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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인간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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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1

인간 생명

 

 

문헌 1

신앙교리성, 인간 생명의 기원과 출산의 존엄성에 관한 훈령 "생명의 선물"(Donum Vitae), 1987. 2. 22.: 「사목」 112호, 1987. 7., 121-124면.

 

 

2. 인간에 봉사하는 과학과 기술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하셨다. 특히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지어내시고"(창세 1,27), 그들에게 "세상 만물을 지배하는" 권한을 주셨다(창세 1,28 참조). 기초 과학 연구나 응용 연구들이야말로 모든 창조물에 대해서 인간이 갖는 이런 권한의 한 가지 단적인 표현인 것이다. 과학과 기술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도록 온전한 인간을 향하여 발전을 도모할 때 참된 가치가 있다. 그렇지 않고는 그들의 존재 의미나 인간 발전의 의미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과학과 기술은 그것을 만들어내고 발전시킨 인간들을 통해서 그 올바른 목적과 한계성이 드러나도록 되어있다.

 

과학적 연구나 그 응용이 그 자체 도덕적으로 옳은 것도 그른 것도 아니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이다. 그렇다고 또 이들 과학적 연구나 응용의 도덕적 기준은 그 과학 기술의 효용성이라든지 당대의 사회 관념에 따라 결정되는 것도 아니다. 과학과 기술은 무엇보다 인간에게 봉사해야 하며, 또한 하느님의 의지와 계획에 따른 인간의 양도할 수 없는 권리와 참되고 온전한 선에 봉사하지 않으면 안 된다.

 

오늘날 급격히 발전하고 있는 기술적 발견들이야말로 바로 이런 기준에 대한 존중의 필요성을 그 어느 때보다 긴급하게 요구하고 있다. 양심이 결여된 과학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끌 뿐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발명하는 온갖 새로운 것들을 더욱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현대는 과거의 그 어느 시대보다도 이런 예지를 요구하고 있다. 더 높은 예지를 갖춘 사람들이 출현하지 않는다면 세계의 미래 운명은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3. 인류학과 생명 의학 분야의 기술 조작 

 

오늘날 생명 의학 분야에 제기된 문제의 해답을 분명히 밝히려면 과연 어떤 도덕적 기준들이 적용되어야 할 것인가?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먼저 육체적 차원의 인간 본성에 대한 적절한 견해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일치된 전체성'으로만 자기 실현이 가능하다는 진실된 본성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영혼과 맺는 본질적인 결합 때문에도 사람의 육체는 단지 세포 조직의 집합체나 신체기관들, 또는 그 기능으로만 고려되어서는 안 되며 또한 동물의 몸처럼 평가되어서도 안 된다. 곧 사람의 몸은 그것을 통해서 드러내보이게 되는 총체적 인간의 한 부분일 뿐인 것이다.

 

자연적 도덕률은 인간의 육체적이고 영적인 본성에 바탕을 둔 목적과 권리, 그리고 의무를 규정하고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법은 단지 생물학적 수준의 규범들을 한 묶음으로 만들어놓은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 이 법은 인간이 그의 삶과 행동, 특히 자신의 육체를 이용하는 행위를 집행하고 이를 조정하는 데 올바르도록 창조주께 받은 합리적 명령으로 보아야 한다.

 

이런 원리들에서 끌어낼 수 있는 첫 번째 중요한 결론은 인간 육체에 대한 개입이 단지 조직이나 기관, 그리고 그 기능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다른 수준에서 인간 그 자체에 관여하게 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것은 암시적이면서도 실제적인 면에서 도덕적 의미와 책임성에 관련을 맺고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세계 의학 총회에서 이를 강력하게 천명하였다. "모든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이루어진 절대적이고도 특이한 개별적 존재이다. 따라서 우리가 사람을 다룬다는 것은 몸 내부에서, 그리고 그 몸을 통해서 아주 구체적인 실체인 인간 그 자체를 만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존엄성을 높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밝힌 대로 "육체와 영혼으로 단일체를 이루는"(사목헌장, 14항) 인간의 주체성에 대한 보호를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직접적으로 치료 목적이 아닌 경우, 예컨대, 단지 인간의 생물학적 조건을 증진하려고 조작을 할 때 그 실시 여부를 결정하는 데 필요한 도덕적 기준을 발견하는 일은 바로 이런 인류학적 견지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응용 생물학이나 의학은 병들거나 불구가 된 사람들을 돕는 경우라든지 하느님의 피조물로서 그 존엄성을 높이고자 할 때, 그 인간 생명의 '완전 선(integral good)'을 위하여 함께 일하도록 되어있는 것이다. 어떤 생물학자나 의사도 그의 과학적 확신만으로 인간 생명의 기원과 운명을 결정할 수 있다고 그럴듯하게 주장할 수는 없다. 이 개념은 인간의 성과 출산에 관한 분야에서 특별한 방법으로 다루어져야 하는데 이것은 곧 남자와 여자가 사랑과 생명의 기본 가치를 실현하는 일인 것이다.

