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윤리신학ㅣ사회윤리

[생명] 생명윤리의 제문제

스크랩 인쇄

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9

생명윤리의 제문제

 

 

1. 머리말

 

현대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인류사회에 많은 이익과 편의를 가져온 동시에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들을 야기시키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의학의 분야는 과거에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였던 과제들을 던지고 있다.

 

오랜 전통 속에서 환자의 생명과 건강은 의료인의 손에 맡겨져 왔다. 그러나 이러한 개념은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게 되었다. 여기서 의료인들은 그 연유와 우리가 처해 있는 입장을 직시하여야 한다.

 

전통적으로 의료는 자비와 사랑을 바탕으로 의료인의 자유 의사에 따라 병고에 시달리는 환자에게 기술을 제공하여 왔고 환자는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써 아무런 불평도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여기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는 정신적 유대로서 이루어져 왔던 것이다.

 

그러나 사회발전에 따라 오늘날 인간의 생명과 건강은 인간이 향유하여야 할 기본권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이 권리를 가질 수 있다는 도덕적인 각성인 것이다. 오늘날에 있어 심각한 환경보전이나 핵 위협에 대한 반대운동도 인간의 기본권에 대한 도전인 것이다.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의료를 제공하기 위하여서는 의료제도와 전달체계의 변혁을 가져오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 의학의 발전에 따른 분화와 고도의 기술은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이제 환자는 의료에 있어서 주권자인 소비자의 입장에서 의사간에 여러 가지 마찰의 문제들을 안게 되었다.

 

현대 의학은 하느님의 섭리로서 생각하여 온 인간의 질병에 도전함으로써 과거에 숙명으로 생각하여 왔던 많은 질병들을 해결해왔다. 이리하여 사망률은 감소되었고 수명은 연장되어 인구의 폭발을 가져왔다. 그 결과 인구조절을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고 노인의 의료와 보건이 큰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오늘날 인구조절을 위한 수태조절, 인공유산, 피임수술 등은 효과적으로 이루어져 선진국가들에서는 인구증가가 완전히 억제되었다. 그러나 노인건강의 문제는 의학이 인간을 회춘시킬 수 있는 기술이 나오지 않는 이상 갈수록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

 

환자의 죽음은 의사의 패배를 뜻한다. 의사는 무슨 방법을 강구하여서라도 환자의 생명을 구하고자 하며 이러한 노력은 곧 환자의 생명연장을 뜻한다. 오늘날 의학의 발전은 옛날 같으면 벌써 사망하였을 많은 불치와 불구 환자들의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다. 장기이식, 뇌수술, 산소호흡 장치 등이 그것이다. 이리하여 생과 사에서 헤매는 수많은 식물인간들을 치료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학의 경이적 발전 속에서 최근 의학은 인공수정, 시험관 수태의 한계를 넘어 핵물리보다도 놀라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다. 즉 동식물의 형질을 변형시키는 유전자 치환에 관한 연구의 성공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에게도 장래 실행의 가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유전성 질병을 없앨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우수한 형질의 인간을 만들어낼 수도 있음으로 해서 인간 생명 창조의 하느님의 영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현대와 미래의 의학 속에서 과연 인간은 무엇이며 참으로 존엄한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인간이란 말은 타동물이나 생물에 비하여 인류에 부여되는 지위를 뜻한다. 즉 인간적 존재는 특별한 개체에 대한 고려이다. 여기서 인간이라는 것의 엄밀한 정의와 이 권리에 필요한 존중이 본질적으로 문제가 된다. 그리스도교에서의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된 영혼과 육신을 가진 존재로서 이성과 자유를 부여받았기에 만물의 영장인 것이다. 철학자 칸트도 실천이성비판에서 인간은 이성적 존재이기에 절대적 가치와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간은 양심에 의하여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가지고 있고 선악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을 가진 도덕적인 존재이며 우리 자신이 우리를 만들어낸 것이 아닌 피창조물로 자연의 불변한 법칙에 지배를 받고 있음이 틀림없다. 그러기에 인간은 누구나 존귀하며 평등하기에 노약자, 병고(病苦) 폐질자(廢疾者)와 태아까지도 존중하며 상부상조하는 사랑 속에서 인류는 발전하여 온 것이다. 1970년대에 들어와 생명윤리의 문제가 의학에 있어 큰 관심사로 등장하고 있고 미국의 Kenedy 윤리연구소에서는 이를 위하여 많은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 여기서 이 과제로 되고 있는 문제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안락사

 

의학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인간의 생명은 소위 식물인간의 상태로서 얼마든지 연장시킬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죽음에 임박한 환자의 생명을 무의미하게 연장시키는 것이 과연 윤리에 합당한 것이냐에 대하여 많은 논쟁을 일으키게 되었다. 수년 전 미국에서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Carlain이라는 소녀를 놓고 부모는 치료의 중지를 원한 반면 의사들은 이를 반대하여 법정문제로서 다루게 된 사건이 있었다.

