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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과학의료와 인간생명 경외: 미국에서 있었던 의학윤리의 고전적 사건을 중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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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59

과학의료와 인간생명 경외


- 한 세대 안에 미국에서 있었던 의학윤리의 고전적 사건을 중심으로 -

 

 

서론

 

최근 한 세대를 지나는 동안 의학윤리에 대한 세인의 관심이 높아지게 되었고 이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이 계속 생겨났다. 1967년 크리스챤 버나드(Christiaan Bernard)가 처음으로 인간의 심장을 환자인 루이스 와스칸스키(Louis Waskansky)에게 이식 수술한 후, 1973년 미국 연방대법원에서는 인공유산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결했고, 2년이 지난 1975년에는 유명한 카렌 퀸란(Karen Quinlan)의 지속적인 혼수상태에 따르는 처리, 그리고 죽음의 정의에 대한 논의가 대단했었다. 이 세 가지 사건으로 인하여 의학윤리학은 대중에게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학문적으로도 새 영역을 갖고 연구하기에 이르렀다.

 

인간에게는 생명의 시작부터 종결에 이르기까지 의학윤리에 관계되는 많은 문제들이 발생한다.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사회에서 물의를 일으켰던 사건들을 생명의 시작에서(베이비 M사건, 베이비 젠 도우 사건), 생명의 종말(카렌 퀸란 사건, 엘리자베스 부비아 사건), 그리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터스키기 매독연구, 베이비 훼 사건)에서 자세히 살펴보고 우리가 직면한 한국 현실에서는 어떤 유사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는지 고찰하고자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의학윤리학에 대한 관심이 그리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으나, 서구와 미국에서 생겨난 사건들과 유사한 일들이 발생하여 점차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과거 한 세대동안 미국에서 있었던 커다란 사건들을 살펴보고 우리 사회가 직면하게 될 의학윤리에 관한 문제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 숙고하려고 한다.

 

 

본론


1. 생명의 시작

 

A. 베이비 M 사건(The Baby M Case)

 

1984년 생화학자인 윌리암 스턴(41세)과 소아과 의사이며 만성질환인 다발성 경화증(Multiple sclerosis)으로 임신할 수 없었던 부인 엘리자베스 스턴은 뉴욕 시에 있는 한 불임연구소에 찾아가 그곳의 알선으로 메리 벳 화이트헤드(27세) 부인을 만나서 변호사의 개입하에 대리모 계약을 했다. 10,000달러를 받기로 하고 인공수정을 통하여 1986년 3월 27일에 딸을 낳았다. 그런데 생모인 화이트헤드 부인은 출산 후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10,000달러를 포기하고 아기를 자신이 키우겠다고 하여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화이트헤드 부인은 스턴부부가 이를 거절하자 아기를 몰래 데리고 잠적, 스턴부부에게 전화하여 '아기를 포기하느니 차라리 함께 죽겠다'고 위협했다. 이렇게 되자 스턴부부는 경찰과 사립탐정에게 의뢰하여 아기를 찾아 빼앗아 왔고 화이트헤드 부인은 이에 맞서 법원에 제소하게 되었다. 뉴저지 가정법원에서 열린 이 재판의 쟁점은 첫째로 대리모 계약의 법적 유효성과 둘째로 이 베이비 M의 양육문제였다. 이 재판은 1987년 1월에 시작하여 거의 2년간 지속되었다. 재판장 하베이소로코 판사는 최종 판결문에서 "화이트헤드 부인은 자녀들의 감정을 이용 조작하고 거짓말을 하는 등 어린이 베이비 M의 장래에 대한 양육문제보다 자신의 욕심에만 치중했다. 그리고 대리모 계약은 법적으로 유효하므로 이 어린이의 아버지는 스턴씨이고, 부인 엘리자베스 스턴은 법적 어머니이므로 입양에 필요한 모든 절차를 수행할 것이다. 화이트헤드 부인은 계약에 따라 10,000달러를 받아야 한다. 아기의 장래를 고려할 때 안정적이고, 재정적으로 건실한 스턴부부가 보다 적절한 부모의 자격을 갖고 있다"고 판시하고 화이트헤드 부인의 친권주장을 기각했다.

