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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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안락사와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교회의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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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28

안락사와 연명 치료 중단에 관한 교회의 입장

 

 

1. 들어가는 말

 

의학 기술의 획기적인 발달로 생존 기간이 길어진 것 이상으로 죽음에 이르는 과정도 연장되었으며, 그 결과 이른바 식물 인간들이나 지속적인 고통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말기 환자들 같이 아무런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 특별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의 수가 점점 더 많이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삶을 지속시키기 위해 막대한 의료 비용을 사용하고 있으며, 본인은 물론 가족들과 주위 사람들은 큰 부담과 고통을 겪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하여 의사가 상황에 따라 연장이 가능한 인간 생명을 의식적으로 단념할 수 있는 경우가 존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직면하게 된다.

 

실제로 ‘대한의사협회’는 지난해 11월 29일 ‘임종 환자의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 지침’을 확정, 발표하였다. 이 지침은 현대 의학으로 치유가 불가능하며, 적극적으로 치료를 해도 일시적인 생명의 연장만을 기대할 수 있는, 사망이 임박한 환자를 ‘임종 환자’로 규정하여 환자 측이나 의사가 임종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권리를 인정하고 있다. 더 나아가 환자나 가족이 의사의 판단에 전혀 의미 없는 치료를 요구할 경우 의사는 ‘합당한 진료 기준’에 의거해 거절할 수 있고, 또 환자나 가족이 퇴원을 요구할 경우 의사가 이를 존중하도록 규정하였다. ‘대한의학회’는 이 지침은 사망이 임박한 환자에게 부가적인 고통만 초래하는 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하는 경우로 제한하고 있으며, 또 사망이 임박한 중환자의 생명 유지 치료를 유보 또는 중단하는 것이 환자를 방치하거나 포기하는 것이 아니며 임종 과정에 따른 불필요한 고통을 최소화하고 임종 환자의 품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므로 의료 윤리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이 지침은 필연적으로 안락사와 연명 치료 중단에 관련된 문제들이 담고 있는 도덕적 성격과 그 사회적 파급 효과를 진지하게 고찰할 현실적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2. 안락사에 관한 그리스도교 윤리적 고찰

 

교회는 안락사가 “질병의 고통이나 단말마의 고통을 없애려는 어떤 의학적 개입”으로서 “결국 극도의 고통을 종식시키기 위한 ‘안락 살해’(安樂殺害)를 의미하며 또는 가족과 사회에 너무 무거운 짐을 지울 수도 있는 정신 질환 및 불치병에 걸린 비정상아를 여러 해 동안 계속되는 비참한 생명의 연장에서 구제하기 위한 안락 살해를 뜻하는 보다 특수한 의미”1)라고 이해하고 있다. 이에서 보듯이 교회는 매우 협의적인 관점에서 안락사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다. 교회뿐 아니라 안락사의 개념은 대부분 직접적이고 적극적인 안락사, 곧 요구에 따른 살해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하여 안락사를 구분할 필요가 있는데, 일반적으로 간접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 소극적 안락사로 나누어진다.

 

1) 간접적 안락사

 

고통 중에 있는 말기 환자에게 그가 겪고 있는 엄청난 고통이 정상적인 사고 행위를 가로막고 인간적인 자유 의지를 빼앗아 버림으로써 인간적이지 못하게 만들어 버리므로 그러한 상태에 있는 환자가 인간적인 품위를 되찾고 정상적인 의식으로 되돌아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일이 반드시 요구된다. 따라서 이때는 적극적인 치료보다는 가능한 한 그 고통을 감소시키고 진정시키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큰 가치를 가지게 된다.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문제가 된다. 왜냐하면 고통을 줄이기 위한 시도, 예를 들어 진통제 사용과 같은 치료들이 오히려 환자의 죽음을 재촉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통제를 투여하여 환자의 사망을 유발시키거나 촉진시킬 확률이 매우 높아진다고 하더라도, 그 의도가 환자의 고통을 덜어 주려는 것이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와 같이 어떤 고통을 덜기 위한 행위가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으로 죽음을 앞당길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를 행하여 생명을 단축시키는 행위를 간접적 안락사라고 말한다.

