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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사형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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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38

사형제도

 

 

사형제도는 또 다른 살인인가, 아니면 범죄 예방을 위한 국가의 사회보호 기능으로서의 필요악인가?

 

1963년 대법원에 이어서 1996년 헌법재판소는 사형에 대한 합헌 결정("사형은 죽음에 대한 공포와 범죄에 대한 응보 욕구가 맞물려 고안된 필요악으로 여전히 제구실을 하고 있다.")을 내리면서 "그러나 시대 상황이 바뀌면 사형은 폐지되어야 한다."라는 단서를 덧붙였다.

 

사형제도는 무엇보다도 헌법에 보장된 인간의 생명권을 국가가 박탈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에 의한 보복 살인' 또는 '제도적 살인'이다. 따라서 국가가 어떠한 명분으로도 주권 국민을 죽일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주권론). 엄격히 말하면 이것은 범죄자의 범죄행위 이전의 문제이다.

 

악을 행하는 자들과 범법자들을 벌할 국가의 권리는 사회의 질서와 정의를 유지하고 회복하는 데에 필수불가결한 것이고, 이것은 분명 공동선의 매우 중요한 측면을 이루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국가는 공동의 안녕을 비행이나 범죄의 위험에서 보호하고,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게 하는 '예방(Deterrence)', 법질서와 정의의 침해는 배상과 속죄를 요구하는 '응보(Retribution)', 범죄자들이 그들의 방식을 고치고 더 나은 인간이 되도록 교육시키는 '개선과 교정(Reformation)'을 위해서 형사재판권을 가진다. 그렇지만 국가의 형사재판권이 반드시 국민을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의 권리를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특히 오늘날 인도주의의 견지에서뿐만 아니라 형벌 이론의 모순에 따라서도 사형제도는 폐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형을 구형하거나 선고하는 것도 인간이 하는 것이므로 인간의 한계로서 오판의 가능성은 언제나 존재한다. 사형은 회복할 수 없는 형벌이다. 또한 사형이 집행된 뒤에 오판이 판명되더라도 전혀 회복하거나 구제할 방법이 없다. 실제로 오판은 사형집행 전이나 집행 후에도 많이 밝혀지고 있으며, 단 한 사람에 대한 오판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인간 생명의 존엄이라는 측면에서 사형제도는 마땅히 폐지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소중한 '생명'이 오판의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법의 판단에 따라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면 무엇으로 되돌려놓을 수 있겠으며 어떻게 보상해 줄 수 있겠는가?

 

극히 소수이기는 하나 일부 사형 존치론자들은 오판으로 무고한 생명이 죽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지만 전체에 비해서 그 수가 아주 적기 때문에 그러한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인간 생명을 한낱 숫자놀이 정도로 여기는 것이며, 오늘날 인간 생명을 경시하는 풍조의 대표적인 생각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사형은 보편적으로 인정된 인간의 생명을 무시하는 행위로서 가장 잔인하고 비인도적이며 불명예스러운 형벌이다. 사형으로 폭력을 이길 수는 없으며, 이는 보복과 복수를 우선순위에 놓는 행위일 따름이다. 그보다는 관용과 용서, 사랑과 정의의 실현으로 범죄자들이 진정한 회개를 통해 생명의 길로 나아가는 데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형제도 폐지 운동은 단순히 사형수들을 살려주자는 차원을 넘어 오늘날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생명운동'인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도에 대한 의견이 크게 달라지고 있다. 최근 들어 종교계(천주교를 중심으로 한 사형제도 폐지를 위한 범종교 연합)의 노력으로 국회의 과반수가 넘는 160여 명의 국회의원들이 사형제도 폐지를 위해 입법청원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 사형제도를 폐지하자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가고 있다. 더욱이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산하 사형제도 폐지 소위원회의 다양한 활동(가해자와 피해자 가족의 화해와 용서를 위한 모임, 각종 문화행사)과 노력으로 국민의 여론이 사형제도 폐지 쪽으로 거세게 불고 있다. 현재 사형제도 폐지에 찬성하는 사람이 51%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감형이 전제되지 않는 절대적 종신형이 그 대체형으로 도입된다면 사형제도 폐지에 동의하겠다는 사람이 70% 가까이 된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95년 3월 25일에 발표한 회칙 「생명의 복음」에서 "사회적 측면에서 보아 사형은 일종의 '정당방위'라고 하는 경우에조차도 사형제도에 대한 공적인 반대가 커지고 있다는 징후가 있다."(27항)라고 지적하고,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 된다."(56항)고 강조하였다. 그리고 1997년 제30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교황은 "악행을 저지른 자들이라 하더라도 어떠한 형벌이든 범죄자들의 양도할 수 없는 존엄성을 말살할 수는 없다."(5항)라고 하면서 "회개와 갱생의 모든 기회가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하고 천명하였다. 

 

나아가 제35차 세계 평화의 날(2002년 1월 1일)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정의가 없으면 평화도 없고 용서가 없으면 정의도 없다."라는 제목의 담화에서 이 시대의 평화를 위해 참으로 필요한 것은 정의와 용서하는 사랑임을 분명히 밝혔다. 이는 사형제도 폐지 운동이 단순히 사형수의 생명을 살려주자는 차원을 넘어 이 시대에 참으로 필요한 진정한 '생명운동'과 '평화운동'임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고귀한 존재이다(창세 1,26-27).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의 모상대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인간의 존엄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주이신 하느님 외에 그 어느 누구도 인간의 생명을 박탈하거나 조작할 수 있는 권리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국가, 또는 어떤 '권위'에 의해서 사형제도가 존속해 온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죽음의 문화'임에 틀림없다.