 

윤리적 평가

 

첫째로, 매스컴 보도의 문제성이다. 이 사건을 취재 보도하는 매스컴에서는 너무 심하게 대중의 흥미를 이끄는 방향으로 치우쳤다. 마치 오래 전에 있었던 린드버그 아들의 유괴 당시 보도한 것과 비교될 만큼 센세이셔날(sensational)하게 모든 신문, TV, TIME, NEWSWEEK 등에서 화이트헤드 부인에게는 매우 동정적으로, 그리고 스턴씨에게는 대단히 적대적으로 기사를 썼다. 그러나 재판이 시작되고 여러 증거가 나오자 보도진은 반대로 급선회하여 화이트헤드 부인은 하루아침에 나쁜 사람으로 매도되었다.

 

둘째로, 사실상 이 사건 이전에도 수백 명의 어린이들이 대리모 계약에 의하여 태어났음에도 극소수만이 논란의 대상이 되었고, 이들은 모두 법정 밖에서 해결되었다는 점에 문제가 있다. 다만 화이트헤드와 엘리자베스 케인의 경우만 대리모가 아기를 갖겠다고 주장했으며 유명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전 뉴욕 가정법원의 판사인 나넷트 뎀비트는 이 베이비 M의 경우에는 대리모와의 계약상의 문제가 아니고 어린이를 보호 부양하는 차원에서 다루어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B. 베이비 젠 도우 사건(The Baby Jane Doe Case)

 

젠 도우는 1983년 10월 11일 뉴욕주 롱아일랜드의 성 찰스 병원에서 이분척추(Spina bifida), 수두종(Hydrocephalus), 콩팥의 손상, 그리고 소두증(Microcephaly) 등의 결함을 갖고 태어났다. 소아신경과 의사인 코이스켐프는 즉시 뇌수종을 수술 처치하여 이 어린이의 불구를 경감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이 어린이는 다시 스토니 부룩 병원으로 옮겨져 신생아 전문의와 또 다른 소아신경과 의사의 검진을 받은 결과, 즉시 수술 받지 않으면 아기는 죽게 되며, 수술을 해도 마비와 발육부진, 그리고 방광과 장의 계속적인 감염으로 고생하게 될 것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아기의 부모는 몹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수술에 동의하지 않고 그대로 대중요법으로 치료하기를 바랐다. 이 문제는 법원에서 다뤄지게 되었고, 의료진과 매스컴에서는 부모의 처사에 대하여 많은 비난을 하였다. 그러나 부모는 예외적인 치료방법과 기본적인 치료방법의 구분을 명백히 알고 행동했다. 즉 수술하는 방법은 예외적인 것에 속하므로, 단순히 영양공급, 수액주입 그리고 항생제로 치료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어린이는 예상과 달리 사망하지 않고 성장하여 초등학교 교육을 받고 있다.

 

윤리적 평가

 

상식적인 평가와 유대교, 그리스도교의 윤리적 척도로 볼 때 아기부모의 처사는 너무 이기적인 것으로 사료된다. 다음에 연계되어 나오는 것은 이 어린이를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는 것이 안락사에 해당하는가 아닌가의 문제이다.