 

교회는 환자의 생명을 단축할지도 모르는 위험이 있으나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켜 주기 위하여 취하는 행위를 의사의 임무에 속하는 행위로 보아 안락사의 범주에조차 넣지 않고 있다. 또한 “다른 방법이 없다면, 그리고 주어진 여건 안에서 그것(마취제 사용)이 여타의 종교적 윤리적 의무를 이행할 수 없게 만들지 않는다면 허용한다.”라고 교황 비오 12세는 표명한 바 있다. 이처럼 극단적인 고통의 경우에는 부작용으로 생명이 단축되더라도 진통제나 마취제의 사용을 허용하는 사실에서 볼 수 있듯이 교회도, 다른 많은 전문가들과 마찬가지로 간접적 안락사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

 

2) 적극적 안락사

 

적극적 안락사는 불치의 병으로 인하여 도저히 살아날 가망이 없는 환자가 견디기 어려운 신체적 고통에 시달리고 있을 경우 그 고통에서 벗어나려는 환자의 요청에 따라 인위적인 조치로 직접적인 죽음을 초래케 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대하여 교회는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무후한 인간 존재, 갓 잉태된 태아든, 좀 자란 태아든, 어린이든, 어른이든, 노인이든, 불치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이든, 죽어 가는 사람이든 결코 인간의 살해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고히 천명한다. …… 어떠한 권위라도 그러한 행위를 합법적으로 권고하거나 용인할 수 없다. 그것은 하느님의 법을 침해하는 문제이고 인간 존엄성에 대한 모욕이며 생명을 거스르는 범죄요 인간성에 대한 공격이기 때문이다.”2)라는 말로 이른바 적극적 안락사를 분명하게 거부한다.

 

일반적으로 인간의 존엄성을 안락사의 근거로 내세우는 사람들은 인간 생명의 본래적 가치를 부정하고 개별적인 인간 생명의 가치를 개인적으로 향유할 수 있는 능력과 사회적인 유용성에 따라 판단한다. 그리하여 더 이상 유용하지 않으면 고통을 받는 생명을 ‘살 가치가 없는 생명’으로 간주하여 그것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윤리는 인간 생명이 그것 자체로 존엄성을 지니는 이유로 인간이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다는 점을 든다. 곧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상응한 방법으로 응답하는 존재를 원하시어 창조하신 인간은 필연적으로 하느님께 상응하도록 창조되었으므로 인간 생명은 존엄성을 지닌다. 따라서 인간 생명은 어떤 상태에 있든지 간에 그것 자체로서 가치를 지니며 사회적 유용성이나 특별한 성취 능력에 대한 증명을 통한 정당화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이다. 모든 인간 생명은 비록 편안한 삶을 누릴 수 없고 사회에 아무런 기여도 할 수 없다 하더라도 똑같은 가치와 권리를 가지고 있고, 사회는 바로 개인의 생존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떠한 상태에 있는 생명이라 할지라도 불가침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이것은 항상 존중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적극적인 안락사의 허용은 인간 존엄성을 보존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인간 생명의 신성함을 해치는 행위인 것이다.

 

안락사에 관한 오늘날의 논쟁은 심한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말기 환자들 가운데서 많은 사람들이 진실로 죽음을 원하고 있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곧 통증 완화가 안락사를 원하는 중요한 동기라는 주장이다. 통증의 문제는, 특히 건강한 사람들로부터, 자주 과대 평가되고 있다. 그들은 고통에 대한 공포를 가지고 있으며 안락사로써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환자가 적극적 안락사를 요구하는 동기 가운데 통증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연구 결과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는다. 안락사가 합법화된 네덜란드에서 나온 한 보고서와 안락사를 찬성하는 사람들이 많은 미국의 워싱턴 주에서의 어떤 조사에 따르면 말기 환자 중에서 안락사를 요청한 사람의 3분의 1 이하만이 안락사의 선택 이유로 통증 완화를 들었다고 한다.3) 그리고 통증을 일시적으로 완화시켜 주는 치료를 받거나 따뜻한 상담과 우울증 관련 약물 치료를 받고 난 후 많은 환자들에게 심리적인 변화가 일어나 안락사에 대한 흥미를 잃는다는 연구 결과들도 있다. 따라서 안락사의 허용보다는 환자들이 그것을 요구하는 그 너머에 무언가가 감추어져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살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요구를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상응하는 도움으로써 환자가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진력하여야 한다.

