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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21세기 생명문화와 가톨릭 교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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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3 ㅣ No.272

21세기 생명문화와 가톨릭교회의 입장

 

 

그리스도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제삼천년기의 문턱을 막 넘어선 현 시점에서 인류는 역사 시작과 함께 지속되어 온 재래의 생명 문화와는 질적으로 차원이 다른 새로운 생명 문화의 출현을 목격하고 있다. 하느님의 창조에 의한 생명 신앙이나 인과업보론적 연기설에 정초한 생명관의 입장에서 볼 때 엄청난 충격을 자아내는 이질적 생명 문화 시대의 도래를 감지하면서 10년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이 땅에서 진정한 생명문화의 창출을 위해 연구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온 서강대 부설 생명문화원이 <21세기 생명 문화와 종교> 주제로 정기 세미나를 개최하여 21세기 생명 문화의 위상 정립과 대안을 강구함으로써 바람직한 생명 문화 창달에 기여하려는 시의 적절한 취지에 경의를 표하며, 주제에 상응하는 "21세기 생명 문화와 가톨릭 교회의 입장"의 제명으로 가톨릭 교회 측의 생명관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이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와 '시대의 징표'에 부응하는 자기 쇄신에 입각한 인류와 세계를 위한 봉사 활동의 일환으로 생명 옹호 운동을 범교회적으로 전개하고자 나름대로 노력해 왔다. 특히 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한 교회의 입장을 거듭 천명해 왔으며, 특히 1995년 반포된 인간 생명의 가치와 불가침성에 관한 회칙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을 통하여 신자들로 하여금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새로운 생명 문화 건설에 투신할 것을 강력하게 촉구하고 있다. 논자는 가톨릭 생명관의 기본입장과 교회의 생명 옹호 노력의 실상을 간략히 살펴보고 21세기 생명 문화에 기여할 수 있는 과제에 대한 단편적 입장을 제시하고자 한다.

 

 

1. 가톨릭 생명관의 기본 입장

 

가톨릭 신앙은 신비로서의 생명이신 하느님 신앙에 정초하여 세계 안에서 현전하거나 현존하는 생명체가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지 않고 생명 자체이신 인격적 하느님의 자유로운 창조 행위를 통해서 무상의 선물로 생성되었다는 믿음에 입각하고 있어 가히 '생명 신앙'이라고 불릴만하다. 

 

가톨릭 신앙의 전거인 성서 자체가 애당초부터 생명을 선사하시는 하느님의 위업에 대한 증언이다. 여기서 우주 삼라만상의 창조가 하느님의 인격적 행위로 묘사되고 창조 시작과 동시에 개시되는 역사의 위대하고 유일한 주제가 바로 생명으로 나타난다. 하느님이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선사시하는 원천적 생명으로 증언되고 있다. 활동성 내지 역사성(役事性)이 생명과 동의어로 파악되는 성서적 전승 안에서 우주 창조와 이스라엘 및 그리스도 교회의 역사는 바로 하느님이 살아 계신 분임을 웅변적으로 증언한다. 이 전승 안에서 체험되는 하느님은 '살아 계신 분'이고 '생명의 하느님'이다. 성서가 증언하는 '살아 계신 하느님'에 대한 상념 안에서 이미 '생명'에 대한 높은 평가가 감지된다.

 

인간 생명을 위시한 모든 생명이 신성한 하느님으로부터의 선물이라면 생명 자체가 그지없이 신성하고 고귀한 실재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성서 보도를 따르면 생명은 지속되고 번성하도록 하느님의 특별한 축복을 받는다(창세 1,22-28). 그리고 인간은 삶이 갖은 노고를 동반함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보존하기 위하여 온갖 희생을 감수한다(창세 2,4). 바로 이 때문에 생명의 살상 행위가 엄금되고 있는 것이다(창세 9,5이하; 출애 20,13; 신명 5,17). 

 

그런데 가톨릭 신앙은 모든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을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느님'으로 고백한다. 우주 만물을 창조한 하느님께서는 피조물들로부터 떠나시지 않고 친히 인간이 되시어 피조물과 운명을 함께 나누는 분이시고, 지상(地上)에서 삶을 마친 뒤에 성령으로서 인간을 위시한 피조물들 안에 내주하시는 분으로 고백된다. 피조물들을 창조하고 생명을 부여하는 동기는 하느님의 사랑이다. 하느님은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을 위시한 우주 삼라만상을 창조하고 생명을 선사한다.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자유로운 사랑의 풍요 속으로부터 나와서 당신과 다른 창조 세계를 이룩하고, 성자를 통하여 살아있는 피조물들을 화해케 하고 구원하며 성령을 통해서는 당신의 창조물 안에서 임재하면서 살아있게 한다고 믿는다. 모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가톨릭 확신은 이러한 생명의 하느님 믿음에 정초하고 있다.