 

여기서는 카렌 퀸란의 경우와는 차이가 있다. 베이비 도우는 종말을 앞둔 환자가 아니고, 생후의 불구를 방치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인 것이다. 여기에 연관되어 많은 임산부들은 태아의 불구를 우려하여 양수천자(amniocentesis)를 시행하여, 여기서 불구로 판명되면 대부분의 경우 인공유산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또 하나의 윤리적 문제로 이어진다. 또 국가의 규정과 공권이 이 어린이의 수술과 생사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된다. 많은 여론은 국가의 공권력이 한 가정의 자율성을 침해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윤리학자 에베렛쿠프는 뇌손상과 불구의 어린이들을 죽게 방치한다면, 더 나아가 교통사고를 비롯한 사고로 뇌손상을 입은 환자를 죽게 놓아둘 수도 있다는 식의 도미노 현상이 생기게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비록 부모가 어린이를 치료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에도 의사들은 이것에 반대해야 하며, 부모에게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워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2. 생명의 종말


A. 카렌 퀸란 사건(The Karen Quinlan Case)

 

1975년 4월 11일, 21세인 카렌 퀸란은 몇 알의 약을 먹은 뒤 친구의 생일 파티에 참석하여 술을 마시고 혼수상태에 빠졌다. 뉴저지에 있는 성 글라라 병원에서 6개월간 정맥주사와 인공호흡기로 연명하는 식물상태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소생이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단과 가톨릭 교회법에서는 희망이 없는 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예외적인 치료방법을 쓰면서 연명해야 할 윤리적 의무가 없다는 트라패소 본당신부의 신학적 해석에 고무되어 품위와 존엄 속에 죽을 수 있도록 인공호흡기의 제거를 요청했다.

 

그러나 담당의사가 인공호흡기 제거를 거절하여 이 문제는 법정으로 옮겨졌고 지방법원에서 인공호흡기 제거는 명백한 살인행위라는 판정이 나왔다.

 

그후 1976년 3월 31일, 뉴저지주 대법원은 의사와 병원당국이 찬성한다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도 좋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따라 1986년 5월 23일 인공호흡기를 제거했다. 그러나 환자는 인공호흡기의 도움 없이 살아 있다가 1986년 6월 13일에 사망했다.

 

윤리적 평가

 

성 글라라 병원 퀸란의 담당의사인 로버트 몰스는 가족들이 환자의 인공호흡장치의 중단을 요구했을 때 이것을 윤리적 문제로 간주하여 거절했으며, 그 당시 상당히 훙분되어 있었고 고집불통으로 대화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가 만일 처음부터 퀸란 가족과 이 문제를 윤리적, 법적으로 잘 풀어 나갈 수 있도록 대화를 하고, 고지된 형식의 동의를 했더라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때를 전후해서 미국 연방대법원에서 인공유산의 합법화가 허가되었으나(1973년)생존 가능한 태아는 한 인간으로 간주되어 유산을 금지한다고 했고, 실제로 보스턴 시립병원에서 한 십대 소녀와 그녀의 어머니의 요구로 임신 후기의 태아를 인공유산 하여 물의를 일으킨 산부인과 의사 에들린은 재판에서 2년형을 선고받았다(1973년). 이런 일련의 사건들이 카렌의 담당의사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비록 퀸란 가족이 환자의 인공 호흡장치 제거를 요청했다고 해도 의사들은 법적으로 아직 인간인 상태의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문책을 받게 될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당시만 해도 가톨릭 교회와 미국의사협회는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환자를 죽게 방치하는 것과 적극적인 살해를 모두 똑같은 안락사로 보고 있었고, 이런 경우에 이것을 구분하고 환자의 권리를 명확하게 하는 아무런 법적인 근거도 없었다. 또 카렌의 담당변호사인 암스트롱도 처음에는 이 환자가 뇌사상태에 있다고 판단하여 인공호흡장치를 꺼야 한다고 했다가, 나중에 뉴저지주 뇌사판정기준에 맞지 않다는 것을 알고는 자신의 주장을 수정했다.