 

3) 소극적 안락사

 

오늘날 급격한 의학 기술의 발달은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소생시키기도 하고 인간의 생명을 연장시키기도 한다. 새로운 의학 기술의 가능성들은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기는 하였지만 다른 많은 시한부 환자들에게는 죽음에 이르는 과정만을 효과적으로 연장시켜 주는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이 고통이 따르며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만 하는 특정한 치료 행위를 단념하거나 이미 시작된 치료를 중단하는 이른바 소극적 안락사를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소극적 안락사란 말기 환자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음에도 인간 생명의 무의미한 연장을 피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치료 행위를 단념하거나 중단함으로써 초래되는 죽음을 말하는데, 이것은 환자를 사실상 죽도록 내버려두려는 것이 아니라, 사려와 분별에 근거한 합리적인 과정에 따라 적절하게 의학 기술을 사용하여 죽음의 과정을 필요 없이 늘리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도, 교황 비오 12세가 1957년 의사들과의 담화에서 언급한 내용에 기초하여, 인간적 품위를 지니는 죽음을 맞이하고자 하는 인간적 권리의 존중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경우 - 소극적 안락사라는 용어의 사용은 피하면서 - 환자의 조건으로 보아 더 이상 특수 치료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 그 특수 치료 사용의 포기를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양 공급, 수혈, 주사 등과 같이 생명을 유지시키기 위한 기본적인 치료와 정상적인 간호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담화에서 교황 비오 12세는 보편적 방법(ordinary means)과 특수한 방법(extraordinary means)이라는 개념을 구분하여 사용하였는데, 이러한 구분은 오늘날에는 용어 자체가 지니고 있는 모호성과 의학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불분명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어떤 행위의 궁극적인 의미는 단지 성취 가능한 목적, 다시 말해서 환자를 위한 결과에서 생겨나기 때문에 동일한 치료 방법도 환자가 지닌 문제에 따라 보편적 방법이 될 수도, 또 특수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같은 인공 호흡기를 사용하더라도 치료가 가능한 환자에게는 보편적인 치료가 되고 회복이 불가능하며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경우에는 단순히 생존을 연장할 뿐 실제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특수한 치료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구분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하여 균형적 방법, 불균형적 방법이라는 말을 소개할 필요가 있다.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그와 같은 치료 방법들을 사용할 때에 사용된 수단과 의도한 목적 사이에 적절한 균형이 존재할 때에, 균형적이라고 판단한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이 존재하지 않을 때에는 불균형적이라고 간주한다. ‘사용될 치료법의 유형, 그 복합성과 위험의 정도, 그 사용 가능성과 비용을 검토하고, 이러한 요소들을 기대될 수 있는 결과와 비교하고, 병자의 상태와 병자의 신체적·도덕적 자력(資力)을 참작하여, 그 수단들에 관한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것이다.’”4) 그렇지만 치료 방법을 결정할 때에 어느 정도까지 그 수단을 사용하고 그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적당한가를 판단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4) 연명 치료의 중단

 

그러나 특수한 방법을 통한 생명의 연장을 중단할 수 있다는 입장이 도덕적으로 정당하려면 다음 세 가지의 조건이 전부 채워져야 한다.

 

첫째로 건강을 회복할 희망이 전혀 없어야 한다. 건강이 회복되어서 잠깐이라도 정상 생활을 할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입증되어야 한다. 둘째로 그 치료가 환자와 가족에게 크나큰 고통을 주지 말아야 한다. 건강을 회복할 작은 희망이 있을 때라도 의학적으로 가능한 방법은 모두 사용할 것이 아니라 환자 가족의 인간적인 면을 전부 고려하면서 가능한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셋째로 환자의 자율성을 존중하여야 한다. ‘모든 사람들은 자유를 행사할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그들이 자유로운 도덕적 존재’임을 인정하는 자율의 개념은 인간 존엄성과 관련이 있다. 여기에는 자신의 신상에 대한 결정을 내릴 권한과 자기 자신의 동의 없이는 그 어떠한 행위도 자신에게 가해지지 않게 할 권리가 포함된다.

