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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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자연주기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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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18

자연 주기법

 

 

1. “자연 주기법과 피임이 다른 이유”

 

…… 부부들이 하느님의 창조 활동에 동참하는 사랑의 행위의 ‘진리’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더욱 자세히 연구함으로써 모든 사람이 도움을 받기를 바랍니다.

 

부부 행위의 진리는 그것이 배우자들의 상호 자기 증여의 표현이라는 데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로서 완전하기 때문에 이러한 증여는 전적인 것입니다. 부부들은 사랑을 표현하는 행위를 통하여 자신의 전 존재로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주도록 부름 받습니다. 자기 존재의 어떠한 부분도 이러한 증여의 행위에서 제외될 수는 없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피임이 본질적으로 위법인 것입니다. 피임은 이러한 상호 증여에 실질적인 제한을 가져오며 부부 행위의 두 가지 의의, 곧 일치의 의의와 출산의 의의 사이의 “불가분의 연관성”을 깨뜨립니다. 이러한 두 의의는 교황 바오로 6세께서 지적하셨듯이, 하느님께서 인간의 본성에 새겨 놓으신 것입니다(「인간 생명」, 12항).

 

위대한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이러한 맥락에서 ‘책임 있는 출산’을 위한 자연 주기법의 사용과 피임의 ‘본질적인 차이’를 강조하셨습니다. 이 차이는 최종 분석에서 인간 성(性)에 대한 서로 조화될 수 없는 두 개념이 관련되기 때문에 인간학적 차이입니다(「가정 공동체」, 32항 참조). 

 

자연 주기법을 그 본연의 윤리적 차원에서 분리하여 단순한 기능적 측면에서만 고려하는 것이 오늘날 흔히 볼 수 있는 사고방식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자연 주기법과 인공 피임 사이의 심오한 차이를 더 이상 인식하지 못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자연 주기법이 마치 또 다른 형태의 피임인 것처럼 말하기에 이릅니다. 그러나 자연 주기법은 분명히 이런 식으로 생각하거나 적용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연 주기법은 남편과 아내의 상호 증여의 논리 안에서만 올바르게 이해되고, 사랑과 생명의 실제적인 상호 친교의 바른 표현으로서 진정하게 실천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절대로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질 수 없으며, 하물며 결코 ‘즐거움’의 수단은 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바로 모든 행위의 목적이며 또 반드시 그러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 그 행위는 인간의 참된 존엄에 부합하게 됩니다.” (“Letter to families”, 12항)라는 말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특히 현재와 같은 사회적 상황에서 부부들이 혼인과 관련된 도덕 규범들을 따르고 바르게 이해하면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어려움을 잘 알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교회는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부들을 돕기 위하여 다가갑니다. 그러나 교회는 그들의 사랑의 진리를 온전히 존중할 때만 문제의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움으로써 부부들을 돕습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영혼들에 대한 사랑의 최고 형태를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가르침을 절대로 손상시키지 말 것”(「인간 생명」, 29항)이라고 권고하십니다.

 

교회는 부부들이 그리스도께서 구원을 통하여 주신 은총의 수단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늘 새로운 확신을 가지고 이 방법들을 사용하도록 권고합니다. 교회는 특히 부부들에게 그들의 특별한 성사의 효과를 통하여 그들 마음에 오신 성령의 은총을 간청하는 기도를 하도록 권고합니다. 이 은총은 부부애의 진리에 따라야 할 의무를 비롯하여 부부의 신분으로 지켜야 할 여러 의무를 다하는 데 필요한 내적 원천이 됩니다. 또한 교회는 과학자와 의사, 의료 종사자, 그리고 사목 일꾼들에게 부부들이 그들의 소명을 다하는 데 모든 도움을 줄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간절히 부탁합니다(「인간 생명」, 23-27항 참조).

 

[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연 주기법과 피임이 다른 이유”, Origins 27, 40호(1998.3.27.), 680면.]