 

B. 리자베스 부비아 사건(The Elizabeth Bouvia Case)

 

1983년, 캘리포니아 리버사이드 종합병원에서 25세의 뇌성마비 여성인 엘리자베스 부비아가 '나는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다'며 자신이 죽을 수 있도록 급식을 중단해 달라고 요청했다. 태어날 때부터 뇌성마비인 엘리자베스는 부모가 이혼하여 병원에서 혼자 살면서도 그때까지 역경을 훌륭하게 헤쳐 왔었다. 그는 사회보장제도에 힘입어 대학에서 사회사업을 전공하고, 일자리도 얻고, 결혼도 했었다. 병원 당국이 법원에 문의한 결과 자살을 방조할 수도 없고 급식을 중단할 수도 없다는 판결이 내려, 병원 당국은 식사를 거부하는 그녀에게 튜브를 통해 강제 급식을 하게 했다. 이 사건이 신문에 보도되자 그의 병실로 7톤에 가까운 편지와 2백권이 넘는 성경책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인간은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말하였고, 그의 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세인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술책이라고 주장하며 죽고 싶다면 스스로 누구의 손길도 닿지 않는 곳으로 떠나 조용히 죽으라고 했다.

 

윤리적 평가

 

여기서 윤리적 쟁점이 되는 것은 인간의 '죽을 권리'에 대한 것이다.

 

엘리자베스는 비록 육체적으로는 불구였으나 정신상태는 건전했고 스스로 판단하고 죽기로 결심했다(자율성 원리에 입각). 인간생명의 주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므로 내가 이 세상을 더 살거나 또는 그만 사는 것은 자신이 결정할 문제라고 했다. 이것을 방해하는 일은 커다란 인권침해라고 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살아야 할 의무'에 대하여 논한다. 이들은 임마누엘 칸트의 윤리에 대한 학설을 따르면서 "인간의 자유는 불변하는 진리를 배제하고는 존속할 수 없다"고 한다. 또 우리가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다'라는 일반원리를 존중한다면 모든 사람은 자신의 생명도 소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인간은 지상에서 파수꾼에 불과하며 또 하나의 자비로운 손이 우리를 자유롭게 해줄 때까지 우리의 위치를 떠날 수 없다. 하느님만이 우리 생명의 주인이며 우리는 그에게 속하여 있는 존재라고 주장하며 비판한다.

 

또 다른 논의로는 자살이란 하느님을 모욕하는 행위인가의 여부이다. 가톨릭 교부인 아우구스티노와 토마스 아퀴나스는 자살은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했다. 반면에 18세기 스코트랜드의 철학자 데비드 흄은 자살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의무 안에서 죄가 될 수 없다고 했다. 특히 죽어 가는 환자가 자발적으로 죽기를 원할 때 이것은 죄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엘리자베스가 죽음을 목전에 둔 종말의 환자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 경우에 환자는 판단능력을 갖고 자신의 모든 상황에 대하여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목숨을 끊을 수 있는 조치를 취해 줄 것을 강력하게 요청했다. 이러한 요청을 받아들여 환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일체의 행위는 자의적인 안락사로 정의할 수 있다.

 

3. 인간을 대상으로 한 연구


A. 터스키기 매독 연구(The Tuskegee Syphilis Study)

 

미국 알라배머주 메이컨군(Macon County)에서 1930년대부터 교육받지 못한 흑인남자들을 대상으로 매독에 관한 연구가 1970년대 초까지 계속되어 왔다. 이 연구는 대략 3단계로 나누어 이루어졌다.

 

1) 연구의 첫 단계(1932-1933)

 

1929년 로젠월드 재단의 원조를 받은 미합중국 공중보건용역부서는 주민의 매독 감염이 20%가 넘는 6개의 군에서 네오살발산으로 모든 매독감염환자를 치료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그러나 1930년 대공항으로 기금이 줄어들자 감염율이 40%가 넘는 알라배머주 메이컨 군만 선택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 재단은 모든 흑인 감염자들을 치료하려고 했으나 자금의 부족으로 중단하고 다만 이들의 병의 과정을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특히 말기 상태에 있는 399명의 흑인환자들은 전혀 치료를 받지 못하였고, 병의 시작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전과정을 관찰하기 위한 대상이 되었을 뿐이었다.

