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태아의 법적 권리, 어디서 어디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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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39

태아의 법적 권리, 어디서 어디까지?

 

 

1. 들어가는 말

 

일반적으로 태아(fetus)란 "체내수정을 통해 발생하고 나서 출생에 이르기까지의 기간"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임신 뒤 분만 때까지 모체 안에 살아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우리나라 민법 제3조에 따르면 사람의 권리능력은 출생을 통해서만 취득하므로 원칙적으로 태아는 권리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원칙을 관철하면 태아에게 불리한 경우가 생기므로 태아를 보호하고자 태아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는 입법 태도를 취하고 있다.

 

태아의 이익에 관한 한 모든 법률관계에서 일반적으로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보는 일반적 보호주의(과거의 로마법, 스위스법)와 우리 민법이 취하고 있는 개별적 보호주의(한국 민법을 비롯해 독일 민법, 프랑스 민법, 일본 민법), 곧 중요한 법률관계를 열거하여 이에 대해서만 태아가 출생한 것으로 보는 입법 태도가 있다. 우리나라는 개별적 보호주의를 취하여, 민법상 몇몇 사안에 한하여 태아에게도 그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2. 태아의 법적 지위에 대한 현행법 규정

 

(1) 민법상 태아의 법적 지위

 

①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제762조)

태아는 불법행위로 직접적인 피해자가 된 경우에는 손해배상의 청구권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② 재산상속(제1000조 3항), 대습상속(代襲相續, 제1001조), 유류분(遺留分, 제1118조)

태아는 상속순위에 관하여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따라서 태아는 재산상속, 대습상속, 유류분에 대해서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

 

③ 유증(遺贈, 제1064조에 의한 제1000조 제3항의 준용)

유언에 의하여 재산을 타인에게 무상으로 급여하는 단독행위를 유증이라고 하는데, 제1000조 3항의 규정은(유언에 있어) 수증자에 준용한다(제1064조).

 

④ 인지(認知)

부(父)는 포태(胞胎) 중에 있는 자(子)에 대하여도 이를 인지할 수 있다(제858조). 그러나 태아에게는 부에 대한 인지청구권은 없는 것으로 본다.

 

⑤ 사인증여(死因贈與)

사인증여는 증여자의 사후에 효력이 발생하는 증여 계약으로서 무상의 단독행위인 유증과 구별된다. 다수설은 사인증여에 대해서도 태아의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2) 형법상 태아의 법적 지위

 

형법상 태아의 법적 지위가 가장 문제되는 것은 '살인죄'의 경우이다. 살인죄의 행위 객체는 자연인인 사람인데, 이때의 사람은 생존 가치나 생존 능력을 불문하고 동일하게 취급된다. 사람이 행위 객체인 점에서 정자, 인공수정, 낙태시킨 태아에 대한 의학적 실험이나 유전 공학적 실험은 그 윤리성을 별도로 논한다 하더라도 현행법상 살인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인죄의 행위 객체라면 태아는 낙태죄의 행위 객체이며, 착상 전의 배아에 대해서도 외국에서는 이를 보호하는 특별법이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입법화되지 못하였다.

 

형법은 낙태죄를 규정함으로써 사람으로서의 생명 가치와 태아로서의 생명 가치를 차별화하는 것이 규범 현실이다. 이러한 생명 가치의 차별화가 종교적, 윤리적 관점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지만, 형법적 보충성의 원칙이 근저에 자리잡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취지에서 본다면 사람으로서 살인죄와 낙태죄의 행위 객체는 조산 뒤 태아의 상태 여하를 기준으로 하여 판단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그러므로 분만 개시 전에 인위적으로 출산한 태아라고 하더라도 생존 가능성이 있다면 살인죄의 객체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3. 태아의 권리능력 취득 시기

 

(1) 정지 조건설(停止條件說) 또는 인격 소급설(人格遡及說)

 

태아로 있는 동안에는 권리능력을 취득하지 못하지만, 뒷날 살아서 출생한 때에는 그 권리능력의 취득의 효과가 문제의 사실이 발생한 시기에 소급하여 생긴다는 견해로서, 태아인 동안에는 법정대리인도 있을 수 없다고 한다. 따라서 태아가 사산되더라도 타인에게 불측의 손해를 줄 우려는 없지만, 태아가 취득 또는 상속할 재산을 출생 전에는 보존 관리할 수 없다.