 

인간의 생명은 그 마지막 순간까지 보호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반면 인간은 누구나 죽으며, 죽을 때에는 오래 앓지 않고 편안히 죽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이것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무의미한 생명연장의 방법을 써야 할 것이냐 하는 데에 오늘날 의학의 어려움이 있다. 의사는 '히포크라테스' 선서에서 인간의 생명을 위하여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불치의 병으로서 의식이 없어 인격을 상실한 생명체로서 치료 자체도 무의미하다고 판단된 상태에서 다만 생명을 연장시켜 나가야 할 것이냐는 데 대하여 문제가 있게 된다. 여기서 의사는 환자와 가족들의 생명에 대한 권리로서의 의견존중이 필요하게 된다.

 

오늘날 안락사의 문제는 편안히 죽을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더 높은 차원에서 인간의 생명은 인간의 자유를 보전하는 데 있어 불가결한 조건이 되기 때문에 생명의 연장이 이 목적에 도움이 되는 한, 적절하고 타당한 모든 방법으로서 환자의 생명을 연장하도록 하여야 하나, 이 인간의 자유를 다시 회복할 수 없게 된 것이 명확하고 생명을 무의미하게 인공적으로 연장시키는 데 불과할 때는 환자와 그 가족의 의사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3. 장기이식

 

건강한 사람의 신장, 각막, 심장들의 장기를 환자에게 이식하는 기술이 최근 의학에서 많은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형제가 병든 동생이나 형에게 그리고 더욱이 남에게 자기 장기를 나누어준다는 것은 무엇에 비할 수 없이 아름다운 일이다. 그러나 장기이식은 건강한 상태에서 되도록 빨리 환자에게 이식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래서 장기를 공급할 사람이 죽자마자 이를 이식하게 되는데 죽음의 시점이나 판단이 문제가 된다. 만일 살 수 있었던 사람의 장기를 이식하였다면 여기 중대한 윤리의 문제가 일어난다. Barnard 박사가 처음으로 교통사고 환자의 심장을 심장병 환자에게 이식하여 성공하였을 때 학계에서는 많은 박수갈채를 보냈으나 그 후 심장이식을 한 일본의 和田교수는 고소를 당하였다. 한 생명의 죽음과 다른 생명의 소생에 있어서는 중요한 윤리상의 문제를 안고 있다. 생명이나 장기의 매매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4. 산아조절

 

오늘날 인구문제는 세계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또는 가정에 있어서도 중요한 과제로서 가족계획 속에서 인구억제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단지 인구증가를 수적으로 억제한다는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윤리적 차원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이다.

 

인간은 개체보존과 종족보존을 위한 두 가지 본능을 가지고 있으며 이 본능들은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의 도덕적 규제 하에 있다. 우리의 성기는 다른 기관 예컨대 언어 운동기관과 마찬가지로 도덕적 규제 하에 있으며 특히 성의 생리는 타기관보다도 인격과 정신이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사랑은 생리와 정신이 서로 일치될수록 훌륭해지며 이탈될수록 동물적이 되는 것이다. 성기의 존재이유는 새 생명의 창조에 있다. 이 존재이유를 적극적으로 말살하는 행위는 비자연적이며 비윤리적인 행위인 것이다.

 

결혼생활에 있어 초기의 강렬한 부부애의 감퇴는 어린이의 출산으로서 견고케 되며 아이들의 수가 많아짐에 따라 안정된다. 어린이들 또한 많은 형제 속에서 자랄수록 건전함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면 부모는 양육할 수 있는 어린이를 갖는다는 윤리적 책임도 지니고 있다. 그래서 부부간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는 절제하며 자연의 방법으로서 자녀의 출산을 조절한다.