 

2) 연구의 중간 단계(1936-1943)

 

이 기간에는 과학적인 실험의 모델이나 집중적인 감독기능도 없었고 기록도 제대로 안되었다. 흑인 간호사 한 명이 임명된 것 이외에, 의료진은 지속적으로 환자와 함께 하지 않아 연구는 중단되곤 했다. 의사들이 돌아온 후에 그 동안의 연구기록이 부실하였음을 발견했다. 그들은 새로이 399명의 환자 중 271명에게 척추 천자를 시작했다. 이것은 진단을 하기 위한 검사방법인데 환자들이 호응하는 빈도가 줄어들자 의사들은 이 방법이 '나쁜 피'를 치료하는 방법이라고 속였다. 연구소에서는 검사하기 위하여 찾아오는 환자에게 무료로 교통편을 제공하고 점심을 주었으며 신체검사를 해주었고, 죽은 환자에게는 장례를 무료로 해주었다. 그 대가로 사체는 매독의 병리과정을 연구하기 위한 부검의 대상이 되어야만 했다.

 

3) 마지막 실험(1965-1972)

 

이 기간에도 연구소는 매독환자들에 대한 연구 관찰을 계속했으나 치료는 하지 않았다. 1972년 7월 26일 미국의 거의 모든 신문에 이 연구사실이 보도되었다. 알라배머주 주정부의 연구기관인 터스키기 연구소에서 가난하고 교육을 못 받은 흑인들이 의학연구의 '기네아 피그'(연구용 쥐)로 이용되었다는 것이었다. 1969년에 276명의 치료되지 않은 환자들 중에 7명이 매독의 직접적인 결과로 사망했다.

 

윤리적 평가

 

여기서 중요한 윤리적인 문제 중에 하나는 이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에 대상자들을 속였다는 것이다. 연구가 시작되었을 때 이 대상자들은 매독이라는 병이 무엇인지도 몰랐고, 그들의 치료에 필수적으로 약물이 투여되어야 한다는 사실도 몰랐다. 연구자들은 환자들과 사전에 고지된 동의(Informed Consent)를 하지도 않고 대상자들을 기만했다. 이것은 법적인 문제에 앞서 윤리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본다. 한편 1930년대에는 현실적으로 고지된 동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1960년대에 말에 가서 비로소 이것이 법적인 문제로 대두되었다. 여기서는 실험대상자에게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윤리적인 문제로 대두되는 것이지 고지된 동의를 안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라고도 한다(Benedek).

 

이 터스키기 연구의 대상자는 전부 흑인남자로 되어 있어서 이것은 인종차별의 문제가 되었는데, 어떤 의사들은 매독은 인종에 따라 그 과정이 다르다고 믿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백인에 대한 연구는 없었는가가 문제로 남아 있다. 또 연구의 계획과 수립과정에서 명확한 가설도 없었고, 올바른 계획도 없었으며, 기록을 자주 분실하기도 했고, 어느 기간 동안 연구를 중단하기도 했다. 모든 일에 소홀하였던 이 연구는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학문을 위한 희생'이라고 비판할 수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조군을 사용한 연구에서 매독에 감염되지 않은 건강한 사람들과 환자의 비교 연구인데, 이는 감염된 환자 중 치료받은 사람들과 치료받지 못하고 방치된 사람들의 비교 연구로서 이런 일은 연구 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B. 베이비 훼 사건(The Baby Fae Case)

 

