된 특성이 아닌, 여러 유전자가 동시에 작용(polygenic)하는 특성 때문에 어느 한두 개의 유전자를 조작한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유전자는 총체적으로 상호 작용하며, 또 환경과의 상호 관련 속에서 그 발현이 조절되므로 이를 완전히 이해하고 자기 의도에 맞게 조절한다는 것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슈퍼컴퓨터의 소프트웨어를 조작하려는 일 이상으로 어려운 일이며 어쩌면 인간의 지적 능력을 초월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유전자 개량을 통한 인간의 우생학적 개량이라는 꿈은 아마도 비현실적인 상상으로 머물기 쉽다.

 

반면 인간의 개체 '복제'(cloning)는 기술적으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체세포 핵 이식 수정란의 제조와 착상 시도는 실패율이 높지만, 대상자 수가 충분하다면 불가능한 일이 아니며, 실패율을 낮출 수 있는 기술적인 방법들이 조만간 개발될 것이다. 현재 인간 개체 복제는 윤리적인 이유로 많은 나라에서 꺼리고 있지만 향후 몇 년 내에 규제가 미약한 나라에서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인간 배아 복제는 배아 간세포의 수확이 환자 치료에 매우 유용할 것이라는 기대에서 많은 의학자들이 연구하고 싶어하지만 역시 윤리적인 문제에 관하여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하지만 2001년 현재 영국에서는 이런 연구를 허용하였으며 미국 등의 나라에서도 민간 영역에서 연구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지는 않다. 현재 인간의 불임 문제는 원칙적으로 해결된 상태이며 체외 수정, 성세포 대여, 대리모 등의 모든 수단을 활용한다면 아이를 원하는 부모는 - 비록 동성애자 부부라 할지라도 - 자녀를 가질 수 있게 되었다. 물론 할 수 있다고 다 해야 되는가는 별개의 문제이며 인간에 적용되는 모든 생명 공학 관련 기술들의 윤리적 타당성에 대해서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많다.

 

[사목, 2001년 5월호, 권복규(가천의과대학교 전임 강사, 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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