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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태아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 형법 개정안 제135조 폐지 서명 운동 주교단 성명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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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00

태아의 생명을 죽이지 말라


형법 개정안 제135조 폐지 서명 운동 주교단 성명서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간의 존엄성과 그 생명권의 불가침성, 인공유산의 죄악성에 대해서 우리 주교들은 1961년이래 30여 년 동안 이미 십여 차례 이상 교회의 입장을 밝혔고, 지난 1991년 12월 8일 인권주일을 기해 낙태는 분명 살인 행위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명 경시 풍조의 근원임을 천명하면서 인명 존중의 새 문화 창조를 모든 신자들과 선의의 국민들에게 호소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지난 4월 8일 입법 예고된 형법 개정안 제4장 '낙태의 죄' 중에서 제 135조(낙태의 허용 범위)는 제133조의 낙태 금지법을 무력화하고 낙태 허용을 일반화할 소지가 명백하기에 깊은 충격과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입법 공고 이후에 이미 여러 차례 주교회의 산하 위원회와 가톨릭 단체, 그리고 여러 종교 단체에서 그 부당성을 지적하였으나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상정되었기에 다시 한번 우려의 뜻을 모아 하느님의 법과 자연법을 거부하는 이 법안 개정을 즉각 중지하기를 촉구합니다.

 

형법 개정안 제133조에서 임신 중인 여자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현행 형법 제269조에서는 1만원)에 처함으로써 낙태법을 강화한 듯 합니다. 그러나 개정안 제135조 '낙태의 허용 범위'를 신설하였고, 산모가 건강을 위협받는 경우에는 기간의 제한 없이, 강간에 의한 임신 등 윤리적인 경우에는 20주 이내, 기형아 등의 우생학적 적용의 경우에는 24주 이내에 임신한 여자의 청탁이나 수락에 의한 낙태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이 조항들이 본질적으로 유신 체제 하에서 일방적으로 강요된 모자보건법의 그것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점과 낙태에 대한 정부측의 묵인과 방조가 근본적으로 변한다 하더라도, 입법 예고된 형법 제135조 '낙태의 허용 범위'는 임신 중인 여자가 원하기만 하면 어렵지 않게 낙태할 수 있는 '낙태의 정당화' 및 사실상 낙태죄 폐지로 너무 쉽게 이어질 수 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62년부터 시작된 인구 조절 정책을 위해 정부는 사실상 인공유산 시술을 묵인하고 방조해 왔습니다. 한국 보건 사회 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남편 있는 임신 가능한 15-49세 부인 중에서 1회 이상 낙태한 사람은 1964년 7%에서 매년 증가, 1991년에는 54%로 나타나고 있고 미혼 여성의 인공 유산이 날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들에 의한 유산이 전체 유산의 32.9%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자행되고 있는 인공유산의 숫자가 적어도 정상 출산의 2배가 넘는 150만 여 건에 이르러 인구비로 비교하여 볼 때 미국의 6배에 해당하여 전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의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중에 법적으로 허용된 인공유산은 전국 출산력 및 가족 보건 실태 조사에 의하면 1984년에 7.3%, 1988년에 8%에 불과했고 그 나머지는 현행 모자보건법 상으로도 허용되지 않는 경우였으나 형법의 저촉을 받는 낙태 행위는 거의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존재로서 그 존엄한 생명권을 아무에게도 빼앗길 수는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임신과 관련되지 않는 병이나 또는 자궁 외 임신으로 인하여 위독한 어머니가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치료나 수술로 태아의 희생을 묵인할 수밖에 없는 긴급 조치는 있을 수 있지만, 이러한 경우일지라도 태아를 고의로 죽여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우생학적 유전학적 이유로도 낙태를 허용할 수 없습니다. 만일 이를 허용한다면 생명의 질을 위해 생명 자체를 희생시키는 결과가 되며, 의사의 오판에 의한 정상 태아의 살해는 물론 성감별에 의한 무차별 낙태와 더 나아가 적자 생존에 입각한 살인 행위를 부채질하고 말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낙태는 모든 법의 원천인 자연법과 하느님의 법에 정면으로 위배됩니다. 때문에 어떤 실정법으로도 이를 용납해서는 안되며 또 용납될 수 있는 성질의 것도 아닙니다. 모자보건법과 개정안 제135조 낙태 허용 범위는 자연법과 하느님의 법을 거스르는 악법입니다. 그러한 악법은 지켜도 안되며, 더 나아가 어떤 형태로도 그러한 법을 만드는 일이나 옹호하고 선정하고 지지하는 일에 가담하거나 협력해서도 안됩니다. 자연법을 매장하는 사람은 자신을 매장하는 것입니다. 인류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자연법과 하느님의 법을 무시했던 사회는 결코 번영할 수 없었으며, 마침내는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졌다는 교훈을 우리 모두는 유념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인신매매, 강·절도, 폭행 등 온갖 범죄의 원인은 물질 위주의 가치관에서 오는 인명 경시 풍조이고, 그 근원은 바로 낙태입니다. 자신의 안락을 위한 극히 이기적인 낙태는 분명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도전하는 행위이며 살인으로서 개인과 국가를 근원적으로 파괴하는 죄악입니다. 인명 경시 풍조를 극복하고 건전한 사회를 이룩하려면 무엇보다도 잉태되는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인간 생명을 가장 존중하는 '생명 존중의 새 문화'를 창조해야 합니다. 정부는 이미 인구 감소를 개탄하는 선진국들의 현실을 보아서라도 미시적이고 무모한 가족계획을 중지하고 자연법적 출산 조절 방법인 올바른 자연 가족 계획법을 적극 펼쳐야 합니다. 또한 사실상 낙태를 자유화하는 형법 개정안 제135조를 삭제하고 낙태죄에 대한 형벌을 강화 시행해야 합니다. 아울러 적절한 청소년 성윤리 교육, 미혼모 보호 대책과 입양, 산부인과 의사의 생명 윤리 수호 의지의 강화와 적절한 의료 수가 현실화 등 일련의 체계적이고 적극적인 제도적 해결 방안을 강구해 나가길 간절히 촉구합니다.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인명 경시 풍조가 뿌리깊게 만연되고 있고 윤리 의식마저 쇠퇴해 가고 있는 사회 속에서 신자 본연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우리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우리가 먼저 회개하고 주님의 용서를 간구합니다. 무엇보다도 수백만 태아의 생명이 살해되고 있는 낙태 현실 앞에 자신과 민족이 범한 죄를 속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성령께 빛과 용기를 청하면서 인명 존중의 새 문화를 창조해 나갈 결심을 새롭게 하며, 형법 개정안 제135조의 입법 폐지를 위한 서명 운동에 다같이 참여합시다. 이에 함께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 주교들은 뜻을 합하여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의 축복을 기원합니다. 

 

1992년 7월 13일

한국 천주교 주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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