베이비 훼는 1984년 10월 12일에 캘리포니아에 있는 발스토우 메모리얼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때 몸무게는 5파운드의 미숙하였으며, 곧 로스앤젤레스의 로마 린다 병원으로 후송되어 좌측심장발육부전(hypoplastic left heart syndrome)으로 진단 받았다. 4일 후에 그 병원의 소아외과 전문의인 레오날드 베일리는 그 어머니를 불러 이종이식(xenograft)에 관하여 언급했다. 수술 받는 어린이는 선택의 능력이 없기 때문에 외과의사는 베이비 훼의 어머니, 외할머니 그리고 동거하고 있는 남자친구와 함께 수술에 대하여 7시간 동안 의논했다. 의사는 슬라이드를 사용하면서 수술과정과 내용들, 즉 어린 비비원숭이의 심장을 이 베이비 훼에게 이식수술을 하겠다고 설명하고 보호자에게 동의의 서명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시간이 20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보충 설명하고, 이에 대한 동의 서명도 받았다. 10월 26일에 수술팀은 10개월 된 암컷의 건강한 비비원숭이를 준비하여, 죽어 가는 베이베 훼의 심장을 제거하고 원숭이의 심장으로 교체하여 이식하는 수술을 하였다. 수술 후 심폐기의 도움을 받아 원숭이의 심장은 베이비 훼의 몸 안에서 박동하기 시작했다.

 

수술 받은 지 9일째까지 베이비 훼의 건강은 양호해 보였다. 의사 베일리는 이 원숭이의 심장은 어린이 몸에서 잘 자랄 것이며 베이비 훼는 20세의 생일을 축하하게 될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러나 11일만에 이 어린이는 죽었다.

 

윤리적 평가

 

의사 베일리의 원숭이를 사용한 수술의 시도는 동물 애호가들에 의하여 신랄한 비판을 받았다. 그들은 동물의 권리를 주장했으며 이러한 시도는 베이비 훼와 원숭이, 이들으르 모두 희생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일리는 인간의 생명이 위험에 처했을 때 동물을 사용하여 구할 수 있다면 윤리적으로 나쁘지 않다고 주장하였고, 또 로마 린다 병원 생명의학연구소 소장도 윤리적으로 볼 때 인간은 항상 영장류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며 동물을 희생하여 인간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것은 타당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인류는 역사의 시작부터 동물을 식량과 의복으로 사용하지 않았는가 하고 반문하였다.

 

다음의 윤리적 쟁점은 수술 전 사전동의가 납득할 만하게 이루어졌는가이다. 원숭이의 심장을 사용하기 전에 인간의 심장을 얻으려고 충분히 노력했는가, 또 이 이종이식이 성공할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는 것을 보호자에게 충분히 주지시켰는가, 그리고 이 수술은 임상적인 유용성(clinical usefulness)보다 실행가능성(feasibility)의 입증이라는 것을 환자의 부모에게 잘 알아듣게 했는가가 모두 의심스럽다. 후에 문제가 된 것은 로마 린다 병원에서는 베이비 훼의 부모가 서명한 사전동의의 내용을 대중에게 알리는 것을 거부했고, 매스컴에서는 베이비 훼의 어머니가 수술한 의사 베일리를 우상화하였다고 보도했다.

 

세 번째는 이 수술이 치료적인 것인가, 아니면 실험적인 것인가의 문제이다. 베이비 훼는 환자인가, 아니면 실험의 희생물인가의 문제인 것이다. 의사 베일리가 말했듯이, 실제로 이 어린이는 원숭이의 심장을 갖고 20년이나 살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이 시술 전에도 1963년에 림츠마는 사구체신염으로 죽어 가는 43세의 흑인환자에게 침팬지의 신장을 이식하였고, 하디는 역시 죽어 가는 가난한 귀머거리 벙어리 환자에게 침팬지의 심장을 이식했는데 두 사람 다 이식 후 2시간 정도 살다가 죽었다. 당시 의료팀은 이들로부터 고지된 동의서를 받아 내지 않았고, 이것은 치료의 목적보다 실험의 목적이 있었음이 자명했다. 1984년에는 이미 면역억제제인 싸이크로스퍼린이 개발되어 성인에게는 이종이식의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으나, 전혀 사고와 판단력이 없고 무방비상태였던 베이비 훼는 다만 무자비한 의학실험의 한 희생양 역할을 했을 뿐이다.