 

오늘날 고도의 물질문명의 발전과 성개방은 우리에게 풍요한 생활과 성향락의 풍조를 가져왔고 덮어놓고 자녀의 수와 인구의 수를 억제한다는 사고방식과 더불어 건전한 가정을 파괴하고 윤리와 도덕의 기반을 뒤흔들어 놓고 말았다. 오늘날 늘어나고 있는 청소년의 범죄가 이를 입증하고 있다. 가족계획이나 성교육에 있어서는 인구증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가르치기 이전에 그리고 피임의 방법을 교육하기에 앞서 진정한 부부의 사랑과 행복한 가정의 윤리관부터 심어주어야 할 것이다.

 

 

5. 인공유산

 

가족계획이 시작됨에 따라 인공유산은 법의 뒷받침을 받아 인구억제의 일환으로서 늘어만 가고 있다. 원래 인공유산이 가족계획의 방법은 아니나 원치 않는 아이는 낳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서 실제 출생하는 아이 수보다 더 많은 아이가 인공유산으로 사라져가고 있다. 현재 매년 우리나라에서 약 90만의 신생아가 출생하고 있는데 인공유산 되는 태아의 수는 1백만이 훨씬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면 과연 모체내의 태아는 인간이 아니며, 원치 않는 아이는 지워버려도 된다는 말일까? 최근 임신부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원치 않는 아이 수는 5명 중 2명이 된다고 한다. 아마 훌륭하게 자란 우리들 속에 있어서도 부모가 원치 않는 아이로서 태어난 사람이 많을지도 모르겠다. 여성운동단체에서는 어린이를 낳고 안 낳는 것은 어머니의 권리라고 하여 인공유산의 합법화운동을 활발히 추진하였던 나라들도 있다. 난 후는 딴 문제이지만 낳기까지는 어머니의 권리가 아니냐는 것이다. 과연 그러할까?

 

출생한 어린이의 출발은 모체 내에서의 잉태에서부터 시작된다. 인간은 완성된 인간과 미완성된 인간으로 구분한다. 즉 자각과 연대성을 가진 인격자로서의 현실적인 인간과 어리고 지각이 없으나 장차 완성된 인간으로서 성장할 가능적 인간으로 구분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능적 인간도 인간임에는 틀림없고 어린 시절을 거쳐서만이 성장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완전한 사람은 없다. 우리는 누구나 나이 들게 되면 노쇄하여 무능하게 되기 마련이며 또 이 사회에는 많은 불구자들도 있다.

 

고로 현실적 인간을 가지고 인간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대단히 위험한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원치 않는 아이를 없앨 수 있다면 무능한 노인, 간호를 요하는 불구자를 경시하여도 된다는 이론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낙태는 생명체의 자연과정을 절단함으로써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것으로서 이 행위가 대중의 지지를 받건 사회적 실리에 부합되건 간에 윤리에 어긋남에는 다름이 없다. 참된 가족계획은 올바른 자녀관과 책임관에서부터 출발되어야 한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둘 이상의 자녀를 가진 가정에는 세제와 후생의 혜택을 주지 않는 정책이 나오고 있고 낙태의 자율화를 위한 법의 개정이 추진되고 있다.

 

가족과 가족으로서 구성된 인구는 국가사회발전의 원동력이며 기반이다. 국가는 도덕적 존재이며 덕조(德操)를 견지하는 동안만 건재한다. 개인의 생명은 유한하지만 그들이 모여 구성된 민족의 생명은 무한한 것이다. 그러나 자연의 도리에 어긋날 때 그 생명은 유한하게 될 것이다. 법은 나라와 민족 내지는 의식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왜냐하면 대중은 국법이 허용하는 것이면 무엇이나 도덕률에 부합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족계획 사업은 무엇보다도 부모의 올바른 자녀관과 책임감에서부터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6. 불임수술

 

현재 가족계획의 한 방법으로서 불임수술이 성행되고 있다. 이것은 피임방법보다도 완전하고 영구적인 방법이다. 인도에서는 인구억제를 위하여 이 방법을 강제로 시행하려다가 정권이 무너진 일도 있다.

 

불임수술의 또 하나의 이유는 악성 유전인자를 가진 사람들에게 단종(斷種)의 방법으로서 시행하는 것인데 이러한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던 것으로 고대 유대교의 헤브라이나 인도의 법전에는 간질병, 나병, 결핵 환자와 그 가족들의 결혼을 금한 기록이 있고 로마 시대에는 노예들에게 그리고 동양에서는 궁중 내시들에게 단종을 실시한 바 있다.

