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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인간 존엄 우선하는 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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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51

인간 존엄 우선하는 건 없다

 

 

지난 12월 경희대의료원 이보연 교수팀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인간배아 복제에 성공했고, 또 2년 전 복제양 돌리를 탄생시켜 전세계를 놀라게했던 영국 로슬린 연구소의 월머트 박사가 치료용 인간 복제를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하니 다시 한번 세계가 놀라고 있다. 비록 복제인간이 나오기까지는 오랜 기간의 연구와 실험이 더 요구되지만 이론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고 또 복제된 동물들이 이미 생산된 것으로 보아 복제 인간 역시 그리 머지 않은 미래에 반드시 출현될 것이라는 데에 충격이 크다.

 

이렇게 인간 복제에 관한 연구와 실험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연구가 인류의 미래, 특히 인간의 건강과 생명에 크게 공헌할 것이라는 데에 자부심이 크다. 자신들이 만드는 복제 인간을 이용하여 장기이식용 장기를 양산할 수 있다는 것이고, 인체의 뼈라든가 간, 심장, 신장 등 주요 장기 조직으로 성장하는 근원세포를 가지고 뇌나 다른 기관의 치료에 사용하거나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병과도 같은 아직까지는 치료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질병의 치료까지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질병을 극복하고 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생명과학 분야의 노력과 그 결실은 그야말로 엄청나다.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에게 자녀와 함께 큰 기쁨을 안겨줄 수 있게 되었고, 아직 사람의 형체도 갖추지 못한 인간 배아의 단계에서도 일부 유전적인 질병의 치료도 가능하게 되었다. 또한 인간의 유전자를 가진 동물 복제가 가능하게 됨에 따라 고가의 치료 의약품을 값싸게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우수한 가축의 대량 복제를 통해 인류의 식량난 해결도 바로 눈앞에 두고 있다. 더욱이 인간에게 이식 가능한 장기를 가진 동물을 대량 복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식용 장기를 대량으로 공급하는 시대가 한 발 앞으로 다가왔고, 더 나아가서는 인간 배아로부터 기간 세포를 추출하여 배양하는 기술이 개발됨으로써 필요한 장기와 신체조직만을 따로 분리하여 생산할 수 있으리라고 하니 어쩌면 가까운 미래의 인간은 늙지도, 병들지도 않으면서 지금보다도 훨씬 더 긴 수명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놀라움은 일순간에 큰 두려움으로 변하고 만다. 복제인간이 출현함으로써 전쟁이나 사회적 혼란 같은 엄청난 비극이 바로 눈앞에 있는 것 같고, 인간 유전자를 가진 동물을 양산하는 실험을 통해 혹시 인간과 꼭 같은 뇌세포 조직을 가진 돼지가 만들어져 인간처럼 거리를 활보하고 나아가서는 인간을 지배하는 돼지의 세상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단순한 기우로 끝날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 인간을 치료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어 필요한 것만 쓰고 나머지는 폐기시킬 수 있는 세상이 온다면 혹시라도 내가 그런 피해의 당사자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단순한 피해망상증세는 아닐 것이다.

 

인류의 금세기 가장 위대한 발견이라고 할 수 있는 핵에너지의 발견처럼 인류에게 큰 공헌을 한 것도 없다. 오늘날 인류의 삶 거의 모든 영역에 걸쳐 핵에너지의 도움을 받지 않는 영역이 없을 정도이다. 전기, 의학품, 식품 심지어는 의류품에 이르기까지 핵에너지의 응용과 그 결과가 인간의 일상적인 생활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사실 하나는 오늘날의 인류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바로 인류의 삶에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편리함과 유용함을 제공하는 핵에너지라는 것이다. 현대의 인간은 혹시 인류가 멸망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곧 핵무기에 의한 전쟁 때문에 멸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재임 초기에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현대의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의 재능과 창의력을 각별히 쏟아 이룩해 놓은 것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자기 파멸을 몰고 오는 수단이자 도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워한다. 또 이렇게 예상되는 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의 모든 이변과 파국은 오히려 시시하게 여겨질 정도의 파멸이 될 것이다." 오늘날의 생명과학의 분야에서 진행되고 있는 연구나 실험 그리고 그 결과들을 대하고 있노라면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말씀은 하나의 예언이라는 생각이 든다. 생명과학의 업적이 인류의 삶을 풍성케하고 지금까지 인류가 누리지 못했던 건강과 생명을 제공해 줄 것이라는 사실에 큰 고마움을 가지고 고무되지만 또 한편으로는 그 결과가 오히려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큰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이렇게 예상되는 두려움과 비극, 파멸은 결국 인간의 손에 달려 있다. 생명과학의 발전과 그 업적이 결국 인간을 위협하고 파멸로 이끈다고 할 때 올바른 발전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을 살리기 위해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희생시키는 일까지도 과연 인간의 생명에 봉사하는 생명과학의 놀라운 업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는가? 인간을 복제한다는 일 자체가 또 다른 인간을 만들어 내는 일인데, 그러한 실험이나 연구 자체가 생명을 주관하시는 하느님의 생명권에 대한 중대한 침해라는 것은 차치하고라도 인간을 어떻게 치료용 인간과 정상적 인간으로 구분할 수 있겠는가? 과학과 기술의 의미는 인간의 본성과 도덕적 가치에서부터 드러나야 한다. 곧 생명과학 분야에서의 연구나 실험은 반드시 인간을 위해서 존재하며 나아가 모든 사람에게 이익이 되는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발전을 도모할 때 그 가치가 있는 것이다. 곧 과학 기술 그 자체로서는 의미를 드러낼 수 없으며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목적에 이르도록 도울 때 그 가치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가장 중요하게 존중되어야 할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이다. 이 원칙은 곧 인간은 누구나 존중되고 보호받아야 하며, 또 발전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또한 이는 인간 각 개인에게 있어서 어느 누구에게도 예외없는, 인권으로서의 일차적이고 기본적인 권리라는 것이다. 인간 배아도, 그것이 비록 인간의 손에 의해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생명이라 하더라도, 엄연한 하나의 인격체로서의 생명일진대 여기에 인권의 차이가 있어서는 안되고, 당연히 그 존엄성이 존중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 때문에 인간 생명의 어떤 단계에서라도 그 생명권이 침해당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곧 인간 생명에 대한 어떠한 의료적 혹은 기술적 개입이라 하더라도 인간 존엄성 존중이라는 윤리적 영역을 벗어나서는 안될 것이다.

 

생명과학의 연구나 그 업적 그 자체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한다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다만 인간 존엄성을 존중하는 범위라는 한계를 가지고 발전해나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특히 인간 복제와 관련된 생명과학의 분야에서의 윤리적 한계는 너무나 명백하다. 그 윤리적 한계란 곧 인간의 존엄성 존중이며, 이런 의미에서 인간 복제와 관련된 모든 실험과 연구는 엄격히 금지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 복제 실험이라든가 이와 관련된 법안들이 하루빨리 만들어져 유전자 복제를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인간 자신이 수단으로서가 아닌 목적이 되는,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는 사회가 되어야 하겠다.

 

[이동익 신부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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