 

 

논의

 

급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의학분야에 응용하는 것이 이제는 필요불가분하며 또한 미래에는 생명공학의 원리를 응용하여 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기가 곧 올 것이다. 이렇게 되면 그 동안 해결하지 못했던 유전적 질병의 일부도 치료될 수 있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따라 발생될 수 있는 예기치 않았던 많은 부정적인 문제들로 인하여 인간의 생명은 더 큰 위험과 고통에 직면하게 될 수도 있으며, 인간의 생명이 자연의 섭리에 의하여 삶을 영위하기보다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생명을 연장할 수도 있고 소멸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에 있어서 우리 나라에서는 1983년에 비배우자간의 인공수정으로 출산한 뒤 이혼한 부부가 서로 이 아이를 기르지 않겠다고 가정법원에 낸 친자여부 소송에서 민법 제844조에 의거 "인공수정아도 친생자로 보아야 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와 같은 판결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어린이는 모든 관계가 끊어진 아버지의 호적에 그대로 남아 있어야 하는 불합리한 결과가 된다. 여기에는 인공수정아가 늘어나는 추세에서 인공수정아의 법적 보장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987년 10월 서울의 C병원에서 양측성 난소종양으로 양쪽의 난소를 모두 잘라낸 김모부인의 남편의 정자를 다른 여성에서 채취된 난자와 체외에서 수정시켜 이를 부인의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이 가능케 하였고, 또 1989년 10월에는 서울의 J병원에서 난소는 정상이나 난관협착과 착상불능으로 임신능력이 없는 부인의 난자를 채취하여 정상적인 남편의 정자와 체외에서 수정한 후 이 수정란을 제3의 여인의 자궁에 착상시켜 임신케 한 소위 대리임신이 이루어졌다. 이때 대리임신모 역할을 했던 사람이 친자권을 주장할 경우, 유전학적 부모가 우선인가 법적 부모가 우선인가 하는 복잡한 문제가 생겨나고 자손이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과거의 '씨받이'와 유사한 대리임신이 첨단의학기술로 재현되는 것에 대한 사회 윤리적 문제가 앞으로 적지 않게 파생될 것으로 예상된다. 베이비 젠 도우와 같은 사건들은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크게 알려진 바는 없으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불구의 어린이들이 방치되는 일들이 많은 것으로 사료된다.

 

카렌 퀸란과 같은 사건은 큰 종합병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지속적인 식물상태의 환자는 오랫동안 가족들과 의료진을 지치게 만들어서 인공호흡장치를 제거하고 더 나아가서 기본적인 돌봄(ordinary care)도 중단하기를 바라게 된다. 우리 나라에서는 특히 병원비 부담 때문에 가족들이 환자를 죽게 방치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그러나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 또 인도적인 차원에서도 환자의 예외적인 돌봄(extraordinary care)은 중단될 수 있으나, 기본적인 돌봄은 우리가 절대로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엘리자베스 부비아는 '죽음의 권리'를 내세우면서 인간이 자신의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지만, 이것은 극히 좁은 시야에서 보는 판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윤리적 평가에서 언급했듯이, 죽음을 목전에 둔 참을 수 없는 고통 안에 있는 환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의적인 안락사를 택하려 했던 것이다. 일반적으로 인간은 자신의 운명의 주인이며, 삶과 죽음의 권리는 자신에게 있다고 '자율성의 원리'를 내세우며 주장한다. 그러나 진실로 '죽을 권리'는 인간에게 없는 것이며, 오히려 '살아야 할 의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껴야 할 것이다. 가톨릭 교리에서 가르치는 의학윤리의 원리 중에, 인간의 삶은 하느님이 주신 까닭에 아무도 자신의 육체적 주인이 될 수 없다는 '관리인의 원리'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터스키기의 연구는 제2차 세계대전 중 나치 독일의 강제수용소에서 벌어진 유태인 및 전쟁포로들을 대상으로 한 여러 가지 잔인하고 포악한 의학연구와 만주의 일본관동군 731부대에서 독가스와 파상풍균을 사용하여 포로들에게 생체실험을 하여 세균병기 제조를 위한 연구를 한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터스키기 연구는 그와 같이 잔인하지는 않았으나 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대상자들을 속였고, 인종의 차별을 두었으며, 설명이 따르는 고지된 동의도 없었던 것에 비추어, 인명이 경시된 '정의의 원리'에서 벗어난 사건이었음을 부인할 길이 없다. 우리 나라에서도 많은 연구소와 병원에서 약제의 효능을 위한 실험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때 연구자들은 실험대상자의 권리옹호를 위해 애쓰고, 윤리적인 측면에서 진행시키며, 이용 가능성이 높은 연구를 수행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야만 계속 많은 사람들이 연구에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의학적, 과학적인 발전에 기여하게 될 것이다.