 

사랑과 생명 자체이신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에게 특별한 방법으로 그의 개인적 사귐의 신비와, 창조주이며 아버지로서 그의 사업에 관한 직무를 서로 나누도록 명하셨다. 이런 이유로 인간의 혼인은 하등 생물체와는 전혀 다른 결합과 출산 형태 속에 특별한 선과 가치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가치와 의미야말로 개인적 행위의 기본이며 도덕적 견지에서 볼 때 출산과 인간 생명의 기원에 대한 인위적 개입의 의미와 한계를 결정짓게 하는 일인 것이다. 

 

이런 개입들은 그들이 단지 인공적이란 이유 때문에 거부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 자체로는 학문으로서 갖는 의학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이런 개입들에 대해서는 하느님께 받은 생명과 사랑의 선물에 대하여 올바른 사명감을 깨닫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존엄성과 관련해서 도덕적 평가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4. 도덕적 판단을 위한 근본 기준 

 

인공적 인간 출산 기술과 관련한 근본적 가치는 다음 두 가지, 곧 생존하도록 부름받게 되는 인간 생명과, 혼인을 통해서 인간 생명이 전수되는 특별한 본성이다. 따라서 인공적 출산 방법들에 대한 도덕적 판단은 이 두 가치 기준에 따라 이루어지지 않으면 안 된다.

 

현 세상에서 구체적 삶을 시작하게 되는 인간 육체 자체는 그것이 인간의 전체 가치를 포함하지도 못하며 영원한 삶으로 부름받은 인간의 '최고 선(supreme good)'을 나타내주지도 못한다. 그러나 어떤 의미로 볼 때는 인간의 육체 또한 생명의 '근본 가치'를 지닌다고도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육체적 삶 속에서 인간의 다른 모든 가치가 생성되고 발전되기 때문이다. '수정에서부터 죽을 때까지' 무죄한 인간 생명권이 갖는 불가침성은 바로 창조주에게서 생명의 선물을 받은 인간에 대한 불가침성의 표징이며 또 요구이기도 하다.

 

우주에 있는 다른 형태의 생명들이 전수되는 것과 비교해서 인간 생명의 전수는 매우 특별한 성격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인간의 특수한 본성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인간 생명의 전수는 자연에 의해서 인격적이고도 양심적인 행위에 위임된 사항으로서 그것 자체가 하느님의 온전한 법(all-holy laws), 곧 모든 사람이 인식하고 따라야 하는 변할 수도, 범할 수도 없는 법의 대상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해서 누구든지 식물이나 동물의 생명을 전수하는 데 쓰이는 수단과 방법을 인간에게 사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이제 성적 관계를 거치지 않고도 실험을 거쳐 미리 남자와 여자에게서 취한 생식세포를 합치는 조작으로 출산을 가능하게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렇듯 인간 출산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 같은 이유로 도덕적으로도 수용할 수 있는 것이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그 최초 생성 단계에서부터 인간에 대한 기술적 개입들이 도덕적으로 옳은지 그른지를 평가하려면 생명과 인간 출산의 기본적 가치에 대한 이성적 판단이 불가피하게 되었다.

 

 

5. 교도권의 가르침 

 

교도권의 가르침은 이 점에서도 이 분야에 관한 인간 이성에 계시의 빛을 던져주고 있다. 곧 인간에 관해서 가르친 교도권은 여기에 당면한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해서도 그 해답이 되는 많은 요소를 지니고 있다. 수태되는 순간부터 모든 인간 생명은 철저하게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하느님께서 '그 자신을 위해 바라셨고' 개개인의 영성이 하느님에게서 '직접 창조됨'으로써 그 전체가 창조주의 모습을 간직한 지상의 유일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 생명은 성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초기에서부터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의 특별한 관계로 영원히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에도 그 스스로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를 주장하지 못한다.