 

또한 가톨릭 교회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자처했던 인물인 예수를 주 하느님으로 믿고 따르며, 그분이 전파하신 메시지를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으로 기꺼이 수용하는 신앙 공동체이다. 그래서 2000년에 이르는 가톨릭 교회 역사는 이 생명의 복음을 모든 시대와 문화에 속한 사람들에게 '기쁜 소식'으로 전파하고자 부단히 노력해 온 역사로 간주될 만하다.

 

가톨릭 신앙은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육화되었다고 믿으며, 그 목적은 바로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을 피조물 인간에게 풍부하게 선사하려는 데 있다고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그를 믿어 "생명을 얻고 더 얻어 풍성하게 하려고"(요한 10,10) 오신 분이다. 그분은 하느님과의 일치에서 오는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 성자 안에서 자유롭게 누리도록 모든 사람들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가톨릭 신앙은 인간이 현세에서 누리는 생명의 차원을 능가하여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충만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이 초자연적 소명의 숭고함에 의거하여 인간 생명이 현세 안에서까지도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초자연적 소명이 지닌 숭고함은, 인간 생명이 현세적 측면 안에서까지도 위대함과 측량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음을 드러내 보여줍니다. 실제로, 시간 안의 생명이란 인간 실존의 통합된 과정 전체를 위한 기본적인 조건이며, 출발점이고, 핵심입니다. 그 과정은 뜻밖에, 그리고 분에 넘치게도, 하느님의 약속으로 밝혀지고, 하느님 생명의 선물로 새롭게 된 과정이며, 영원성 안에서 그 완전한 실현에 다다르게 될 것입니다"(1요한 3,1-2 참조)(1항).

 

인류와 세계를 위해 선사된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과 세계를 구원하고자 친히 고난을 당하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드러나는 하느님의 무력은 인간 및 피조물 안에서 이룩된 하느님의 절대적 임재(臨在)의 표현으로 이해될 수 있다. 피조물에게서 이루어지는 하느님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완료되었으며, 십자가에서의 하느님의 임재를 통해서 하느님의 권능이 사랑이라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십자가는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의 생명이 사랑 안에서 완성에 이르는 생명임을 알게 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그리고 부활은 인간에게 초현세적 생명의 원인으로 머문다(요한 10,10; 로마 4,25; 5,10; 2 고린 5,15). 창조이래 진행되는 세계의 역사과정이 본질적으로 인간을 위시한 피조물들에게 생명을 선사하고 보전할 수 있도록 당신 자신을 희생하시는 생명을 위한 하느님의 사랑에서 시작되고, 또 거기서 끝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을 지니며 생활한다. 

 

인간의 생명이 현세적 생명을 초월하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함으로써 충만에 이르는 한에서 그의 현세적 생명은 상대성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지상에서의 생명은 '궁극적'(ultimate)인 실재가 아니고 '준궁극적'(penultimate) 실재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그 생명은 여전히 우리에게 맡겨진 신성한 실재(sacred reality)입니다"(2항). 가톨릭 교회는 인간의 현세적 생명을 책임감을 가지고 보존해야 하고 사랑으로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어 완성해야 할 과업이 부과되어 있다고 믿는다.

 

 

2. 생명 문화를 위한 가톨릭 교회의 노력

 

가톨릭 교회는 생명의 복음이 신자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선이기에 생명의 복음을 선포하고 경축하며 생활하는 생명 옹호 노력이 인류의 공동선 증진과 세계 평화에 기여한다고 확신하며 이를 위해 투신해 왔다.

 

2.1.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모든 인간 생명의 존엄성 수호 의지가 명백하게 천명된다. 