 

(2) 해제 조건설(解除條件說) 또는 제한적 인격설(制限的人格說)

 

문제된 사실이 발생한 때로부터 태아는 제한된 권리능력을 가지지만, 뒷날 사산한 경우에는 그때에 소급하여 권리능력을 상실한다는 견해로, 태아인 동안에도 권리능력이 인정되므로 법정대리인도 당연히 허용된다고 한다. 따라서 태아의 보호에는 유리하지만, 상대방에게는 불측의 손해를 줄 우려가 있다.

 

우리나라 판례는 정지 조건설(停止條件說)을 취하고 있다(대판76다 1365).

 

 

4. 교통사고에서 태아의 보상 문제

 

교통사고로 태아에 이상이 생겨 낙태했을 때 보험사로부터 사망에 해당하는 보상을 받을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은 법이 태아의 권리를 어디까지 보호하는지에 달려있다.

 

민법에 따르면 태아는 사람은 아니지만(제3조), 예외적으로 일정한 권리에 한해서는, 이를테면 교통사고와 같은 불법행위에 따른 손해배상청구권에 관해서는 권리의 주체가 될 수 있다(제762조). 따라서 직계존속의 신체 상해나 생명 침해에 대해 위자료를 청구할 수 있고, 또 자신에 관한 재산상 정신상 손해에 대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제750조). 다만 태아의 권리능력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포태가 장차 사람이 되는 것을 최소한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이렇듯 우리나라에서는 태아가 모체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때 출생했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태아로 있는 동안은 완전한 사람으로 보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따라서 보험사들은 임신부가 교통사고 등으로 낙태한 때는 원칙적으로 낙태수술에 드는 비용은 보상하지만 사람이 죽었을 때와 같은 보상은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태아는 보험보상이나 손해배상에 관한 한 아무런 권리도 없는 것인가? 우리 민법은 '태아는 손해배상 청구권에 관해서는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며 태아에게도 제한적으로 권리능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두 가지 판례가 눈길을 끈다.

 

<사례 1>

이 사례는 1993년 4월에 내려진 판례로, 교통사고로 아버지가 상해를 입은 사건에서 태아의 위자료 청구권을 인정한 내용이다.

 

당시 대법원은 "사고 당시 비록 태어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 뒤) 출생한 이상 (살아가면서) 아버지의 부상으로 인해 입게 될 정신적 고통에 대한 위자료는 청구할 수 있다."라며 보험사에 위자료를 보상하도록 했다.

 

<사례 2>

이 사례는 <사례 1>처럼 부모가 아니라, 태아 자신이 본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청구권을 인정한 경우이다. 1976년 9월에 내려진 이 대법원 판례는 태아가 모체 안에 있을 때 입은 사고로 정상아로 태어나지 못한 데 대해 사고 뒤 살아서 태어난 때에는, 사고 발생시기에 소급해 권리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며 역시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했다.

 

이 두 판례에서 공통점은 태아가 사고로 죽지 않고 살아난 경우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태아가 살아서 출생하는 경우에 권리능력이 인정되며, 태아가 사고로 모체 안에서 숨져 태어나지 못한 때는 보상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 태아가 모체와 함께 사망하거나 태아만 사망한 경우에는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의 주체가 될 수 없는 것이다(<사례 3> 참조).

 

다만 이런 경우에는 비록 태아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지만 태아 유산을 고려해 임신부에게 고액의 위자료를 물어주게 함으로써 간접적이나마 태아의 존재를 인정한 판례는 있다. 그리고 보험사들도 태아와 관련한 이런 판례에 따라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의 부인이 임신부이거나 사고를 입은 당사자가 임신부일 때는 분쟁 소지가 없게 태아에 대한 부분까지 합의를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한 사건의 판례를 몇 가지 더 소개해 본다.

 

<사례 3>

1996년 6월 서울지방법원은 박00 씨가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교통사고로 낙태를 한 박씨에게 통상적인 후유장애 보상금의 두 배에 가까운 위자료를 지급하도록 했다.