 

인간 출산은 하느님의 풍부한 사랑으로 무장한 부부의 책임 있는 협동을 요구한다. 그리하여 인간 생명의 선물은 그들 인격과 결합에 부여한 법에 따라, 아내와 남편의 특별하고도 독점적인 행위를 통한 혼인 안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나지 않으면 안 된다.

 

 

문헌 2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1995. 3. 25., 34항.

 

34. 생명은 언제나 선한 것입니다. 이것은 본능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이며, 체험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왜 생명이 선한 것인지 그 심오한 이유를 깨달으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왜 생명은 선한 것일까요? 성서 곳곳에서 이 질문을 찾아볼 수 있으며, 첫 지면에서부터 이 질문에 대한 강렬하고 놀라운 대답이 주어집니다. 인간은 비록 진흙으로 빚어졌지만(창세 2,7; 3,19; 욥 34,15; 시편 103,14; 104,29), 이 세상에 하느님을 증언하는 존재이고, 그분께서 존재하신다는 표징이며, 그분 영광의 흔적입니다(창세 1,26-27; 시편 8,6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생명은 다른 살아있는 피조물들에게 주신 생명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이레네오 성인이 그분의 유명한 정의(定義) 안에서 강조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인간, 곧 살아있는 인간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인간은 그와 창조주를 결합시켜 주는 긴밀한 유대에 근거한 고결한 품위를 부여받았습니다. 하느님 당신의 영광이 인간 안에 반사되어 빛나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첫 창조의 이야기 안에서 인간을 하느님 창조 행위의 정상에, 무질서한 혼돈으로부터 피조물 가운데 가장 완전한 피조물로 나아가는 과정의 최고점에, 그 극치로서 배치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창조된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며, 만물은 인간의 지배를 받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온 땅에 퍼져서 땅을 정복하여라. … 모든 짐승을 부려라"(창세 1,28). 이것이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에게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내용은 다른 창조 이야기 안에서도 발견됩니다. "주 하느님께서 아담을 데려다가 에덴에 있는 이 동산을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여기에서 우리는 만물에 대한 인간의 통치권에 대한 명백한 긍정을 볼 수 있습니다. 만물은 인간의 지배를 받도록 만들어졌으며, 인간은 그것들을 돌볼 책임을 지고 있습니다. 반면에 인간은 결코 다른 인간들의 지배를 받고 거의 사물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지도록 만들어진 존재가 아닙니다. 

 

성서의 이야기 안에서 인간과 다른 피조물들 사이의 차이를 무엇보다도 잘 보여주는 것은, 하느님께서 특별한 결정으로, 곧 창조주와 구체적이고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게 하시려고 깊이 생각하신 결과로 인간이 창조되었다고 설명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습을 닮은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생명은 선물입니다. 이 선물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피조물과 어떤 부분을 공유하시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이 유대가 지닌 의미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했습니다. 집회서 역시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그들을 당신 자신처럼 여겨서 힘을 주시고, 그들을 당신의 모양대로 만드셨다."(17,3)는 사실을 알아보고 있습니다. 성서 저자는 세상에 대한 지배만을 이러한 형상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보지 않고, 이성, 선악의 구별 능력, 자유 의지들처럼 인간이 특별히 가지고 있는 정신적인 능력들도 그 형상에 속하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주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지식과 분별력을 풍성하게 주시고 선과 악을 분간할 수 있게 해주셨다"(집회 17,7). 

 

인간은 그를 창조하신 분, 참되고 올바르신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으므로(신명 32,4 참조), 진리와 자유에 도달하는 능력은 인간의 특권입니다. 모든 눈에 보이는 피조물들 가운데 오직 인간만이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생명은 단순히 시간 속에 실존한다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어떤 것입니다. 그것은 충만한 생명을 향해 나아가는 항해이며, 시간의 한계를 초월하는 그러한 실존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한 것으로 만드셨고 당신의 본성을 본떠서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23). 

 

 

문헌 3

요한 바오로 2세, "생물학적 실험"(Biological Experimentation), 1982. 10. 23., The Pope Speaks 28: 1호, 1983년, 74-75면.

