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5일 (금)
(홍)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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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생명과학, 과연 인류의 미래인가 파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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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호식 [jpatrick] 쪽지 캡슐

2004-11-16 ㅣ No.346

생명과학, 과연 인류의 미래인가 파멸인가?

 

 

인간의 평균 수명이 매우 높아졌다. 의료기술의 발달로 인해 많은 질병이 극복되었고, 아직까지 불치의 병이라고 여겨지는 암이나 에이즈 같은 몇몇 질병들도 극복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으니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에는 사람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도 20-30년 혹은 40-50년 더 길어질지도 모르겠다. 또 어떤 유전적 질병들은 아직 사람으로서의 형체도 갖추지 못한 인간 배아의 단계에서도 치료될 수가 있다고 하니 굉장한 놀라움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금세기 인류에게 가장 큰 숙제였던 식량의 문제도 서서히 해결될 조짐이 보인다. 소위 생명과학의 놀라운 업적은 몸집이 두 배가 넘는 돼지를 양산할 수 있게 되었고, 한정된 면적에서 몇 배나 더 많은 곡물 생산도 가능하게 만들었으니 인류의 미래는 그리 어둡지만은 않은 것 같다. 적어도 건강을 유지하는 가운데 식량 부족의 걱정 없이 더 오랜 생명을 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인류가 추구하는 행복은 이제 거의 모두 실현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놀라운 일들이 모두 생명과학의 업적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찬사를 보내고 있고, 또 어떤 이들은 인류의 미래가 바로 여기에 달려있다고까지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 분야에서의 지칠 줄 모르는 연구는 그 구하기 어려운 장기를, 그것도 다른 사람에게서 적출한 것이 아니라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아주 싱싱한 장기를 양산해 낼 수 있다고까지 장담할 뿐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인간의 생명까지도 실험실에서 꼭 같이 복제해 낼 수 있다고 하니 그 놀라움은 이제 우리의 상상을 훨씬 더 앞서가고 있는 현실이다. 어쩌면 가까운 미래에 사람을 살리기 위해 그 사람과 꼭 같은 유전자를 가진 복제인간을 만든 다음 거기서 필요한 장기를 적출하여 수술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쓰레기 버리듯이 폐기시켜 버리는 일이 현실화될 지도 모르겠다.

 

이런 끔찍한 상상을 하면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수밖에 없다. 생명과학 분야의 이런 연구들은 과연 누구를 위한 연구인가? 그들은 물론 그것이 인간을 위한 연구라고 답변하겠지만 여기에 큰 함정이 있다. 오늘날 진행되고 있는 생명과학의 연구와 그에 따르는 결과들을 볼 때 오직 경험적이고 효율적인 것만이 지배하는 경험적 과학지식과, 과학의 이름으로 타인의 자유는 물론 존재까지도 침범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판을 치고 있다. 여기에 인간은 생명과학의 발전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인간 개인의 생명이 또 다른 개인의 생명을 위해 희생되고 만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발전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대한 봉사, 곧 인격이 존중되고 생명이 온전히 보호받은 인간에 대한 봉사가 그 목적이 되어야지, 그 발전을 위해 인간이 단순히 수단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인간의 건강과 생명, 나아가 인류의 행복을 위한다는 생명과학 분야의 노력과 연구가 인간 인격을 위한 윤리로 떠 받쳐지지 않는다면, 또 인간의 존엄성과 온전성을 존중하는 윤리와 조화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결국 인간 파괴로 작용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79년에 반포한 첫 회칙 {인간의 구원자}에서 현대의 인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자기 자신의 재능과 창의력을 각별히 쏟아 이룩해 놓은 것들이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자기파멸을 몰고 오는 수단이자 도구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15항 참조) 이렇게 예상되는 파멸은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상의 모든 이변과 파국은 오히려 시시할 정도라는 것이다.

 

우리는 생명과학의 업적이 인류의 삶을 풍성케하고 지금까지의 인류가 누리지 못했던 건강과 생명을 제공해 주리라는 사실에 큰 고마움을 가지고 고무되어 있지만 그 발전의 기초에는 반드시 인간 존엄성의 존중이라는 윤리적 대원칙이 함께 자리 잡아야만 한다. 이 원칙이 존중되는 한에서 생명과학은 인류의 미래가 될 것이고, 만일 그렇지 못한 생명과학의 발전이라면 이는 곧바로 인류의 파멸이라는, 아직까지 인류가 경험해보지 못한 엄청난 비극 속으로 빠져들고 말 것이다.

 

[평화신문, 1999년 1월 24일, 이동익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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