 

이 공의회의 기간 문헌「사목헌장」은 인간의 불가침적 존엄성에 의거하여 누구에게나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주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 … 개인 인격의 고귀한 존엄성에 대한 자각도 커져간다. 개인 인격은 만물을 초월하고 그의 권리와 의무는 보편적이며 불가침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실로 인간다운 생활을 영위하기에 필요한 모든 것이 인간에게 주어져야 할 것이다. 예컨대 의식주, 신분 선택의 자유와 가정 형성의 권리, 교육과 노동에 대한 권리, 명예와 존경에 대한 권리, 정당한 보도를 들을 권리, 자기 양심의 바른 규범을 따라 행동할 권리, 사생활을 수호할 권리, 종교적 분야까지 포함해서 정당한 자유를 누릴 권리 등이 인간에게 주어져야 한다"(26항).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마르 2,27)고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사물의 질서가 인간 질서에 종속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회 질서와 발전은 언제나 인간의 복지를 목표로 하여 이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이 명백히 천명된다. 

 

교황 바오로 6세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으로 진정한 세계 평화란 생명 보호에 입각해야 가능하다는 견해를 피력하였다. "생명에 대한 모든 범죄는 평화에 대한 공격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도덕적 행위를 공격할 때는 특히 그렇습니다 … 그러나 인간의 권리들을 진정으로 고백하고 공적으로 인정하고 옹호하는 곳에서, 평화는 생명을 위한 즐겁고 영향력 있는 사회 분위기가 될 것입니다."(교황 바오로 6세, "세계 평화의 날 담화", in: Acta Apostolicae Sedis 68(1976), 711-712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신자들을 '생명의 백성, 생명을 위한 백성'이라고 부르면서(6항) 생명 존중 자세가 인류의 공동선 증진을 통한 사회 쇄신에 기여한다고 역설한다. "능동적으로 생명을 옹호한다는 것은 공동선의 증진을 통한 사회의 쇄신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생명권을 인정하고 옹호하지 않는다면 공동선의 증진은 불가능합니다 … 오직 생명을 존중함으로써만, 민주주의와 평화같은 가치있고 필수적인 사회의 선익에 대한 토대와 보장이 가능하게 됩니다."(「생명의 복음」,  101항)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같은 회칙에서 인간 생명과 불가침성에 대한 단호한 재천명 의사를 밝히면서 절박하게 호소한다. "생명을, 모든 인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고, 사랑하며, 그것을 위해 봉사하십시오!"(5항)

 

가톨릭 교회가 단호하게 반대하는, 현대 사회 안에서 만연되고 있는 반생명적 현상들은「사목헌장」에서 일일이 다음과 같이 열거되고 있다. "온갖 종류의 살인, 집단 학살, 낙태, 안락사, 고의적인 자살과 같이 생명 자체를 거역하는 모든 행위와 지체의 상해, 육체와 정신의 고문, 심리적 탄압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와 인간 이하의 생활 조건, 불법 감금, 추방, 노예화, 매춘, 부녀자와 연소자의 인신 매매, 또는 노동자들이 자유와 책임을 가진 인간으로 취급되지 못하고 단순한 수익의 도구로 취급되는 노동의 악조건과 같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행위 등, 또 이와 비슷한 다른 모든 행위는 실로 파렴치한 노릇이다. 그것은 인간 문명을 손상시키는 행위이며 불의를 당하는 사람보다 불의를 자행하는 사람을 더럽히는 행위로서 창조주께 대한 극도의 모욕이다"(27항).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회칙「생명의 복음」에서 반생명적 현상이 세계 안에서 감소되기 보다 새로운 형태의 위협들로 말미암아 한층 더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들에 새롭고 - 가능하다면 - 더욱 사악한 성격까지도 부여하는 이러한 문화 사조는 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습니다. 즉 광범위한 여론의 분야들이 개인의 자유라는 미명 아래 생명을 거스르는 일련의 범죄들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토대 위에서 처벌의 면제뿐 아니라 심지어 국가의 공인까지도 요구합니다. 그럼으로써 이러한 행위들을 완전히 자유롭게, 그리고 보건 제도의 무료 봉사까지 받아가면서 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입니다"(4항). 이 교황은 생명에 대한 공격이 과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광범하게 이루어지는 현대 사회를 '죽음의 문화'가 지배하는 세계로 규정한다. "많은 경우 진정한 '죽음의 문화'라는 형태를 취하는 그러한 문화의 출현입니다. 강력한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경향들이 이러한 죽음의 문화를 활발하게 조장합니다. 이 경향들은 지나치게 효율성에만 관심을 가진 사회가 이상적인 사회라고 부추깁니다. 이런 광점에서 현 상황을 바라본다면 약자에 대한 강자의 싸움이라는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즉, 더 큰 수용과 사랑과 보살핌을 요구하는 생명은 쓸모없는 생명이라고 간주하거나 또는 참을 수 없는 짐으로 생각하며, 따라서 이런 저런 방식으로 그런 생명을 거부합니다. 병이나 장애 때문에, 더 간단하게는 단지 존재 그 자체 때문에, 더 좋은 조건을 갖춘 사람들의 복지나 생활 양식을 위협하는 사람을 거부하거나 없애버려야 할 적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12항).