 

 

2. 교황 권고 「가정 공동체」

 

이런 관점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분명히 다음과 같이 확언하였다. “그러므로 부부의 사랑과 생명 전달의 책임을 조화시키는 행동 방식의 도덕성은 순수한 의향이나 동기 평가에만 달린 것이 아니다. 그 도덕성은 인간의 본성과 그 행위의 본질에서 이끌어 낸 객관적 기준, 곧 참 사랑이라는 맥락 안에서 상호 증여와 인간 출산의 온전한 의미를 보전하는 그러한 기준으로 결정되어야 한다. 이것은 부부가 순수한 마음으로 정덕을 닦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사목헌장, 51항).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인간의 임무는 자연적이며 현세적인 것에만 관계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이며 영원한 것에도 관계되는 것”이라는 안목에 출발점을 두고서 이렇게 선언하셨다. 교회의 가르침은 “일치의 의의와 출산의 의의를 결부시키는 불가분의 연관성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두 가지 의의는 모두 부부 행위 속에 내포되어 있으며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인간이 고의로 이것을 파괴할 수는 없다.” 그리고 교황은 결론적으로 “부부 행위에 선행하거나 동반하거나 그 필연적인 결과로서 피임을 목적으로 삼거나 강구하는 모든 행위는 내재적 부도덕 행위로서 배제되어야 한다”고 재삼 강조하셨다.

 

부부가 불임 주기법을 사용해서 성행위가 가지는 일치와 출산의 의의 사이의 불가분적 관계를 존중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계획의 “집행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조작이나 변조 없이 완전한 자기 봉헌의 본래의 역동성에 따라 성에서 “혜택”을 받을 것이다.

 

수많은 부부의 경험과 다양한 인간 과학이 제공하는 자료에 비추어 신학적 사색을 통해서 출산 주기법과 산아 제한법 사이의 인간학적 또는 도덕적 차이점을 파악하고 더욱 연구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 차이점은 보통 생각하는 것보다 더 크고 깊은 것이고, 최종적으로는 인간 인격과 인간의 성이란 두 개의 융화하기 어려운 개념에 관련된다. 자연적 주기의 선택은 인간, 곧 여자의 주기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대화, 상호 존중, 책임의 나눔과 자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주기를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것은 부부 일치의 영신적 육체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이고 충실의 요구대로 인격적 사랑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는 부부 일치가 육체적 차원을 포함한 인간적 성의 내적 요체를 이루는 부드러움과 애정의 가치로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이 참되고 완전한 인간의 차원에서 존중되고 촉진되며, 결코 “대상”으로서 “이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인간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깊은 상호 행위의 지평에서 하느님의 창조를 침해하거나 영혼과 육체의 인격적 일치를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32항).

 

[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가정 공동체”(1981.11.22.), Vatican Council II, 제2권, 840-841면.]

 

 

3. “자연 주기법” 

 

…… 일련의 연수회를 통하여 여러분은 능력 있는 전문가들로부터 인간의 신체와 가임 주기, 산아 제한에 대한 윤리적 개인적 동기, 하느님의 섭리에 따라 혼인을 이해하고 혼인 생활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인간의 육체적 정신적 조건에 관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가르침의 전달

 

…… 「가정 공동체」에 나와 있듯이, “도덕 질서란 창조주 하느님의 계획을 드러내고 제시하는 것인 까닭에, 인간을 해치는 것, 비인격적인 어떤 것일 수는 없습니다. 반대로, 도덕 질서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인간의 가장 심층적 요구에 대응함으로써, 하느님의 모든 피조물을 행복을 향하여 고무하고 유지하며 기도하실 때 보여 주시는 섬세하고 일치시키는 사랑을 동원하면서 인간의 완전한 인간성에 봉사하고 있습니다”(34항).

 

…… 여러분의 임무는 분명히 어려운 것입니다. 책임 있는 부모가 되기 위한 자연 주기법에 관한 정보와 지식은 올바른 인간학에 바탕을 두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제심을 위한 교육과 정결의 존중, 본능적인 충동과 감정적 이끌림을 승화시켜 줄 수 있는 사랑의 영적인 차원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자제심은 금욕을 감수하는 참된 개인의 사랑의 표현과 상호 이해와 인내라는 최종적 특성을 가집니다. 

 

정결의 증거

 

혼인과 그에 따른 성(性)생활을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비추어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빛을 비추고, 정화하고, 승화하고, 구원하는 파스카 신비는 논리적으로 고통과 희생, 승리와 기쁨을 뜻합니다.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회칙 「인간 생명」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지성과 자유 의지의 힘으로 본능을 지배하는 데에는 부부 생활에 고유한 사랑의 표현도 바른 질서에 알맞게 하려는 수덕이 필요함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특히 일정한 기간 동안 절제를 지키려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런 규율은 부부의 정결을 빛내는 것이며, 부부애를 해치지 않을 뿐더러 오히려 부부애를 더욱 높은 인간적 가치로 충만케 해 준다. 이런 규율이 비록 항구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덕분에 부부의 인격이 풍부히 발전하며 영적 가치로 풍부해진다”(21항).