 

여러분이 최근에 성취한 업적은 높은 과학적 가치를 지닐 뿐 아니라 종교적 관점에서도 매우 흥미롭습니다. 저의 전임자이신 바오로 6세께서는 1963년 10월 4일의 국제연합 연설에서 '인간에 대한 전문가'의 관점에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전문 지식은 교회 자체의 지혜와 연관되어 있지만, 자연과학이 점점 더 중요성을 차지하는 문화에서 나오는 것이기도 합니다. 

 

제가 1980년 6월 2일에 유네스코에서 연설하면서 언급하였던 말을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과학자 여러분에게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그것은 곧 '문화와 종교 사이에는 유기적이고 구조적인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교황청 과학원 연례 연구 주간을 맞아 1981년 10월 3일에 교황청 과학원에서 한 연설의 내용을 저명하신 과학자 여러분 앞에서 다시 한번 들려드리겠습니다. 

 

"저는 전 세계의 과학자 집단과 특히 교황청 과학원을 깊이 신뢰하며, 이들 덕택에 생물학의 발전과 연구가, 다른 모든 과학 연구와 그것을 기술적으로 적용할 때에도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인간의 존엄과 자유, 평등을 수호하면서 도덕성의 규범을 온전히 존중하며 이루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이어서 저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과학은 언제나 지혜와 함께하며 지혜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지혜는 인류의 영원한 정신적 유산이며, 하느님의 '말씀'을 통하여 선포되기 이전에 피조물에 새겨진 하느님의 계획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가장 참되고 가장 다양하게 표현되는, 인류의 가장 귀중한 유산인 과학과 지혜는 인간에게 봉사합니다. 교회는 그 본질적 사명에서 인간의 진보를 촉진하도록 부름받고 있습니다. 제가 저의 첫 회칙에서 썼듯이, "인간은 교회가 사명을 이행하면서 걸어가야 할 근본적인 길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교회의 주요하고 근본적인 길이며,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신 길입니다." 

 

인간은 또한 여러분에게는 과학 연구의 궁극적 한계입니다. 여러분이 고백하듯 과학의 직접적 대상이 장기와 조직을 지닌 육체라 할지라도, 완전한 인간은 정신과 육체를 지닌 인간입니다. 인간의 육체는 정신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정신도 육체와 분리될 수 없습니다. 정신과 육체는 깊이 결합되어 있고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정신과 육체의 본질적인 결합과 우주와의 간접적인 결합은 너무도 근본적이어서 모든 인간활동, 심지어 가장 정신적인 활동까지도 어느 면에서는 육체의 상태에 영향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육체 또한 최후까지 정신의 지시와 인도를 받습니다.

 

인간의 정신활동은 정신과 본질적으로 결합되어 있는 육체의 영향을 받는 개인의 인격 중심에서 나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따라서 정신생활에서 육체의 실재와 활동에 대한 지식을 증진하는 학문들은 매우 중요합니다. 

 

 

문헌 4

요한 바오로 2세, "환자도 인간입니다"(A Patient is a Person), 1980.10.27., The Pope Speaks 26: 1호, 1981년, 1-3면.

 

(…) 최근에 의술은 엄청난 발전을 하였고, 그에 따라 치료 목적의 개입 가능성이 현저하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의학의 개념 자체가 차츰 변화되어 가고, 의학의 역할도 예전의 질병 퇴치 기능을 넘어 인간의 전반적인 건강을 증진하는 기능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새로운 전망의 결과로 의사와 환자의 관계는 점차 출생에서 노년까지 사람들의 건강을 지켜주어야 하는 체계적이고 복잡한 형태를 띠게 되었습니다. 

 

어린이와 노인에 대한 보호, 학교와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의료 혜택, 직업병 예방, 산재, 정신 건강, 장애인과 약물 중독자와 정신병자 치료, 전염병 예방, 환경 관리 등 이 모든 면은 여러분이 의술을 실천할 때 요구받는 '인간에 대한 봉사'의 현대적 개념입니다. 

 

위에 언급된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의 생명권은 한 번도 온전히 인정된 것이 없다는 것을 이제는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여러분은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시대의 엄청난 역사적 발전을 나타내는 특징적 모습의 하나입니다. 