 

2.2.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대 사회를 뒤덮고 있는 '죽음의 문화'와 대치되는 '생명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범교회적으로 그리고 범세계적으로 생명 옹호 노력을 광범하게 전개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 교회 역시 80년대 이래 주교회의 가정사목 위원회나 사회복지 위원회, 정의평화 위원회 등을 위시하여 여러 교회 기관들이 주축이 되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일련의 생명 옹호 운동을 전개하여 왔다. 

 

가톨릭 교회 당국은 우선적으로 '생명의 백성'으로서의 신자들이 모든 생명,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생명에 관심을 보이고 사랑의 봉사를 실천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신앙 공동체들은 다양한 종류의 사목 활동과 사회 활동을 통해서 생명을 지원하는 적절하고 효과적인 계획들이 수립되어 필요한 도움을 베풀어야 하고 이러한 일들을 위해 봉사의 소명을 증진시키는 교육 활동과 장기적 사업과 자발적 활동들이 수행되어야 한다고 촉구한다(「생명의 복음」, 87항 이하 참조). 무엇보다 '생명의 성역'인 가정이 생명친화적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초가 되고 견인차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면서 아울러 자연적 출산 조절 센터, 혼인과 가정문제 상담 기관, 약물 중독 치료 단체, 미성년자들과 정신질환자들을 위한 시설,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보호 구체 시설, 장애인들과의 연대협회, 노인들을 위한 복지 시설, 말기 암 환자들을 위한 봉사 활동 등이 생명친화적 기관들로서 설립되어 상응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를 요청한다(90항 이하 참조).

 

그리고 가톨릭 교회는 인구 폭발로 인해 야기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격과 인간의 기본권을 존중하지 않는 반자연적인 출산 통제 방법 일체를 반대하면서 결혼한 부부들이 완전한 자유 안에서 진정한 책임감을 지니고 출산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는 한편, 정부와 국제 기구들이 나눔의 경제 질서를 건설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부에 대한 더 많은 기회와 더 공정한 분배를 이룩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창조된 물건들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도록 보장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전세계적인 차원에서 생산품들을 참되게 공유하고 나누는 경제를 모든 국가적, 국제적 질서 안에서 건설함으로써 찾아야 합니다"(「생명의 복음」, 91항).

 

가톨릭 교회는 보편적 가치를 지닌 생명을 옹호하는 운동에 투신하는 데 있어 여러 다른 문화와 민족들의 전통과 관습 속에 있는 풍부한 행위와 상징들을 평가하고 선용하는 일도 적극 수행할 것을 촉구한다. 여기서 "새로 태어난 생명에 대한 기쁨, 개인 생명에 대한 존중과 보호, 고통받거나 곤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보살핌, 노인과 임종자에 대한 친밀함, 애통해 하는 사람의 슬픔을 나눔, 그리고 불멸성에 대한 희망과 열망 등을 표현하는 특별한 시기와 방식"(「생명의 복음」, 85항)을 활용하여 생명친화적 환경이 조성되도록 노력하라는 권고가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맥락 안에서 교회 당국은 모든 나라들이 '생명의 날'을 제정하여 생명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인정하는 계기가 형성될 수 있기를 건의한다.

 

한국 교회도 이러한 세계 교회의 입장에 부응하여 90년대에 들어서면서 여러 주교회의 위원회와 다양한 산하기관들을 통하여 낙태 반대와 사형제 폐지, 그리고 우리 농산물 살리기와 환경 보호 운동 등 생명 수호에 관한 세미나와 강연회 등을 적극적으로 개최하여 생명 존엄성에 대한 사회 일반의 각성을 제고시키는 한편, 여러 가지 실천 운동을 통해 생명친화적 환경 조성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해 오고 있다. 특히 1992년 10월 21일에는 교회 당국이 전개한 낙태 반대 운동에 서명한 1백만 이상의 참여자의 뜻을 담아 국회 의장을 방문하여 낙태 허용 범위에 관한 형법 개정안 제 135조의 삭제를 국회에 요청하는 청원서를 제출한 바 있으며, 같은 취지의 운동이 주교회의 가정사목 위원회를 주축으로 하여 전개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여러 교구들이 나름대로 환경보호 운동을 다양하게 전개하고 있다.