 

<사례 4> 

임신부가 행동을 조심하지 않아 갑자기 중앙선을 넘은 자동차에 부딪혀 태아가 사망했다면 임신부에게도 15%의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부산지법 민사 34단독 이범균 판사는 이00(여 부산시 사하구 다대 2동) 씨와 남편 최00 씨 부부가 박00(남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신정동) 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박씨는 이씨 부부에게 9백24만 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쌍둥이를 임신 중이던 이씨가 박씨의 처가 몰던 승용차에 부딪쳐 그 충격으로 태아 1명이 숨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고 이 때문에 임신 34주째인 태아를 잃은 자책감에 시달린 점이 인정되지만, 임신부는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데도 친척을 배웅하려고 차도에 내려와 있다 자동차에 부딪혔기 때문에 15%의 과실이 있다."라고 밝혔다.

 

재판부는 "의학적으로 이 같은 중대한 외상으로 태반이 자궁에서 떨어질 확률은 약 50%로 경미한 외상으로 인한 1-6%보다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 사고로 태아가 사망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라고 덧붙였다.

 

이씨는 쌍둥이를 임신한 지 34주째가 되던 지난 95년 12월 3일 경상남도 울산시 남구 달동 이면도로에서 친척을 배웅하다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달려온 박씨의 부인이 운전하던 갤로퍼 승용차에 부딪혀 병원에 10일간 입원했다가 퇴원한 뒤 태아 1명이 숨지자 소송을 냈었다.

 

<사례 5>

임신부가 교통사고를 당해 태아가 사망했다면 보험사는 태아 사망에 따른 위자료를 부모에게 지급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태아 사망에 따른 위자료 지급 범위를 그간 출산 도중 의료사고에서 교통사고 등 일반사고로 확대 해석한 것이다.

 

서울지법 남부지원 홍기만 판사는 지난 2003년 6월 28일 교통사고로 9개월 된 태아를 사산한 허00 씨 부부가 D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피고는 위자료 2000만 원을 추가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원고들이 교통사고로 태아를 사산하게 된 점 등에 비춰 원고들이 교통사고 가해자에게 받은 형사합의금 1000만 원을 참작하더라도 피고는 위자료를 추가 지급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홍 판사는 그러나 "원고들은 민법 제762조 '태아는 손해배상 청구권에 관해 이미 출생한 것으로 본다.'라는 조항에 따라, 태아의 독립권을 주장하나 이는 태아가 살아서 출생한 경우 사고 당시로 소급 적용, 부여한다는 의미이므로 출생 기회를 갖지 못한 경우까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손해배상 청구권은 기각했다.

 

임신한 지 9개월 된 허00 씨는 지난 2000년 11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화물차에 치여 전치 10주의 부상과 태아를 잃은 사고를 당해 보험사의 치료비와 가해자의 형사합의금을 받았으나 보험사를 상대로 추가 위자료 등 청구 소송을 냈었다. 

 

 

5. 맺는 말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인간 존엄'이라는 중요한 가치는 생명 보호를 전제로 할 때 실현될 수 있다. 곧 인간 생명이 있고 난 뒤에 비로소 '존엄', '인권', '행복' 등이 있을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인간의 생명은 절대적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그러기에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만 하는 것이다('생명 보호 절대의 원칙').

 

마찬가지로 다만 '태어나지 않은 인간' 또는 '생성 중인 인간'인 태아의 생명 또한 절대적으로 보호되어야 하며, 그것을 보호하고 수호할 의무는 국가에 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더라도 태아의 생명 보호가 없는 인간의 생명 보호란 있을 수 없다. 다시 말해 태어나지 않은 인간의 생명이 보호되지 않으면 태어난 인간의 생명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 존엄과 생명이 하나의 개념이듯이 태아와 인간도 하나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헌법 제10조의 선언은 바로 국가가 태아에 대해 매우 포괄적인 의무를 지닌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다. 우선 국가 스스로 태아의 생명을 침해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존중 의무), 나아가 태아의 생명을 보호하고 보살펴주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보호 의무). 

 

이 의무는 실정법의 모든 영역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그리고 국가의 보호 의무는 해당 법익이 헌법의 가치 질서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에 비례하여야 한다. 헌법에서 생명보다 높은 가치는 없다. 생명은 인간 존엄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모든 기본권의 전제가 되는 것이다.

 

[사목, 2003년 10월호,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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