 

말하자면 이 방법은 열성 인간을 억제하고 우수한 사람만을 남겨두자는 것이다. 이것은 Platon과 같은 철학자도 주장한 바 있고 Socrates는 그의 [공화국]이란 저서에서 인간도 사냥개나 맹수처럼 품종을 바꾸어보자는 의견을 제시했었다. 우수한 자의 종자를 늘이고 열등한 자를 줄일 수 있다면 이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다.

 

그러나 과거 천재라고 불리웠던 사람들 중에서 성격이상자나 정신병자들, 말하자면 단종의 대상이 될 만한 인물들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단종이 허용되고 있는 소위 선진국가들이 인종의 모범 국가가 아니라 타락한 정신문화로서 인류사의 독소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불건강한 종족을 도태시킨다는 우생학적 단종은 인간성에 따라 모든 사람이 가진 권리, 예컨대 자기 신체를 보전할 권리, 결혼할 권리, 아이를 가질 수 있는 권리에 우위할 수는 없다. 이 세상에는 우수한 사람과 같이 열등한 사람도 존재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반드시 인류가 우수한 사람에 의하여 이루어져 온 것이 아니며, 또한 인류를 움직이는 힘은 전적으로 편의적이거나 유용하기만 한 권력이 아니라 차라리 깊은 도덕률에 의한 것이기 때문이다.

 

무능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 생명을 존중하며 인간을 사랑하는 인류애야말로 인류를 이끌어 온 원동력으로서 생활력만으로 인간의 가치를 판단한다면 인간을 위한 노력은 무의미하며 인간의 존재 의의도 부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타인의 원조가 필요하며 이 필요성이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는 모든 악-전쟁, 기아, 천재-과 꾸준히 투쟁해 왔다. 이것은 인간에 있어 자유와 존엄, 생명의 경외 그리고 자연의 섭리를 수호하는 정신에서 온 것이다. 국가는 모든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단종을 허용하는 법률이 마련된 것은 정말로 우리의 후손에게 우수한 사람을 보장해 주는 것일까? 열등한 사람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나라야말로 이상향일 것이다.

 

 

7. 인공수정

 

인공수정은 서기 2세기 경에 이에 대한 언급이 있고 14세기에는 아랍종 말(馬)에서 18세기에는 개, 어류 등 여러 동물에서 이에 성공한 기록들이 있다. 지금부터 약 백년 전 미국 모대학에서 남편의 병으로 임신 못하는 부인에게 처음으로 인공수정을 실시하여 이에 성공한 후 이 시술은 점차 유행되어 현재 전세계에서 수십만 명의 인공수정아가 매년 출생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인공수정의 제일 큰 이유는 어린이에 대한 욕망으로서 많은 부인들이 이러한 경우에 놓여 있다. 인공수정은 일부일부(一夫一婦)의 본질을 인정하는 이상 윤리에 위배되는 행위이며 미혼이건 기혼이건 간에 부인, 남편, 태어나는 어린이 그리고 급정자(給精者) 간에 있어 시술 후 많은 정신적 심리적 문제를 일으킨다. 현재 독일 의사회에서는 인공수정을 반대하고 있고 형법에서는 시술한 자나 시술 받은 자 모두 처벌받도록 되어 있다.

 

한편 최근에 와서는 건강하고 머리 좋은 여성에게 수재의 정자를 인공수정 하여 천재의 아기를 만들어내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독일 나치시대의 '부레바' 계획에서도 실험된 것인데 현재는 정자은행을 가지고 보다 과학적으로 진행시키고 있다.

 

그러나 유전인자의 배합은 그리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일찍이 독설작가로 유명하였던 Bernardshow의 일화가 있다. 어느 미모의 허리우드 여우(女優)가 그에게 편지를 내었다. 사연인 즉 "선생님과 같이 우수한 두뇌를 가진 분과 미모의 내가 결합하면 참으로 이상적인 아기가 태어날 것입니다."라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그는 다음과 같은 서한을 보냈다. "그렇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마는 반대로 나와 같은 추한 얼굴에다가 당신의 빈 머리를 가진 어린애가 태어나면 어떡하겠습니까?"라고.