 

 

3. 21세기 생명 문화를 위한 가톨릭 교회의 과제

 

가톨릭 교회가 '생명의 복음'을 믿고 경축하며 생활하고자 노력하는 '생명의 백성'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임을 자임하는 가운데 인간 생명을 위시한 생명 일반과 자연 세계가 스스로 생겨나지 않고 생명의 원천인 하느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이라는 신앙에 정초하여 생명 일반의 고귀함과 신성성을 확신하고 있음을 개략적으로나마 소개하였다. 이러한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의 선물로서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요인 내지 세력들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며, '죽음의 문화'가 만연된 현대 사회 안에서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창출하기 위하여 신자들이 부과된 사명을 고유하게 수행하면서도 생명친화적인 다른 개인과 단체들과 연대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20세기말에 접어들면서 급속하게 발전하는 생명 내지 유전자 공학 기술에 의거하여 어느새 실험관 아기 탄생과 같은 체외 수정에 의한 생명 탄생이 상당히 광범하게 이루어지고 있고, 복제양 돌리 탄생 이래 복제 생명 현실화 노력이 더욱 가속화되고 있으며, 바야흐로 완성 단계에 이른 유전자 염기서열 해독을 통한 소위 '맞춤 인간' 생성 노력에도 박차가 가해지는 등 수태와 출산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재래의 생명 문화와는 성격이 판이하게 다른 생명 문화가 조만간에 형성될 조짐이 일고 있다. 이 새로운 생명 문화는 지금까지 인간이 생명 질서에서 취해 온 수동적인 입장에서 탈피하여 생명의 수태와 출산, 연장과 죽음의 과정에까지 개입할 수 있게 된 자신의 경이적 능력을 어떻게 능동적으로 발휘하는가에 따라 생명친화적이거나 반생명적 성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가톨릭 교회는 21세기에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래 현금까지 보여온 입장을 계속 견지할 것이다. 논자는 교회가 재래의 입장만을 반복하는 입장에서 한발 더 나아가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팽창하고 자원의 고갈이 예상되는 자연 세계 안에서 현 인류에게 주어진 이러한 초인적 능력이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는지의 가능성의 조건을 하느님의 창조와 인간의 자유를 가능하게 하는 구원역사(救援役事)에 대한 복음 진리와의 연관성 안에서 보다 깊이 구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모든 인간 생명, 특히 약자의 생명을 옹호하고 하느님의 같은 피조물로서 고귀하고 신성하기까지 한 다른 모든 생명체들과 공존상생하기 위한 길을 겸허하고 진지하게 모색해야 할 것이다. 인류의 공동선 증진과 세계 평화 실현을 위해 진정으로 노력하는 선의의 다른 모든 개인과 사회 집단들과 연대 하에 인류에게 주어진 경이적 능력의 선용을 위해 구도적 자세로 진실하게 노력할 때에만 21세기의 바람직한 생명 문화가 창출될 수 있을 것이다. 

 

논자는 인류가 21세기에 생명 문화를 꽃피우기 위해서는 인간에 의해 인식되고 지배되며 조종될 수 있게 된 모든 생명과 자연 세계를 하느님의 창조물로 이해하고 인간이 하느님의 뜻에 상응하여 역사 초기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거의 고착되다시피 한 '반생명적 지배-복종 관계의 죽음의 문화'를 지양하고 '새로운 형제자매적 친교 관계의 생명과 사랑의 문화'를 교회와 사회 안에서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한다는 평소의 지론을 여기서도 반복해서 강조하고자 한다(졸문, 앞의 글, 35면 이하 참조). 그래서 가톨릭 교회 당국과 구성원들 스스로 먼저 비복음적이고 반생명적인 소유와 지배 정향의 사고 및 생활 양식으로부터 나눔과 섬김 정향의 사고와 생활양식으로의 철저한 전환을 이룩함으로써 생명을 수호하는 과업 수행에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일 때에 비로소 반생명적 죽음의 문화가 생명의 문화로 지양되고 변형되는 놀라운 일이 현실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심상태 신부(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 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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