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 생명의 존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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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53

인간 생명의 존엄성

 

 

단일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사회나 경제적으로 덜 발전된 사회에서는 법률과 그 사회의 관습이 사람들의 양심을 형성하는 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지난 4월 9일자의 일간신문들에 실린 낙태죄에 관한 입법 예고를 읽고서, 가뜩이나 인간의 생명이 경시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인간 생명의 존엄성은 더욱 더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교황 비오 11세가 그의 회칙 '정결한 혼인'(1931)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사람들은 국가법이나 형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마치 윤리법에서도 허락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더 나아가서는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이나 인정법의 어떠한 제약도 느끼지 않음으로써 자신들의 양심을 거스리면서까지도 법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떳떳하게 산다고 생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률상의 책임과 진실된 윤리적 책임 사이에는 엄청난 거리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법률이나 관습이 우리의 윤리적 판단을 도와주거나 또한 윤리적 책임을 감해주는 것은 절대로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은 하느님의 법과 복음에 의해 형성된 양심에 따라서 행동할 것을 스스로로부터 요청 받으며 이로써 그의 행위에 대한 윤리적 가치가 평가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인간 생명의 문제에 대해서 교회가 일관되게 가르쳐 온 것은 인간의 생명은 인간들이 만든 법의 영역이 아니라 하느님의 법 영역에 속해 있다는 점이다. 곧 인간 생명의 자유로운 주인은 인간 자신이 아닌 하느님이시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고귀한 선물이고, 인간은 이 선물의 충성스런 관리자이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의 전제 아래 실제로 오늘날의 모든 학문과 기술은 보다 나은 인간 생명의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려는 노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놀랄만한 발전은 더욱 풍요로운 인간의 삶을 약속하고 있고, 의학 분야에서의 도약 역시 인간의 생명을 더욱 잘 관리할 수 있는 발판을 구축해 놓았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풍요로운 삶을 제공받기 위해 저당 잡혀야하고 위협 받아야만 하는 현재와 미래 세대의 생명, 여아이기 때문에, 장애자이기 때문에, 그리고 유전성 질환의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에 죽음의 선고를 받아야하는 인간의 생명이라면 과연 존엄성을 가진 인간생명이 잘 관리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히틀러는 수백만의 인명을 살상하였는데, 그 이유는 그 엄청나게 많은 수의 사람들이 히틀러로부터 단순히 '무용한 삶'을 살고 있다는 판단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 히틀러는 자신의 그러한 행위의 유일한 기준은 자신이 이룩하고자 했던 경제적 및 정치적인 사회 유형에 대한 인간의 유용성이었던 것이다. 그는 인간의 고통과 또한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의 보살핌이 전 인류를 풍요롭게 할 수 있다는 점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어느 한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유익한 사람, 혹은 그 사회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생명은 어떤 경우, 어떤 상황이든지 항상 거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법적으로 정당하다고 말하는 낙태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할 때는 이미 우리의 사회 안에 거짓문화, 폭력문화가 침투하리라는 것을 예상해야만 할 것이다. 사회의 폭력과 테러리즘에 대항하기 위하여 무장된 군인을 풀어 진압한다고 가상할 때, 이는 실상 아주 졸렬하고 악마적인 처방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여인의 뱃속에서 태어나려고 하는 생명에 대해 폭력을 가하는 것을 정당화하려는 어떠한 시도라도 이는 분명 폭력이요, 사기이며 거짓임에 분명하다. 만일 우리의 자녀들이 성장한 후에 자신이 낙태라는 가증할만한 폭력을 이기고 운 좋게 이 세상에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될 때에 부모와 자녀들과의 관계는 정상적인 관계일 수 있겠는가?

 

가톨릭 교회는 모든 인간 생명은 수태되는 순간부터 철저하게 존중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한다. 왜냐하면 사람이야말로 창조주의 모습을 간직한 지상의 유일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인간생명은 성스럽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 생성 초기에서부터 '하느님의 창조행위'에 연결되며 또한 모든 생명의 목적이기도 한 창조주와의 특별한 관계로 영원히 남게 되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그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어떤 경우도 그 스스로 무죄한 인간을 직접 파괴할 권리가 없음을 교황청 신앙교리성에서 밝히고 있듯이 우리는 생명의 파괴자로서가 아니라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인간생명의 충실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할 것이다.

 

[이동익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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