 

따라서 스스로 결정한 능력을 완전히 갖추고 있는 환자가 어느 특정한 치료를 했을 경우와 그것을 거부했을 경우에 나타날 수 있는 결과에 대하여 의사로부터 의학적 설명을 들은 후에 자신의 의사에 의하여 스스로 내린 결정은 존중되어야 한다. 완치될 가망 없이 장기간의 치료를 받음으로써 수반되는 고통이나 신체적 쇠약함을 겪고 싶지 않아서 치료를 거절하는 경우에도 이 결정은 자유로운 행위자의 책임감 있는 도덕적 결정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아무리 어떤 치료가 환자의 생명과 복지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며 시도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 치료를 환자에게 강요할 수는 없다. 의사는 그 환자의 병이 치료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환자에게 치료를 받을 경우와 거부할 경우에 생길 수 있는 결과에 대해서 정직하고도 분명하게 설명해 주는 것만으로써 도덕적 의무를 다한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치료 거부를 승낙한다 함은 환자가 자신의 의지와 상반되는 치료를 강요받지 않을 권리를 존중받는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의사는 환자가 결정을 내리는 데에 있어서 자신의 전문 지식에 근거하여 질병의 결과나 고통으로 인하여 환자의 판단 능력이 제한되었거나 환자의 의식이 흐려 있지 않은가에 대하여서는 판단하여야 한다. 만약에 그것이 사고의 결과로 인한 의식 불명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커다란 고통으로 인한 심각한 불안감에 의한 것이든, 또는 질병의 마지막 단계에 이르러 환자의 의식이 쇠퇴했기 때문이든지 환자가 스스로 결정할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확실한 것으로 증명되면 계속되는 처치에 대한 결정은 의사에게 있다. 의사는 단지 생명을 구할 수 있는 참된 기회가 존재할 경우에만 이 기회를 이용할 수 있다.5) 이러한 관점에서 ‘임종 환자의 연명 치료 중단에 대한 의료 지침’에서 사망이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임종 환자’의 경우 환자 당사자나 가족이 치료를 요구하더라도 의사가 ‘합당한 진료 기준’에 근거해 거절할 수 있도록 한 규정이나 집중 치료가 도움이 되지 않는 환자의 중환자실 입실 거절을 허용한 것은 의사의 권리와 의무를 명백히 위반하는 행위로서 윤리적으로 문제가 된다.

 

의식이 없어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환자의 경우에 의사는 진단과 예후, 그리고 환자 가족들과의 대화를 통해서 환자의 구체적인 의지를 추측하여 치료 여부를 결정하여야 하는데, 이때 가끔 가족들의 관심사에 반하여 행동하여야 할 상황이 생겨날 수도 있다. 이때에도 의사는 가족들에게 환자와 관련된 모든 의학 정보를 알려 주어야 한다.

 

어쨌거나 소생의 가망이 전혀 없어 보이고 생명의 연장이 희망이 전혀 없는 고통만을 의미하는 경우 생명을 연장하는 조치들은 거부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행하고 있는 치료를 중단하거나 생명을 유지하는 조치들을 제거하는 것은 치료를 애초부터 단념하는 것보다 윤리적·심리적 부담을 더 많이 받는다. 그러므로 조치를 취하기 이전에 그러한 행동이 의미 있으며 필요한가를 신중하게 숙고하여야 한다. 물론 치료의 중단이나 호흡기의 제거에 따른 사망은 그 행동 자체가 죽음의 원인이 되는 행동은 아니기 때문에 타살이라고 하기보다는 질병에 따른 자연적인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개인의 권리를 행사하기 위하여 치료를 중단하는 것은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

 