 

도대체 어떻게 되자는 것인가? 우리는 범죄자들 중에서 머리 좋은 자들을 많이 본다. 만들어낸 인간에게서 우리는 참다운 사랑을 느낄 수 있으며 이들에게서 참된 인간의 가치와 민주주의를 바랄 수 있겠는가? 최근 의학에서는 시험관에서 인공수정이 성공되고 있으며 수정된 난자를 다른 부인의 자궁 속에서 발육시켜 출산케 하는 대리모까지 나오게 되었다. 실제로 얼마 전에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Elizabeth Keain 이라는 부인이 대신 아이를 낳아 주고 1만 불을 받은 후 모권을 포기한 사실이 일어났다. 일종의 아이의 인신매매 행위인 것이다. 이러한 사실이 일어나자 켄터키주의 법무장관은 이를 금지하고 이러한 행위를 주선하는 단체에 대하여 해산명령을 내렸다.

 

오늘날 인간은 과학의 힘을 과신하는 나머지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신비를 저버리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8. 유전자 치환

 

최근 유전자공학이 발전되어 생물의 유전자인 DNA를 치환하는 실험이 성공됨에 따라 식물과 미생물에 있어 이를 산업에 이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실제 대장균의 유전인자를 치환하여 '인슐린'이나 '인터페론'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장차 동물에까지 적용되어 복제동물을 만들어내는 실험이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 토끼 만한 쥐나 코끼리 만한 돼지가 나오게 될지도 모르며 인간의 유전인자를 가진 동물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또한 지금까지 없었던 맹독을 가진 미생물이 출현할 위험성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인간의 유전인자에 대한 조작이다. 만일 이렇게 된다면 유전성 질환을 해결할 수 있게 될지 모르겠으나 '슈퍼맨'이나 소설에 나오는 '프랑켄슈타인'과 같은 괴물이 출현할 위험성도 갖게 되는 것이다. 장차 인조인간(로보트)과 자연인간 간에 소설과 같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장기이식의 의학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어느 사람이 장차 우리의 미래를 바꿀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 일이 있다. 머리를 바꾸지 않더라도 유전인자를 치환하면 이보다도 더 놀라운 현상이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이 위험성을 예기하여 미국에서는 생물학적 위험(Biological Hazard)이라는 말이 나왔고, 이를 관리하는 사람을 생물학적 안전관리자(Biological Safety Officer)라고 부르고 있고 이에 관한 실험은 보건연구원(NIH)에 설치되어 있는 안전위원회의 심사를 거치도록 되어 있다. 한편 이를 취급하는 실험실은 실험의 내용에 따라 방어기준 1급에서 4급(P1-4)으로 나누어 특별한 설비 하에서만 실험할 수 있도록 규제돼 있다. 만일 앞으로 인간이 인간의 정신을 조작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것은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으로 곧 인간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 될 것이다.

 

 

9. 맺음말

 

현대과학의 경이적인 발전은 인간의 기술과 생활, 문화 그리고 가족과 사회제도를 근본적으로 뒤흔들어 놓았다.

 

오늘날 인간은 과학의 효율성과 편의성에 보람을 가지며 이것이 진리처럼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은 복잡한 현상에 대한 객관적 해명이지 여기에 진리나 사상이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의 가치는 이를 어떻게 이용하는 가에 달려 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르다. 지식을 이롭게 사용하는 것이 지혜다. 또한 가능하다는 것과 실시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다른 것이다. 어느 유전학자가 유전학 연구를 도중에 포기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노벨이 발명한 '다이나마이트'는 인류에 큰 공헌을 하였음은 우리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이 화약으로 1차 세계대전에 얼마만한 인명이 살해되었는가? Einstein의 상대성 원리가 오늘날 세계를 파멸시킬 수 있는 무서운 핵폭탄으로 발전할 것인지 누가 짐작이나 하였는가? 의학이 인간성에서 이탈된다면 이것 역시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것이다. 일찍이 Schweitzer 박사가 "현대는 사상에서 지식을 분리시켜 자유로운 과학이 되었으나 반성하는 과학에서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다."고 한 말을 우리는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우리 의학도는 의학을 연구함에 있어 의료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 하며 의료는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에 기반이 있음을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야 할 것이다.

 

[조규상 / 한국천주교 주교회의 생명윤리연구회 홈페이지에서]



306 0

추천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