 

그러므로 자연 주기법에 대한 교육은 기도와 하느님께 대한 확신을 통하여 의식적으로 발달하는 내적 생명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습니다. 또한 이 교육은, 은총의 도움에 의지하도록 하고 성체성사와 고해성사를 자주 받도록 하며, 사랑에 대한 책임감에 의지하도록 하는 꾸준한 교육을 뜻합니다. 사실 이것은 단순히 생물학적 심리학적 질서의 문제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바탕을 둔 생명의 완전한 개념과 실천으로서, 인간의 본성과 운명, 곧 생명을 영원의 관점에서 조명합니다.

 

최근,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난 지 20년 만에 열린 주교대의원회의 특별 총회의 ‘최종 보고서’에서 시노드 교부들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세상 모든 곳에서 젊은이들에게 신앙과 복음에 따른 윤리 가치들을 전달해 주는 것이 어려움에 빠져 있다. 신앙의 지식과 윤리 질서의 수용은 흔히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따라서 복음화와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교리교육을 위한 새로운 노력이 요구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용감한 책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교의 가치에 따라 젊은이들과 가정을 양성할 수 있도록, 교회의 윤리적 교리를 전체적으로 확언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을 기울일 책임을 기꺼이 져야 합니다. 

 

[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자연 주기법”(1985.12.13.), The Pope Speaks 31, 1호, 1986년, 60-62면.]

 

 

4. “책임 있는 출산”

 

…… 여러분은 지난 며칠 간의 회의를 통하여 ‘책임 있는 출산’이라는 매우 중요한 주제에 관하여 과학과 윤리학, 신학 사이의 대화를 시작하였습니다. 이 대화는 과학자들 스스로가 인식하고 있는 우리 시대의 긴급한 요구, 곧 과학 지식의 필요성과 윤리학에 따른 과학의 적용에 대한 대답입니다.

 

물론 ‘윤리학에 따른 적용’은 어떤 식으로든 과학 지식의 인식론적 독립성을 손상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적용은, 각 개인에게 봉사할 인류의 사명에 도움을 주어야 하는 과학의 가장 심오한 소명의 수행에 도움을 줍니다. 과학적 진리를 포함한 모든 진리에 관한 지식은 개인과 전체 인류에게 유익한 것입니다.

 

책임 있는 출산의 가치

 

여기 참석한 과학자 여러분은 여성의 생리 주기에서 가임 기간과 불임 기간을 확실히 분별할 수 있는 진단 방법을 발견하기 위한 연구에 노력을 집중시키고 있습니다. 

 

…… 철학 윤리와 신학 윤리는 개인이 자유를 누리면서도 책임 있는 출산을 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줄 수 있는 방식으로 과학 지식을 받아들입니다. 부부들은 필요한 지식을 습득한 후 이런 방식으로만 인성의 모든 차원의 ‘조화’를 이룰 수 있으며, 부부애의 온전한 진리를 지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각 과학자와 철학자, 신학자는 각자의 능력과 권한에 따라 책임 있는 출산의 도덕적 가치라는 같은 목표를 지향하고 있으며, 분명한 계층 구조 안에서 서로를 보완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번 회의의 경험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자연 주기법의 가르침은 수많은 부부들이 인간으로서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서 누려야 할 행복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가르침은 단순히 기술적인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되며, 참된 과학과 온전한 인간관에 뿌리를 두어야 합니다.

 

사목적 배려

 

이번 회의에서 여러분은 철학적이든 신학적이든 인간학적 고찰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논해 온 그리고 앞으로 논할 모든 문제는 결국, 인간은 누구인가 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귀착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혼인 관계의 유익 안에서 하느님과 일치의 관계를 이룹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이 분명하지 못할 때 혼인의 윤리는 그 바탕을 잃게 됩니다.

 

다른 한 편으로, 창조와 구원의 온전한 진리는 혼인의 윤리를 적절히 조망하는 무한히 밝은 빛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의 연구는 선함의 기준을 흔히 유용함의 기준으로 대체해 온 문명 안에서 인간에게 봉사하는 일입니다. 여러분 사이에 일치를 이루어 용기 있게 이 일을 추구하도록 노력하십시오. 진리와 미가 거짓과 악보다 더욱 힘있기 때문입니다. 