 

베이비 훼 사건은 현재 급진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장기이식에 연관된 인체실험에 관한 것이다. 현대의학은 동종이식만으로는 많은 수요자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종이식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더 나아가서는 인공심장, 인공자궁 등의 이식문제도 생각하고 또 실험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그러나 문제는 방법적인 것이다. 자신의 의사를 전혀 표시할 수 없는 어린이, 장애자를 대상으로 한다던가, 전혀 회복불능의 환자들 또는 사형자, 중범자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시행할 때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결론

 

현대의 발전된 의료기술은 많은 질병을 효과적으로 퇴치하는 데 공헌하였으나, 그 결과 여러 가지 윤리적인 문제들이 파생되었다. 유전공학의 발전은 태내진단, 성감별, 낙태, 인공수정, 체외수정 등 복잡한 문제들을 낳았고, 인공신장과 기타 만성질환의 치료를 위한 기술발전에서 오는 인간생명의 연장문제와 식물상태의 인간에 대한 처리문제 등 인간생명의 존엄성과 관계되는 윤리문제들이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찾아보고 검토한 미국에서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은 이제 우리에게도 현실적으로 다가오고 있다. 1985년 국내 처음으로 체외수정에 의한 시험관 아기가 태어났고, 이제는 난소 없는 여인도 제3의 난자제공 여성과 더불어 체외수정과 수정란 자궁이식 등으로 임신이 가능하게 되었다. 또 장기이식술로 이미 뇌사상태에 있는 환자의 간이나 심장을 절제하여 이식하는 것이 가능한 현실로 다가왔다. 사회적으로도 현재 뇌사의 입법문제와 낙태법 폐기 등이 의학윤리의 큰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지금 의학윤리의 문제는 의료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환자와 가족, 그리고 우리 사회의 문제이기에 온 국민은 이 문제들을 바로 인식하고 올바른 판단과 결정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첨단과학기술을 의료에 이용함은 인간에게 현실적 이익과 행복을 주기 위해서 개발된다. 그러나 이들은 본질적으로 많은 잠재적 위험을 내포하고 있어서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경우가 적지 않다. 경험적으로 볼 때 이런 기술들은 초기에 철저히 규제되거나 폐지되지 않는 한 결국 보편화되고, 또 엄청난 위험을 치르게 될 것이다.

 

이제는 우리 나라 의료계에서도 보편화되어 있고 사회적, 윤리적으로 계속적인 물의를 일으키고 있는 인공 임신중절, 인공수정, 체외수정, 장기이식 등에 대하여 깊이 숙고하고 대처해야 하며, 곧 우리사회에 닥칠 안락사 및 인간의 유전자 조작에서 오는 윤리적인 문제들을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고 고양하는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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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aby Fae: Ethical Issues Surrounding Cross-Species Transplantation", Scope Note #5, Bioethics Library, Kennedy Institute of Ethics, Georgetown university, Washington, D.C., 20057.

- Gregory E. Pence, Classic Cases in Medical Ethics, McGraw-Hill, 1990.

- 김중호, [의학윤리란 무엇인가?], 바오로딸, 1995.

 

[김중호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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