원칙적으로 어떤 조치는 그것이 지향하고 있던 목적에 더 이상 도달할 수 없으면 중단되어도 좋다. 특수한 치료 방법들의 목적은 단순히 생명을 기계적으로 연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시켜 주는 데에 있는 것이다. 확실히 불리한 예후가 증명되었을 경우에는 환자의 동의를 받아 유용하지 않게 되어 버린 치료 방법을 중단하는 것이 허용된다. 인공 호흡기나 신장 투석 등과 같은 특수한 치료가 환자의 상태를 치료하거나 개선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서서히 악화되는 병세와 죽음을 지연시켜 주는 것뿐이라면 중단되어도 좋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아무런 의미가 없이 고통이 따르며 인위적으로 생명을 연장하기만 하는 특수한 치료 행위를 단념하거나 중단하는 연명 치료의 중단은 세 가지의 조건이 완전하게 충족된다면 윤리적으로 허용될 수 있다. 왜냐하면 환자는 그에게 숙명적으로 다가오는 고통 외에 참된 회복과 의미 있는 생명의 연장에 대한 전망 없이 인간의 손에 의해 추가되는 고통, 곧 더 큰 고통이나 고통의 시간의 단순한 연장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극적 안락사의 개념이 부당하게 확장되어 개별적인 인간 생명의 가치를 사회적인 유용성에 따라 판단하려 한다면 이것은 분명하게 거부되어야 한다.

 

 

3. 나가는 말

 

안락사와 연명 치료 중단을 찬성하는 사람들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논쟁의 핵심은 인간적 품위를 지닌 죽음에 관한 것이다. 이것을 찬성하는 사람들은 삶의 질이 중요한 것이므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는 보장되어야 하며, 극심한 고통이 인간적 품위를 방해하므로 편안하게 죽을 수 있는 선택권을 환자가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극도로 고통받는 사람은 생존의 가치와 의미가 없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의 생명을 유물론적 사고에 근거하여 무가치하다거나 무의미하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견디기 어려운 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경제적이거나 기타 다른 면에서도 이득이 없는 생명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인간 생명으로서의 존엄성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하여 반대하는 사람들은 생명의 존엄성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되어야 하므로 비록 극심한 고통이 있더라도 환자 스스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을 자신의 실존적 삶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이면서 온전한 자유와 책임감을 함께 갖춘 온전한 의식으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이 인간적 품위를 지니고 죽는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죽을 권리란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의미 없는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끝낼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유한성과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어떠한 대가를 치른다 하더라도 한 생명을 연장시키려는 노력과 그에 상응하는 도움의 행위를 포기해야 한다는 것을 뜻할 수는 있다. 여기서 어떤 생명이 자연적인 모든 힘을 소진하였는가,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한 책임이 남아 있는가, 또는 그가 자신 스스로와 그리고 하느님과의 평화를 찾았는가 하는 것이 판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러므로 죽을 권리, 다시 말해서 죽음에 대한 인간의 진정한 권리란 자기 스스로 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 죽음을 선택하여 실행할 수 있는 권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존엄성을 지니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는 권리를 말하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인 고통, 특히 삶의 마지막 순간에 겪는 고통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 안에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죽음은 회피할 수 없는 현존이며, 동시에 죽음은 불멸의 생명으로 문을 연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코 죽음의 시간을 재촉하지 않으면서 온전한 책임과 존엄성을 가지고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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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교황청 신앙교리성, “안락사에 관한 선언문”, 한국가톨릭의사협회 편, 「의학 윤리」, 수문사, 1992년, 468면.

2) 위의 책, 468-469면.

3) 제임스 F. 키넌, “안락사의 두 가지 사례”, 「사목」 240호(1999.1.), 138-139면 참조.

4) 교황청 보건사목평의회, 「의료인 헌장」, 가톨릭중앙의료원 옮김, 가톨릭대학교 출판부, 1995년, 64항.

5) 케넷 케어론, 「의료 윤리」, 김희수 옮김, 기독교문서선교회, 1998년, 63-64면 참조.

6) 교황청 신앙교리성, 앞의 책, 471면.

 

[사목, 2003년 2월호, 구경국(부산교구 영주 천주교회 주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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