 

비록 인간이 어떤 이유에서든 죄를 짓기는 하지만 끊임없는 회개와 보속의 삶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과 용서를 체험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구원으로 불린 존재이기에 사형제도는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로서 분명 사회 속에서 사라져야 할 제도적 폭력이며 살인행위이다. 

 

3세기의 교부 성 이레네오는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의 영광은 살아있는 인간이다."

 

 

문헌 1

요한 바오로 2세, 「생명의 복음」(Evangelium Vitae), 56항.

 

사형문제는 바로 이러한 맥락 속에 놓여있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사형제도를 매우 엄격하게 적용하거나 완전히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사회와 교회 양쪽에서 커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형벌의 정의라는 맥락 안에서 보아야 하며, 더 나아가서는 인간 존엄성과의 일치라는 맥락에서, 따라서 최종적으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하느님의 계획과의 일치라는 맥락에서 보아야 합니다. 사회가 부과하는 처벌의 첫 번째 목적은 '범죄로 야기된 무질서를 바로잡는 것'입니다. 공권력은 범죄에 대해서 그 범죄자에게 적절한 처벌을 부과함으로써 개인적, 사회적 권리 침해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처벌은 그 범죄자가 자유를 다시 행사할 수 있는 조건으로 부과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권력은 또한 공공질서를 보호하는 목적과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는 목적도 완수하면서, 동시에 범죄자에게는 자신의 행위를 바꾸고 사회로 복귀할 수 있는 자극과 동기를 제공하게 됩니다.

 

이러한 목적을 이루려면 처벌의 본질과 범위를 신중하게 평가하고 결정해야 하며,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곧 다른 방법으로는 사회를 보호할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범죄자를 사형에 처하는 극단까지 가서는 안 된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오늘날 형벌제도를 꾸준히 개선한 결과 그러한 경우는 실제로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극히 드뭅니다. 

 

모든 경우에 새로운 「가톨릭 교회 교리서」가 설명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원칙은 계속해서 유효합니다. "만일 공격자에게서 사람들의 안전을 방어하고 보호하는 데 사형이 아닌 방법으로도 충분하다면 공권력은 그러한 방법만을 써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방법들이 공동선의 실제 조건에 더 잘 부합하기 때문이며, 인간의 품위에 더욱 적합하기 때문이다"(2267항).

 

 

문헌 2

뉴멕시코 주 주교들, "교정제도를 돌아볼 적절한 시기"(An Opportune Time to Review the Correctional System), Origins 26 : 36호(1997.2.27.), 586-588면.

 

국가는 공공질서를 지키고 공동선에 이바지한다는 맥락에서 범법자들을 처벌할 권리와 의무를 가지고 있다. 감옥에 갇힌 일부 죄수들은 흉악한 범죄를 저지르고 엄청난 고통을 불러온 이들이다. 그들은 여성들이나 어린이들과 같은 무방비의 무고한 사람들을 해치고 이웃과 공동체의 안전을 파괴하였다. 우리는 우리 사회에서 범죄 행위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치안의 임무를 지지한다. 사랑의 교역자들인 우리에게 흉악한 범죄의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은 특별한 관심의 대상이므로, 우리는 그들에게 연대를 약속하며 우리 직무의 치유의 손길을 뻗친다.

 

1995년 9월 19일, 우리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였다. 오늘 우리는 사형에 반대하는 우리 입장을 다시 강조하고자 한다. 미국 천주교 주교들과 연대하여 우리는 인간 생명의 가치와 존엄에 대한 우리의 투신을 생각한다. 우리는, 다시 사형제도에 의존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생명의 존엄을 더욱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라고 확신한다. 

 

위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실질적인 권고를 제시하는 바이다.

 

1. 가능한 모든 곳에서 위험이 낮은 범죄자들을 공동체 기반의 환경에서 다룰 수 있도록 조치를 확대한다.

 

2. 흉악범들과 그렇지 않은 범죄자들 그리고 사회 복귀 노력을 보이는 수감자들과 교정에 관심이 없는 이들을 구분하도록 권고한다. 모범이 될 만한 교정 공동체가 조성되어야 한다.

 

3. 행동 개선과 취급 프로그램뿐 아니라 실제적인 교육 프로그램들을 마련하여 그러한 교육을 받고자 하는 이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한다.

 

4. 상습 범죄 비율을 줄이려면 약물과 알코올 중독에 대한 효과적인 사회 복귀 프로그램들을 마련하여야 한다. 전국적으로 12단계 프로그램이 효과적인 것으로 판명되었으므로 모든 수감자가 이러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도록 조치할 것을 촉구한다.

 

5. 국가는 석방된 죄수가 그들의 가정이나 공동체에 원만하게 복귀할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고용과 주거, 후속 교육에 관한 고려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6. 교정부(Corrections Department)는 공동체에서뿐만 아니라 감옥에서도 피해자 인식 프로그램(victim awareness program)을 개발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려하여야 한다. 피해자 인식 프로그램은 피해자의 필요에 응답하고 피해자의 상처 치유는 물론 범죄자의 교정에도 이바지한다.

 

7. 우리는 협력적인 관계를 더욱 증진시킬 수 있도록 뉴멕시코 주의 교정부 공무원들과 종교 지도자들 사이의 대화를 요청한다. 이러한 교류에는 종교적 다양성에 대한 배려와 다른 상호 관심사들과 같은 영역들이 포함될 것이다.

 

[사목, 2003년 9월호, 이창영(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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