 

책임 있는 출산에 관한 연구와 자연 주기법에 대한 장려가 지니는 사목적 의미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교회의 구체적 교육은 언제나 그 교리와 연관되어 있어야 하며 결코 따로 분리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언제나 신학적 연구가 바탕이 됩니다. 또한 이러한 연구는 자연 주기법이 그 자체로 목적이 아니라 부부들에 대한 교회의 여러 차원의 사목적 배려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도록 해 줍니다.

 

…… 부부들과 관련된 일을 할 때, 언제나 그들의 필요와 교회에 대한 충심, 또한 부부 생활과 가정 생활 안에서 주님의 메시지를 선포하면서 기꺼이 감수하려는 희생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도록 촉구합니다. 교회는 책임 있는 부모 역할이 쉽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혼인성사의 은총으로서 정숙하고 기쁘게 그들의 약속을 실천할 의향과 힘을 얻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다양한 자연 가족 계획법이 있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자연 가족 계획법을 사용하면 부부들은 하느님 자비의 탁월한 은총임이 분명한 생명에 대하여 열린 자세를 갖게 됩니다.

 

또한 부부들은 이로써 부부 관계를 더욱 깊게 하고 그들의 결합에서 서로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 일생 동안 지속될 친밀함을 경험합니다.

 

우리는 또한 다양한 자연 가족 계획법이 있어서 여러 부부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다는 사실은 하느님의 섭리임을 확신하여야 합니다. 교회는 어느 한 방법만 배타적으로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방법이 존중되고 사용될 수 있도록 촉구합니다. 모든 자연 가족 계획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그 생물학적 효과나 신뢰성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성(性)은 부부애의 표현이라는 그리스도교의 관점과 일치를 이루는 데 있습니다. 성(性)은 인간의 가장 깊숙한 존재를 반영하며 남편과 아내가 죽을 때까지 서로에게 온전히 헌신하는 사랑의 필수적인 부분이 될 때만 참으로 인간답게 실현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목적 노력에서, 자연 가족 계획법을 연구하는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 일하고 연구 결과를 공유함으로써 같은 목표 아래 같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하여 교회는 자연 가족 계획법의 가치를 세상에 더욱 잘 알릴 수 있게 되며,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피임이나 불임 시술, 낙태에 대한 옹호 의견을 누그러뜨리는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자연 가족 계획법에 대한 이러한 연구의 핵심에는 그리스도교적 인간관과, 부부들이 이 방법을 열심히 따르면 하느님의 은총으로 더욱 깊고 강한 부부간의 일치를 이룰 수 있게 된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부부들은 자연 가족 계획법을 실천함으로써 일치와 상호 존중과 자제를 실현하게 됩니다. 

 

[출처: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책임 있는 출산”(1984.6.8.), The Pope Speaks 29, 3호, 1984년, 244-247면.]

 

 

5. “하느님의 눈에서 본 인간의 성(性)”

 

자연 주기법

 

「인간 생명」의 가르침을 생각해 보면, 자연 주기법의 발전과 “책임 있는 부모 역할을 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확신을 심어 주고 실제적인 도움을 주려고”(「가정 공동체」, 35항) 하는 과학자들과 사목자, 부부들의 노력을 알 수 있다. 적절한 교육을 통하여 부부들은 가임 주기를 쉽게 알 수 있으며, 하느님의 법에 일치되며 자신들의 친교와 일치에도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출산을 계획하고 출산 간격을 조정할 수 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 일깨워 주시듯이 자연 주기법은 “대화와 상호 존중, 책임의 나눔과 자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가정 공동체」, 32항). 교황 바오로 6세께서도 「인간 생명」에서 자연 주기법은 여러 이점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런 규율이 비록 항구한 노력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러나 그 덕분에 부부의 인격이 풍부히 발전하며 영적 가치로 풍부해진다. 이런 규율은 가정 생활에 안정과 평화의 풍부한 결과를 가져오며 또 다른 종류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된다. 이런 규율은 또한 배우자끼리의 배려와 존경을 북돋아 주고 참된 사랑의 원수인 이기주의를 몰아내며 서로의 책임감을 깊게 한다. 이로써 또한 부모는 자녀 교육에 깊고 효과적인 영향력의 권위를 마련한다”(「인간 생명」, 21항).