 

이러한 놀라운 발전 때문에 의학은 현대사회를 형성하는 데에 일차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상황을 전체적으로 조용히 주의 깊게 검토해 보면 모든 인간의 정당한 생명권을 침해하는 간교한 방법들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어떤 관점에서는 제가 회칙 「인간의 구원자」(Redemptor Homines)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부정적인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고까지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시대가 … 위대한 진보의 시대라고 한다면, 인간에게는 여러 양태의 위협의 시대로 보이기도 합니다. … 현 시대의 진보의 모든 단계가 주의 깊게 검토되어야 합니다. 그 진보의 각 단계가 일일이 투시되어야 합니다. … 물질 세계에 대한 인간의 지배권이 엄청난 진전을 가늠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의 지배권의 본질적인 맥들이 끊길 위험이 현실적으로 피부에 느껴집니다. … 여러 방도로 자신을 조종 - 비록 흔히는 그 조종이 직접 감지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 에 맡겨버릴 위험이 대두되고 있습니다."

 

 

의학을 지배하는 규범 

 

우리 시대의 두드러진 특징인 기술의 진보는 근본적인 모순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기술의 진보가 한편으로는 인간에게 자신의 운명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연을 분별력 있게 다스릴 한계를 넘어서려는 유혹에 빠지게 함으로써 인간의 고결함과 더 나아가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태롭게 합니다. 

 

생물학과 의학 영역에만 한정해 보더라도 우리는 인간의 생명권이 인공수정, 산아 제한, 피임(생식 억제), 냉동 보존, 인위적 생명 연장, 유전자 공학, 정신을 황폐화시키는 약물, 장기 이식 등으로 절대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과학적 지식은 자체의 고유한 법칙을 가지고 있으며, 그 법칙을 준수해야 하지만, 특히 의학 분야에서 인간 존중과 인간의 정당한 생명권 보호가 설정하는 침범할 수 없는 한계를 인정하여야 합니다. 

 

예를 들면, 새로운 연구 기술이 인간의 생명권을 해치거나 해칠 위험이 있다면, 그 기술이 단순히 우리의 지식을 더욱 축적시켜 준다는 이유만으로 그 기술을 허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과학은 다른 모든 것이 거기에 종속되어야 하는 최고의 가치가 아닙니다. 그보다 더 높은 가치는 모든 인간이 가지는 육체적 정신적 생명과 정신적 기능적 온전성에 대한 권리입니다. 인간은 모든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선과 악의 척도이며 기준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의 진보는 중립적 입장에 있다고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인간 존중에 바탕을 둔 윤리 규범이 모든 연구 단계와 연구 결과의 적용을 조명하고 통제하여야 합니다.

 

근래 들어, 의료 행위가 봉사해야 할 대상인 인간보다는 의료 행위 자체에 더 관심을 가짐으로써 가져오는 해로운 결과에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경종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정리

 

인간 삶의 모든 문제의 중심, 특히 생명공학으로 생긴 모든 문제의 출발점과 해결점은 바로 '인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무엇인지 다시 숙고해 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문제의 출발이자 해결점은 '인간 생명에 대한 올바른 인식'에서부터 비롯된다고 하겠다.

 

인간은 유일하게 모든 생명체 가운데 자신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삶을 영위하고,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는 존재이다. 이러한 인간의 능력은 자신의 생명에 대한 존엄성을 결정한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인간을 결코 어떤 목적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가톨릭 교회는 언제나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되었으며, 하느님과 직접적인 관계, 곧 오로지 하느님의 협조자로서의 관계에 있다고 가르친다. 무엇보다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되었고, 하느님의 생명을 나누어 가진 존재이기에 다른 무엇과도 비교될 수 없는 '존엄성'과 '고유성'을 가진다. 이러한 인간의 하느님과의 연관성과 인간의 초월적 개방성은 그리스도교적 인간관의 내적인 바탕이 된다. 그러므로 인간 생명의 기원과 목적 그리고 그 생명의 주도권(initiative)은 인간 스스로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있는 것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육신 생명은 인간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바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부여받은 고귀한 '선물'이다. 동양사상에서도 인간이 가진 '생명' 또는 '목숨'은 단순히 목숨만을 뜻하지 않고, 바로 하늘에서 '주어진' 것으로 가르친다. 이런 의미에서 예로부터 동양에서는 인간의 생명을 '천명(天命)'이라 했으며, 이는 곧 인간 생명이 '절대적'인 것임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생명은 물론 다른 사람의 생명을 어떤 이유에서든 해쳐서는 안 되며, 끊임없이 선물로 주어진 생명을 보호하고 가꾸어나가야 할 의무가 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지상생활 동안 천상생활을 그리워하면서 자신의 생명과 타인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보호하고, 수호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사목, 2003년 12월호,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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