 

부부들은 자연 주기법을 통하여 인간의 성(性)과 부부 관계의 더욱 풍부한 의미를 이해하고 자녀 출산의 가능성을 더욱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출처:미국 주교회의 생명수호위원회, “하느님의 눈에서 본 인간의 성(性)”, Origins 23, 10호 (1993.8.12.), 164-166면.]

 

 

정리

 

일반적으로 모든 가톨릭 신자 부부들은 교회의 가르침을 존중하면서 부부의 성생활을 자유롭게 하기를 바란다. 그래서 교회의 많은 학자들은 30여 년 동안 각고의 노력과 연구를 해 왔다. 그 결과 단순하면서도 해가 되지 않는, 또한 불안과 위험에서 벗어나 상호 간의 양심을 충분히 존중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자연 주기법’을 제시하였다. 특히 오늘날의 자연 주기법은 가임 기간과 불임 기간에 대한 개연적인 계산을 뛰어넘어 한층 더 완전하고 체계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방법은 무엇보다도 생리 주기, 배란 주기 및 시기 등의 이론에 기초하면서 발전되어 왔다.

 

이렇게 부부가 임신할 수 있는 날들을 알아낼 가능성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자연적 방법은 산아 제한을 바라는 많은 부부들에게 임신할 수 있는 기간까지도 알려 준 것이다.

 

여성에게 임신의 가능성은 여성의 주기 중에서 며칠에 한정되어 있으며, 이 자연 주기법으로 부부는 부부 생활 중에서 가임과 불임의 과정들을 잘 인식할 수 있도록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바로 부부 상호 간과 자녀들의 선을 위한 그들 사랑의 표현으로서의 부부 관계를 잘 조화시킬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렇지만 이 자연적 방법을 단순하게 사용 규칙을 알고 따르는 것만으로 충분한 하나의 획기적인 기술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러한 방법의 가치는 우선적으로 삶의 형태를 미리 준비하고 또 향상시키고 발전시켜 준다는 데 있으며, 나아가 상호 간의 관계 형성을 위한 특별한 방법으로서, 사랑과 자유, 그리고 공동의 책임감의 발전을 위한 교육이라는 데 있다.

 

이러한 자연적 방법으로써 부부는 삶의 한 형태로서 부부 상호 간의 전적인 자기 증여의 한 행위로서 성행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는 사랑의 전체성과 인간적 증여의 전체성 안에서 영혼과 육체의 완전한 자기 증여를 가능하게 해 준다. 나아가 이것은 부부 상호 간의 신뢰와 책임, 부부간의 사랑을 더욱 깊고 강하게 만들어 줄 것이다.

 

“부부가 산아 제한의 방법을 사용해서 창조주 하느님이 남자와 여자의 됨됨이와 성적 일치의 역동성에 박아 주신 이 두 가지 의미를 분리한다면, 그들은 하느님 계획에 대한 ‘조정자’ 역할을 하고, ‘완전한’ 자기 봉헌의 가치를 변조시킴으로써 인간의 성(性)과 더불어 자신들과 결혼 동반자를 ‘조작하며’ 실추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 상호 간의 완전한 자기 봉헌을 표현하는 본래의 언어가 산아 제한이라는 객관적으로 모순된 언어, 즉 자신을 상대방에게 완전히 바치는 것을 거부하는 언어로써 덮어 씌워진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개방성을 적극적으로 거부함과 아울러 인간 전체를 바치도록 되어 있는 부부애의 내적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 자연적 주기의 선택은 인간, 즉 여자의 주기를 받아들이고 따라서 대화, 상호 존중, 책임의 나눔과 자제를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 주기를 받아들이고 대화하는 것은 부부 일치의 영신적 육체적 성격을 인정하는 것이고 충실의 요구대로 인격적 사랑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부부는 부부 일치가 육체적 차원을 포함한 인간적 성의 내적 요체를 이루는 부드러움과 애정의 가치로써 풍요롭게 된다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이 참되고 완전한 인간의 차원에서 존중되고 촉진되며, 결코 ‘대상’으로서 ‘이용’되지도 않을 것이고, 인간은 자연과 인간의 가장 깊은 상호 행위의 지평에서 하느님의 창조를 침해하면서 영혼과 육체의 인격적 일치를 파괴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정 공동체」, 32항).

 

[사목, 2002년 4월호, 이창영 엮음(본지 주간, 주교회의 사무차장,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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